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2AC 시리즈 14번째 시리즈, 'EZ2AC : TIME TRAVELER' 엔딩곡 #BEYOND
(모바일보다는 PC에서 듣기를 권장합니다.)
때는 2014년, 옛날잡지 전권을 볼 수 있을 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요?라는 질문으로 90년대 어린이 환경잡지 "까치"에 대해 질문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연재되던 만화의 결말을 보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말이죠. 이 난제(?)는 1년 뒤 비슷한 글인 [HOW?] 책에 생기는 여러가지 사건들에서도 공유하긴 했지만, 국립중앙도서관에 있을 것 같다는 대략적인 추측은 있으되 확실히 있다는 보장은 얻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전주에 살고 있어서 국립중앙도서관까지 다녀온다는 엄두조차도 내지 못했고요.
시간이 흘러 (아마도) 2018년 혹은 2019년쯤에, 어느 익명의 천사(?)가 포럼의 그 글을 보셨는지 '네이버 블로그에 어느 분이 전부 복각해서 올리셨더라고요. 찾으시길래 공유합니다'라고 제 블로그에 비로그인 댓글을 남기고 다녀가셨습니다. 덕분에 만화의 결말을 확인할 수 있었죠. 생각보다 꽤나 급전개에 영 애매한(속된 말로 '똥을 싸다 만') 느낌도 있거니와 세월의 흔적인지 꽤나 심경이 복잡했지만요. 그래도 까맣게 잊고 살아갈 수도 있었는데도 어느 분이 그렇게 언급해주신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던 걸 보면, 역시 덕은 쌓고 볼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 기준으로, 나무위키의 "까치(동음이의어)"라는 문서명으로 수록된 해당 잡지의 정보에 이런 내용이 추가됐습니다. (원문에 딱히 비문 및 비속어 등의 문제가 없어서 그대로 수록합니다)
"2023년 1월 6일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소장 판본이 전량 디지털화돼 있으며,(판본 내역) 열람하려면 시간을 좀 투자해서 국중도와 협약된 공공도서관의 원문검색용 컴퓨터로 접속해야 한다."
궁금증 자체는 이미 해결됐지만, 그래도 어렸을 적에 이런저런 이유로 읽었던 잡지가 이렇게 전량 디지털화됐다고 하니 참 감개무량합니다. 샌드록 작업이 끝났기는 하지만 배치 10의 텍스트가 또 곧 도착한다고 하는 등 도저히 쉴 틈을 안 만들어줘서, 휴가 겸 확인은 나중에나 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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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사례가 1년 전쯤에 있었는데, "까치"보다는 나중에 구입한 PC파워진이라는 게임잡지였습니다. 정확히는 저보다는 형이 당시 번들 CD 경쟁 시대에 게임잡지에 번들로 추가된 게임CD에 혹해서 샀을 겁니다. 몇개월 뒤에 부모님이 게임잡지라며 내다 버리고 게임CD만 남았다가, 그 게임CD도 유행에 민감한 형이 등한시해서 제가 이리저리 굴리다 몇 개 부숴먹은 이후로는 아무래도 좋지만요.
번들 CD 경쟁 시대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자면, (세기말의 영향일지도 모르겠지만) 90년대 당시엔 게임잡지에서 온갖 게임CD를 번들(묶음, 끼워팔기)로 붙여서 파는 게 유행했습니다. 심지어 당시엔 게임잡지도 여러 군데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듯이 다양한, 그리고 '많은' 게임CD를 끼워서 "부록"이라는 명목하에 팔았죠. 결국 무리한 경쟁은 국내에서 정품에 대한 인식을 수직으로 추락시켰고, 한편으론 패키지 게임(콘솔 게임)에 대한 국내의 기반도 말아먹고 맙니다. (상세한 내용은 나무위키의 해당 문서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진지하게 다루고 있으며, 사건 자체가 시장파괴 등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관찰해볼 만하니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형이 샀던 PC파워진도 이 경쟁을 부추킨 주범(?)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지만, 그 당시의 형이나 저는 당연히 몰랐죠. 그 당시의 형은 CD 안에 들어 있는 게임의 플레이에 집중했고 저는 잡지를 읽는 데에 열중했습니다. 컴퓨터가 하나뿐이라 같이 쓰는 게 불가능했거든요. 게다가 저는 아직 패미클론(짝퉁 패미컴)과 합팩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PC게임 그 자체보다는 옆에서 구경하는 데에 더 중점을 두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도 최신 게임보다는 고전게임이나 흘러간 명작을 더 좋아하는 성격은 아마 여기서 유래했겠죠. 이것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부모님이 게임잡지를 내다 버린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해당 게임잡지에 대해서는 '그런 게 있었지' 정도로만 넘어갔는데,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글을 읽던 차에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한국 게임이 20대 청년이 되었습니다. 기술의 발전, 규제와 진흥, 플랫폼과 기업의 성쇠 등 주변 환경의 변화에 성장통을 겪다가 어느 틈에 어른이 된 것입니다. (중략) 게임산업이 보다 성숙한 어른으로 한발 더 발돋움할 수 있도록 '과거의 성찰'이 필요한 순간라고 생각하여, 작지만 보탬이 될 수 있도록 게임챔프, PC챔프, 넷파워 등 게임메카가 보유한 과거의 정보를 디지털화하여 게임메카 회원이라면 누구나 펼쳐볼 수 있도록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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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넷파워 코너 접속 시 출력되는 공지 中
(복사가 안 돼서 옮겨오는 과정에서 문법을 좀 수정했습니다.)
해당 잡지들은 2019년 즈음에 모두 업로드가 완료됐다고 하는데, 제가 이를 깨달은 게 2021년인가 하니 2년도 더 늦게 알아챈 것이죠. 뭐 제가 워낙 세상의 흐름에 뒤진다고는 해도, 추억의 잡지를 다시 꺼내볼 수 있다고 하니 정말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문제의 PC파워진도 날짜까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표지를 토대로 일일이 헤집어본 결과 1991년 1월호임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안의 기사와 내용들을 보자 오랜만에 다시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느낌에 젖었습니다. 한편으론 다소 충격적인(?) 사실도 몇 가지 접했네요.
?- 김성모(aka 김화백)의 작품들 중 하나인 럭키짱이 게임으로도 나왔다는 것 (그리고 굴림체의 압박)
?- 그 당시에도 아직 700 번호가 있었다는 것
?- 부록 게임 4개 중에 가장 해보고 싶었던 트랜스포트 타이쿤 디럭스는 도스 기반인데, 집에 있는 컴퓨터에는 도스가 있었지만 형도 저도 도스 사용법을 명확하게는 알지 못했다는 것
?- 당시에도 게임 지원 산업은 꽤나 미비했다는 것
?- 게임개발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코너가, 유니티를 비롯한 게임제작 툴이 있거나 모바일 중심인 지금과 달리 철저히 PC 중심이었다는 것 (그 당시에 제가 이 코너를 조금 더 독파했더라면 게임번역가가 아닌 게임개발자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코딩 정도면 다른 공학에 비하면 쉬운 편이지만 그 당시의 개발 환경은 꽤나 열악했으니까요)
?- 인터넷이 아닌 잡지를 통해 게임매매가 이뤄졌다는 것 (업로드 과정에서 개인정보는 당연히 블러 처리됨)
흔히들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출처 불명의 명언을 기반삼아 과거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저 역시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사례들처럼 과거가 현재로 넘어오는 경우를 보다보면 꽤나 기분이 묘합니다. 물론 분야가 다르다 뿐이지 고고학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좋아했던 분야이기에 더더욱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죠. 이렇게 또 하나의 과거에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쁠 뿐입니다.
남은 건 과거 월리를 찾아라를 비롯한 몇몇 명작 서적들이 (이미 PDF 등의 형태로 디지털화됐으니) 무료로 풀리는 것입니다만... 엄연히 저작권이 있고 또 상품이니만큼 그럴 일은 절대 없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저도 어렸을 때에 비해 경제적 사정이 나아졌으니 기꺼이 구입할 의향이 있지만요. 외화라서 번거롭다는 것만 빼면...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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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3-02-15 18:10:41
제목이 확실히 잘 이해되네요. 그리고 이렇게 과거의 컨텐츠가 복각되어 재등장했다는 게 정말 반갑기 그지없어요.
여러 제도와 문물이 정착하는 데에는 역시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고 그러면서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런 것도 제대로 돌아볼 기회가 있다는 게 여러모로 의미깊어요.
일각에서는 정보화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도 있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보고 싶지는 않아요. 분명 예의 관점에서 제기되는 것도 무가치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 그리고 정보화사회가 아니면 이렇게 포럼이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말씀하신 익명의 천사라든지 과거 컨텐츠의 복각 같은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테니까요.
Lester
2023-02-17 18:13:34
옛날 기록들이 그대로 살아남아서 어제처럼 다시 들여다보고 추억을 회고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요즘은 정보가 너무 많다보니 딱히 의미없다 생각되어 버려지는 정보도 꽤나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정보의 경중이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중요한 것은 놓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나마 아카이브 서비스가 여기저기 있긴 하지만 그게 얼마나 보존될지는 잘 모르겠는지라...
SiteOwner
2023-02-21 15:25:52
첨부해 주신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읽다 보니 시간여행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출판물을 이렇게 다시 읽을 수 있게 된 것에는 저도 반갑게 여기고 있습니다.
PC챔프, 이후의 PC파워진이라는 잡지는 저도 예전에 좀 읽어본 적이 있다 보니 기억합니다. 이렇게 컴퓨터 및 게임관련 컨텐츠도 추억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에서 세월의 흐름이 정말 굉장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귀중한 정보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심도있는 생각을 들려주신 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Lester
2023-02-22 00:09:13
사이트오너님께서도 PC파워진을 읽어보셨군요. 제 세대(?)부터는 책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PC파워진 얘기를 하면 그런 게 있었냐는 반응이 많았거든요. 저로서는 형한테 컴퓨터 사용권을 뺏겨서 게임을 많이 하지는 못했다보니 그 대리만족을 위해서 이런 게임잡지를 읽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고전게임에 더 빠져 있었던 만큼 취향이 많이 다르다보니 절반은 안 읽고 그냥 넘겼지만요. 생각해보면 형도 저도 아마 책보다는 번들CD가 목적이었을 겁니다.
종종 개인이 작성한 게임공략이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거나(ex. 고전게임 '드림웹'의 단순히 부록격 책자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불법복사 방지용 암호와 힌트를 보유함) 보유한 자료가 운좋게 보존되어 알고 있던 상식을 바꿔놓는다거나(ex. 아케이드 게임 '전신마괴'와 '가디언즈' 개발진과의 접촉에 성공하여 두 작품의 관계를 세계 최초(?!)로 밝혀낸 중세게임 갤러리 유저) 하는 일이 있는 걸 보면, 개인의 지식이나 정보의 힘도 점점 소중해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두 가지 사례에 대해서는 포럼에도 소개해 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