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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엘 푸르가토'로 두 여성이 찾아왔다. 칵테일을 각자 두 잔씩 시킨 다음, 서로의 칵테일을 마시며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꽤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같은데, 나도 끼어도 될까? "
마침 바에 손님은 두 사람이 다였던지라, 처음에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마스터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흥미가 동했는지 얼음물을 가져와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한 사람을 동시에 짝사랑하고 있었지만, 한쪽은 자신이 있어보였고 다른 한쪽은 다소 자신이 없어보이는 듯 했다.
"호오, 이거 꽤나 흥미로운걸. 두 사람, 취향이 비슷한 모양이네. "
"네, 대학교 OT에서 처음 만났을때도 여러가지로 공통분모가 있어서 친해졌어요. "
"그렇군... 그렇다면 어느 한쪽이 고백해서 이어진다고 해도, 다른 한쪽은 깨끗하게 포기하기 힘들겠는걸? "
"아마도 그럴거예요. "
"음... 좀 힘들겠지만, 두 사람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
"이렇게 대답이 갈리는 경우는 처음이네. "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과 이루어질 때에 어떻게 할 것인지 다른 두 사람을 마스터는 흥미로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두 사람, 사랑의 묘약이라고 알아? "
"사랑의 묘약이요? "
"그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나온 사랑의 묘약. 두 사람이 마시게 되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묘약이지. "
"아, 그 이야기는 감명깊게 봐서 알고 있어요. 정말로 그런 게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도 있고... "
"그렇다면 두 사람은, 마음에 두고 있는 그 사람을 끌어당길 사랑의 묘약이 있다면 어떻게 할래? 그 사랑의 묘약을 마시면 마음에 두고 있는 그 사람과는 확실히 이루어질거고, 절대 헤어질 일도 없어. 하지만, 효과가 확실한 만큼 묘약의 값도 꽤 비싸서 대가를 지불해야 해. "
"아, 저희는 아직 학생이라 비싼 건 힘들어서요... "
수수한 분위기의 여학생과 달리, 화려하게 화장한 여학생은 집이 부유한 모양인지 돈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할 모양새였다.
"미안하지만 그 사랑의 묘약은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상당히 귀한 물건이라서, 돈이 아닌 다른 걸로 받을 거야. 그 대가는 지금 당장 지불할 수도 있고, 나중에 지불할 수도 있어. 그리고 무엇을 가져갈 지는 아무도 몰라. 두 사람이 느끼기에 가벼운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
"음... 돈이 아니라면 딱히 상관 없을 것도 같고... 정말 그렇다면 저, 마실래요. "
"으음... "
수수한 분위기의 여학생은 잠시 망설였다.
"아뇨, 그래도 저는... 사랑의 묘약도 약이니까, 언젠가는 효과가 떨어질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힘으로 사랑을 쟁취해보고 싶어서... "
"좋아, 그럼 두 사람에게 특별한 칵테일을 줄게. "
마스터는 바로 가더니 즉석에서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이볼 글래스에 얼음을 담고, 선반에 놓인 각양각색의 병들 몇 개를 가져와 잔에 섞자 금방 예쁜 색의 칵테일이 완성되었다. 가니쉬로 오렌지가 꽂힌 두 잔의 칵테일을, 마스터는 코스터 위에 올려 두 사람에게 건넸다.
"이건 데킬라 선라이즈라는 칵테일이야. 이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눈 답례로 주는 서비스니까 부담갖지 말라고~ "
"잘 마시겠습니다~ 서비스 감사해요~ "
"잘 먹겠습니다~ 색깔이 정말 예쁘네요. "
두 잔의 칵테일을 나눠 마신 여학생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달쯤 흘렀을까, 수수한 여학생이 건장하게 생긴 남자와 함께 엘 푸르가토로 들어왔다. 마스터는 몇달 전 이야기를 나눴던 그 여학생을 알아보고 반가운 듯 카운터 좌석으로 안내했다.
"전에 그 여학생이지? "
"아, 네. 맞아요. "
"옆에 계신 분은 남자친구야? "
"네. 같은 취업 스터디에서 만나서 함께 공부하다가 사귀게 됐어요. "
"이야~ 축하해. 그런 의미로 전에 먹었던 그 칵테일, 서비스로 한 잔씩 줄게. "
"아, 저는 논 알콜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술을 못 마셔서... "
"데킬라 선라이즈, 한 잔은 논 알콜? 알겠어. 잠시만~ "
잔 두 개에 얼음을 나눠서 담은 마스터는 익숙한 듯 칵테일을 만들고, 가니쉬로 오렌지를 잔 한 쪽에 꽂았다.
"자, 여기. 이 쪽이 논 알콜이야. "
"감사합니다~ "
"전에 같이 왔던 친구는 어떻게 됐어? "
"아, 그게... "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실은... 솔이가 지금도 제 남자친구한테 연락하고 있어요. 차단하는데도 계속... "
"사랑의 묘약이 효과가 없었나보네. "
"저는 진희가 묵묵히 공부하는 모습에 반했거든요. 외모는 제 눈에만 예쁘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한번 잘 요량으로 아무 남자나 찔러보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별로고요. "
"흐-음... 그렇다는 건, 사랑의 묘약이 효과가 있었다는 얘기네. "
"......? "
"......? "
사랑의 묘약이 효과가 있지만 없다, 두 사람은 마스터의 얘기를 듣고 어리둥절했다.
"확실히 사랑의 묘약은 효과가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효과가 없기도 해. 사랑의 묘약을 마시면 어떤 남자라도 한번에 유혹할 수 있지만, 사랑의 묘약으로도 유혹할 수 없는 사람도 있거든. 네 남자친구가 바로 그런 사람인거지.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에게 준 칵테일에도 사랑의 묘약이 들어가 있어. "
"네? "
"이건 먹어도 괜찮아, 아무 대가도 안 가져갈거야. 그 사랑의 묘약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나왔던 진짜 사랑의 묘약이거든. 한 입만 마셔도 두 사람의 사랑이 견고해지는 힘이 있어. 원래 사랑의 묘약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같이 먹어야 하는 물건이거든. "
진희와 남자친구는 스터디 그룹에서 만나게 되었다. 항상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던 진희는 스터디 모임이 있는 날도 2~30분은 먼저 나와서 스터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먼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옆에는 항상 들고 다니는 낡은 노트북도 있었다.
남자친구는 모임이 있을때마다 먼저 나와서 공부하는 모습과,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을 읽은 덕분인지 모르는 문제도 술술 푸는데다가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모습에 점점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스터디 모임이 끝나면 이따금 함께 식사도 하고, 마침 집에 가는 방향도 같았던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남자친구가 먼저 고백해서 사귀게 되었다.
두 사람은 목표로 하던 파리아에 취업했고, 사내 연애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른 구성원들에게 눈치가 보여 회사 밖에서 점심시간에 데이트를 하는 정도였지만, 두 사람이 사귀는 것을 알고 있던 다른 동료가 '이 곳에서는 사내연애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서로 사귀는 것을 오픈했다. 사내연애를 한다고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면 모를까, 두 사람은 연애는 연애대로 하면서 일도 일대로 척척 해냈기때문에 다른 동료들의 원성을 들을 일도 없었다. 오히려 상사들도 두 사람을 보면서 사내연애가 이런 케이스도 있는 줄 몰랐다고 할 정도였다. 거기다가 전에 먹은 칵테일 덕분인지, 두 사람은 꽤 오랫동안 사귀면서 한번도 중간에 헤어진 적 없었다.
오랜만에 대학 동기 모임에 갔던 진희와 남자친구는 솔의 소식을 들었다.
"솔이가 벌써 폐경이라고? "
"그렇대. "
"이상하네... 아무리 그래도 우리 나이대에 벌써 그럴 리가 없는데...? "
"걔 아무 남자나 찔러보고 매일 잤다는 얘기 있잖아. 피임도 제대로 안 했을거고... 낙태도 몇 번 했다던데, 그것때문에 문제 생긴 거 아냐? "
"그럴지도 모르겠네... "
"회사에서 양다리 걸쳤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것때문에 걔랑 남자랑 다 이직했다고 들었어. 내 친구가 A상사 다니는데, 솔이가 거기 다니다가 인사과 사람이랑 양다리 걸쳐서 이직했다고 했거든. 사귀던 남친이랑은 헤어지고 양다리남이랑 사겼대잖아. "
"아, 그러고보니 나도 들어본 것 같아. 같이 일하는 언니가 그랬는데, A상사에서 나간 후로 아무데서도 안 받아줘서 우리 회사로 겨우겨우 들어왔다고 했거든. 어찌나 삭았는지 나도 이름 듣기 전까지는 못 알아봤다니까? OT때 봤을때는 되게 예쁘장했는데 지금은 완전 아줌마 됐어. "
사랑의 묘약은 효과가 있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지금도 마스터가 한 말의 의미는 모른다. 하지만 진희는 그 때 사랑의 묘약을 먹은 솔이 대가로 지불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폐경이라... 설마, 대가로 모성을 지불한걸까? '
엄마가 고지고 아빠가 성원숭인데 동생이 블레이범인 라이츄. 이집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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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마드리갈
2024-03-06 12:18:48
이번에도 문제의 엘 푸르가토가 나오네요.
과연 정화(浄化)인지 숙청(粛清)인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겠지만...
후일담에서 밝혀진 바로는 이건 확실하네요. 솔은 숙청된 거네요. 그렇게 사랑의 묘약은 효과가 있었지만 없었고, 그녀가 지불한 비용은 금전은 아니지만 금전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더 중대한 것이었다는. 누가 생각나기도 해서 좀 떨떠름하긴 한데, 그게 그녀의 그 자랑스러운 "현명한 처세" 의 결과이니 연연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고 있어요.
DDretriever
2024-03-06 15:17:57
이번엔 좀 맵네요.
그래도 잘 읽었습니다.
SiteOwner
2024-03-10 18:20:24
사랑의 묘약이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있어도 반갑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뭐랄까, 아름다운 수식어가 있을 뿐이지 사실 이것을 최음제와 엄밀히 구별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리 많지 않은 경험에서 미루어 볼 때 사랑이 한 번 식으면 답이 없으니...
뭐, 창작물의 영역이니 그러려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