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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상한 꽃병

시어하트어택, 2023-04-29 15:38:03

조회 수
148

“호오, 오늘은 무슨 물건이 나를 반겨 줄까나?”
연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오늘도 평소 잘 찾는 단골 잡화점으로 향한다. 도라고등학교 교문에서 100m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이 잡화점은 다른 학생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곳이지만, 연희가 매니저로 있는 미스터리 동아리 ‘도컬트’의 부원들이라면 한 번쯤 이름은 들어보았을 곳이고, 특히 연희는 이곳의 단골이 되다시피 해서, 거의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이곳을 찾게 된다. 오늘도, 연희는 자신과 동아리 후배들이 찾을 만한 물건을 찾아서 잡화점에 왔다.
오늘도 역시나, 잡화점은 깊숙한 곳에서 오는, 오래 묵은 듯한 향취를 풍기고, 내부는 햇빛이 겨우 들어올 정도로 새로 들어온 물건과 오래된 물건들로 빼곡히 차 있다. 오늘은 어떤 물건이 연희를 반겨 줄지, 연희는 기대를 품고서 가게 주인에게 큰 소리로 인사한다.
“저, 안녕하세요, 아저씨!”
연희의 인사를 듣자마자, 가게 주인이 바로 연희를 알아보고는 연희를 맞아준다.
“오, 오늘도 또 온 거냐?”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데, 제가 요즘 너무 자주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연희가 그렇게 능청스럽게 말하자 주인은 거기에 호응하듯, 곧바로 무언가를 꺼내서 연희에게 보여준다. 그건 수수하게 생긴 조그만 꽃병이다.
“오, 이건 뭐죠? 그냥 꽃병 아니에요?”
연희의 질문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주인은 슬며시 웃더니 마치 준비라도 한 듯한 말을 꺼낸다.
“이제껏 내 추천을 받고 사 간 물건들은 모두 명성이 있는 물건들이었지, 맞지?”
“네...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저주인형, ‘헥사모다’의 발바닥 박제, 악령이 깃들었다는 금화라든가... 다들 그 사연도 많고, 무서운 건 무섭고 그랬죠.”
“그래, 그러면 이 꽃병도 그와 마찬가지겠지. 어때, 사지 않겠니?”
“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제까지 가게 주인에게 소개받은 다른 물건들과는 격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도 주인이 적극적으로 사라고 하는 것이니, 연희는 대뜸 값을 지불하고 그 꽃병을 산다. 물론 그 꽃병에 대한 사연도 함께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도라고등학교의 도컬트 동아리방.
“호오, 선배님, 이번엔 웬 꽃병을 가져왔어요? 이거, 그냥 시중에서 파는 꽃병이 좀 낡은 거 아닌가요?”
꽃병을 본 한 후배가 대뜸 그렇게 말하자, 연희는 별 말은 하지 않는다. 그걸 본 다른 후배들도 앞다투어 한마디씩 한다.
“어디 장식이라도 하게요?”
“이건 뭐 기괴해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확 눈길을 끌지도 않고.”
그렇게 후배들이 한마디씩 해도, 연희는 거기에 개의치 않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꽃병만 본다. 마치 후배들이 무슨 말을 해 주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그러다가, 한 후배가 말을 꺼낸다.
“그런데 이 꽃병에 얽힌 이야기라도 없어요? 이런 데 오는 물건들은 그런 이야기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한데.”
그러자마자, 연희는 마치 그걸 기다리기라도 한 듯, 후배들을 보며 말한다.
“너희들 중 누구라도 여기 꽃병에 꽃을 하나씩 꽂아 볼래?”
“어... 그런 건...”
후배들은 연희의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얼마 안 되어 어딘가에서 꽃을 많이 구해 왔다. 그것도 연희가 구해 온 꽃병이 몇 개는 필요할 정도로 말이다.
“오,. 그래도 꽤 많이 구해 왔네. 이제 너희들 중 누가 여기 꽃을 좀 꽂아 봐. 물은 내가 충분히 부어 놨으니까.”
연희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후배 중 한 명이 재빨리 자기가 가져온 꽃을 한 움큼 집어서 그 꽃병에 꽂아 넣는다.
“어디 한번 볼까요? 저 꽃이 과연 얼마나 무럭무럭 자라서 꽃을 피워낼지.”
“야, 너 내 말 듣고 꽂는 게 좋을 텐데...”연희가 그렇게 말해도 그 후배는 개의치 않는 듯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연희는 그래도 그 후배를 말리지 않는다. 직접 그 후배보고 보기라도 하라는 듯, 그 꽃병에 담긴 꽃을 보고서는 물까지 듬뿍 붓는다.
“에이, 설마, 선배님, 이거 더 빨리 펴서 우리 놀라게 하라고 물을 더 붓고 그러는 건 아니겠죠?”
“......”
연희는 그 후배의 말에 대응하지 않는다. 대신 후배의 말에 동의하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는 듯한 표정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다.

그리고 다음 날, 도컬트 동아리방.
“어, 뭐야, 이 꽃 왜 시들었지?”
어제 의기양양하게 꽃을 꽃병에 꽂아 넣었던 그 후배는, 동아리방에 들어오자마자 적잖이 놀란 건지 꽃이 죄다 시들어버린 그 꽃병을 보며 한순간 말문이 턱 막힌 듯 자리에 멈춘다.
“분명히 어제 연희 선배님이 물을 주는 것까지 봤는데?”
보고도 믿기지 않았는지, 그 후배는 뒤따라 들어오는 연희를 돌아보고서 따져 묻듯 말한다.
“혹시 이거 선배님이 시든 꽃으로 바꿔 놓은 거 아닌가요?”
“아, 그러니까 내가 어제 내 말 좀 들어보고 꽃을 꽂아 넣으라고 했지 않았니?”
“그... 그랬던가요?”
“그러니까...”
연희가 말하려던 그 꽃병에 얽힌 사연이 연희의 입에서 나온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꽃병은 약 100년 전, 어느 여성이 연인과의 1주년을 기념해서 연인에게 선물하려던 것인데, 그 꽃병을 사서 막 선물하기 직전, 연인에게 실연을 당하고 말았다. 시름시름 앓던 그 여성은 결국 이른 나이에 죽고 말았는데, 그 꽃병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연희가 어제 꽃병을 구입한 바로 그 잡화점에 흘러들게 되었고, 바로 그걸 어제 연희가 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꽃병에 그런 사연이 얽혀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대요?”
“그 잡화점 아저씨가 말해 주더라?”
연희는 그렇게 말하고서 후배들의 반응을 살핀다. 후배들은 ‘그게 말이나 되냐’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걸 예상했다는 듯, 연희는 뒤이어 말한다.
“그 여자가 죽고 나서 이 꽃병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는데, 이 꽃병을 소유한 사람들은, 꽃을 꽃병에 꽂는 족족 다 시들어 버리니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꽃병을 다시 팔아 버렸다고 해. 처음 이 꽃병을 연인에게 선물하려던 그 사람의 원혼이라도 쓰인 것인지, 꽃을 꽂는 족족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아저씨가 하는 말이 좀 의미심장했어.”
“뭔데요?”
“딱 한 종류의 꽃만이 저 꽃병에 꽂아 놔도 오래 갔다는 거지. 문제는 그 꽃은 저 꽃병에 꽂기가 좀 힘든 종류라는 거야. 저 꽃병에 얽힌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무슨 꽃인지는 대번에 알겠지만.”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사연에 걸맞은 꽃 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꽃은 하나다.
“그런데 그거... 저 꽃병에 꽂기는 조금 어렵지 않나요?”
“그래도 그 여자가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게 그거니까 그런 게 아닐까? 꽃병이 그렇게 되어 버려도 상관없으니,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는 거지.”
“헤에... 그러니까,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꽃을 처음 꽃병에 꽂아 넣은 그 후배가 꽃병을 돌아보고서 말한다.
“사실이라면 그 여자, 꽤 독하네요. 얼마나 원념이 강하면 꽃병이 꽃병 역할을 못 하게 만드는 걸까요.”
“그러게... 실연당했다고 그렇게까지 하는 건...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연희도 그 후배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래서 그게 원념이란 걸지도 모르지. 진짜로 이 꽃병에 그게 깃든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연희는 다시 꽃이 없이 비어 버린 그 꽃병을 창가에서 옮겨서, 동아리방 한쪽에 있는 장식장 위에 올려둔다. 후배들은 그 꽃병이 으스스한 건지, 아니면 그 사연을 믿지 못하겠는 건지, 그 꽃병이 옮겨지고 나서도 한참을 꽃병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연희는 그런 후배들의 반응을 알았는지, 한마디 더 한다.
“이 꽃병도, 언젠가 물망초 말고 다른 꽃도 받아들일 수 있겠지? 원한이 깃든 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 여자의 원한이 다 풀린다면 말이지.”


[물망초 ? 나를 잊지 말아요]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6 댓글

SiteOwner

2023-04-29 20:38:10

평범 속에 깊은 것이 깃들어 있고, 사람의 원한은 참으로 깊고도 오래 갑니다. 그것도 세기를 넘어서 지속되는 것이라는 점에 여러모로 많은 것이 생각나고 있습니다. 그 꽃병을 산 연희도, 그 꽃병을 판 잡화점 주인도, 그리고 후배들도 그 평범해 보이는 낡은 꽃병 속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와 이렇게 엮여 있군요. 그 원혼에는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을까요.

1992년의 일에 저는 경시대회 상품을 버린 적이 있습니다. 하위입상한 다른 학생과 상품을 바꿔치기당했고 결국 그걸 버렸습니다(양보와 특권에 대한 10대 시절의 교훈 참조). 그때 버려진 그 상품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갑자기 생각나는군요. 벌써 31년 전의 일이라서 이제는 찾으려도 찾을 수 없고 찾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포럼에서는 딱히 게시판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동을 원하신다면 운영진 권한으로 옮겨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근거는 이용규칙 게시판 제13조입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4-29 20:51:38

어... 게시판이 잘못 올려진 듯합니다. 아트홀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별도로 댓글을 달겠습니다.

SiteOwner

2023-04-29 21:00:48

요청에 따라 아트홀의 소설 카테고리로 이동조치했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4-30 23:21:46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물건이 실은 오래 된 물건이고, 거기에다가 잘 알지 못했던 역사까지 얽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부정적인 역사라면 좀 많이 꺼림직하겠죠. 작중의 꽃병에 얽힌 그 여자의 원념이 정말인지는 알 수 없겠으나, 꽤 구체적인 이야기와 함께 꽃이 자꾸만 시들거나 하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니 정말 원념이라는 건 강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마드리갈

2023-04-30 21:53:44

저렇게 뭔가 사연있는 물품은 환영하지 않다 보니 여러모로 신기하게 보이고 있어요.

그리고 역시 앞뒤 사정 안 가리고 행동부터 해 버리니 애꿎은 꽃만 바로 시들어버리고 말았네요. 연희의 말은 아직 진행중인데...잊지 말아 달리는 원념이 저렇게도 무섭네요. 역시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겠어요.  외국에서 귀신가면을 사 오는 사람이 알 수 없는 공포 등에 시달리기도 하고 가정내에서 불화가 끊이지 않다가 그걸 다 처분하고 나서야 문제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보니...

시어하트어택

2023-04-30 23:28:48

저렇게 으스스한 사연이 얽혀 있는 물건이라면 정말이지 피하고 싶기 마련이죠. 실제로 저 물건에 여자의 원념이 씌였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그 정도의 역사와 사연이 깃들어 있다면 정말 그 원념은 강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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