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형평(衡平)이라는 개념도 선(善)이라는 개념도 쓰이죠. 이것은 형평성의 측면에서 볼 때 어떠하다, 저것은 선한 것일까 아닐까 등의 가치판단에 쓰이는 것은 물론이고 로마법상에서 중재자의 형평과 선(Ex aequo et bono) 개념으로 정립되어 사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사법(私法)인 민법(民法)과 국제사회 내의 주권국가 및 국제기구에 관한 공법(公法)인 국제법(国際法)에도 원용되어 있기도 하죠.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해야 형평에 맞는 거나 선한 것인지는 개별 사회의 판단이 다르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절대화할 수도 없고.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볼까요?
모든 어린이들이 동일하게 태어나지는 않아요. 당장 성별만 보더라도 남자아이 아니면 여자아이 중의 하나. 거기에다 거주지역, 가정환경, 주거형태 등도 크게 다른데다 요즘에 고려해야 할 요소 중에는 인종도 있어요. 이러한 주요한 다른 요인들을 곱해서 나오는 수는 이제 계산기가 없으면 아예 어림짐작조차 되지 않을만큼 커져요. 게다가 이렇게 다양한 어린이들을 가르쳐서 사회화하는 과정인 교육에서 무엇이 형평이고 무엇이 선인지에 대한 판단 또한 크게 달라지죠.
그럼 여기에서 아주 불편한 이야기를 또 하나 소환할께요.
이전에 쓴 미국의 이상한 인종차별 담론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에서 이미 썼던, "당신은 특정조건하에서 인종차별을 묵인하실 것입니까?" 라는 질문이 바로 그거예요.
독일의 교육이 특히 형평성을 추구하는 전인교육으로 상당히 명성이 높은데 그러면 과연 독일의 교육은 이상적일까요?
독일 교육정책의 근간은 "어린이와 청소년은 학교 안에서 사회화되는 것" 으로 요약가능하죠. 즉 학교의 시스템을 벗어난 유소년층은 원칙적으로 존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것이죠. 그래서 해외에서 근무하는 외교관이나 상사주재원의 자녀같이 독일 밖에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홈스쿨링(Homeschooling)은 금지되어요. 그리고 학교에 적응할 수 없는 학생이라고 해도 독일 내에 있는 한은 학교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고 필요하면 인원과 기자재를 확충해서 학생을 학교 안에 있게 하지만...
이 경우 홈스쿨링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학부모는 독일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어요. 독일어가 통용되는 인접한 오스트리아나 스위스 등지로 가거나 아예 대서양을 건너 미국이나 캐나다로 건너가는 경우도 있기까지 해요. 모든 유소년층을 학교 안으로 품어안는 것이 형평이자 선이라는 독일의 교육정책의 이상은 이렇게 어떤 가족을 국외로 내쫓는 문제를 일으켰어요. 게다가 그것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나서 가능한 이야기이고 세계 유수의 선진국인 독일에도 빈곤층은 있는데다 학교내의 구성원들이 언제나 다른 구성원에게 친절하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 학생의 백그라운드에 따라 차등평가를 하는 사례 또한 있어요.
즉 학생은 그 자체로 평가되는 게 아니라 가정배경에 의해서 일종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즉 취약계층에게 가중치를 더 주는 방향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는데 독일의 경우는 이게 좀 더 극단적으로 가고 있어요. 간단히 말하자면 같은 실력을 갖고 있으면 부유한 상류층 자녀는 감점을 당해야 하고 가난한 하류층 자녀는 가점을 얻는 이런 시스템이고 스포츠 경기로 비유하자면 100m 달리기를 할 때 출발선을 달리해서 누구는 출발점에서 50m 앞에 서고 누구는 100m 뒤에 서야 하는 이런 상황인 것이죠. 언뜻 생각하면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의문이 안 남을 수가 없어요. 그럼 학생이 그 자체로 평가받을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이것은 예의 질문에서처럼 특정조건하에서는 차별을 묵인하겠다는 의미로도 통하는 것이죠.
제도가 형평과 선을 말하지만 누군가는 희생하거나 탈락하거나 평가절하되어야 하는, 그것도 귀책사유가 없는 역설은 과연 누구를 위한 형평과 선일까요. 그래서 이렇게 짧게 되묻게 되네요. "누구를 위한 선인가(Cui bono)?"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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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대왕고래
2023-04-11 23:57:56
차별을 막겠다고 안 좋은 환경을 가진 사람에게 더 주다보니, 오히려 그게 또다른 차별이 되는 모순이네요.
쉽지 않은 일이네요. 그만큼 고려를 많이 해야하는 건이겠네요.
마드리갈
2023-04-12 00:11:26
그렇죠. 형평성의 추구가 흔히 선할 것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아요. 형평성 있는 제도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제도적인 차별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이런 게 결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예요.
또한 이전에 썼던 글인 재산비례형 벌금제는 과연 정의로울까에서도 이런 문제가 지적되어 있어요.법의 침해의 가격이 범법자에 따라 달리 부과되어 누군가는 과도하게 부담해야 하거나 누구에게는 면제되거나 오히려 보상이 주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는 것이죠. 게다가 재산규모를 파악할 수 없는 외국인이나 설령 가능하더라도 국제법 및 국내법상의 국가면제를 향유하는 외교관의 경우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