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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이 그 길로 자기 바지주머니를 뒤져 보니, 과연 윤진의 어머니가 써 준 메모지가 나온다.
“우유하고... 계란... 부추... 그리고 양파... 맞아! 왜 이게 생각이 안 났던 거지?”
자신이 바지주머니에 고이 넣어 둔 그 메모지가 다른 곳도 아닌 자신의 바지주머니에서 발견되자, 윤진은 하마터면 눈물까지 흘릴 뻔한다.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걸 왜 지금껏 이렇게 헤맸던 건지,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겠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을 찾으려는 생각이 마치 분화 중인 화산에서 마그마가 솟아 나오듯 한다. 하지만 금세, 지금 그 장본인을 찾으려고 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윤진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정도면 몸을 잘 숨기고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중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해결하는 게 좋을 것이다. 거기에 생각이 이른 윤진은, 곧장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러 마트로 향한다.
“나 먼저 가 본다. 내일 교류 행사 동아리 바뀐 건 알지?”
“네...? 바뀌었다고요?”
“그래. 내가 메시지 보냈는데, 아직 안 본 거지?”
“어...? 아니, 당연히 봐야죠!”
지온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 폰을 꺼내서 메시지 창을 본다. 윤진의 메시지는 9시에 와 있는 게 보인다.
“그래, 그러면 너도 운동 열심히 하고, 내일 보자. 에이! 오늘은 왜 이런 이상한 애들이 많이 끼는지 몰라.”
그러고서 윤진은 머리를 긁적이고서 지온에게 손을 흔들고는 멀리 사라져 간다.
그 광경을 루프탑에서 내려다보던 그 능력의 장본인은 자기 능력을 윤진이 어떻게 풀어내는지를 보고 신기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을 한다.
“그래, 누가 알려주거나 하면 내가 걸어 버린 능력도 해제할 수 있다는 거지. 알았어. 내 능력의 약점을. 그리고 절대 윤진이 녀석의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도.”
그리고 그 누군가는, 스무디를 한 번 더 마시고는, 무언가가 생각난 건지 다시 입을 연다.
“그건 그렇고, 자동차 연구모임에서 나를 와 달라고 했지. 정말 한번 가 봐? 매니저도 고등학교 1학년이고, 다들 내 후배뿐이니까, 잘하면 나도 거기서 충분히 대접받고 할 수 있겠는걸? 나도 동아리나 한번 해 봐야지!”
그리고서, 다 마신 자기 잔을 들고 내려가기 전, 그는 한 번 더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1학년의 지온이라고 했나? 저 녀석한테는 뭘 해 줄까? 좋아. 바로 그거다!”
어느덧 생각에 다다른 그는, 지온을 향해 조용히 웃어 보이고는, 루프탑을 빠져나간다.
한편, 지온은 윤진이 멀리 가는 걸 보고 나서, 자신도 계속 산책을 하기 위해 막 움직이려는 참이다. 그런데...
“어...? 뭐야?”
지온의 머릿속에서, 순간 무언가가 가위로 기억의 실 같은 것을 잘라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 분명히... 여기에서 어디로 가려고 했었는데...?”
지온이 생각했던 코스는 천변 산책로를 거쳐 공원 몇 곳을 지나 다시 집으로 들어오는 코스다. 하지만 그 코스가 방금 막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도려내진 기억은, 떠올려 보려고 한다고 해서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뭐냐...? 나도 그러면, 그 어떤 녀석의 초능력에 당해 버린 건가?”
그렇게 이상하게 되어 버린 머릿속에 의문을 품은 채, 지온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러다가 거의 10분이 지나고, 지온은 머리를 긁적이며 원래 가려고 했던 방향과는 아주 딴판인 주택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편 그 시간, 민은 집에 막 돌아와서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정장을 벗어서 고이 모시듯 옷장에 걸어 놓는다. 그리고서 ‘후’ 하고 마치 10년은 묵은 것을 몸에서 빼내기라도 하듯 크게 숨을 내쉰다.
“역시 멋있기는 한데, 몸이 좀 많이 꽉 끼잖아.”
그러고서 컴퓨터 앞에 앉으려는데, 민의 눈에 이상한 게 보인다. 마치 유령이 왔다 가기라도 하듯, 필통 안의 펜들이 저절로 움직이는 게 아니겠는가.
“에이, 이러면 또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다니까. 설마 그 로니라는 선배가 원격으로 초능력을 쓰는 거 아닌가?”
그래도 어제와 아까의 일이 있기 때문에 민은 안심할 수 없다. 그래서 필통을 들어올리고, 펜을 다 치워 보니...
“에이, 뭐야. 나는 또 깜짝 놀랐잖아.”
원인은 다름아닌 필통에 있었다. 들춰보니, 필통의 밑이 떨어져 나가기 직전인 상태다. 이걸 왜 이제 발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민은 안도한다. 누가 초능력으로 장난을 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말이다.
“에이, 뭐, 좋아. 그럼 이제 또 재미있게 즐겨 볼까.”
그리고 그날 저녁.
“오, 여기 사람 많네.”
미린역 지하 아케이드의 PC카페는 일요일 저녁에도 게임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방금 여기에 발을 들여놓은 료와 토마 역시, 자리가 없어서 한참을 여기저기 돌아본다.
“어, 자리 났다!”
그런데, 자리가 2개 나기는 했는데, 두 자리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순간 료는 걱정스러워진다. 이렇게 토마와 자리가 떨어지게 되면, 토마가 또 장난을 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메이링까지 직접 신신당부했던 것이다. 료의 초능력이 토마한테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토마를 지켜보는 눈이 많아서 섣불리 장난을 치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토마의 날씨 조작 능력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안심하지 못한다. 어떤 장난을 쳤는지, 그리고 토마의 능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야, 뒤에도 사람들이 많잖아.”
료의 말대로, 뒤에는 어느새 10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 사람들은 료와 토마가 얼른 자리를 잡지 않으면 자신들이 가서 앉아 버리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마치 원망이라도 하려는 듯한 표정을 보니, 료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에이, 그럼 떨어져서라도 자리에 앉는 수밖에.”
비록 어쩔 수 없이 떨어져서 앉는 것이기는 하지만, 료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민을 비롯한 친구들과 다른 사람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굳이 민폐를 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토마 녀석, 요새 안 그러던데, 혹시 오늘도 사고를 치지는 않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료는 자리에 앉아서, <트리플 버스터즈>를 켠다. 동면을 꽤 오래 해서 지금 시간대에는 아직 좀 적응을 더 해야 하지만, 민과 다른 몇 명이 가르쳐준 이 <트리플 버스터즈>라는 게임에는 금방 재미를 붙였다. 동면 전에도 게임을 좀 하기는 했지만, 이것만큼 재미있는 건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지 열흘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랭킹이 확 올랐다.
그리고 지금 하는 게임에서, 상대방은 이 PC카페 안에 있는 다른 2명이다. 그게 누구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알지는 못하겠지만, 료와 토마보다는 랭킹이 살짝 높은 것으로 보아 이길 수 있다면 료의 랭킹 역시 올릴 좋은 기회다.
“어디, 시작해 볼까...”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고, 료와 토마는 순조롭게 상대방의 기지를 찾기 시작한다. 상대방 역시 료와 토마의 기지를 수색 중이다. 약 1분 정도 서로 탐색전을 이어가던 중, 실마리가 잡힌다. 상대방의 실수로 기지가 노출된 것이다.
“그래, 좋았어. 이런 실수를 왜 해 가지고 말이야.”
료는 곧바로 그 상대방의 기지의 노출된 위치를 놓치지 않고, 거기로 곧장 파고들어간다. 도중에 몇 번 상대방의 공격에 피격당하기는 했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기지까지 바로 쳐들어갈 정도의 체력은 있는 덕분이다.
“오, 좋았어! 생각지도 못한 행운인데, 이건? 이렇게 실수를 해 준다니, 나한테는 정말 고맙지만! 자, 그럼 이제 기지 파괴로 들어가자고!”
자기도 모르게 흥분한 나머지, 료는 그 말을 큰 소리로 입 밖으로 내려다가 겨우 참는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안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목소리가 큰 편인데, 그걸 더 큰 소리로 냈다면, 상대편의 작전에 본의 아니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한 것임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료 쪽을 돌아보게 되고, 료 자신도 상당히 난처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료의 상대방 기지 공격은 순조롭게 이어진다. 준비해 온 무기들, 그리고 추가로 보급되는 폭약을 있는 대로 다 쏟아부었더니, 상대방의 기지 함락은 금방이다.
“오, 됐어, 이걸로 이겼다고!”
막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토마에게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려는데...
“응?”
별안간, 화면 아래쪽에 이상한 무언가가 나타난다. 사람의 형상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게임 시스템에 이런 건 없다. 해 본 지는 열흘도 안 되었지만, 이런 게 게임 시스템에 없다는 것 정도는 료도 잘 안다. 후드를 쓴 사람이 입만 드러낸 채 잔뜩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 료도 알 것 같다.
‘뭐야... 그 사람이 상대였어?’
재빨리 상대방의 닉네임을 확인해 보니, D88D88이라는 닉네임이 확 눈에 들어온다.
“그래, 맞아! 이 사람이야! 내가 알고 있는 게 확실하다면...”
료 역시, 모종의 경로를 통해 D88D88이 에밀리오가 쓰는 닉네임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에밀리오는 어디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좀 어렵다고는 해도,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나중에 상대하기 유리할 것이다.
“그 에밀리오라는 선배, 어디 있지? 에이, 이 자리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고..”
하지만 료가 에밀리오를 찾기 포기하고 막 자리에 앉으려던 바로 그때.
“어... 어어?”
어디에선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곳은 지하에 있는 PC카페이므로, 자연적으로 비가 내릴 일은 없다. 그렇다면 이건...
“토마,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렇게 료가 자리에서 일어나 토마가 있는 자리를 찾아가니, 토마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음 게임 상대를 찾고 있다 료는 바로 옆으로 가서 토마를 일으켜 세우며 말한다.
“야!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짜증나게 하잖아. 화면에다가 이상한 장난이나 치고 말이야.”
“야,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비를 난데없이 실내에다가 내리면 되겠냐?”
“료, 그럼 한번 보라고.”
“뭘 보는데?”
“머리 위에 비를 흠뻑 맞은 사람이 틀림없이 범인이니까.”
“응?”
금방 료가 토마가 말해준 대로 그 비가 내린 자리로 가 보지만, 그 사람은 이미 자리를 뜨고 없다. 거기에다가 그 젖은 자리의 컴퓨터 화면을 보니...
[결제 완료 ? 오늘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결제까지 다 하고 자리를 빠져나간 상태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뭐야, 결제까지 다 하고 나갔네. 정말 어디 간 거지?”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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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3-05-07 22:57:23
또 문제의 자동차 연구 모임인가요...
그 모임은 진짜 구제불능이네요. 기성멤버도 문제투성이에 와 달라는 사람도 윤진을 당황하게 만든 그 자라니...게다가 이번에는 지온이 희생되네요.
에밀리오가 나타나긴 했는데 토마의 강우능력이 도움이 될 뻔하다 말았네요. 게다가 이미 장본인은 결제까지 마치고 도주한 뒤이고. 혹시 에밀리오가 토오루에게 ID를 빌려준 것인지, 아니면 토오루의 투명화 능력이 자신 말고도 타인에도 투영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그나저나 실내설비에 비를 내리게 했으니 토마의 입장이 보통 난처한 게 아니게 되었어요.
시어하트어택
2023-05-09 23:02:03
그 문제의 인물은 그곳이 과연 어떤 곳인지 궁금하겠죠. 그리고 왕노릇도 하고 싶을 겁니다. 결국,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에밀리오는 저렇게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습니다. 저렇게 간접적으로라도 민폐를 끼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잡힐 때도 머지 않았죠. 길어 봤자 며칠입니다.
SiteOwner
2023-05-23 23:23:11
누군가가 가까운 거리에서 저렇게 특정인을 콕 집어서 정신에 영향을 끼친다면 정말 두려울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이상한 사람에게 쫓기는 상황이 있었을 때는 그나마 이상한 자의 모습 및 소리가 들리는 방향이 확실히 파악되어 대피할 수 있어서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만(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위험할 뻔 했습니다 참조), 저 경우는 정말 곤란하군요.
토마의 강우능력이 이전에는 트러블메이커였다 이제는 수상한 사람을 특정할 유용한 수단이 되었군요. 역시 맹상군의 계명구도(鶏鳴狗盗)라는 한자숙어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5-28 23:46:10
저렇게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 무언가 공격을 당하면 대단히 혼란스러울 겁니다. 거기에다가 윤진의 경우는 그 공격하는 상황인 것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니, 더더욱 고약한 상황이죠.
토마는 전력이 있다 보니 앞으로도 동무을 줄 수밖에 없겠죠. 안 그랬다가는 또 요주의 대상이 되어 버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