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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Lester, 2023-10-20 06:51:39

조회 수
135

1. 그 장기작업의 번역료가 9월 29일에 입금돼서 드디어 마음놓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주에는 게임 커뮤니티 운영진들의 모임에도 참석해서 오래간만에 친분을 나눴고, 리더였던(그리고 지금도 리더인) 친구 덕분에 요트도 타고 정말 귀하면서도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어서 반가웠고, 한강 유람을 한 덕분에 지스타 보러 갈 겸 해운대 바다를 보러 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최근에는 소모임을 찾아주는 앱을 통해 이런저런 영어회화 모임도 알아보고 참석하고 있어서, 외부활동이 어딘가에 국한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2-1. 하지만 결국 시간의 흐름을 간과할 수는 없는 듯하기도 했습니다. 번역료가 입금됐으니 마음놓고 쉰 지 1달째건만 자잘한 작업조차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새 불안감이 엄청나게 상승했고, 상술한 GTA모임도 '나는 PC방이라도 빌려서 다같이 게임이라도 한 판 돌릴 줄 알았는데'라고 생각했건만 그러기보단 다른 모임과 비슷하게 먹자 마시자 파티였네요. 싫은 건 아니지만, 아직 현역(?)은 저밖에 없는 것마냥 괴리감이나 '이제 현실 살아야지?'하는 배타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2-2. 영어회화 모임도 오늘(19일) 다녀온 곳은 열정과 퀄리티는 나쁘지 않았지만, 하필 주제가 '연애'였거니와 참가비가 예상 외로 비쌌습니다. 1회 참가비 1만원(월정액 결제시 8천원씩 4번 및 할인해서 3만원), 뒷풀이 참가비용 1만원, 식비는 n등분... 임대한 공간에 기존 모임원들이 가구랑 이것저것 기증해서 관리비가 많이 든다는 건 저번 보드게임 모임과 같았는데, 이번에 2번째 참석했다는 사람이 (아마도 용기를 내서) 지적한 사실이지만 '관리자와의 친목질이 심한 것 같다'였고 실제로 저도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관리자 본인은 그러지 않게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목소리도 큰데다 그 2번밖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농담도 던지는 게 진짜 '노력'인지는 모르겠어요. 따지고 보면 '눈치없다'는 것은 사회부적응자에게만 쓰는 게 아닐 터인데 말입니다.


3-1. 어쨌거나 간만에 찾아온 진정한 자유니까 드디어 글이나 그림 등의 창작에 매진하려고 했는데, 그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쉬어서인지 글도 그림도 도저히 처음 뜨기가 힘드네요. 그나마 글은 추가 에피소드라는 비기가 있고 또 대강당에 이렇게 근황이라도 적으면 감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그림은 진짜 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아요. '여캐를 잘 그려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머릿속으로만 이상적인 디자인을 생각하고 막상 손이 안 움직이는 것 같고, 더구나 스스로도 이것을 잘 알고 있어서 쉽지가 않습니다.


3-2. 어쩌면 수정이 힘든 볼펜으로만 그려와서 한 번에 깔끔하게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연필과 샤프를 썼지만, 다한증 때문에 필기를 하다보면 흑연이 번지고 손이 더러워지는 일이 종종 있어서 쓰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이제 보니 두 손을 올려놓은 종이도 손의 열 때문에 눅눅해집니다.) 하지만 수정하는 게 무서워서(?) 영영 실력을 잃어버릴 바에야, 샤프를 사서라도 깨작깨작하면서 계속 그려나가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막상 샤프로 그리면 (안 그래도 시력이 나쁜데) 선이 얇고 또 확정선을 그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곤란하지만요. 수정이나 확정선은 컴퓨터로 옮기고 나서 포토샵이든 뭘로든 가능하기도 하고...


4. 정리하자면 지금은 몸은 분명 자유로운데, 마음이 전혀 자유롭지 않은 상태입니다. 배가 고파도 뭘 먹을 생각이 안 나고, 몸을 움직이기도 쉽지가 않네요. 예전(?) 같았으면 죽자살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으로 반나절을 보냈을 터이지만, 이제는 그럴 마음조차도 들지 않습니다. 게임불감증인지 공황장애인지는 모르겠고,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는 게 정확하겠네요. 생각이 너무 많은 게 문제인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가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닙니다. 생각이 부정적인 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게임번역으로 먹고 산다는 꿈은 이미 이뤘으니 더 이상 번민하며 살지는 말자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남은 인생을 어떻게 해야 즐겁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새로운 목표를 무엇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모르니까 인생이 재밌는 거라는 말도 남 얘기 하듯이 했습니다만, 모른다는 게 더 답답하고 무섭기도 합니다.


잠은 푹 자서 오지 않으니 바닥에서 적당한 허리운동이라도 해야겠습니다. 밖은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연속으로 춥네요.

Lester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4 댓글

마드리갈

2023-10-21 18:27:12

여러모로 바쁜 상황이 일단락되고 보상을 받게 것은 확실히 좋네요. 

이제는 간만에 찾아온 여유를 즐기실 것만 남았네요. 당분간은 몸과 마음을 쉬게 해 주시는 게 좋아요. 그래야 또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되니까요.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결국 어느 한 주제를 매개체로 모였다고 해도 그게 꼭 영속적이라는 보장은 없겠죠. 사람들의 입장과 관점은 각각 다르기 마련이고 또한 시계열적으로 봐도 변화는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그게 그때는 게임이었고 최근은 다른 것이었던 것일 뿐이겠죠. 그러니 아쉬워하시는 마음에 공감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림에 대해서는 조언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만, 너무 급히 생각할 필요도 없을 듯해요.

Lester

2023-10-21 22:53:19

그래서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게임에서 번역해 달라고 일을 보내오네요. 큰 문제가 없다는 게 확실시되면 이렇게 신뢰관계가 이루어져서 일감이 확보된다는 게 프리랜서(라기보다는 모든 업무관계)의 장점인가 싶습니다.


영어회화 모임이면 모를까 딱히 친구관계를 끊을 생각까진 없지만,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고 이러는 것도 좀 웃기지 않나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네요. 솔직히 털어놓으면 그렇든 아니든 해답을 얻을 수 있겠지만, 저는 괜찮은데 그 친구가 시간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그러려니 하고 살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그림에 관해서는 아트홀에 하나 올렸습니다.

SiteOwner

2023-10-22 18:00:42

근황을 알려 주신 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역시 일에는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요. 

요트도 타 보셨군요. 저는 아직 타 본 적이 없다 보니 확실히 귀중한 체험이라고 할만합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시기보다는 약간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을 쉬게 하시는 게 좋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뿐입니다.

Lester

2023-10-23 00:01:27

애초에 프로 게임번역가가 된 계기 자체가 '한글패치 백날 해주고도 돈은커녕 욕만 먹을 바에야 돈 받고 하자' 같은 마음도 없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요트라고 뭐 엄청나게 큰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요트는 요트긴 하죠.


쉬긴 쉬는데 정말로 쉬는 것인지 모르는 상황이 너무 많은 게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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