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오늘 있었던 순서대로 나열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저점을 찍는 출산율로 인해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자, 그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국민연금 및 국민연금 개혁 또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안 그래도 어머니께서 전화로 이참에 국민연금 가입하라고 연락하셨는데, 마침 경제 유튜버로 손꼽히는 슈카월드가 서브채널인 슈카월드 코믹스에서 국민연금 개혁에 영상(위 참고)을 올렸기에 시청했습니다. 27분이라 좀 길며, 슈카의 개인적 주장은 17:58로 건너뛰시면 됩니다.
SiteOwner님과 마드리갈님께서 자주 '비용의 문제'를 언급하셨는데, 영상을 보고 국민연금 개혁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가장 피부로 와닿는 주제'임을 깨달았습니다. 슈카 말마따나 중노년층은 줄 수는 있어도 그대로죠. 하지만 젊은 인구는 현재로서는 갑자기 늘지 않아요. 이렇게 미래 세대가 부담을 지는 게 확정된 상황에서, 과연 '(너네는) 많이 내고 (우리는 고갈되기 전에) 많이 받는다'라고 한들 누가 그렇다고 할지 미지수입니다. 물론 제작진 중 한 명이 말한 것처럼 7광구라든가 하는 구국의 산업이 대박을 터트리면 좋겠습니다만 그게 또 확정된 것은 아니니까요.
1주일 전쯤에 벌어진 이준석(개혁신당 대표)과 김호일(대한노인회 회장)의 충돌을 비롯해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갈등도 그렇고, 정말로 나라가 존폐위기에 몰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한국 붕괴론'을 논의하는 곳도 있더군요. 물론 위 영상에 나오듯이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처럼 고액의 세금을 통해 유지될 수는 있겠습니다만 어쨌거나 대다수에게 쉬운 구조는 아니죠. 그렇다고 (슈카야 당연히 유튜버로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언급을 자제했고) 영상의 댓글란에서 정치인에 대한 성토와 선거 결과를 비웃는 냉소가 뒤섞여 난장판이 된 것을 보면 잘 풀릴지 기대하기도 힘듭니다.
이러한 국내 여론 분열은 3개월 전에 쿠르츠게작트(Kurzgesagt)에서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지적(영문판, 한국판)한 이후 트렌드가 됐는지, 1주일 전에 미국의 자기개발서 작가 겸 파워블로거인 마크 맨슨(Mark Manson, 1984~)이 한국을 방문한 영상이 올라오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한국어 자막이 이상한 데에서 끊기거나 오역이 있으므로 영어 자막을 추천합니다) 맨슨이 주요 문제로 지적한 것은 유교주의였는데 이 유교주의에서 중시하는 개념 중에 하나가 '효(孝)'임을 감안하면 꽤나 사실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한국인 청년들이 아닌 정신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아직 '심연'을 보지 못했다는 반박 겸 조소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라 망신이고 다르게 보면 해외에서도 꽤나 걱정하고 있다는 얘기겠죠. 아마도. 그래도 우리나라의 이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저출산을 통해 가시화됐다는 점은 억지로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사실 슈카의 영상을 보면서 느꼈던 것이 맨슨의 영상에도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는데, "과연 요즘 젊은 세대의 고생이 산업화 세대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이것을 그냥 '노력을 하란 말이야'로 넘길 수 있는 것인지, 넘기면 그저 불행의 되물림에 지나지 않는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작 이렇게 논의를 해야 할 청년층조차 성별갈등으로 분열되어 있으니 참담할 따름입니다. 아니, 통합됐다고 잘 풀릴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요. 혹시 모르죠, 68혁명처럼 이상한 데로 폭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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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 글의 진짜 목적 겸 본론을 쓰겠습니다.
부모님께서 무슨 바람이 부셨는지, 아버지가 전화를 거시더니 '한가할 때가 언제냐'고 물으셨습니다. 용건인 즉 네가 한가할 때 같이 일본여행이나 다녀오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일본어가 되겠느냐며 거절했지만 패키지 여행으로 다녀오자는 말이 돌아왔죠. 사실 저도 여행지를 엄선해서 계획을 착착 세워 다녀오는 편이 아니다보니 패키지 여행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같이 여행을 가는 사람입니다.
부모님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여행을 갈 때마다 꼭 저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저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오겠느냐, 우리가 살아 있을 때 같이 다녀야 하지 않겠느냐... 근거는 많고 다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전부 일방적인 형태라는 겁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체력이 좋지 않은 편이다보니 멀리 다니는 것을 싫어하고, 가더라도 혼자 돌아다니거나 감상하는 식으로 자신만의 페이스를 지키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야 '제' 추억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부모님이랑 같이 여행 갔을 때 유일하게 좋았던 데라곤 제주도 여행에서 (지금은 폐관한) 다빈치 박물관이었어요. 부모님은 관심이 없으니까 차 안에서 기다리시고 저만 관람했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저 당신들이 가시고 싶은 곳에 가서, 그마저도 계획에 없던 곳을 추가로 들르고, 그러고 나서 별로라며 실망하고, 사진을 찍을 때도 당신들끼리 추억을 만드는 게 아니라 꼭 저를 사진 찍자며 여기저기로 세우고, 나중에 여행을 갈 때도 이 패턴을 반복합니다. 이건 부모님이 제가 걱정된다며 수도권으로 잠깐 올라오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더럽긴 해도) 제 식대로 최적화된 집을 대청소라는 명목으로 뒤집어 놓으시거나, 당신들이 수도권 여행을 갈 베이스 캠프로 삼는 것도 모자라 저한테 수도권 안내를 요구합니다.
가족이라지만 '저'는 없어요. 부모님만 있을 뿐이지.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가스라이팅'인가 싶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모르시죠. 최소 20년을 같이 살아왔으면서요. 그렇다보니 결국엔 '이해하고 싶지 않은 거다'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애초에 전화를 잘 안 거시니) 어머니랑 통화를 하면 화가 나서 끊어버리는 경우도 많죠. 심지어 제가 피해자인 경우가 많은데도요.
각설하고 - 그래서 이번에 일본여행을 가자고 하십니다만 저는 가면 혼자 가지 부모님과 같이 가는 건 결사반대입니다. 국내여행도 그랬는데 일본여행이라고 다르겠어요? 이거 봐라, 여기 서 봐라, 이거 뭐냐, 그거 어디 있냐, 네가 왜 몰라... 이제는 불효자식 소리를 들어도 상관없어요. 저도 이제 한계입니다. 더 이상은 가족이니 아들이니 하는 것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그러고서도 절연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자체검열)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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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댓글
마드리갈
2024-01-31 23:20:47
우선, 일본여행 관련으로 코멘트할께요.
그렇죠.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은 마음이 맞아야 비로소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여행은 차라리 안한 것만 못한 게 되어 버리고 말아요. 말씀하신 부모님과는, 외부인인 제가 감히 해도 될 말은 아니겠지만, 거리를 두셔야 해요. 안 그러면 레스터님도 부모님도 불행해져요. 왜 반대하시는지 충분히 이해되네요. 게다가 여행을 주도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결과는 이미 예측가능하네요.
고생 많이 하셨어요.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빠르면 내일부터 별도로 코멘트할께요.
Lester
2024-02-01 05:56:15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게 그렇게까지 성질을 낼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제가 혼자서라면 (BIC처럼 테마나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이상) 멀리 다녀올 일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고, 어쨌거나 가족은 가족이니까요. 결국 언성을 높였더니 일본여행은 물론이고 설날에 찾아오신다는 것도 '네가 싫으면 안 간다'고 하시는데, 필요 이상으로 야박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고통받기는 싫고... 착한 사람 컴플렉스인가 싶기도 하고... 모르겠습니다.
DDretriever
2024-01-31 23:30:26
험한말이 마구 나올 정도면 그동안 쌓인게 많았나보네요.
제 3자 입장에서 봐도 한계인게 느껴지는 만큼 적당히 핑게를 대고 빠져 나오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Lester
2024-02-01 05:58:31
윗 코멘트에도 적었듯이 시간이 지나보니까 제가 말이 너무 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마드리갈
2024-02-07 21:55:57
이제 영상을 다 보고 코멘트를 하고 있어요.
그렇죠. 연금문제도 결국은 비용의 문제로 귀결되고, 누가 얼마나 낼 것인가로 요약가능하죠. 저 슈카월드 영상에서 정말 잘 지적했는데, 정말 저건 영미권에서 말하는 제3레일 만지기(Touching the third rail) 그 자체. 그러니 정권이 바뀌어도 전혀 손대지 않았죠. 저거 손대면 정권은 박살나니까. 그런데 저걸 그냥 방치하면 그때는 국가가 동반 박살나게 되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규모는 일본 및 노르웨이 연기금과 함께 세계 3대 연기금으로 불릴 정도의 대규모인데다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이 비록 저평가되었다고는 하지만 작년에는 1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하는 등 아직 궤도수정을 할 여지도 충분하니까요.
그리고 현금흐름에 대해서는 제가 2021년에 쓴 글인 국민대차대조표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국민순자산을 참고하셔도 좋아요. 비금융자산은 늘어나는데 금융자산은 줄어들고 파이를 키울 기업도 금융업만 부유해지고 있고 그 이외의 산업은 가난해지는 문제가 구조화되고 있어요.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비금융자산의 급증을 조장하면서 보유도 거래도 막아 버렸으니 더 말을 해서 뭐할까요?
그리고 모든 면에서 비용이 높아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문제에 정말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지 않으면 답이 없어요. 지금 세계가 무섭게 바뀌는 중인데 우리나라는 최근 수년간의 위상증가에 취해서 진짜 문제가 뭐고 해법이 뭔지는 외면하는 듯해요. 결과적으로.
Lester
2024-02-11 22:46:53
결국 선거를 최대한 성실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인물만 보고 뽑는 게 아니라요. 마침 개혁신당이었나 하면서 제3지대론이 부각되던데,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SiteOwner
2024-02-11 22:10:52
일단 여행에 대해 간단하게 코멘트하겠습니다.
여행은 마음에 안 맞는 사람과 가면 200% 후회합니다. 그리고 아예 처음부터 안 한 것만 못한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그냥 소원한 것과 돈 들여서 아예 적대관계로 빠지는 것을 비교하면 이미 답은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까지 드리면 좀 그렇습니다만, Lester님의 부모님은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접점 이외에는 안 가지는 게 좋습니다.
다른 사안은 별도로 코멘트하겠습니다.
Lester
2024-02-11 22:48:12
그래서인지 이번 설날 연휴에 부모님이 올라오셨을 때는 제가 새벽에 일이나 이것저것 하느라 낮에 자는 걸 보고 당신들끼리 다녀오겠다고 하셨고 실제로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셨네요. 개인적으로는 최고였습니다.
SiteOwner
2024-02-12 22:25:56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그리스처럼 고통분담을 해서 잠깐의 수고로움을 참고 자기개혁에 성공하는가, 아니면 아르헨티나처럼 계속 남탓하고 떠넘기기만 해서 다같이 골고루 망하는가의 2개의 선택지. 이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문제는 전자를 추구하면 그 정권이 망하고, 후자를 추구하면 시간차를 두고 공멸인데 언제 우리나라의 여론이 장기적으로 보기라도 했습니까. 민식이법 같은 사례라든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패착으로 결국 정권교체가 일어났는데 그렇게 탄생한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정권심판론 운운하는 것이라든지. 결국 근시안적인 미래관과 손바닥 뒤집기보다도 더욱 손쉬운 태세전환이 해결의 가능성을 줄이는 듯합니다.
그게 통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인구감소를 국내언론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많이 비웃었습니다만, 합계출산율의 경우 우리나라는 2013년에 1.187이었던 것이 10년의 시간이 흘러 2022년에는 0.780으로 급감했고 전년대비 올랐던 경우가 2014년과 2015년밖에 없었고 기간중 최대치가 1.239인데 반해(합계출산율 바로가기), 일본의 경우 전년대비 하락폭이 큰 2019년에 1.36을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림 1-1-7 출생수, 합계특수출생율의 추이(図表1-1-7 出生数、合計特殊出生率の推移) 바로가기/일본어). 이 수치는 2013-2022년 기간중 우리나라의 어느 때보다도 큰 것입니다. 다른 나라를 비웃은 대가가 참 크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젊은 세대의 고통이 산업화세대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판을 만들어가는 것과 이미 만들어진 판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게다가 전자의 경우가 고생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후자의 경우가 폄하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어느 세대보다도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으며 부모세대의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했지만 그게 이미 만들어진 판에 조금이라도 안 맞다고 그냥 폄하당하는 세태는 결코 좋은 세태가 아닙니다.
이런 말까지 하면 뭣하지만, "해외에서 한국사람 안 만나야 안전하다" 라는 씁쓸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 말로 대표되는 상황이 이제는 국내에까지 정착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편가르기를 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Lester
2024-02-13 04:00:22
심지어 그렇게 비웃은(혹은 지금도 비웃는) 일본은 출산율이 1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는 반론에 아무도 반박을 못하더군요. 사이에 끼인 세대만 불쌍하게 됐는데, 진짜 이렇게 우리나라 망하는 것인지 막막합니다. 그렇다고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