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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요전에 연락드렸던... "
"아, 얘기는 들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
사무실로 훤칠하게 생긴 남자가 들어섰다. 그 순간, 사무실에서 TV를 보던 야나기와 데스 애더의 시선이 그 남자를 향해 꽂혔다. 그 남자는, 최근 모든 멤버들이 군대를 전역하고 막 컴백을 위해 앨범 작업을 한다던 라이트닝 보이즈의 멤버, 준이었다.
"저 사람... 라이트닝 보이즈 맞지...? "
"틀림없어. 저 사람, 라이트닝 보이즈의 준이야. "
아이돌이 여기까진 어쩐 일인지 궁금했던 둘은, TV를 보는 척 하면서, 신경은 온통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에게 쏠려있었다. 한참 컴백때문에 바쁠 아이돌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분명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사생팬이나 자잘한 범죄에 연루된거라면 소속사에도 법무팀이 있어서 거기서 대응할텐데, 굳이 여기까지 온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컴백 관련해서 음반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음반 작업에 차질이 생겨서 알아봤더니 프로듀서가 교통사고를 당했더라고요. 광현이가 아무래도 이것 때문인 것 같다고 해서 오게 됐습니다. "
준은 USB를 내밀었다. 아무것도 없이 하얀 USB였지만, 미기야는 왠지 그 USB를 보는것만으로도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네요. "
"아무래도 이것과 뭔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저희들은 곧 컴백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 알아보기는 힘들 것 같아서, 대신 알아봐주십사 부탁하러 왔습니다. "
"알겠습니다. 여기 제 명함을 드릴테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 주세요. "
준이 돌아가자, 미기야는 USB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안에는 알 수 없는 파일이 하나 들어있었고, 파일명은 '백색소음'이었다. 그 파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파일을 옮기거나 복사하거나 다른 파일을 USB 안에 넣는 것은 불가능했다.
"USB가 잠겨있는 모양이네... "
"뭔데? 준이 주고 간 거야? "
"네. 안에 음악 파일이 들어있긴 한데,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거기다가 USB에서 파일을 꺼내거나 다른 파일을 넣는 것도 안되고... "
"음... "
"백색소음이라... 곡명이 특이하긴 하네요. 그나저나 연예게쪽이면 우리쪽에서 독단적으로 조사하기는 힘들 것 같으니, 고키부리 사무실에라도 가 봐야겠네요. "
고키부리 사무실에 들어선 미기야는 도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라이트닝 보이즈의 의뢰라니, 구미가 당겼지만 도희도 정보원을 투입하기는 애매한 상황이었는지 썩 긍정적인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도희는, 작곡가를 한 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미기야는 도희가 알려준 연락처로 연락을 해 작곡가와 만났다. 작업실이 마침 그가 있는 건물의 지하였지만, 방음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몰랐던 듯 했다. 작업실로 내려가니, 까만 후드를 입은 젊은 남자가 자신을 유피라고 소개하면서 미기야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도희씨 연락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괴담수사대의 유키나미 미기야입니다. "
"도희씨한테 대충 듣긴 했는데, 백색소음을 지금 미기야씨가 가지고 계신건가요? "
"네. 준이 저에게 주고 가셨어요. "
"그렇군요... 뭐, 그래도 가지고 있는것만으로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겁니다. 백색소음을 가지고 있다가 크게 다치거나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작곡가거든요. 작곡가 전용 프로그램이 필요하기떄문에 보통 사람들은 거기 들어있는 파일, 열지도 못해요. "
"혹시 이 멜로디에 대해 아는 게 있으십니까? 최근에도 이걸 프로듀싱하려던 작곡가가 크게 다쳤다고 들었는데... "
"얘기가 들어질 것 같은데... 맥주 괜찮으시죠? "
"아, 네. "
유피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두 캔을 가져왔다.
"논알콜이니까 걱정 말고 드세요. "
"감사합니다. "
맥주 캔을 따자, 치익 하고 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백색소음이 예전에는 테이프, 그 다음에는 CD에 들어있었는데, 지금은 둘 다 잘 안 쓰는 추세라 USB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백색 소음과 관련된 얘기는 예전에도 꽤나 유명했었는데, 그때도 그 노래를 프로듀싱 하려던 작곡가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기도 했었어요. "
"꽤 유서 깊은 저주군요. "
"부상의 정도를 보자면 어느정도 공통점은 있었어요. 백색소음을 프로듀싱하려다가 죽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전에 표절 논란이 있었던 작곡가들이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표절로 밝혀진 작곡가도 있었고요. "
"프로듀싱하려던 작곡가가 다 크게 다치거나 죽었다면, 그 멜로디는 결국 노래로 발표되지 못한건가요? "
"그렇죠. 크게 다쳤다...는 작곡가들도 대부분 손을 다쳐서 장비 조작을 원활하게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거든요. 그걸 이어받아서 발표하려고 했던 사람들도 다 다치거나 죽었고요. 크게 다쳤던 사람들에 의하면, 다치기 전날 꿈에서 어떤 여자가 나오더니 자기 팔을 날붙이로 찍었다고 하더라고요. 왼손잡이면 왼팔, 오른손잡이면 오른팔을요. 죽은 사람들은 일단 심장마비로 발견되긴 했고요. "
"어떤 여자가 무언가로 팔을 찔렀다라... 혹시 그 여자분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시나요? "
"머리가 길었고,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고 해야 하나... 짓이겨져있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있을만한 형태는 아니었대요. 80년대 뮤직비디오에나 나올 법한 의상을 입고 있었고요. "
유피에게 백색 소음에 얽힌 사연에 대해 들은 미기야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미기야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다른 직원들은 사무실에 있었지만 파이로는 없었다.
"뭐 좀 알아냈어? "
"꽤 유서깊은 저주였다는 것 정도요. 그리고... 프로듀싱하려던 사람들이 크게 다치기 전에 꿈을 꿨는데, 꿈 속에서 어떤 여자가 날붙이로 팔을 찍었대요. 왼손잡이면 왼팔을, 오른손잡이면 오른팔을... "
"음... 꽤 유서깊은 저주라면 예전에는 USB가 아닌 다른 물건이었을 수도 있겠네. "
"처음에는 카세트 테이프였대요. "
"그럼 그 여자 얼굴은? "
"짓이겨져서 이목구비를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해요. 요전에 T바이오때처럼 USB를 통해서라도 뭔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잠금이 걸려있어서 그것도 힘들 것 같고... 여기에 얽힌 사연이 있다고 해도, 연예계의 어두운 면이다보니 아무래도 밝혀내기 힘들겠죠. "
"하긴, 과거로 가서 현장을 보지 않는 이상은... "
뭔가 원한같은 게 있다고 해도, 알아낼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안에 든 곡에 얽힌 이야기라고 해봐야, 안에 든 곡을 프로듀싱하려던 작곡가들이 대부분 죽거나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였다. 죽거나 다치기 전에, 어떤 여자가 꿈에 나타나서 날붙이로 팔을 찍었다는 것과 함께. 그것 외에 다른 것은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그냥 이걸 안 건드리는 게 최선인 것 같아요. "
"그렇지. 손대면 죽으니까. "
"오너, 그 백색소음건 말인데... "
"아, 네. "
"표절 논란이 있었던 작곡가들은 프로듀싱하려다가 죽었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아냈어요. "
"네? 그걸 어떻게...? "
"오래 전에 유명했던 연예인들 찾아가서 자잘하게 근황 인터뷰하는 네튜브 채널이 있는데, 그 채널을 통해서 예전에 작곡도 가끔 했던 가수를 만났거든요. "
"그 분이 뭐라던가요? "
"백색소음 노래는 주인이 따로 있는 노래인데, 노래의 주인이 데뷔를 앞두고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어요. 아마 얼굴이 짓이겨져서 알아볼 수 없었던 것도 그것때문일거예요. "
"노래의 주인이 따로 있다고요? "
노래의 주인이 따로 있고, 데뷔도 하기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는 라우드에게서 들은 가수의 이름을 검색했고, 교통사고 소식을 실은 옛날 신문을 찾을 수 있었다. 백색소음을 원래 부르려고 했던 가수는 녹음을 마치고 집에 가던 중, 음주운전을 하던 트럭에 치여서 사망했다. 그 때 얼굴이 짓이겨저 신원 확인이 안 되어서 지문 대조로 간신히 신원을 확인했고, 차를 운전하던 매니저는 현장에서는 살아있었지만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얘기도.
'설마 데뷔하지 못해서 원혼이 쌓여있는건가...? '
"뭐여, 퇴근 안 했냐? "
"아, 뭐 좀 알아볼 게 있어서요. "
"뭔데? 그 백색소음? "
"네. 파이로씨, 혹시 이 사람 아세요? "
"이때 난 소사체였는데... 아마 세베루스씨한테 물어보면 알지도 모르겠다. 이따가 한번 물어볼테니, 일단 퇴근부터 하셔. 슬슬 차 끊기겠어. "
그리고 다음날, 미기야가 파이로에게 전해들은 얘기는 신문에 나온 것과 전혀 다른 얘기였다. 어찌나 충격적이었는지 그는 하마터면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 했다.
"그 USB에 있는 거, 노래 주인의 원혼이 맞아. 녹음을 마치고 데뷔하기 전에 죽었어. "
"그건 알죠.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는데... "
"아냐, 살해당했어. "
"예? "
"도로변에서 죽인 다음, 안면을 짓이겨서 신원 확인을 못 하게 만들고 폐차 직전인 차를 사서 교통사고인 척 위장한거지. 그 도로는 예전에도 화물차가 자주 다니다보니 트럭에 치여서 죽었나보다, 한거고. "
"그럼 매니저는요? "
"매니저랑 죽인 사람이 공범인데, 막판에 싸워서 홧김에 매니저도 중상을 입은거지. "
"허... "
USB에 있는 원혼은 살해당했다. 그것도 데뷔하기 전에.
"그럼 이 노래의 주인이 자기이기떄문에 프로듀싱을 못 하게 하는걸까요? "
"그건 당사자가 아닌 이상 모르지. "
"죽인 사람은 벌을 받았을까요...? "
"너도 알텐데, 10년 전에 뺑소니 논란 터져서 방송에서 갑자기 사라졌던 여가수. 지금도 방송에서는 안보이고 쥐죽은것처럼 지내잖아. 연예인들 근황 취재하는 네튜버도 그 사람은 욕으로 댓글이 도배될까봐 취재 안 한다고 했던. "
"......! "
예전에는 입담도 걸출하고 노래도 재미있어서 가끔 토크쇼에서 보였던 여가수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잘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 이유가 뺑소니 논란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 뒤로는 쥐죽은듯 산다는 얘기만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접했다.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오전에 K시에서 T시로 가는 국도변에서 변사체가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얼굴이 짓이겨저서 신원을 알아볼 수 없었으나... "
"......! "
교통사고 뉴스가 나옴과 동시에, 책상 위에 놓였던 USB가 있던 자리에 쪽지가 하나 생겼다. 쪽지에는 '이 곡은 JINU에게 맡겨주세요. 그 애라면 잘 해낼겁니다. '라고 쓰여있었다. 준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전한 미기야는, USB를 돌려주면서 프로듀싱을 지누에게 맡겨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지누에게요...? "
"네. 오늘 아침에 교통사고 뉴스가 나오더니, 이런 쪽지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
"아... "
"그 노래에는 이름도 알리지 못 하고, 재능이 걸출했던 탓에 살해당한 가수의 한이 담겨져 있어. 프로듀싱 하기 전에, 무덤에 찾아가서 명복 정도는 빌어주라고. 아마 지누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한 이상, 지누를 죽이거나 하지는 않을거야. "
"그... 사실, 죽은 사람이 지누의 이모쪽 친척이라고 들었습니다. "
"...네? 이모쪽 친척이요? "
"네. 저도 자세한 얘기는 모르고, 가수 데뷔하다가 사고로 죽었다고만 알고 있었어요... 그 이름, 확실히 지누가 예전에 얘기했던 적 있어요. "
"마지막으로, 곡을 자기 조카에게 맡기고 싶었던건가... "
며칠 후, 라이트닝 보이즈의 컴백 무대가 있었다. 타이틀곡 백색소음은 발표하자마자 유명세를 타서, 거리마다 백색소음을 틀 정도였다. 원래 라이트닝 보이즈는 유명하긴 했어도 해외 팬들은 소수였지만, 이 노래가 기회가 되어 해외 팬도 늘어나게 되었다.
엄마가 고지고 아빠가 성원숭인데 동생이 블레이범인 라이츄. 이집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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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3-07-08 17:28:53
누군가의 결과물은 갖고 싶고, 그 결과물의 주인에 대해서는 죽여서 사고로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저주받은 음악이라고 하기에는 그 음악을 차지하려고 했던 자들의 그 끔찍함을 보니 음악의 탓은 확실히 아니네요. 정말 사람이 무섭다는 것이 몇번이고 느껴지는...
그리고 그 백색소음은 빛을 보게 되었군요. 다행이예요.
국내산라이츄
2023-07-10 03:53:59
음악의 원 주인이 자신을 프로듀싱하는 작곡가를 공격한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찾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괴담수사대를 통해 원 주인이 살해당한 것이 알려진데다, 죽인 사람의 근황은 물론 현재 위치까지 알아내게 된 원 주인은 한을 풀고 자신의 친척뻘 되는 사람에게 음악을 맡기고 성불했습니다.?
사람이 가장 무서운 법이죠. 자신이 지불할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일을 저지르니까요. 똑같이 처참하게 죽은 것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나 죽인데다가 그 이유가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에 대한 질투였으니 명계 재판정에서도 형량이 꽤 나올겁니다.?
SiteOwner
2023-08-16 23:07:01
그 문제의 음악이 그야말로 영물이군요. 저주받은 음악이 아니라 도용당하지 않고 원래 쓰여져야 할 사람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단지 나쁜 마음을 먹고 접근한 사람들이 화를 자처했을 뿐. 나쁜 사람들의 행적은 온데간데없고 단순히 그 음악이 저주받았다고 욕하면 된다는 그런 심리가...이래서 인간이 가장 무섭다고 하는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그게 생각났습니다. 1990년대 전반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음악그룹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유튜브 바로가기). 립싱크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실 마로니에는 음원이 만들어지고 나서 급조된 립싱크 그룹이었고 실제로 녹음을 다 마친 가수인 신윤미와 최선원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법정공방이 이어져서 결국 신윤미가 승소했고 이후 그 급조된 마로니에는 흐지부지되고 실제로 노래를 부르지 않고 립싱크만 했던 그들은 어떻게 되든 대중에 철저히 외면당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