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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는 시계를 본다. 2시 25분. 지금쯤이면 가기 딱 좋은 시간이다. 부활동 시간까지는 조금 시간이 있으면서도, 부원들이 많이 모여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만화부실에서 재미를 보고, 운동장에 뜬 큰 구름을 가지고 놀 수 있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먹구름이 뜬 장면, 천둥소리가 울리고 번개가 치는 구름으로 덮인 운동장 등등. 하지만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 시간은 많지 않아. 빨리 가야...”
그렇게 서둘러 가던 토마는, 금방 누군가와 마주친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커 보이는 키에, 토마는 기겁한다.
“어, 어엇...!”
너무 갑자기 마주쳐 놀랐는지, 토마는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린다. 올려다보니, 미린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한 명 서 있다. 그 남학생은 세훈으로, 막 도서부 활동을 위해 도서관에 들어온 참이다.
“응? 너... 미린초등학교 학생이지.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아... 별... 별 거 아니에요!”
그렇게 얼버무리면서, 토마는 얼른 떨어진 만화책을 주우려고 허리를 굽힌다. 세훈은 그걸 놓치지 않고, 다시 토마에게 묻는다.
“어... 그거, <라리의 모험> 최신 회차지? 너도 만화 좋아하는구나.”
“네... 네...”
토마는 그렇게 말하며 대답을 피하고, 자리를 벗어나려고 한다. 그걸 알았는지, 세훈은 굳이 토마를 막으려 하지 않고, 그냥 옆으로 비킨다.
“네가 딱 좋아할 만한 동아리가 하나 있어. 마침 초중고 통합 동아리이기도 하니까, 너 가면 좋아할 거야. 알겠지?”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토마는 얼른 달려서 도서관을 벗어난다. 세훈이 말하는 동아리가 어딘지는, 이미 토마도 알고 있다. 토마의 뒷모습을 보며 세훈은 중얼거린다.
“그러게... 그런데 왜 여기 깊숙한 서가에 있었던 거지? 거기에다가...”
세훈은 멈춰서서, 뭔가 이상했는지 한 마디 중얼거린다. 세훈의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 같고, 등 뒤에도 마찬가지다. 후끈거리는 숨은 덤이다.
“좀 습해진 것 같은데...”?
“뭐야, 고등학교는 운동장 절반에 비가 왔다고요?”
민과 친구들이 한참 <셀렉트 원> 이야기를 하는 그 시간, 부실의 다른 한쪽에서는 나디아의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는 점심시간 내내 연못에 우박이 떨어졌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지온은 나디아의 옆을 지나가다가, 나디아와 세이지의 대화를 우연히 듣고는 멈춰 서서, 마치 쭉 듣고 있었다는 듯 말한다.
“초중고 세 곳에 구름이 떴는데 모두 다른 현상을 보였다고 그러더라. 누군가는 미린대 캠퍼스에도 비슷한 구름이 떴다고 그러던데?”
“하... 정말요?”
옆에서 들린 지온의 말이 적잖이 놀라웠는지 나디아는 눈을 크게 뜨고는 지온을 돌아본다.
“어쩐지 오늘 좀 많이 습하다 했는데... 그것 때문이었던 건가?”
“그러게. 지금도 꽤 많이 습한 것 같고...”
지온의 그 말은 빈말이 아니다. 아까의 구름이 낀 걸 볼 때부터, 좀 습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화부실에 들어서자, 그 습한 정도는 확실히 강해졌다. 짜증과 불쾌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어떤 녀석인지, 정말 잡히기만...”
지온이 막 그렇게 입을 떼려는데...
“자, 얘들아!”
윤진의 목소리가 부실 앞쪽에서 들린다. 윤진의 두 손에는 손가방 하나씩이 들려 있고, 그 안에는 뭔가가 가득 들어 있다. 분명히 뭔가 준비를 많이 해 온 모양인데, 가방 안에 담겨 있어서 뭔지 자세히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방에 그려진 그림으로 봐서는 요시노 감독이나 <5월은 거짓말> 같은 작품에 관련된 무언가인 건 확실하다.
“오늘도 시작해 볼까?”
윤진의 그 말이 들리자마자, 다들 언제 그렇게 모여서 잡담을 하고 있었냐는 듯 자리에 들어가서 앉는다. 윤진이 막 부실 앞에 서서 오늘의 활동을 시작하려는데, 더운지 ‘후’ 하는 거친 숨을 내쉬며 손으로 부채질을 하다가, 옆에 있는 창문을 확 연다.
“여기... 좀 많이 습하지 않니?”
하지만... 부실 뒤쪽은 아닌 것 같다. 몇몇 부원들은 윤진이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눈을 멀뚱멀뚱 뜨고 보고 있다. 또 몇 명은 옷을 털거나 손부채질을 하거나 한다. 그러면서도, 뭔가 다른 분위기를 직감한 건지, 윤진이 서 있는 쪽을 긴장감 섞인 눈으로 보는 부원들도 있다.
“자, 그리고 시작하기 전에, 신입이 한 명 있어! 들어와!”
윤진이 손짓을 하자,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분홍색 머리의 누군가가 들어온다. 어딘가가 좀 음침해 보이기도 하는 그 남자아이가 누군지, 민은 바로 안다.
“뭐야, 토마가 왜 여기에 와?”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약 3분 전.
토마는 도서관을 나온 다음, 운동장 쪽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는 만화부실이 있으니, 거기서 한 번 더 뭔가를 한 다음 운동장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이윽고 만화부실 앞에 다다르자, 토마는 주위를 두어 번 둘러보고는, 마치 잠수를 하듯 자세를 확 낮추었다. 그리고 마침 살짝 열린 문틈에 손을 뻗었다.
“좋아... ”
그렇게 중얼거리며, 막 만화부실의 습도를 올리기 시작한 그때.
“응? 거기서 뭐 하고 있어?”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토마의 뒤에서 들려왔다. 돌아보니 거기에는 윤진이 서 있는 게 아니겠는가. 두 손에 가방을 들고 막 만화부실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거기에다가, 토마는 쪼그려앉아 있었다. 바로 일어나서 도망가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거기에다가, 윤진과 눈이 딱 마주쳐 버렸다. 토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렇게 토마가 전전긍긍하고 있던 그때.
“어, 너로구나!”
갑자기, 윤진의 얼굴색이 확 밝아진다. 분명,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던 게 들통났다고 생각했을 터인데, 의외의 반응을 보이니, 토마로서는 당황스럽다. 토마가 말을 잇지 못하고 멀뚱멀뚱 윤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윤진이 다시 입을 연다.
“언제 오나 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환영이야, 토마.”
“제... 제 이름도 알아요?”
토마는 윤진의 말에 몸을 벌벌 떨 정도로 겁을 먹었지만, 윤진은 오히려 그런 토마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아니면 자신이 토마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다는 건지, 웃으며 말한다.
“당연히, 우리 부에 올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지. 그리고 이렇게 와 줬으니, 나로서도 고마울 따름이고.”
‘뭘 저렇게 멋대로 생각하는 거야!’
토마의 머릿속에는 다른 형태의 무서움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기서 빠져나가고 싶은데, 윤진의 웃는 얼굴을 보자니 그러지도 못할 것 같았다. 거기에다가, 저 마성의 웃음은, 토마를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 웃음 자체에 손 같은 건 달려 있지 않지만, 토마를 묶어 버리고 꽉 옥죄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토마는 기침을 몇 번 했다.
“어? 그렇게 기침하고 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저, 그게...”
“그건 그렇고, 자, 새로운 만화부원, 환영한다. 어서 일어서. 용기를 가져!”
“......”
토마는 황당했는지, 아니면 더욱더 무섭게 느껴졌던 건지, 앉은 자리에서 뒷걸음질 치려고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이미, 윤진이 토마의 앞에 와서, 토마를 일으켜 주고 있었다.
“자, 들어가자. 이제 시작이니까!”
그때, 토마가 도망가려고 했다면 더욱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토마가 윤진을 따라간다면, 운동장에서 할 일에 차질이 생겨 버릴 것이다. 하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윤진이, 토마를 너무도 강하게 끌어당겼다.
“네, 네...”
토마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의 선택지는 없었다. 마치 무슨 마법에 홀려 버린 듯, 토마는 윤진을 따라, 만화부실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토마는 소개를 마치고 나서, 한숨을 푹 쉬더니, 또다시 기침을 두어 번 하고 빈자리로 들어가 앉는다. 마침, 그 바로 옆에는 민이 앉아 있다.
“어? 네가 왜 여기 앉아 있어?”
“어... 그러니까...”
토마는 민의 질문에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거기에다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건 덤이다. 민은 토마가 평소에 왜 이러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말을 계속 걸어 본다.
“윤진이 형이 오라고 했던 거지? 다 알아.”
“......”
토마는 역시 말이 없다. 정말로 말이 안 나와서 그런 건 아니고,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어서다. 어떻게 ‘운동장에 내려가서 구름 가지고 놀려다가 윤진이 형에게 끌려왔다’고 솔직히 말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더욱 움츠러드는 모양새인데, 민이 이걸 또 얼른 알아차릴 리가 없으니, 하려던 말을 계속 한다.
“여기 오기까지는 쉽지 않았을 텐데...”
“어... 그렇지...”
토마의 입은 무겁게 떨어진다. 진짜 속생각은 따로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토마가 만화부에 오기까지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래... 어떻게 만화부에 오게 되었든,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잘 해 보자고.”
“그... 그래.”
토마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까지 맺혀 있다. 긴장했기는 했지만, 왜 긴장했는지는 민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래도 어쨌든, 토마는 잔뜩 긴장된 표정을 하면서도, 부 활동을 시작한다. 그 긴장이라는 게, 가시방석 위에 앉은 것과도 같은 긴장이기는 하지만.
“자! 신입 소개도 끝났으니, 이제 시작해 보자고.”
윤진은 그렇게 말하며, 준비한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좋은 소식! 요시노 감독님이 우리 만화부를 위해 조그만 선물을 준비했어. 토요일에 있을 코믹 페스타에 우리 부스에도 잠깐 들른다고 하시니까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
“오, 정말요?”
몇몇 부원들의 눈이 둥그레지는 게, 윤진에게도 보인다. 윤진은 거기에 고무되었는지, 표정이 더 밝아진다.
“그래. 아마도 감독님 사인회는 우리 부스 근처에서 하게 될 거고. 다들, 여기 들어 있는 게 뭔지 한번 봐 줄래?”
윤진은 이윽고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가방 속에서 꺼내진 것은, <5월은 거짓말> 등장인물들의 피규어, 그리고 걸개그림이다.
“오, 벌써 극장판 버전 피규어가 나온 거야?”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아이란. 전과 같은 과장된 몸짓은 없지만, 피규어를 보자마자 둥그렇게 뜬 눈과 벌어져서 다물어지지 못하는 입은 아이란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 단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저거 아직 출시는 안 된 거겠지...”
아이란은 혼자서 중얼거린다. 앞에 서 있는 네 개의 피규어를 향한, 남들과는 다른 시선을 숨기지 못하고서 말이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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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2-11-20 16:29:49
윤진의 영업능력이 이런 데에서 빛을 발할 줄이야...
정말 의외네요. 나쁘게 보면 주변에 민폐를 끼치기 딱 좋은 성격이고 좋게 보면 그만큼 자신의 활동에 열의와 진심을 갖추고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토마를 붙잡아두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고, 역시 어떤 능력이 완전히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이르다는 게 증명되네요.
게다가 정말 굉장하네요. 아예 요시노 감독이라는 업계인사와도 이미 저런 관계라니...
시어하트어택
2022-11-20 22:32:17
윤진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현재 회차에서 나온 결과만 놓고 보면 토마를 억제시키는 의외의 좋은 결과를 낳았죠. 물론 그런다고 장난을 치지 않을 토마가 아닙니다. 어떻게든 자기 능력을 써서 재미를 보려고 할 것일 테니까요.
SiteOwner
2023-01-22 17:04:13
역시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입니다.
토마는 왜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상한 장난질을 벌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는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보는 눈이 계속 늘어나니까 얻을 것은 더욱 적어지고 잃을 것은 더 많아질 것이지만, 어쩌겠습니까. 머리로 생각못하면 몸이 고생을 해봐야겠지요. 그래도 못 깨닫는다면...
그나저나 윤진의 능력, 정말 좋습니다.
역시 부장의 지위에 있을만하다는 게 이렇게 드러납니다. 정말 부럽습니다.시어하트어택
2023-01-29 23:47:11
그렇죠... 무엇이든 너무 오래 하면 결국 증거가 남기 마련이니까요. 그게 단지 재미 때문이라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