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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말의 국내 대학가의 사정은 "운동권" 으로 상징됩니다. 특정 정치성향을 가진 학생운동집단이 대내적으로는 정권타도를,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반미 반일 고립주의노선을 표방하는 그런 행태는 민주화운동으로 포장되고 미화되었는데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및 "나라 사랑하는 방법이 다를 뿐" 등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도발적인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정말 그들의 노력으로 민주화운동이 쟁취된 것이며, 그들은 누구에게 이긴 것일까요?
이 대답에 대해서는 여러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운동권이 그 공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만은 명백합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민주화 이후에도 운동권은 여전히 있었는데다 1990년대 후반은 한총련 폭력사태라는 초대형 폭력사태로 정기운행중인 열차가 탈취된다든지 서울시내가 마비된다든지 살인사건이 횡행한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운동권이 민주화운동의 쟁취자가 아닌데다 그들이 싸운 대상이 흔히 말하는 거대권력이 아닌 것은 명백합니다. 그리고 거대권력이 누가 되었든 간에 무조건 타도 운운했지만 결국 타도시킨 권력 따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맞서 싸운 대상은 있긴 합니다. 같은 대학생들.
평소에는 성실히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대학생들을 반동 매판자본가에 영합하는 쁘띠부르주아지(Petite bourgeoisie, 소시민)으로 매도하기에 바빴고 그들이 행동을 하면 구성원의 절대다수가 대학생들로 충원된 전투경찰대원이 그들의 난동을 막아야 했습니다. 즉 그렇게 거대권력과의 투쟁을 외치면서도 결국 그 거대권력과 제대로 싸워본 적은 없었고, 결국은 대학생끼리의 싸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즉 그들이 이야기하던 상생이니 대동이니 공동체의식이니 하는 담론은 그들의 행동으로 철저히 부정되었고 그들의 투쟁은 결국 수평폭력(水平暴力)의 범주를 지나지 못합니다.

요즘 좀 시끄러운 사안이 있습니다.
국가대표 양궁선수 출신의 인플루언서가 일으킨 매국노 발언 논란.
문제의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이하에 소개된 보도를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문제의 이 사건에서도 위의 구도와 동일한 문제가 일어나 있습니다.
예의 인플루언서가 매도한 식당은 그녀의 출신지인 광주광역시 소재의 일본요리점으로 해외여행 컨셉트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 식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그녀의 자유인데다 사과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게 진심일지도 알 길이 없으니 일일이 평하고 할 것도 못됩니다. 누구의 말처럼 "존경하는" 이라는 수사(修辞)를 구사했다고 해서 그게 정말 존경하는 의미가 되지도 않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점에 대해서는 아예 보류해 두는 게 도리일 듯합니다.
여기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매도한 그 식당업주가 동향인(同郷人)이라는 것. 즉 매국노 운운하며 쏜 화살은 과녁이 아닌 지역주민에게 꽂힌 것입니다. 결국 아무리 잘 포장해도 수평폭력이라는 말밖에 더 되지 않습니다.

20세기 운동권이 대학가에서 외치던 것들이 결국은 다른 대다수의 대학생을 매도하고 전경대에서 근무하던 다른 대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수평폭력이고 21세기 인플루언서가 한 발언도 그 발언자는 애국적인 발상에서 했겠지만 결과는 지역주민을 업신여기는 수평폭력이었습니다. 이런 구도에 대해서 생각조차 없으니 수평폭력은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 수평폭력은 과연 무엇을 쟁취했고 또한 누구에게 승리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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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Lester

2024-03-23 00:12:37

그러고 보면 문화대혁명에 대한 사진이나 일화들을 보면 내전을 벌였다기보다는 그냥 '일상 속의 불순분자를 사냥'한 것에 더 가까웠죠.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일도 맥락이 비슷했겠지만 다행히 당시 지도부가 달랐기에 국지적인 사태로 끝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메가톤맨의 명대사(?)마냥 '뭔지는 모르겠지만 싸우자'로 일관한 것도 구체적인 목표나 다른 이들을 끌어들일 명확한 근거가 없었기에 그런 것 같네요. 정말로 이론적으로 성립했다면 '틀린 말은 아니네'하고 언론이나 연구회에 오르내렸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건... 검토할 가치조차 없었으니까 그랬겠죠?


안산 사건은 아직 진행중이라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네티즌들이 알아본 결과 안산 선수 또한 일본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자승자박에 빠졌더군요. 위안부 할머니들 챙겨준다면서 정책도 흐지부지, 홍보용 게임(웬즈데이)도 흐지부지시킨 사건이 기억났습니다.


수평폭력으로 쟁취하는 것은 개인의 우월감과 만족감, 대상은 자국민이죠. 이런 건 대개 외부와 대결해서 승리할 가망이 없을 때 벌어지더라고요. 승리는 하고 싶지만 질 것 같으니 만만한 사람들에게만 시비를 거는. 그러다가 점점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서 사고방식도 폐쇄적으로 변하는 거고... 좋은 현상은 절대 아닌 듯합니다.

SiteOwner

2024-03-23 11:14:30

말씀하신 것처럼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수평폭력이 가장 끔찍한 형태로 벌어진 희대의 참극이었습니다. 그러니 집단의 힘으로 누군가에게 낙인을 찍어 때려죽인다든지, 스스로 행동할 수 없는 사물에 대한 반달리즘의 형태로 나타난다든지 하는 형태로만 나타났고 그 결과 중국 사회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파편화된 사회가 되었음은 물론 중화문명의 유구한 유산도 그 시대에 대거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이 당시 중국인들의 손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런 행태는 검토할 가치도 없는 상황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것까지 다루어야 할만큼 학계가 한가하거나 만만한 것도 아닙니다.


그 인플루언서의 자승자박은 계속 드러나고 있지요. 어디 그 경우 뿐이겠습니까. 죽창가를 부르던 누군가의 일본제 볼펜 사랑이라든지, 누군가의 배우자의 우라센케 다도클럽 사랑이라든지 누군가의 딸의 코쿠시칸대학 수학경력이라든지...


결국 그런 수평폭력이 반복되면 그 사회는 약체화되고, 외부에서 그것을 노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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