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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가 그 이야기를 들은 건 바로 이틀 전. 괴담치고는 평범한 편이기는 했지만, 연희의 귀에는 솔깃한 내용이었다. 그날도 도컬트 동아리실에는 후배 세 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연희가 동아리실에 들어오다가 우연히 엿들은 것이었다.
“야, 그런데 ‘캡틴 몰’에 이상한 눈깔괴물 같은 게 나온다는 그 말이 사실이냐?”
“에이, 너는 그 말을 믿냐? 그런 녀석들이 왜 쇼핑몰에 살아? 폐가 같은 데 산다고 해도 안 믿는 판에!”
“한번 가 볼래? 우리가 무슨 동아리인데!”
한참 세 후배가 이야기하던 중, 한 명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늘 의욕이 앞서는 1학년생, 로사였다. 처음 동아리에 들어올 때부터 늘 이런저런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동아리실을 더욱 으스스하게 만들어 놓은 건 물론, 한 달 전부터는 재개발구역의 폐건물이나 공동묘지, 외계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거리에 대한 답사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연희가 한번 로사에 대해 알아보니, 도라고등학교에 오기 전, 중학생 시절에도 오컬트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서, 이미 오컬트에 대한 내용을 주로 포스팅하는 SNS 팔로워 수가 수천에 달할 정도다. 그런데 그런 주제에 장래희망은 또 ‘일류 물리학자’인, 기묘하면서도 알 수 없는 후배다.
“어... 네가 그럼 자료 좀 수집해 볼래?”
“그래. 그럼 이번 토요일에 가 보는 거다.”
그 말을 듣고, 연희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저 잘난 후배를 이겨 보자!’라는 생각이 분연히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로사보다 앞서서, 연희가 먼저 그 쇼핑몰로 가서 그 눈알이 온몸에 가득한 생물의 정체를 캐어내면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연희는 그 생각을 행동에 옮겼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재빨리 캡틴 몰로 향했다. 도라고에서 캡틴 몰까지는 지하철로 세 정거장, 도보까지 포함해 소요 시간은 10분 정도. 그렇게 멀지는 않은 거리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그것의 3배는 넘게 느껴졌다.
그것보다도, 연희는 그 흔히 ‘눈깔괴물’이라고 불리는 연체생물 ‘몰리티’가 어떻게 그 쇼핑몰에 자리잡고 사는지부터가 궁금했다. 몰리티는 어떤 이름 모를 행성에서 온 생물인데, 설령 우주선 같은 데에 섞여서 여기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원래 살던 행성의 풀과 이끼, 나무로 가득한 환경을 좋아하지, 캡틴 몰같은 쇼핑몰에서 산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은 적이 없다.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그 몰리티라는 생물도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과연 그 연체가 한 개체이기는 한 것인가 의문일 정도의 다양한 크기에다가, 무엇을 먹는지도 모를 만큼 알 수 없는 생태에, 죽으면 아예 젤리가 되어 버리는 것까지. 최근에 애완동물로 이런저런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베일에 싸여 있는 생물이다.
“그래... 여기 중 어딘가에 있다고 했지...”
어느새 도착한 쇼핑몰. 연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미리 찾아본 영상을 돌려보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그 몰리티가 출몰하는 곳은, 3층의 눈에 잘 안 띄는 계단참...”
연희는 그중 세 번째 영상에서 단서를 얻었다. 3층의 여성의류 브랜드가 모여 있는 통로에서 가다 보면 좁다란 길이 하나 있는데, 그곳은 얼른 보기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으로, 청소 로봇이나 관리 인력들이 주로 드나들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사람들이 그쪽으로 종종 다니는 통로였다. 시선만 조금 의식한다면,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꺾어지는 쪽, 자동문을 한번 여니 그 문제의 계단참이 나왔다. 과연, 그 영상에서 봤던 대로, 조명이 들지 않아 어두웠다.
“여기에 그 문제의 몰리티가 산다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몇 발짝 걸어 내려가니, 두 발에 무엇인지 모를 습한 기운이 감싸기 시작했다. 그 순간 떠오른 게 있었다. 몰리티가 습한 곳을 좋아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분명히 발밑에 확 올라올 정도의 습함이라면 몰리티라는 생물들이 살기에 적합한 습도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서는 여기가 그 생물이 사는 곳이라는 확증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몰리티라는 생물의 목격담이 여기서 나왔는데... 풀하고 나무 같은 건 아무리 봐도 없잖아?”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니, 그곳은 화장실 근처다. 이 정도 습기라면, 이끼 정도쯤은 관리가 안 되어 있으면 충분히 자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보기에는 계단참은 청소도 잘 되어 있다. 먼지 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여기에서 목격담이 있었다.
“뭐지, 도대체... 이런 데에서 왜 목격담이...”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연희는 슬며시 걸어 내려가서, 마침내 그 계단참에 다다랐다. 한번 뒤를 휙 돌아보니, 이 주변에 기웃거린다든가 하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마침 벽에 틈새 하나가 나 있는 게 보였다. 그 몰리티라는 생물이 살고 있다면, 저 너머일 가능성이 컸다. 심호흡을 한번 한 다음, 눈앞에 보이는 벽의 틈의 앞에 서서는, 그 틈새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으앗!”
그 틈새 안의 것을 본 순간, 연희는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틈새 안에 있는 건 그 몰리티라는 생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 이상의 무언가가 그 틈새 너머에 있었다. 순간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지르려던 것을 겨우 참고는, 전화를 꺼내서 플래시로 안을 비추어 보았다. 그런데 더 어둡게 보였다. 마치 빛을 받으면 그 빛에 반응해 더욱더 자신의 몸을 어둡게 만든다는 요괴처럼, 그것은 빛조차 삼켜 버리는 어둠 속에서 그 미끌거리는 것을 흐느적대고 있었다.
연희의 등에 식은땀이 쫙 흐르게 하는 그것, 하지만 연희의 다리를 굳게 만드는 건, 그 틈새 사이로 그것이 마치 연희를 노려보듯 그 사이에서 희미하면서도 강렬한 빛을 내뿜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이쯤 되니, 각종 요괴와 이상현상을 연구하며 단련된 연희도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 마치 판타지 소설에 흔히 나오는 ‘난세에 강림할 검은 마왕’을 맨눈으로 직접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온 연희는 물러서기 싫었다. 등 뒤에서 흐르는 심연 속의 식은땀은 무시할 수 없었지만.
일단은 잠깐 나가서 숨을 좀 돌리고, 다시 들어오기로 했다. 그렇게 그 계단참을 막 나와서, 숨을 돌리려던 연희에게,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뭐야, 선배님?”
연희를 본 로사는 조금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연희를 봤지만, 그것뿐이었다. 곧바로 로사는 다시 평소의 태연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 계단참의 생물을 찾겠다던 의욕에 넘치는 얼굴, 아니면 적어도 미지의 무언가에 대한 경계감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너 그런데 여기 조사하러 온 거 아니었냐?”
“에에, 조사요? 아, 여기 그 몰리티 있다는 이야기 말이죠?”
어쩐지 로사의 말투는 가볍다. 평소 미스터리나 괴담 등에 대해 논할 때의 진지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 뭐 특이점이라도 찾아낸 거야?”“화학약품이 역류한 거래요.”
“뭐... 뭐?”
로사로부터의 황당한 답에 맥이 빠졌는지, 연희는 머리를 싸매고는 한숨을 푹 쉴 뻔하다가, 겨우 태연한 척 무표정한 척 표정을 고쳤다.
“이 쇼핑몰에서 청소업체를 불렀는데 거기서 화장실에다가 이상한 약품을 쓰는 바람에 일종의 부작용으로 화장실 밑 기계실에 그런 슬라임 같은 거품이 생긴 거래요. 그게 때때로 삐져나와서 마치 몰리티처럼 보이게 된 건데, 따지고 보면 관리를 제대로 안 해서 그런 거죠.”
“그랬던 거냐...”
연희는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며칠에 걸쳐 알아내고자 했던 게 이렇게 허탈하게 끝난 건 둘째치고서라도, 이토록 황당하고서도 어처구니없을 줄이야. 그 생각뿐이었다. 다리에 힘이 다 빠졌다.
“그럼, 선배님도 좋은 시간 보내고, 다음 주에 봐요!”
“그래. 좋은 시간 보내.”
그렇게 연희와 로사는 헤어졌다. 한 번 더 그 계단참 쪽을 돌아보려고 했지만, 차마 돌아볼 수가 없었다. 또다시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대로 쇼핑몰을 나갈까 하다가, 이왕 온 김에 쇼핑이나 즐기기로 했다. 분명 로사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서 한마디 중얼거렸다.
“역시... 소문보다 현실이 더한 건가... 그렇겠지...”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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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3-01-13 22:34:32
쇼핑몰에 사는 그 괴생물체의 정체가 괴생물이 아니라 화학약품이 역류해서 생긴 건가요...
괴생물이 아닌 건 다행인데 화학약품이 역류해서 그렇게 덩어리를 지었다는 것도 공포스러운데요. 오늘 비가 많이 와서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따뜻했는데 갑자기 오싹해져가는 느낌이...
꽤 오래 전의 일이었는데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어느 주택가에서 뱀이 대량으로 나타난 사건이 있었죠. 그것도 같이 생각났어요.
시어하트어택
2023-01-15 22:48:51
저 정도라면 사실 괴담보다도 더한 거죠. 화학약품이 잘못하면 사람을 죽이거나 아니면 그것보다 더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데도 제대로 관리를 안 한 거니까요.
저렇게 숨겨진 장소가 온갖 괴담의 온상(?)이 되기도 하죠. 물론 글 속의 내용처럼 현실이 괴담보다 더한 경우도 있고요.
SiteOwner
2023-02-12 15:28:49
문제의 그것이 괴생물인줄 알았는데 문제는 그게 괴생물이 아니라 이상한 약품을 쓴 부작용으로 발생한 거품...이게 더 무섭습니다. 그런 게 생겨서 인명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게 오히려 기적같은. 그나저나 그 현장을 탐사했던 연희의 건강은 괜찮은 것일까요. 그게 걱정되기도 합니다.
결국 괴이함을 만드는 건 인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재미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2-26 21:11:21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현실이 판타지보다 더하다'라는 말을 생각하며 써 본 단편입니다. 아무래도 화학물질이니만큼 그게 건강에 좋을 리는 없겠습니다만, 연희는 살짝 들여다봤을 뿐이니 건강상에 큰 문제는 없었을 겁니다.
데스노트에서 류크가 말한 그 대사가 생각나서 더 재미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