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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가 잠시 흰 페인트칠로 착각했던 창밖의 풍경은,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안개가, 아파트 단지 안에 매우 넓게 퍼져 있다. 마치 아파트 단지 자체가 거대한 안개의 바다 안에 들어온 것처럼 되어 버렸다. 한눈에 봐도, 시야가 1m 너머를 볼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일 정도다. 지상의 광장과 그 외에 놀이터, 주차장 같은 것도 다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여기가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거대한 안개의 바다였던 것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다.
“이래 가지고서는 학교를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잖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문을 나서니,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하다. 안개의 흰색만 검은색으로 바꾸면, 완전히 암흑천지에 들어온 것 같다. 거기에다가 분명히 길가에는 사람들이 다니고 있는데, 희미한 형태를 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들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손을 앞에 대고 이리저리 휘휘 저어 가며 다니는 모습이, 나디아에게도 어렴풋이 보인다. 실루엣같이 보일 뿐이기는 하지만.
“지도 같은 거라도 봐 가면서 가야 하나...”
나디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도를 본다. 단지 안에 자신의 위치가 나타난다. 그리고 학교로 가는 최단경로도 나타난다. 그런데, 어디가 북쪽이고 또 어디가 남쪽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워낙에 안개가 짙게 끼니, 방향 감각도 잃어버릴 것 같다.
“내가 아까 나온 방향이... 어느 쪽이었지...”
평소에 어느 쪽이 북쪽이고 어느 쪽이 남쪽인지 생각하고 다닌 게 아니니 헷갈릴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평소에는 아파트 단지 배치도를 그냥 장식물 중 하나로 봤는데, 지금 와서 애타게 찾으려다 보니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꺼내든 지도 앱을 조금 더 만져 보니, 그제야 좀 알 것 같다.
“내가 향한 방향이 동북쪽이고... 학교는 동쪽으로 가야 하니까...”
그렇게 빠르게 답을 낸 나디아는 손을 휘저어 가며 앞으로 걸어간다. 짙은 안개 속에서도 보도블럭을 따라가니 그럭저럭 걸을 수는 있다. 중간중간 발에 걸리는 돌부리나 화단 경계석 등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런 것 정도쯤은 피해 갈 수 있다. 중간중간, 앞을 더듬거리며 걷는 사람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문제는, 얼마 정도 걸어갔을 즈음부터다.
“분명 여기... 지하철역을 가기 전에 횡단보도를 하나 건널 텐데...”
나디아의 기억상으로는 지하철역에 가기 전에 2차선 도로가 하나 있다. 그런데, 횡단보도는커녕, 도로의 경계석도 잘 보이지 않는다. 앞에 있는 게 화단인지 아니면 도로 경계석인지는, 몇 발짝 앞으로 다가가 봐야 알 수 있을 정도다.
“어디... 여기가 횡단보도였나?”
비록 형체만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이기는 하지만, 차단봉을 보니 여기가 횡단보도라는 건 알 수 있겠다. 물론, 그 다음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아니, 2차선이라고 해도 여기를 어떻게 다 건너지?”
이럴 때 보니, 2차선 도로가 마치 물살이 빠른 강같이 보인다. 거기에 다리가 끊어진 것처럼 횡단보도가 보이지 않고, 이따금 악어 같은 육식동물도 지나다니는 것과도 비슷하게 차가 지나다닌다. 안개에 싸여서 보이지 않고 차 지나다니는 소리만 들리니,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나디아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인데, 그런 길이 아닌 것 같잖아. 무서워!”
“에이... 안개가 끼어 버렸잖아.”
그 시간, 아파트 단지 다른 동의 출입문. 180cm 정도 되는 키의 한 남자가 출입문 밖으로 나오고 있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겉에 후드티를 걸치고 있는데, 폰으로 주위를 촬영하고 있다. 앞으로 걸어가 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당장 1m 밖도 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어떻게 그 능력자를 찾지... 이렇게 앞이 모조리 안 보이면 정말 어려운데...”
그리고 그때, 전화 수신 진동이 전해져 온다.
“여... 여보세요?”
“어, 치라유, 지금 찾고 있는 거야?”
“네... 변호사님. 그런데 변호사님도 보다시피, 앞이 아예 보이지 않네요.”
“응, 보이지 않는다고?”
전화 너머의 메이링의 목소리는 ‘거짓말 하지 말라’는 듯한 말투가 묻어나온다.
“아무리 그 능력자가 안개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그게 말이 돼?”
“네. 시야가... 1m밖에 되지 않아요. 마치, 흰색을 검은색으로 바꾸기만 하면, 칠흑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정말...? 내가 거기로 한번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전화 너머의 메이링의 목소리는 이제 조금 심각하게 들린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전화상으로는 확인되지는 않지만, 금방이라도 여기에 올 것만 같은 기세임은 분명하다.
“아니, 변호사님이 여기에 올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요. 제가 그냥 여기서 그게 누구인지 보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치라유, 내 말 들어. 금방 그리로 갈 테니까. 알겠어?”
“네... 변호사님...”
치라유가 막 그렇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누군가가 빠른 걸음걸이로 치라유의 앞을 지나가는 것 같다. 평소 같으면 그냥 보통 사람들이 걷는 걸음걸이겠지만, 지금처럼 안개가 잔뜩 낀 상황에서는 의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잠깐... 변호사님...”
“왜?”
“지금 조금 빠르게 걷는 사람이 하나 있어요.”
“혹시 인상착의 같은 거 본 건 있어?”
치라유는 그 상황에서도 본 게 있기는 한 건지, 곧바로 메이링에게 방금 지나간 사람의 인상착의를 말한다.
“머리는 파마머리였던 것 같고요... 키는 150cm 정도예요. 가방을 메기는 했는데 모양은 자세히 못 봤어요. 복장도 확실히 보이지는 않아요. 그리고 여기로부터 지하철역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고요.”
“지하철역...? 알겠어. 계속 그 사람을 주시해 줘.”
“하지만, 안개가 너무 짙게 껴서, 그 사람이 지금 보이지가 않아요.”
“그래... 뭐 됐어. 내가 그리로 가지.”
한편, 민은 자기 방에서 막 잠에서 깬 상태다. 막 몸을 일으켜서 옆에 놓여 있는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켜 보니, 사진과 동영상 몇 개가 보이는데, 그중 몇 장은 ‘바로 지금’ ‘10분 전’ 등의 표시가 되어 있고, 한 아파트 단지 안에 안개가 짙게 껴서 마치 아파트 단지 전체가 안개처럼 되어 버린 것 같은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건 누가 찍은 거지? 드론을 가지고 한 것 같은데...”
로고를 자세히 보니, 민이 몇 번 간 적이 있는 단지다.
“토마 사는 데 아니야?”
금방이라도 달려가서 안개라도 흩거나 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지금 민 자신은 막 잠에서 깬 상태다. 여기서 뭘 하려고 한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은 맑다. 정원에 있는 나무들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도, 여느 날과 다름없다.
“이거 도대체 무슨 일이지...”
일기예보를 보니, ‘맑음’만 나타나 있고, ‘비’나 ‘안개’는커녕 ‘흐림’으로 표시된 것조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안개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잠깐, 토마? 토마가 거기에 살고 있잖아!”
민은 그저께의 그 일을 다시 떠올린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저런 구름이나 안개를 만들어내는 능력자가...”
민은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다른 초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확실히 초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을 찾아낸다. 그저께 민의 집에 모인 6명 중에,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딱 한 사람이다.
“어... 그게 맞다면... 설마...”
민은,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누구인지는 정황상으로 증거가 있어서 바로 댈 수 있지만, 그걸 자기 입으로 내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왜 하필이면 내 예상은 그쪽을 가리키는 걸까... 도대체...”
그렇게 되뇌며, 민은 자기 방에서 나선다.
“응...?”
나디아의 귀에, 어느 순간 도로에 지나다니는 차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엔진 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움직이는 소리는 아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차가 멈춰 버린 건가?”
그리고 나디아의 예상은, 틀리지 않는다. 누군가가 차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예감이, 문득 든다. 그리고 그 위치는 멀지 않다.
“도대체 누구지? 설마... 내가 아는 사람인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바로 뒤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안개 때문에 주위가 잘 보이지 않아서 천천히 다가오기는 하지만.
“어, 나디아냐?”
“안젤로... 선배?”
안젤로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손목시계에 뜬 작은 홀로그램으로 뭔가를 열심히 조종하는 것도 보인다.
“선배, 뭐 하는 거예요?”
“아... 이거?”
안젤로는 나디아가 그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우리 집에 모형 자동차가 몇 대 있거든? 그걸로 저기 차도에 있는 차들을 조종해서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가거나 아예 멈춰 버리도록 한 거야. 그러면 좀 쉽게 지나다닐 수 있겠지.”
“과연... 그럴까요?”
나디아는 안젤로의 말이 믿기지가 않는지, 고개를 한번 갸우뚱거린다. 안젤로는 나디아의 그런 반응도 예상했는지, 한번 씨익 웃고는, 횡단보도를 먼저 지나가며, 나디아보고 따라오라는 수신호를 보낸다. 과연, 안젤로가 지나가는 횡단보도 위에는 차가 다니지 않는다.
“어, 선배님, 어떻게 된 거죠, 이건?”
“내 능력을 조금 응용했더니 차들이 멈춰 서더라. 어때?”
“이럴 때 다니기에는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너도 네 초능력을 하나만 좀 쓰지 그랬어!”
“하지만 그러면 교통사고가 나 버릴 텐데요.”
“어... 그랬나.”
어느새 둘은 단지를 지나 지하철역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주위에 보이는 사람들 역시, 나디아와 안젤로처럼 느릿느릿 걷고 있다. 그러다가 지하철역에 다다르자, 다들 살았다는 듯 안도하며 계단을 걸어 내려가고 있다.
“그런데 이거, 도대체 누가 이러는 거지? 안개가 너무 짙게 껴 버리니까 이래저래 피해가 좀 있을 것 같은데...”
“왜 있잖아요. 자꾸 부실 안이 습해지고, 며칠 전부터는 구름도 끼고 그러잖아요?”
“아니, 나도 아는데, 이렇게 자꾸 일을 벌일 정도면 이제 신원도 좀 특정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리고 둘이 그렇게 막 이야기를 주고받으려는 그때, 누군가가 빠른 걸음으로 둘의 앞을 지나친다. 안개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키는 170cm 정도에 안경과 모자를 쓰고, 온갖 장식이 붙은 겉옷을 입은 남자다. 마치 안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빠르게 둘의 앞을 지나치더니, 그대로 지하철역 안으로 막 들어가려는 그때다.
“오, 늦지 않게 왔네.”
누군가가, 지하철역 출구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올라오고 있다. 그게 누구인지 돌아보는 나디아와 안젤로. 예사로운 움직임은 아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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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2-12-13 16:06:12
농무도 저 정도면 재해 레벨인데요? 정말 저 상황에서 밖을 다닌다는 그 자체가 싫어지네요. 저라면 저 상황에서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은 굳이 외출을 강행하지는 않을 듯...
아무튼, 초능력을 이런 식으로 남용한 자는 초능력자의 실체를 알고 대처수단이 있는 사람에게 잡히면 절대 좋은 결말은 맞지 못할 거예요. 초능력을 무력화 가능한 메이링은 변호사이기도 한 터라 작정하면 정말 제대로 털어버리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니까요.
나디아와 안젤로 앞을 지나는 요란한 차림의 남자가 여러모로 신경쓰이네요. 역시 범인은 현장에 나타나는 것일지...
시어하트어택
2022-12-18 16:49:28
예전에 저렇게 안개의 시야가 10m를 넘지 않는 게 뉴스에도 보도된 적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만 해도 완전히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었죠.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안개 말입니다.
나디아와 안젤로 앞을 지나간 그 남자의 정체는... 의외일 수도 있습니다.
SiteOwner
2023-01-24 21:12:15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저 상황...
어릴 때 국민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유년기의 헬렌 켈러의 전기의 장면이 같이 생각났고, 투병생활 중 혼수상태에 있었던 그날의 기억도 새로이 살아나는 것 같아서 여러모로 속이 뒤집히는 것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런 일이 없기만을 바래야 하는데 말이지요.
요란한 차림의 그 남자가 신경쓰이긴 하지만...
이 세계의 초능력에는 변형능력이라도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2-05 23:21:19
어느 영화에 나왔던, 완전히 안개에 가려져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을 좀 참고했습니다. 실제로 저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그 지역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겠죠.
저 남자의 정체는, 예상한 사람일 수도 있고 예상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