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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엽편?] 외로운 토끼

시어하트어택, 2023-01-22 09:53:29

조회 수
145

“오, 검은 토끼잖아!”
토요일에 놀러간 시골의 어느 농장. 아들은 토끼 무리 사이에 있는 검은 토끼를 가리키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아빠, 아빠, 저기 봐봐!”
“응, 왜?”
“검은 토끼! 신기하지?”
“어... 그렇네.”
과연, 내가 보기에도 흰 토끼들 사이에 낀 검은 토끼는 신기했다. 그런데, 흰 토끼들이 슬슬 그 검은 토끼를 피하는 모습이 왜인지는 모르게 눈에 걸렸다. 자꾸만 다른 토끼들이 그 검은 토끼를 피하는 게 아무래도 좋게 보이지만은 않아 보였다. 저것 역시 자연의 이치라고 한다면 또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저 토끼, 왜인지 모르게, 불쌍하네...”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걸 들은 아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 그 검은 토끼를 한참 보다가, 어느새 돌아서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외로이 있어서 다른 토끼들의 멸시를 받는 그 검은 토끼를 보니, 30년도 더 전의, 내 학창시절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빠! 아빠!”
아들의 목소리는 의외로 장난스러웠다. 그 외로운 토끼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봤는데...
“봐봐!”
의외였다.
그 검은 토끼를 다른 토끼들이 피해 다니는 건 맞지만, 사정은 달랐다. 검은 토끼는 이빨을 드러내고, 주위에 널려 있는 당근들 중 큰 당근에 다른 토끼들이 가지 못하도록 쫓아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토끼 무리의 우두머리라도 된 것처럼. 아니, 우두머리 그 이상이 확실해 보였다.
“뭐야...”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대체, 뭐에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날의 그 검은 토끼를, 웬만해서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3-01-23 22:24:37

역시 사물이란 각도에 따라 참 다르게 보이네요.

그 토끼는 달라서 기피대상이 되는 것인데, 사정을 모르고 봤을 때는 불쌍하게 보였지만 사정을 알고 보니까 그게 아니었고 그 검은 토끼가 다른 흰 토끼들을 겁먹게 하는...


이래서 상대적 관점이라는 게 중요한 건가 봐요.

시어하트어택

2023-01-29 21:03:03

한 가지 관점에 너무 매몰되어서 사건을 보면 사건의 내막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단편적인 측면만 보고 분노한다든가 하는 건 지양해야 할 텐데, 요즘의 세태는 즉각적인 반응이 중시되는 측면이 더 강하다 보니...

SiteOwner

2023-02-12 15:43:44

엽편(葉篇)이라는 말을 보니 과거에 학교에서 배웠던 용어 중 장편(掌編)이라는 말도 같이 생각납니다.


한쪽만 보면 알 수 없는 게 있긴 합니다. 귀엽고 평화롭게 보이는 초식동물인 토끼들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알력이 있을 수 있고,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도 텃세니 뭐니 하는 게 있고...

확실히 기억에 잘 남겠군요. 게다가 다른 흰 토끼들과는 확연히 대조되는 검은 토끼니까...

시어하트어택

2023-02-26 21:13:12

겉으로만 보이는 사건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와는 상반되는 진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판단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겁니다만, 저런 식으로 되어 버리면 좀 허탈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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