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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네는 당황한 얼굴을 하고서 자신을 멀뚱멀뚱 보는 민에게, 낮지만 좀더 강한 어조로 말한다. 마치 자신이 기회를 잘 잡은 사냥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에이, 너 머리 좋잖아. 난이도야 내가 알아서 조절해 줄 거고, 너 정도 머리면 저 가이드북 없이 그냥 만져만 봐도 실전 투입이 가능하니까, 자, 앉아 보라고!”
“어... 네...”
얼떨결에, 민은 비어 있는 자리 중 하나를 잡고 앉는다. 그러고 보니 이 동아리방 안에 있는 컴퓨터와 세트로 되어 있는 자리는 총 14개이고, 레디 길드 원 부원의 총인원의 정확히 2배다. 아까 처음 들어왔을 때 그 14개의 자리 말고도 비어 있는 자리가 더 있고, 페인트로 표시까지 되어 있는 걸 보니, 아마도 거기에도 그런 자리를 더 만들려고 하는 모양이다.
“어, 너 거기 앉는 김에 그 책 좀 줘 볼래?”
마침 지온이 그 가이드북을 봤는지, 민에게 가이드북을 달라고 한다. 민이 가이드북을 넘겨주자, 지온은 바로 그 가이드북을 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가이드북에 나오는 해설역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지온은 바로 떠올린다. 그 해설역이, <그린 마스크드 파이터>의 케인과 꼭 닮았다는 것을 말이다.
“오, 역시 작가님! 케인이 최애인 게 분명해!!”
지온은 혼자 조용히 말하려고 했건만, 그 소리가 어느새 새어나와 버린 건지, 동아리방 안에 낮게 깔린 채로 들려 버린다. 레오네가 그 지온의 목소리를 놓칠 리가 없다.
“저기, 지온 선배님?”
“어, 나? 왜?”
“앉아 주시면 좋겠네요. 그 가이드북을 본다는 건...”
“아니, 나는 게임을 하려고 보는 건 아니고...”
“뭐,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한 판 저희하고 같이 해 보죠. 말했듯이, 난이도 조절은 해 드릴 테니까요.”
“......”
어쩔 수 없이, 지온도 적당한 자리를 하나 찾아서 앉는다. 그렇게, 레오네가 지목한 7명의 만화부원들이 자리에 앉고, 친선경기가 시작된다.
한편 이곳은 도서관.
“너 그거 아냐, 리하르트?”
히어로 동아리의 매니저 치히로가 옆에 앉은 도서부장 리하르트에게 말을 건네려는 참이다. 도서관 한쪽에 있는 큰 테이블 주위로 자리를 잡고 앉은 도서부원들과 히어로 동아리 부원들은 오늘은 별 특별한 주제 없이 각자 책을 찾아서 읽는 중이다. 치히로도 무언가 책을 읽고 있는데, 리하르트가 가만히 보니 그냥 특별히 다를 게 없는 여행 서적이다.
“뭘 들어?”
“왜 그 해변공원에 마왕성 나타난 거 있잖아. 혹시 그 주변에 사는 거 아니냐?”
“어... 맞아. 완전히 근처는 아니고, 해변공원하고 메트로폴리스 병원 사이 지점이지.”
치히로가 알고 있는 리하르트의 정보는, 대체로 예상했던 것 그대로다. 예전에 몇 번 이야기하다 보니 리하르트가 그 주변에 산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좀 더 물어보기로 한다.
“그러면 그 마왕성 있잖아, 너도 봤다고 했지? 한 얼마 정도 보였냐?”
“야! 내가 알아? 나도 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기만 한 거라고! 그리고 인터넷에 영상 올려진 거 보면 짐작 못 하냐?”
리하르트가 의외로 거기에서부터 조금 까칠하게 나오자, 치히로는 당황했는지 한발 물러서서 목소리를 좀더 낮추고 말한다.
“아니, 나는 그냥 네가 본 그대로 알려 달라는 건데...”
“그러니까, 내가 그걸 일일이 잰 것도 아닌데, 몇 분 몇 초 동안 그게 일어난 건지를 말해 줄 수는 없는 거잖아? 그렇지?”
“아... 그거야 그렇지...”
“그래,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마왕성의 모습을 봤고, 자세한 건 나도 모른다, 그것뿐이야. 이제 알겠지?”
리하르트는 이제 교류 행사에 집중하자는 듯, 앞에 있는 책에 다시 시선을 돌린다. 한편 치히로와 리하르트가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세훈이, 문득 가까이 앉은 라일라에게 메시지를 준다.
[야, 그런데 너, 마히로라는 녀석 아냐?]
세훈이 메시지를 보내고 몇 초 지나자, 라일라에게서 답장이 온다.
[넌 또 뭘 이야기하려고]
[요즘 또 그 애가 사고 치고 자기 패거리까지 모은다는데, 너희는 출동 안 하냐]
[당연히 하기는 해야겠는데 시간이 문제지]
[에이, 골치 아파 죽겠다. 나한테 된통 혼나고 한동안 사고 안 치더니만]
“저기, 세훈이 형.”
옆에서 세훈이 보내는 메시지를 보던 셀림이 세훈의 옆으로 끼어들어 앉으며 말한다.
“누가 골치 아프다는 거죠?”
“아, 두 달쯤 전에 귀찮게 굴던 녀석들 있어. 몇 명은 너도 잘 알 텐데.”
“또 그래요? 내가 주는 설사약을 아직 안 먹어 봤나 보네.”
셀림은 그게 누군지 알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야, 그거 너무 위험한 발상 아니냐? 까딱 그 능력을 잘못 조절했다가 사람이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괜찮아요, 그럴 일은 없으니까요.”
“아니, 그럴 일이 없다고 네가 어떻게 장담해? 내가 알기로는, 네 초능력은 원래 독극물을 만들거나 하는 능력 아니야?”
“잘 조절하면 문제없다는데요?”
“누가 그래?”
세훈의 말을 들은 셀림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누군가의 명함을 꺼내서 보여준다. 명함 한쪽에 있는 ‘VP’로고를 본 세훈은,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한편 그 시간, 방송실. 방송부와 밴드부의 교류행사가 진행 중인데, 아멜리는 무엇이 걱정인 건지 멍하니 앉아 있다.
“저기, 선배님!”
밴드부원들이 다들 아멜리를 보고서 말한다. 다들 눈에는 기대감을 가득 품고서 말이다.
“저희는 모두 응모를 했어요. 이제 결과는 언제 나오죠?”
“어? 결과? 그 경품 응모 일정이라면 말이지...”
아멜리는 지금 이 상황이 영 내키는 건 아닌지, 자꾸만 말을 하다 말면서 상황을 피하려고 한다. 그걸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밴드부 매니저 네이트가 말한다.
“아멜리! 나도 응모했거든? 좋은 상품 줄 거지?”
“아, 그래! 그래야지!”
그리고 잠시 후, 아멜리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연다.
“줘야지. 단, 운이 좋다면!”
“에이, 아멜리! 그게 무슨 말이냐? 뒤에 있는 말은 좀 빼고!”
네이트의 그 말에 아멜리는 지지 않겠다는 듯,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한다. 그걸 본 조셉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마치 이쪽을 보라는 듯 손뼉을 친다. 이대로 더 있다가는,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건 괜한 게 아닐 터다.
“자, 자! 밴드부 여러분!”
조셉이 갑자기 그렇게 크게 말하며 손뼉까지 치자, 아멜리까지 조셉에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조셉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말한다.
“여기서 열심히 연주해 줘야 좋은 경품 받을 확률이 올라가겠죠? 이제 열심히 연주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네이트는 그럴듯하다고 여겼는지, 다른 밴드부원들보다 먼저 악기들이 모셔져 있는 방송실 벽으로 가더니, 재빨리 트럼펫을 하나 집어온다. 네이트를 본 다른 밴드부원들도 악기를 하나씩 집어들더니, 다시 제자리에 앉는다.
“좋아요, 이제 시작해도 될까요?”
그렇게 밝게 말하는 조셉이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끓는 걸 어쩌지 못한다.
‘이게 뭐야... 내가 왜 아멜리 선배가 즉흥적으로 시작한 경품 이벤트 바람잡이나 해야 하냐고...’
미술 애호가 동아리방에서는 미술 애호가 동아리와 스케이팅의 부원들이 한데 모여앉아 있다. 물론 나타샤와 모모를 비롯한 미술 애호가 동아리 부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주위에 있는 미술품들을 보라는 듯한 자세로 앉아 있지만, 스케이팅 부원들, 특히 매니저 오스카는 온몸이 근질거리는지 불안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고 있다. 옆에는 오스카가 주로 타는 스케이트보드가 고이 모셔져 있다. 아마도 이곳이 미술 애호가 동아리방이 아닌 스케이팅 동아리방이었다면, 금방이라도 보드를 타러 어디론가 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뭘 어떻게 하기 힘들다 보니까 그렇다.
“어, 선배님, 뭔가 불안한 것 같기도 한데...”
나타샤가 불안해하는 오스카를 보자마자 곧바로 말한다.
“아니야, 다른 건 아니고, 여기서 보드를 못 타는 건 너도 잘 알잖아?”
그런데, 마치 오스카가 그렇게 말하는 걸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모모가 바로 말한다.
“에이, 선배님! 그래서 준비했어요. 자, 보라고요!”
모모의 말이 끝나자마자, 창고 쪽에서 뭔가가 이쪽으로 오는 게 보인다. 로봇들이 가져오는 건 모두 조각상들인데, 나무와 구리, 철 등으로 되어 있고, 한 명의 작가가 모든 조각을 만들었는지, 인물의 모양과 자세가 다 비슷비슷하다.
“이게 바로 ‘도렐’ 작가의 ‘선수들’ 연작 중에 ‘보더’라는 작품인데요, 작년 말에 저희가 좀 어렵게 구했죠. 선배님같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선수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서, 마치 슬로모션처럼 만든 거래요. 어때요?”
“오, 이런 거 좋지! 이런 작품도 있는 줄은 몰랐는걸.”
오스카는 그 조각이 꽤 마음에 들엇는지, 몇 번이고 그 조각을 훑어보더니, 이윽고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건지,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리며 말한다.
“그런데, 동작이 약간 비현실적인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시간, 레디 길드 원 동아리방. 만화부와 레디 길드 원이 7대 7로 한참 동아리 대항전을 벌이는 중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잘 모르겠지만, 레디 길드 원은 다들 핸디캡 모드를 켜고 진행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래도 현재는 7대 6으로 레디 길드 원이 앞서고 있다. 이미 만화부에서 안젤로가 아웃되었고, 민과 지온, 윤진을 비롯한 나머지 만화부원들 역시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에이, 이렇게 잘 하는데 어떻게 이기지?”
“레디 길드 원은 핸디캡 모드 쓰지 않았냐?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잘 할 수 있지?”
민의 뒤에서 구경하는 토마와 료가 한마디씩 하며 게임 실황을 지켜본다. 둘 모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조금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슬며시 레디 길드 원 쪽의 자리 옆으로 가서 문제의 그 핸디캡 모드가 잘 켜져 있는지 확인한다.
“뭐, 잘 켜져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토마가 막 그렇게 말하는데...
“에이, 왜 내가 아웃이 된 거냐고!”
그 큰 소리에 토마와 료가 소리가 난 곳을 보니, 윤진이 헤드셋을 벗고서 머리를 싸매고 있다. 화면은 붉은색이 깔렸고, ‘아웃’이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그 글자의 크기를 보니, 토마와 료는 고개를 끄덕인다. 왜 윤진이 그렇게 크게 소리를 냈는지 알 만도 하다.
“@#$%&*!”
윤진이 무엇인지 모를 괴성을 지르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갈 뻔하다가, 후배 만화부원들의 제지에 겨우 자리에 다시 앉아서, 모니터를 가만히 응시한다. 여전히 두 눈은 정신이 나간 듯 반쯤 풀려 있기는 하지만.
“벌써 5대 7이네.”
그 시간, 민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 게임을 이어가는 중이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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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SiteOwner
2023-06-18 14:50:49
레오네 앞에서는 진짜 찬물도 못 마실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런 부류의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좋은 인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피해를 입은 적도 있었다 보니 그렇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교사가 그랬는데 학생들에게 지금 바로 생각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쓰는 투표를 하게 했고 그 중 상위 10명을 운동장으로 끌어내서 가혹행위를 시키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도 당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교사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문제의 리하르트는 그 마왕성이 나타나는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데 질문이 좀 더 파고드니까 뭔가 펄쩍 뛰는 듯하는군요. 일단 의심해 볼 가치는 있겠습니다. 게다가 한동안 언급되지 않는 마히로가 다시 언급되는 것도 영 그렇습니다.
셀림이 전에 벌인 그 일은 의외로 VP재단과 이어진...그러면 납득할만하군요. 세훈이 그러는 것도 역시 이해됩니다.
동아리 교류행사는 진행중인데 미술 애호가 동아리와 스케이팅부는 역시 정반대의 상황이니 역시 물과 기름이겠지요. 게다가 오스카의 눈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보이니까 작품에 찬탄을 하면서도 역시 그냥 넘기기 힘든 구석도 보일 것이고, 이해합니다. 클래식 음악의 애호가인 저로서는 역시 클래식 음악과 거리있는 다른 장르의 음악의 연주기법 중 귀에 거슬리는 것도 있고 그렇다 보니까요.
문제의 게임은 여전히 진행중이군요. 윤진이 저렇게 괴성을 지를 정도면...
시어하트어택
2023-06-18 23:00:16
그 문제의 교사는 고약한 인간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어쩌면 그냥 뚜렷한 목적이 없이 기선제압용으로 그랬을 수도 있죠. 그러면 더욱 고약한 인간입니다만. 일단 레오네가 한 건 경기 상대를 뽑는 것 정도이기는 하지만요.
마왕성의 범인은 이미 전에 몇 번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그 능력자로서 나온 건 아니죠. 조만간 그 능력자는 나올 예정이긴 합니다.
미술과 스케이트보드라면 왜인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죠. 그래도 저렇게 어떻게든 접점을 찾았다는 건 다행입니다.
마드리갈
2023-06-20 13:55:51
이상한 판을 깔아놓고 참가를 강요하는...
저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전혀 반갑지 않네요. 그리고 레오네가 말했던 난이도 조절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는 그 수준을 벗어나지는 않네요. 윤진이 저렇게 불만의 소리를 크게 터트렸는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요.
막후에서 대체 무슨 짓을 꾸미려는지는 모르겠는데 읽고 있다 보니 제가 저 상황하에 신경쇠약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셀림의 능력은 아무리 VP재단과의 접점이 있다 하더라도 뜻밖의 상황에 처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죠...
시어하트어택
2023-06-25 22:39:14
저렇게 미리 판을 깔아놓고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좀 많더군요. 저도 그런 경우에 몇 번 걸려들어서 잘 압니다.
아무래도 초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생존(?)을 걱정해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