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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러 들어간 건데 아직도 못 잔 거야?”
민이 방송을 보다 말고 일어나서 걱정스럽게 묻자, 반디는 힘을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으... 그러니까... 뭐 이렇게 독한 건지 몰라. 뭘 할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고.”
반디는 아직도 앓는 소리를 내는데, 얼굴 역시도 꽤나 수척해져 있다. 그래도 어떻게 걸어다니기는 하는지, 민은 그 모습을 보고 안도한다.
“아까 죽을 먹기는 했는데, 이거 한 며칠은 갈 것 같은데.”
“내일인가 학회 간다고 했잖아. 갈 수 있겠어?”
반디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민의 질문에 ‘뭐 그런 걸 다 묻느냐’는 듯 대답한다.
“다... 당연히 가야지. 교수님이 특별히 부탁하셨고, 무엇보다도 얼굴 도장도 찍어야 되고, 그리고 이 학회를 안 가면 논문을 쓰기도 어려울 것 같고...”
반디는 그렇게 말하며 방에 들어가기 전, 다시 민을 돌아보며 말한다.
“좀 조용히 봐. 나 좀 자자. 그리고 오늘 나한테 고마운 줄 알아.”
“그래, 잘 자.”
그렇게 반디는 민의 말을 뒤로 하고 자기 방으로 간다. 반디가 들어가고 보니, 민이 켜 놓은 게임 방송의 대화창에는 어느새 더 많은 메시지가 도착해 있는데, 하나같이 그 SRTV의 시청자들임이 분명하다. 적어넣는 메시지 역시 천편일률적이다.
[방송 방해자는 각성하라]
[SRTV가 최고다]
[스파이를 찾아라]
“에이, 이래 가지고서 방송을 볼 수 있겠어? 그냥 나도 다른 거나 해야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민은 그 게임 방송을 끄고 다른 재미있는 걸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은 나름대로 재미있는 걸 찾아냈는지, 헤드폰을 쓰고 또 어딘가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시간, 메이링의 집. 퇴근하고 막 집에 들어온 참인 메이링은 누군가에게서 메시지를 받는다.
[그 마왕성 능력자, 잡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메이링 씨]
“어...? 잡혔다고?”
메이링은 자신이 받은 그 메시지에, 한편으로는 싱겁다는 기분도 들지만, 또 한 편으로는 과연 자신이 생각했던 사람과 실제 그 사람이 맞는지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곧바로 그 범인의 신상을 보자마자, 메이링의 입에서 저절로 ‘파’ 하고 공기가 터져 나오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하, 하하, 하하하...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리핀이라는 이 친구, 자기 딴에는 이런 일을 하고 다니면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될 줄 알았겠지?”
하지만 그렇게 ‘승리’를 자축한 지도 1분, 메이링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아까 반디가 식중독이 왔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곧바로 메이링은 전화를 건다.
♩♪♬♩♪♬♩♪♬
“뭐야, 왜 안 받아?”
1분 정도 전화를 걸어도 전화를 받지 않자, 메이링은 전화를 끊고는 자기 일이나 하려고 테이블에 앉아서는, 컴퓨터를 켜고 옆에 있는 소송 서류 중 추려온 것들을 자기 옆으로 가져다 놓는다. 그렇게 막 일을 시작해 보려고 하는데...
♩♪♬♩♪♬♩♪♬
“어? 뭐야, 반디한테서 전화가?”
그렇게 전화를 받고 보니, 반디가 다짜고짜 메이링에게 말한다.
“야, 전화 왜 걸었어? 나 자려고 하는데.”
“뭐야, 너 괜찮은 거냐?”
“아... 아직도 뱃속이 울렁거리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확실히 아까 전보다는 나아진 것 같은 목소리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메이링은 계속 말을 이어간다.
“그래, 네 목소리가 나아진 것 같으니까 그건 다행인데... 혹시 범인이 누군지는 알겠어?”
“야! 알면 내가 그 샌드위치를 먹었겠냐!”
“하긴 그렇겠네.”
“알았으면 끊어. 나 오늘은 일찍 자야 할 것 같으니까.”
좀 많이 볼멘소리이기는 해도, 이렇게 반디의 ‘생존 신고’를 듣고 나니 마음이 놓였는지, 메이링은 바로 전화를 끊고는 자기 일이나 하기로 한다. 하지만 일을 막 시작하려는데, 또 다른 누군가에게서 온 메시지 도착음이 들려온다.
[☆★○●변호사님 긴급한 부탁입니다 한번만☆★○●]
[영상 참조바랍니다]
[변호사님 한번만 봐주세요]
“에이... 뭐야, 또.”
메시지가 여러 개다. 그것도 한 사람이 보낸 게 아닌, 여런 사람이 보낸 메시지가 이제야 도착했다고 도착음이 울리는 것이다. 이것저것 덕지덕지 갖다 붙여 뭐가 뭔지 알아듣기는 조금 힘든 메시지이기는 하지만, 이런 메시지를 수백, 아니 수천 개는 보아 온 메이링으로서는 읽기는 어렵지는 않다. 그중 한 메시지에는 이미지까지 첨부되어 있는데, 메시지로 봐서는 제보자가 직접 찍은 것 같다. 그걸 한번 열어보기로 한다.
“응?”
메시지에 첨부된 이미지를 여러 번 훑어본 메이링은, 처음에는 의심을 가득 품고 그 이미지를 보다가, 무언가 어이가 없었던 건지, ‘하’ 하는 공기 터져 나오는 소리화 함께, 이윽고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하... 이런 것도 제보라고! 이건 그냥 교통사고 제보잖아!”
하지만 그래도 메이링으로서는 이런 메시지도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다만, 메이링이 아는 변호사 중에 이쪽을 잘 아는 사람이 한 명 있어서, 이쪽으로 보내는 중이다.
[안녕하세요. 교통사고 법률 상담 문의는 ‘드라고비치’ 변호사님에게 문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XXX-XXXX-XXXX]
“좋아. 이제 진짜 작업을 시작해 보자. 그 전에...”
메이링은 재미있는 영상이나 하나 보고 작업을 시작하기로 한다. 그런데, ‘지역 맞춤’ 코너에 보이는 ‘실시간 영상’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게 아무래도 걸린다. 그걸 확대해 보기로 한다. 제목이야 ‘실시간 SRTV’로 상대적으로 밋밋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디, 누가...”
그렇게 화면을 보니, 중년의 여성과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 서로 드잡이를 하는 게 나온다. 그리고 공원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둘을 뜯어말리는 것까지 나온다.
“옆에서는 또 누가 말리는 거야... 어? 언주잖아? 그리고 베로니카하고... 뭐야? 왜 저래?”
그렇게 말하고서, 곧바로 또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또, 메이링은 속으로 한숨을 쉬어댄다.
“에이... 오늘도 집에서 일하기는 글렀네!”
그리고 다음 날, 금요일 아침, 윤진의 집.
“어... 잘 잤다.”
윤진은 막 자리에서 일어나서, 메시지를 확인한다. 메시지는 총 2건이 도착했다.
[동아리 교류행사 마지막 날 – 오늘은 다함께, 운동장에 모여서!]
[경품 추첨도 하니까, 응모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오세요!]
“휴... 오늘 뭔가 일이 나도 크게 나겠는걸... 기분 탓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밤새 도착한 메시지를 보니, 수십 건이 와 있는데, 대부분은 광고문자다. 그것도 윤진이 수신에 동의한 적이 없는 링크가 대부분이다.
“에이, 이런 건 좀 작작 보내라니까, 왜 차단을 했는데도 계속 보내는 거야.”
요즘 인터넷 방송 광고가 많이 오는 건 알고 있지만, 이 정도로 많이 올 거라고는 윤진도 좀처럼 예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링크들을 유심히 보니, 공통점이 눈에 띈다.
“다 한 채널에서 보낸 거잖아. 그리고 어디서 많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기에는 지금 시간이 많이 없다. 지금 시간은 오전 7시 30분. 아침 식사를 하고 양치질도 하고 하려면 빠듯하다. 하는 수 없이, 그런 건 조금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은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갈 준비를 한다. 아멜리는 동아리 매니저들에게 따로 보낸 메시지에서, 늦어도 8시 10분까지는 와서 전체 모임 행사 준비를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다면 아침 식사는 가는 길에 해야 할 것 같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샌드위치 같은 걸 사든, 아니면 냉장고에 있는 과일을 하나 꺼내 가든 말이다.
“아, 서둘러야겠는데! 이렇게 시간이 없어서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윤진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문을 나서기 전에 안방 문을 살며시 열어본다. 아버지는 벌써 출근했는지 없고, 어머니는 곤히 자고 있는 모양이다. 어머니가 깰 까봐 조용히 문을 닫고, 문도 조용히 열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그 시간, 민의 집에서도 한 사람이 잠자리에서 막 일어난다.
“어... 금요일이네? 그럼 오늘만 학교 가면, 내일부터는 이제 주말이란 말인가?”
그렇게 일어나며 새삼스러운 말을 하는 건 다름 아닌 민이다. 잠에서 깨니 금요일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게 하나 있다.
“그런데... 누나는 좀 괜찮나?”
그 길로 바로 반디의 방으로 가 본다. 아직 잠옷을 입었고 머리도 부스스하고 빨리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아야지 직성이 풀리지만, 그래도 걱정은 되니 가보지 않을 수 없다.
“어... 뭐야, 벌써 학교에 간 건가?”
문을 열고 살짝 보니 반디의 방은 이미 싹 비워져 있다. 늘 문 옆에 두는 검은 가방도 가지고 나간 것 같고, 얇은 겉옷 역시 입고 나간 것 같다.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화장실로 가서 머리를 감는다.
어느덧 머리를 다 감고,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팬케이크가 하나 들어 있다. 반디가 먹었을 리는 없을 테니, 이건 분명 어머니가 민에게 먹으라고 해 준 것일 터다. 어제 샌드위치 때문에 좀 찜찜했던 건지, 민은 곧장 그 접시를 집어 들어 식탁에 갖다 놓는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팬케이크의 사이를 들어서 본다. 다행히도 이상한 얼룩이나 점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그제야 안도하고, 한 입 베어 물어 먹기 시작한다.
한편, 이곳은 셰릴의 집.
셰릴은 전에 없이 침울해져 있다. 다른 건 아니고, 어제의 방송을 망쳐 버렸다는 것에 대한 상심 때문이다. 어제는 방송 시작 1주년이라고 나름 야심차게 방송을 준비했고, 또 후배들까지 불러모아서 나름대로 재미있게 방송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난데없는 불청객들 때문에 그 방송을 다 망쳐 버렸다는 생각이 셰릴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물론 조금 깊이 들어가 보면 그 방송을 망친 원인은 대부분은 셰릴 자신이 스스로 제공한 것이다. 셰릴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에도 그걸 무시하고 공원에 보이는 아무나 데려와서 팬처럼 행동하게 한 것과, 또 그것으로 인해 그 능력에 걸렸다가 해제된 사람들이 셰릴에게 달려든 것 등이다. 하지만 지금 셰릴에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뭘 했는지는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고, 지금은 ‘방송을 망쳤다’는 충격이 머릿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정말이지, 어제의 상황은 셰릴에게 있어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셰릴, 안 일어나니?”
방 밖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필이면 이럴 때,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은, 바로 이때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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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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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5 15:09:19
반디의 기분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저는 소화기관 관련의 트러블은 그리 많이 겪어본 적이 없다 보니 아주 드물게 겪었던 그것들이 매우 끔찍하게 여겨집니다. 그러고 보니 장염에 처음 걸려본 게 30대 전반이었고 그 뒤로도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메이링은 한숨 돌렸군요. 소영웅주의에 점철된 그리핀이 결국 그렇게 잡힌 게 허탈하기도 하겠습니다만 그 한숨을 돌리자마자 또 사건이...역시 변호사도 쉬운 직업은 아닌가 봅니다.
SRTV를 운영하는 셰릴은 침울해 있지만 누구를 탓할 형편은 절대로 못될 듯합니다. 셰릴 본인이 원인인데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시어하트어택
2023-11-05 22:21:58
저도 저 정도의 식중독은 생굴을 먹었을 때 몇 번 걸려 봤습니다만, 그래서 더욱 실감나게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메이링에게는 정보원도 많지만, 의뢰도 그만큼 많습니다. 다 들어주려면 몸이 수십 개라도 모자르죠.
마드리갈
2023-11-05 16:50:34
SRTV의 SR은 Stupid and Retarded의 약자인가 보네요.
저런 셰릴의 방송이 대체 뭐가 좋아서...하긴 유유상종이겠네요.
변호사라고 해서 법률문제에 만능은 아니예요. 법조인으로서의 자격을 지녔다는 것이고 개별적인 법령은 연구해야 대응할 수 있죠. 그러니 저렇게 교통사고 문제에 대해서는 그 분야의 전문변호사를 소개해 주는 게 아무래도 좋을 거예요. 메이링의 대응이 좋네요.
확실히 식중독 사건에 휘말리고 나면 먹는 문제에 신중할 수밖에 없죠. 특히 체질이 민감한 저로서는...
시어하트어택
2023-11-05 22:23:27
물의를 많이 일으키고 다니는 인터넷 방송인의 시청자들은 꼭 팬만 있는 건 아니죠. 물론 저러고 다닐 정도의 열성 팬이라면 셰릴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류의 인간들이겠습니다만...
아마도, 작중의 저 드라고비치 변호사라는 인물은 한문철처럼 '몇대몇'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