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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의 국가인 엘살바도르 및 프랑스의 소설 그 소설에 기반한 영국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늘 잘못 발음됩니다. 늘 이런 식이지요. 엘살바도르는 "엘살-바도르" 로, 레미제라블은 "레미-제라블" 로. 그렇게 끊어 읽지 않으면 금기를 깨게 되어 무슨 감당못할 비상사태라도 일어나거나 하듯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잘못되었습니다.

엘살바도르는 로마자 알파벳으로 표기하면 El Salvador. 즉 "엘+살바도르" 입니다. 구세주라는 의미의.

같은 원리로 레미제라블은 Les Miserables. 즉 "레+미제라블" 입니다.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그러니 국내 방송에서 읽는 것은 과거의 유머인 "아기다리 고기다리" 같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제의 유머는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을 잘못 읽어서 발생한 것으로, 원래 표현하려던 간절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고 엉뚱한 언어유희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 이 유머는 요즘은 기억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지만 예의 현상들은 여전합니다.


보도영상을 2건 첨부해 두겠습니다.


먼저, 엘살바도르 보도부터.




그리고 이번에는 레미제라블 보도로.


약속이나 한듯이 공통적으로 잘못 읽는 것이 보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용액이 산성인지 염기성인지를 알아보는 화학물질인 지시약(指示薬)으로서 각급학교 과학교과에 언급되는 페놀프탈레인의 경우도 대부분 "페놀프+탈레인" 으로 발음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틀렸습니다. 문제의 물질의 영어표기는 Phenolphthalein으로 페놀(Phenol)과 프탈레인(Phthalein)의 합성어이다 보니 잘못 끊어읽는 것입니다. 유튜브(YouTube)에 올라와 있는 각종 과학관련 강좌의 영상에서도 이런 현상이 횡행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왜 이렇게 만연하는 것일까요?

지난 2020년에 쓴 글인 군가 "진짜사나이" 를 매번 틀리는 원인의 안쪽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적에" 라는 가사만큼읜 거의 대부분 꼭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틀립니다. 그것도 언제나 똑같은 유형으로, "해가 뜨고 해가 질적에" 라고 글자수도 늘어나는 건 물론 멜로디도 변해 버립니다. 이것의 원인으로 지적한 대칭화가 바로 그 주범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5음절의 단어는 2음절+3음절로, 6음절의 단어는 3음절+3음절로 끊어 읽는 것에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고 그게 자연스럽다고 전제하는 듯합니다. 그러니 군가 진짜사나이에서는 가사와 멜로디의 왜곡이 일어나고 엘살바도르와 레미제라블과 페놀프탈레인은 늘 잘못 읽는 사례가 됩니다.


역사를 그렇게 중시하면서 쓰는 어휘의 역사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조차 없고, 어휘가 외래어인가 아닌가를 따지고 아니라면 한자어끼리의 조합인지 한자어와 고유어의 조합인지 고유어끼리의 조합인지를 따지고 또 예외에 해당되는지를 일일이 따져서 사이시옷을 쓰면서 정작 늘 잘못 읽는 어휘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든지 나몰라라 하는 이런 언어생활은 희극일지 비극일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구세주도 지시약도 없고, 한국어의 언중이 불행한 사람들이 되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정도는 예측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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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Lester

2024-03-17 17:32:33

아기다리 고기다리는 저도 옛날 잡지에서 몇 번 봤지만 지금도 기억나네요.


사실 외래어 표기법이랍시고 띄어쓰기를 없애버리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가령 외국인 이름의 경우 유럽의 '폰' 같은 경우에는 성에 붙여 쓰라는 규칙이 적용되고 있는데, 오히려 정확한 성씨나 출신을 알기 힘들게 만드는 문제가 있습니다. 가령 John von Neumann은 '존 폰 노이만'이라고 쓰면 '존 폰노이만'이 맞다는 지적이 따라붙는가 하면, Werner von Braun의 경우는 '베르너 폰브라운'이라고 적는 게 맞지만 국내에서 '베르너 폰 브라운'이라고 적힌 기간이 길기 때문에 예외로 친다면서 규칙이 제멋대로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정작 그 옛날에는 '워너 폰 브라운'이라고 영어발음대로 적기도 했다는데 워너는 왜 안 살렸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이렇게 붙여 적으면 Charles Ponzi의 경우 국내 발음과 표기만 보고 판단하면 '찰스 폰 지'가 맞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외국 표기의 띄어쓰기를 모두 살리면 라틴계 이름의 경우 구별하기 힘들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흔한 이름 Juan에 흔한 성씨 De La Cruz를 붙여서 옮기면 '후안 델 라 크루즈' 정도가 될 텐데, '델 라'를 미들네임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성씨는 모두 붙여서 '델라크루즈'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것도 (좀 억지스럽지만) 비슷하게 Delaware나 Delano도 사실은 띄어쓰는 게 맞다고 오해하게 만드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영어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발음이나 관사의 유사성을 보고 De La Cruz가 of the cross의 스페인어 버전이라는 것을 알아채겠지만요.


문득 이것도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옛날에 나라와 수도 이름 외우는 것이 특기나 진기명기로 알려진 적도 있었는데 이름만 외웠을 뿐이지 그 유래까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이야 앤티가 바부다Antigua and Barbuda 같은 바보스러운 나라 이름도 검색해보면 스페인어로 'ancient bearded(고대의 수염?)'이라는 의외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저 낄낄거리기만 했죠. 뭐 지금도 이런 걸 얘기해봤자 '그게 뭔데, 취업에 도움이 되냐' 이런 식으로 냉소적인 반응이 돌아올 것이 예상되니만큼 고칠 필요성도 못 느낄 것 같습니다.

SiteOwner

2024-03-17 18:15:16

그러고 보니 언어유희도 시대에 따라 크게 바뀌는 것 같습니다. 

요즘의 언어유희는 꽤 정교해져서,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걸즈의 캐릭터 타카가키 카에데같은 경우는 정말 이런 언어유희까지 가능한 건가 싶을 정도의 것도 있습니다. 덕분에 국내에 소개될 경우 번역에 아주 애를 먹는다고 하지만요.


외국인명지명의 표기라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지만, 결국 의미 단위로 써야 답이 나올 듯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정책입안자들이 전혀 생각조차 안하니까 말씀하신 문제가 다발해도 해결책이 하나도 없나 봅니다.

문제의 원인이 주입식교육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이를테면 영어. 각급학교며 대학이며 할 것없이 영어교육과정이 있고 취학이전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영어유치원도 사회인을 위한 각종 영어강좌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다발합니다. 정말 영어를 제대로 쓸만한 정도로 구사하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은데다 기본적으로 언어에 관심이 없는 사회이다 보니 자주적으로 탐구하려는 생각 자체를 안하는 듯합니다. 그저 유머의 소재로 소비하거나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태도로 배척하는 이런 풍조가 팽배하니 제대로 악순환에 빠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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