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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 그녀의 길었던 하루 - 상편-

마드리갈, 2023-05-21 00:37:50

조회 수
117

2011년 3월 중순의 어느 비오는 날 아침.
서울시내 모처 호텔에 투숙중인 취업준비생 남리나(南理奈)는 평소보다 다소 일찍 일어나서 샤워를 마치고 몸단장을 하고 있었다. 대학을 다닐 때에도 늘 정장이나 세미정장을 입고 다녔던 터라 다른 취업준비생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키큰 커리어우먼같은 인상의 그녀는 언제나와 같이 차분하게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외출복장을 갖춰입은 리나는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먹고 나서 차를 마시며 잠깐의 망중한을 누리고 있었다. 그렇게 스마트폰으로 관리중인 증권계좌 및 종목별 보유량과 전일종가기준 자산가치를 확인하는 것도 일정의 하나. 그날 면접보는 회사인 백화점 경영본부의 주가는 485,000원을 기록하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의 용무가 끝나자 그녀는 다시 객실로 돌아갔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메이크업을 잘 갖춘 모습으로 객실을 나와 체크아웃을 마치고 호텔을 나섰다.
백화점 경영본부는 걸어서 대략 10분 거리.
아직 완전히 밝지 않은 주변 거리에는 사람들의 왕래보다는 젖은 도로를 밟는 자동차들의 타이어 소리가 더욱 많았다. 리나는 그 경영본부의 1층 출입구에 다다라 경비원의 안내를 받은 후 면접대기장으로 이동했다.

면접대기장은 경영본부 10층의 대회장에 마련되어 있었다. 약간의 진행요원을 제외하고는 아직 다른 면접대상자는 없었다.
리나는 진행요원의 지시를 따라 명찰을 받고 자리에 앉은 후에 노트북을 펼쳐 필요한 자료를 열람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난 후 장내에 인기척이 몇 배로 늘어났다. 이제 면접대상자들이 꽤 왔고 면접대상자들도 준비된 자리의 1/3 정도는 채우고 있었다.

리나는 자료의 열람이 끝난 후에 노트북을 끄고 토트백에 넣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서서 돌아보니 장내의 면접대상자 대기석은 빈 자리가 드물게 보일 정도로 차 있었다. 리나는 그렇게 어느새 들어찬 대기장을 빠져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주변에서 그녀를 보고 뭔가 웅성거리는 사람들도 드물게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그녀가 도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자 가기 전의 웅성거리던 목소리는 보다 더 뚜렷한 목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세 여자들이었다.

"저기 저 키 큰 여자, 뒷모습 미인이 앞모습은..."
"가슴 키울 돈 있으면 얼굴이나 좀 고치든가?"
"치마 존나 짧아...얼굴 빼고 전신성형했나?"

리나가 살짝 돌아보자 그 목소리들의 주인공은 일제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목소리도 자취를 감추었다.


소집예정시간이 되자 진행요원이 장내방송으로 전원 착석을 요구하고 당일의 일정을 프리젠테이션으로 알렸다.

당일의 일정은 집단토론면접, 임원면접, 증빙서류 제출 및 여비지급의 절차로 이루어졌다. 프로젝터에 비친 화면의 번호대로 집단토론 참가자가 결정되고 그 참가자들이 집단토론을 마치고 나면 다시 대기장에서 기다리다가 새로이 임원면접에 3명씩 참가하도록 조가 편성되어서 다른 대기실로 옮겨가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집단토론 참가자의 조가 결정되었다.

리나는 같은 조의 멤버들을 보고 가볍게 목례는 했지만 스커트 뒤에 가려진 주먹은 쥔 상태였다.


집단토론은 어떠한 주제가 무작위로 제시되면 찬반여부를 따지면서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첫번째 주제. 글로벌 금융투자의 성공을 위해서는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리나를 제외한 5명이 신흥국 투자를 과감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뒷모습 미인 운운하던 수험자가 입을 열었다.

"이제 선진국의 성장동력은 다 되었고 특히 2000년대 후반에는 중국이 일본을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G7 선진국들의 구매력이 크게 감소했다 보니 신흥국 위주로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야 합니다."


리나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나의 발언차례가 되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투자의 기본은 잃지 않는 것. 즉 그 시장이 정말 신뢰할만한 투명성이 갖추어졌는지, 특히 신흥국의 경우는 경제문제가 정치적으로 결정되지 않는지를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실제로 투자가로서도 생활하고 있는 제 경험을 조금 말씀드리지요.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인도가 세계 주요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비동조시장이었는데 인도는 현지 상관행에 문제가 많은데도 일단은 영어사용국가이고 다른 신흥국에 비해 투명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었기에 대안투자처로 각광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점을 고평가하고 투자해서 2008년-2009년 동안의 투자에서 연수익률 20% 이상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만 다른 대안투자시장으로 각광받은 러시아와 브라질의 경우는 상품자원의 가격 급변에 따라 러시아 투자는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서 수익률 관리가 매우 어려워졌는데다 브라질 또한 천연자원 가격등락 및 정국불안 문제로 투자매력도가 떨어져서 예금금리의 1.5배 수준의 수익률로 만족하고 시장을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특히 근린궁핍화 전략을 견지중인 중국의 경우 지금 발전하는 모습의 이면에 어떤 정치적 리스크가 있을지 속단하기 힘드니까 공격적인 투자 운운은 글쎄요. 게다가 해외투자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 수험자는 그저 입을 꾹 닫고 고개를 숙인 채로 떨기만 할 뿐이었다.


두번째 주제가 주어졌다. 이번에는 미래의 에너지구조와 원자력발전에 대한 것.

여기에서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찬반이 3명씩으로 갈렸다.

원전 반대파 중 리나의 가슴을 언급했던 수험자가 의견을 밝혔다.

"수일 전에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고 그 지역은 원자력발전소가 많이 입주해 있다 합니다. 만일 그 대지진으로 원자력발전소가 붕괴되거나 해서 방사능이 퍼진다면 결국 원자력은 싸지도 않으면서 위험밖에 없는 에너지원에 불과합니다. 원자력발전은 안됩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찬성파 중 2명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리나만은 그렇지 않았다.

리나가 의견을 개진했다.

"지진으로 원자력발전소가 부서졌다는 보도는 아직 없습니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근거로 토론하면 탁상공론인데요?"


조금 전에 반대파 수험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 1986년의 체르노빌은 뭐예요? 원자로 터졌잖아요?"


리나가 바로 쏘아붙였다.

"그게 지진으로 부서졌어요? RBMK, BWR, PWR, PWHR의 차이도 모르시면서 원자력이니까 위험하다 그러시는 것 같으신데, 그 체르노빌에서 썼던 원자로는 소련의 RBMK, 즉 레악토르 발쇼이 모쉬노시치 카날릐(Реактор большой мощности канальный)라는 고츨력 수로형 원자로이고 이산화탄소를 냉각재로 쓰는 흑연감속로입니다. 그 특유의 불안정한 구조를 이해하고 나서 말씀하시는 게 최소한 사실에 부합해 보입니다만?"


반박당한 수험자는 답은 못한 채 혼자 내뱉았다.

"아, 씨발..."


모두의 시선이 그 수험자의 입을 향했다. 면접관이 주의를 주었다.


세번째 주제가 주어졌다. 백화점그룹의 매출확대를 어떻게 노릴까에 대한 것.

이번에는 최초 발언자로 리나가 지정되었다.


리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기술강국이자 문화강국이고, 또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쟁의 폐허와 상흔에도 1세기 내에 극복하고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런 대한민국의 매력을 잘 어필할 수 있는 요소 중의 하나가 쇼핑. 전 우리나라가 그렇게 매력적인 쇼핑천국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신흥국에도 선진국에도 매력적인 쇼핑천국이 될 수 있도록, 지금까지는 투자나 관심이 미진했던 선진국 방면에도 힘을 쏟아야겠죠. 우리가 입사할 이 백화점그룹이 미국의 메이시스(Macy's)나 영국의 해로드(Harrods), 프랑스의 쁘렝땅(Printemps), 일본의 미츠코시(三越)나 이세탄(伊勢丹)처럼 세계인이 사랑하는 코리아 넘버원 월드베스트 백화점그룹이 될 수 있도록."


면접관의 눈이 크게 떠지면서 리나의 발언에 끄덕였다.

그런데 다른 수험자가 손을 들더니 반대의사를 밝혔다.

"말씀은 참 거창하게 하시는데,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왜 우리나라에서 쇼핑하죠? 그것도 일부러 백화점까지 와서. 아, 그럼 당신이 그 큰 키와 큰 가슴과 짧은 치마로 어필하시면 되겠네요."


토론실 내가 다시 소연했지만 리나는 잠깐 입술을 깨물듯 닫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입사할 이 백화점그룹은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에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어요. 물론 서울시내에도 시내면세점을 보유하고 있고. 그러면 그게 다 쓸모없다는 이야기네요. 그럼 그 면세점은 반드시 내국인이 해외여행을 할 때만 구입하고 외국인, 특히 미국인이나 유럽인은 없을까요? 구매통계에 그런 게 있다면 제시해 주시면 좋겠네요."


다시금 조용해진 토론실 내에서 리나가 그 수험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마디 더 해야겠습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남이 갖고 있다고 그렇게 말씀하실 것까지는...그러시려면, 당신을 그렇게 자라도록 낳으신 부모님을 탓해야 이치에 맞지 않나요?"


그 수험자는 입술을 깨물며 부들부들 떨다가 토론실을 뛰쳐나갔다.

이렇게 토론면접이 끝났다.
그 다음은 임원면접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편에 계속]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시어하트어택

2023-06-04 23:38:58

누군가 그런 말을 했죠. '사람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라고 말입니다. 그 문제의 리나의 경쟁자는 그걸 잘 증명해냈습니다. 질 게 뻔하니 저렇게 인신공격을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할 말이 없어서 욕을 입에 담은 결과 역시 그 자신이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마드리갈

2023-06-05 14:51:58

좋은 감상평에 감사의 말씀부터 드려요.

리나를 욕했던 그 세 여자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참 많죠. 그것도 성별, 연령, 국적, 인종 등에 참으로도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건 정말 신기했어요. 예의 그 세 여자의 발언은 실제로 들었던 것이기도 하죠.

선진국 국민들의 구매력이 낮으니 신흥국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전반을 풍미하던 담론이었는데, 그게 처음에는 그런 것 같았지만 갈수록 아니더라구요. 그때 그런 담론에 집착하던 사람들은 과거의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할지가 궁금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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