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u-02.jpg (591.6KB)
이 19초짜리 러시아어 음성의 영상은 1960년 12월에 체 게바라가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金日成, 1912-1994)과 대담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사실 북한과 쿠바의 관계는 이렇게 공산혁명 성공 바로 다음해인 1960년에 체 게바라가 직접 방북할만큼 꽤 유서깊고, 그냥 역사만 오래된 것이 아니라 체 게바라가 "북한이야말로 쿠바가 나아갈 길" 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했으니까요. 북한의 오랜 동맹국인 중국이나 모호하긴 하지만 어쨌든 친밀한 러시아는 국력 차이도 워낙 크다 보니 북한을 롤모델로 하는 일 자체가 없고, 쿠바의 이런 선언은 북한이 쿠바를 형제의 나라로 인식하는 중대한 계기 중의 하나라고 봐도 좋겠어요.
그런데 그런 쿠바가 달라졌어요.
이미 혁명 1세대 중에서는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1926-2016)의 동생이자 2021년까지 쿠바공산당 제1총서기로서 활동했지만 현재는 정계에서 물러난 라울 카스트로(Raúl Castro, 1931년생) 정도만 남아 있는데다 쿠바의 공산혁명이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공공연히 납치, 고문, 살육 등이 횡행하는데다 미국을 위시한 각 선진국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로 인해 선진국과의 교류가 모조리 끊기고, 도시에서조차 식량수급을 위해 있는 땅 없는 땅 할 것 없이 텃밭을 일구어야 하는 도시농법에 의존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주력 수출품은 지력을 크게 훼손하는 담배. 즉, 쿠바는 반세기가 넘도록 안되는 길만 철저히 골라서 갔어요. 게다가 형제국이라는 북한은 김일성 일가의 사리사욕과 망상 충족 이외에는 관심도 없는 상태로 있었어요.
이런 쿠바가 우리나라와 수교했다는 것은 바로 여기에 큰 의미가 있는 거예요.
북한을 롤모델로 지목했던 그 역사는 역사일 뿐이고 결국 문제는 실질이라는 것. 그러니 그것을 위해서는 한국과의 수교 또한 방법일 수밖에 없어요. 북한은 그렇게 말만 좋지 실질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백해무익한 관계로 형해화되었고, 우리나라는 과거의 적국의 형제국도 포용할 정도로 도량도 넓고 영향력도 큰 나라로 성장했으니까요. 북한의 충격이 정말 컸는지 이제는 북한에서는 더 이상 쿠바를 형제국으로 부르지 않을 정도로 쿠바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어요(북한 매체에서 '쿠바'가 사라졌다…한국과 수교에 불만?, 2024년 2월 25일 연합뉴스 기사).
그리고, 여담이지만 마누엘 로차(Manuel Rocha, 1950년생)는 의문의 1패를 당했어요.
마누엘 로차는 콜롬비아 출신으로 미국에 귀화하여 1981년부터 미국 연방정부 관료로서 일한 전직 외교관이지만 쿠바를 위해 활동한 간첩으로서의 활동이 드러나 2023년 12월에 체포되어 기소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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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8 02:08:25
게바라도 게바라지만 피델 카스트로 또한 기본적으로 "독재자 킬러(지미 카터)도 실패한 불사신 영감"으로 유명했는데 공산정권의 수장으로서 경제에 도움이 안 됐군요. 게다가 다른 데에서 설명을 읽어보니까 알려진 것과 다르게 사치스런 생활을 즐긴데다 80년대에 미국에 코카인을 밀매하는 마약사업도 했다는 폭로도 나왔네요. (1986년의 이란-콘트라 사건에서 코카인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아마 관련이 있을지도) 원래 혁명가란 사람들이 수단방법 안 가리는 모습으로 나오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
그래서 우리나라와도 수교한 것은 일종의 방향 전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특히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불사신(?) 피델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개혁이 가능해졌다 싶기도 하고. 습근평의 독재에 대해서 '죽어야만 내려올 수 있는 자리'라고 누가 짧게 비평한 걸 봤는데, 그렇게 보면 대체로 공산정권이란 수괴가 죽어야만 끝난다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면 이제 습근평의 남은 수명을 계산하면 되는 것인가 싶네요.
마드리갈
2024-02-29 12:35:03
공산주의 국가가 경제를 제대로 일으킨 경우는 중국 이외에는 전혀 없었어요. 사실 중국도 자체적으로 잘 해서 경제가 발전한 것은 아니고 거대시장의 개척에 나선 세계각국의 투자 덕분에 경제력이 커진 것이지만...
소련은 세계최대의 국토면적, 막대한 천연자원 및 거대시장을 형성가능한 인구규모라는 3대 호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적으로는 비능률이 만연했는데다 국제적으로는 공산진영 국가들에의 지원 명목으로 천연자원을 우호가격이라는 이름으로 저렴하게 매각한다든지 소련의 기술상품에 대한 지적재산 개념 자체가 확립되지 않아서 온갖 복제품이 나돌아도 방치해 두고 했으니 구조적으로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은 상황밖에 나오지 못했어요. 쿠바의 경우는 사실 위치한 기후대도 농업에 꽤 호조건인데다 내수시장은 작았어도 미국이라는 거대시장이 바로 인접했다 보니 천혜의 조건을 가졌는데다 한때 설탕 생산 세계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플랜테이션 농업 및 농산업분야에서는 세계 유수의 국가였는데 카스트로 형제와 체 게바라 등이 주도한 공산화가 그런 호조건을 모조리 다 걷어차 버린 것이죠. 그것도 모자라서 안되는 길만 악착같이 골라서 갔어요.
미국의 유명한 럼 브랜드이자 가족경영 형태로서 최대규모의 증류주 제조사인 바카디(Bacardi)는 원래 쿠바에서 창업했고 창업주 가문이 피델 카스트로를 지원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공산화 이후 피델 카스트로는 그 바카디의 자산을 모조리 강탈했어요. 결국 그 바카디 가문은 미국으로 탈출해서 재창업할 수밖에 없었어요. 바카디뿐만 아니라 온갖 기업이 국유화되면서 쿠바는 경제자유가 박살나 버린 국가로 전락했어요. 게다가 설탕산업도 다른 나라에 급격히 따라잡혔고,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의 생산량은 브라질에는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을 뿐더러 한때 쿠바에서 생산된 설탕의 1/3 이상을 수입한 미국이 사탕수수 재배량에서 이미 쿠바의 수십배를 기록하여 쿠바산 설탕은 외면받기 마련이었죠. 설상가상으로 설탕의 국제시세는 1980년대 후반에 급락해 버린데다 소련의 경제난으로 소련이 공산진영 국가들에의 원조액을 줄이면서 쿠바의 달러박스는 1980년대말에 갑자기 없어져 버렸어요. 그리고 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당연히 소련의 그런 정책을 계승할 이유가 전혀 없어 상황은 가면 갈수록 더욱 나빠졌어요.
그뿐만이 아니예요. 쿠바는 그렇게 상황이 악화되는데 폭력혁명을 수출하는 데에 열중하여 전세계의 분쟁지역에 개입해 왔어요. 전쟁이라는 게 경제력을 아주 크게 갉아먹는 위험한 일인데 쿠바는 공산화된 1959년 이래로 세계의 대부분의 분쟁에 참전하면서 국력을 소진해 버렸어요. 일부는 성공한 것도 있지만 실패한 것도 꽤 있는데다 성공했다 한들 쿠바가 챙길 성공보수 같은 건 없었어요. 심지어 외국에서 빌린 차관을 전비에 유용하는 일도 횡행한데다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 것도 수차례 있을 정도로. 그렇게 안되는 길만 골라서 갔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졌음에도 식량의 80% 정도는 수입에 의존해야 해요. 북한을 롤모델로 삼았더니 정말 북한처럼 가버렸어요. 이런 상황이니 쿠바가 더 버티는 것 자체가 가능할지도 심히 의문이예요.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야 쿠바가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이죠. 그리고 북한은 말만 형제국 운운했지 쿠바를 전혀 돕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쿠바가 살 길을 모색하는 것이고 그 한 방법이 바로 한국과의 수교. 그러지 않으면 쿠바는 미래가 없어요.
DDretriever
2024-02-28 11:56:32
실제로 이번 수교에 대한 쿠바인들의 인터뷰를 보면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경제가 나아지길 희망하는 답변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만큼 공산화로 인한 나라의 황폐화가 심했었고 경제적으로 처참히 몰락해버렸다는 게 느껴지는 장면들이었죠.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도 공산주의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마드리갈
2024-02-29 13:19:06
쿠바가 당장 공산주의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더 이상 북한같이 행동하지는 않을 건 확실해요. 북한을 롤모델로 삼았더니 천혜의 호조건은 다 갖다버리고 국내상황은 잘해봤자 1950년대 수준에 정체해 있을 뿐 대부분이 쇠퇴해 있는데다 그것도 경제자유의 박탈, 폭력혁명의 수출로 인한 국력소진, 주요 수출품의 국제경쟁력 상실, 소련 붕괴로 인한 원조단절 등 철저히 실패하는 길만 골라서 갔던 쿠바는 이제 혁명적인 결단 없이는 미래를 내다볼 수 없게 되었어요.
그런 쿠바가 선택할 노선을 예상해 본다면, 아무래도 베트남이 1986년에 천명한 개혁개방정책인 도이모이(Đổi Mới)가 될 것 같아요. 게다가 베트남은 이제 우리나라의 3대 교역국의 자리를 차지했을 정도니까 쿠바가 갑자기 공산주의를 버리지 않고서도 현상황을 타개해 나갈 대안으로서 베트남을 참조하지 않을까 싶네요.
마드리갈
2024-04-30 17:02:16
2024년 4월 30일 업데이트
우리나라와 쿠바 양국이 상대국에 상주공관을 설치하는 데에 합의했어요. 4월 24-27일에 걸쳐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합의된 이 결과에 따라 양국의 수도인 서울과 아바나에 각각 상주공관이 개설될 예정이예요. 이 공관의 지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대사관 개설의 전단계로서 아바나에 임시사무소가 설립되고 공관개설요원이 파견될 것이라는 방침을 통해 상주공관이 대사관 레벨이 될 것이라는 것은 추론가능해요.
관련보도를 하나 소개할께요.
한·쿠바, 상대국에 상주공관 개설 합의…영사 조력 기대, 2024년 4월 29일 아주경제 기사
마드리갈
2024-07-17 22:51:12
2024년 7월 17일 업데이트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외교관 이일규(52세, 북한표기 리일규) 정치담당참사가 이미 2023년 11월에 가족동반으로 망명하에 국내에 정착한 것이 알려져 있어요. 그는 2013년에 일어났던 쿠바에서 지대공미사일과 전투기부품을 실은 이후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려던 북한선박 청천강호 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표창받고 2016-2019년 기간 동안에 평양 외무성 본부에서 중남미담당 부국장을, 그리고 2019년부터는 쿠바 참사로 부임했지만 결국 북한체제에 대한 환멸을 느낀 끝에 탈북을 결심했어요.
북한에서 외교관의 지위는 "넥타이 맨 꽃제비" 라고 부를 정도로 처참한데다 그나마 이일규 전 참사의 경우 외교행낭을 이용한 시가 밀수를 통해 부족한 급여를 보충해서 살 수는 있었을 정도였어요. 고급인력도 이따위로 대우하는 북한에 희망 따위가 있을 수가 없어요.
관련보도를 둘 소개할께요.
[단독] '김정은 표창장' 받은 駐쿠바 北외교관 한국 망명, 2024년 7월 16일 조선일보 기사
[단독] "北외교관은 넥타이 맨 꽃제비...내 월급 0.3달러였다", 2024년 7월 17일 조선일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