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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 알기로, 안젤로는 이 시간에는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든가 메시지를 보낸다든가 하는 일은 잘 없다. 이 시간에 안젤로를 만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안젤로가 운동 중인 공원 같은 곳에 가는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안젤로가 보낸 그 메시지를 열어보니...
[주의 : 마왕성 사진]
이런 메시지만 쓰여 있고, 사진은 ‘열람 주의’라는 메시지가 있어서 바로 볼 수 없고 클릭을 해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실루엣으로 보아서는 실제로 찍어온 사진 같은데, 민은 지금은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다. 지금은 아무래도 토마와의 다음 승부에 더 신경을 쓰고 있기도 하고, 또 이런 사진은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아도 내일이면 화젯거리가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에이, 내일 봐야지. 보나 마나 그렇고 그런 사진이겠지만. 그런데 안젤로 형은 거기까지 어떻게 사진을 찍어 가지고 왔대?”
안젤로가 보낸 메시지는 보관함에 고이 넣어 두고, 민은 곧바로 다시 토마와의 다음 승부를 위해,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고는, 옆에 쌓아 둔 과자를 하나 꺼내서 집어 먹고, 콜라를 마신다.
그런데 막 게임이 로딩되는 그때.
“어, 안에 민이 있냐?”
방문 밖에서 반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민이 반응이 없자 반디는 슬며시 문을 열고서 들어온다. 민이 아무리 봐도 자신을 돌아봐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는, 반디는 민의 손을 슬며시 잡아 쥔다.
“아니, 누나는 왜! 지금 과제 하는 시간 아니었어?”
“맞기는 하는데, 뭐 하나만 묻자.”
“에이, 뭔데?”
민이 살짝 헤드폰을 벗자마자, 반디는 바로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그 마왕성, 오늘도 나타났다더라? 거기에다가 네가 잘 아는 사람이 그걸 봤다던데, 사진 좀 보내 줄래?”
“에이, 누나는 과제에나 집중해. 그건 내가 볼 테니까.”
“아니, 차라리 내가 그걸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민이 뭐라고 하기도 전, 반디는 그 화면에 손을 뻗더니 민의 그 메시지를 자신의 메시지창으로 옮겨 담고는, 그 사진을 눌러서 본다.
“뭐야, 이거...”
반디는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까지 짓는다.
“고작 이런 것 때문에 애들이 놀라고 그중 누구는 쇼크까지 받고 그랬던 거야?”
“에이, 뭐야. 누나, 그렇게 웃어넘길 일 아니라고.”
민이 반디 쪽으로는 시선을 돌리지 않으면서도 반디가 뭘 했는지는 대강 알고서 그렇게 말하자, 반디는 또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조악하거든. 디테일도 그렇고, 장식도 무언가 만들다 만 것 같고...”
그러더니 그 화면을 한번 축소해서 보고는, 이윽고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알겠어. 이 정도로도 사람들 겁주기에는 충분할 것 같아.”
반디는 그 마왕성 사진을 보고도 겁먹거나 하는 표정을 전혀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사진에 찍힌 마왕성을 모형화한 그림을 이리저리 움직여도 보더니, 또 입을 연다.
“뭐...? 나같이 보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은 더 많겠지만.”
“그러고 보니까...”
민은 거기서 뭔가 생각이 났는지, 반디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으면서도 마치 반디를 보고 있다는 듯 말한다.
“그 그래피티는 어떻게 됐어?”
“그 그래피티 그리는 녀석들? 아직 안 잡혔지. 시선을 의식했는지, 캠퍼스 눈에 안 띄는 데에서 몰래 하고 있던데.”
“어... 그래?”
“맞아. 어제는 분리수거장에 그래피티가 하나 나타났는데, 예의 그 마왕성 그림이더라? 그런데 꽤나 조악하게 그렸지. 물론 몇 시간 만에 다시 지워지기는 했지만.”
반디의 그 말을 들은 민은 가만히 게임에 집중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다시 입을 연다.
“뭐, 그 그래피티 그리는 사람들도 비슷한 걸 느끼고 싶어서겠지?”
“그 마왕성 장난치는 누군가하고?”
“뭐... 그렇겠지.”
그리고 다음날 아침 6시 40분.
오늘도 평소에 비해 좀 이른 시간에 일어난 윤진은 잠시 고개를 한번 흔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는 방 밖으로 나온다. 테이블 위에는 우유 한 잔과 베이글에 계란을 끼운 일종의 샌드위치 하나가 놓여 있다. 분명 어머니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해 놓고 다시 방에 들어간 모양이다.
“오, 그래. 안 먹을 수가 없겠지? 어디 한번...”
바로 자리에 앉아서, 베이글 샌드위치를 한 입 먹으려는데...
“어?”
어디엔가, 그 샌드위치에 얼룩 같은 게 보인다. 분명히 이것은 곰팡이일 것이다. 어머니가 사 온 베이글은 분명히 그런 걸 다 확인하고 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게 보인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보통의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단 곰팡이가 어머니가 요리를 다 해 놓은 사이에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나타날 일은 별로 없기에.
“도대체 뭐지...”
윤진은 베이글 샌드위치를 먹지 않고, 그대로 옆에 놔둔 채, 대신 냉장고에서 오트밀 음료를 하나 꺼내서 마신다. 그리고 샌드위치와 우유를 마치 못 본 것처럼 하고서는,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고, 오전 8시. 아멜리는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앞서서 학교로 향하는 중이다. 주택가에는 아직 많이 보이지는 않지만, 출근하는 정장 차림의 사람들도 하나둘씩 보이고,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보인다. 그러던 중, 아멜리를 보고 말을 거는 여학생이 하나 아멜리의 눈에 띈다.
“저기, 선배님! 아멜리 선배님, 맞죠?”
“어...?”
아멜리가 뒤를 돌아보니 딱 봐도 알 것 같다. 복장이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미린고등학교 여학생의 교복이지만, 헤어스타일은 고등학생이 아닌 게임이나 뮤직비디오 같은 데에서 튀어나올 법한 군데군데 염색한 흑발을 양갈래로 묶은 것이다. 거기에다 분홍색 쇼핑백은 책가방 말고 또 따로 들고 있는데, 분홍색과 검은색 고딕 복장을 한 인형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공모전 참가했으니까, 빨리 추첨이나 해 주세요.”
이렇게 자신있게 말하는 미린고 여학생의 이름은 ‘쿠로마루 미아’. 미린고등학교 1학년 D반의 학생이다.
“뭐야, 네가 경품 응모를 했다는 건 의외잖아.”
“그야 당연히, 원하는 게 있으니까요.”
미아가 내심 바라는 경품이 뭔지, 아멜리는 모를 리가 없다.
“그래, 홈카페 동아리 매니저가 커피머신 세트를 원하지 않는다는 건 이상하지. 그런데, 원하는 대로 뽑히는 건 또 아니잖아?”
“네... 그건 그렇지만요.”
“그래, 너희 홈카페 동아리하고 한번 모임을 해 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좀처럼 없네.”
“저도 말이죠.”
시간은 조금 지나서 오전 8시 10분, 미린역 근처의 주택가. 혼자서 터벅터벅 걷는 한 미린중학교 남학생이, 주위를 슬며시 돌아보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걸어가고 있다. 그 옆으로, 또다른 남학생이 끼어들더니 불쑥 입을 연다.
“야, 그리핀, 내가 하라는 대로 했냐?”
“뭐, 뭐야, 라시드였냐?”
그리핀은 그 투블럭 머리의 남학생을 보더니 바로 알아보고는 말한다. 물론 그리핀이 라시드를 보자마자, 그리핀의 얼굴은 조금 원망이 섞인 표정으로 바뀌어 있다.
“그래, 꽤나 성공적이었지. 그건 그렇고, 네가 어제처럼 음향효과 좀 넣어 주면 더 좋았을 텐데, 왜 안 왔던 거야? 응? 갑자기 말도 없이 약속을 취소해 버리면 어쩌자고?”
“말도 마라. 어제 선배님한테 꽉 잡혀 있느라고 너 도와주러 가지도 못했어.”
“뭐, 누구?”
“슬레인 선배님 너도 잘 알지?”
그리핀은 슬레인의 이름을 듣더니, 금세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 어느 선배님한테는 이기지도 못해서 쩔쩔매면서 만만한 후배들 앞에서는 폼만 잡는 그 선배?”
그리핀은 슬레인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을 알고 있는지, 제법 어깨를 으쓱거리기까지 한다.
“네가 하려는 말이 너희 동아리에 와 달라는 거라면, 아쉽게도 나는 갈 생각은 없어. 그냥 도와 주는 걸로 나는 만족하니까. 그건 그렇고, 오늘도 장소를 또 바꿔야 할 것 같은데.”
“뭐야, 어제는 또 어디서 했는데?”
“중앙공원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니 효과도 한층 더 뛰어났지.”
“뭐야, 멀리 안 갔네? 그런데, 어쩌려고 거기서 한 거야?”
“왠지 모르게 기출변형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런데 바로 그때, 라시드와 그리핀의 옆으로 누군가가 지나간다. 라시드는 막 더하려던 말을 먹어버리기라도 한 듯, 입을 자기 손으로 틀어막고는 그 누군가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옆을 돌아본다. 혹시라도 선생이나 히어로 동아리의 부원들은 아닐까, 걱정되어서이다. 그리고 보니, 아주 다행히도, 그 얼굴은 슬레인이다. 일단 안심하는 라시드지만, 이내 라시드는 말을 더하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슬레인은 무엇인지 모를 독기를 품은 눈을 한 채, 라시드를 말없이 슥 보기만 하고는 그대로 앞서서 간다. 마치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강한 암시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야, 라시드, 왜 굳었냐? 설마 저 선배 때문에?”
“......”
그리핀이 그렇게 물어봐도, 라시드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리핀은 궁금했는지, 굳이 슬레인을 쫓아가서 궁금한 걸 물어보려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가 그리핀을 가로막는다. 그리핀도 아는 얼굴인지, 곧장 그 누군가를 향해 큰 소리로 말한다.
“야, 줄리안, 왜 길을 막냐?”
“아, 제가 일부러 길을 막으려는 건 아니었고요...”
줄리안은 그렇게 뭐라고 말을 꺼내 보려고 하지만, 곧바로 그리핀이 뭐라고 하려고 하는지, 라시드의 말을 다시 막는다.
“너, 왜 선배가 앞에 지나가는데 그렇게 막아서고...”
그리핀은 꽤 열이 받은 듯 뭐라고 목소리를 높이려고 하지만, 라시드가 제지한다. 그 일순간 줄리안의 눈에 뭔가 이상한 성 같은 게 보인 것 같아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지만, 곧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방금 뭐였지...?’
줄리안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냥 순식간에 지나간 것이라 그렇게 크게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은 있다. 그 느낌이라는 게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라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좀 조심하고 다녀라!”
“네...”
라시드가 짐짓 겁이라도 주려는 듯 큰 목소리로 말하자, 줄리안은 곧바로 고개를 숙인다.
“조심하라고.”
그렇게 다시 한번 말하고는, 라시드는 거기에 줄리안을 남겨놓은 채로, 그리핀에게 손짓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라시드의 뒷모습을 보다가, 줄리안은 갑자기 분이 풀리지 않은 건지, ‘후’ 하고 한숨과 울분이 섞인 무언가를 내뱉고는, 마침 라시드의 근처 잔디밭에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 걸 확인한다.
“좋아, 골탕 좀 먹어 봐라...”
금세,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지는 물방울들이 탄성을 지닌 작은 알갱이로 바뀌더니, 그 중 몇몇 개가 라시드의 신발 안으로 들어간다.
“아, 신발 안에 뭐야!”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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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3-07-04 00:15:34
폭주족도 스피드를 즐기고 싶어서 공도에서 날뛰는 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죠. 역시 그런 사고방식은 예의 마왕성 소동이나 그래피티의 건에도 그대로 적용가능할 거예요. 정말 그러고 싶은지는 심히 의문이기는 하지만...
만든지 얼마 안 된 음식에 곰팡이가 피는...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지금 뭔가 먹거나 마시거나 하는 상태가 아니라서 역겨운 기분이 드는 건 좀 덜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불쾌해요. 게다가 요즘같이 더운 나날에는.
이름이 쿠로마루 미아로 정해졌군요, 그 토요코 키즈 스타일의 여학생은. 게다가 홈카페 동아리의 매니저...의외네요.
그리핀과 라시드군요. 문제의 빌런들은. 그리고 슬레인은 뭔가 살기등등하고, 줄리안은 그들과 충돌하고...
시어하트어택
2023-07-08 23:23:03
말 그대로입니다. 그 마왕성 능력자가 3분 남짓 마왕성을 보여주고 거두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다 자기만족을 위해서죠. 목격한 사람들이 보고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재미있어하는 겁니다. 말 그대로 관심은 받고 싶은데, 자기 모습을 보이기는 싫은 거죠
윤진이 먹으려던 샌드위치에 자연적으로 곰팡이가 핀 건지, 아니면 누군가의 장난인지는 아직 나오지는 않았죠.
SiteOwner
2023-07-29 21:18:28
마왕성 소동보다도 정말 무서운 것은 윤진이 겪은 그 곰팡이 사태겠지요.
사온 지 얼마 안된 베이글에 그렇게 곰팡이라니, 정말 싫습니다. 그래도 음식물에 있는 건 그나마 낫지요. 몸에 생긴 것은 진짜 돌아버립니다. 훈련소에서의 6주 남짓한 기간의 그 거지같은 위생상태는 지금도 몸서리쳐질 정도로 끔찍했으니까요. 목욕을 할 수 있었던 건 그 기간 중 다섯손가락을 못 채웠고 당시 입었던 동내의에는 퍼런 곰팡이가 피었고 피부에도 들러붙어 있었습니다.
작중의 빌런들은 그나마 약간의 죄의식이라도 있는 것 같군요.
그러지 않으면 어딘가의 테러리스트처럼 그냥 사고부터 칠텐데, 그나마 갱생의 여지가 있나 싶습니다.
쿠로마루 미아군요, 흔히 말하는 양산형여자(量産型女子) 패션의.
그러고 보니 2005년 쯤에 도쿄에서 만났던 지인도 비슷한 패션을 하고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역시 시대를 많이 앞선 것 같군요. 그녀의 키는 148cm로 매우 작았지만, 쿠로마루 미아는 어떨지...
시어하트어택
2023-07-30 21:23:13
저 베이글에 핀 곰팡이 역시 누군가의 초능력이든, 아니면 단순한 보관상태 불량으로 저렇게 된 것이든, 충분히 윤진에게는 공포스러운 일이겠습니다. 아침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건 그렇다 치더라도 말이죠. 그건 그렇고 오너님의 군생활 시절 이야기를 보니, 그저 할 말이 없어집니다.
작중의 빌런들은 학생들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조금 더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