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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선배님!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요...”
토요일, 카페거리에 있는 어느 카페 깊숙이 있는 단체석. 마치 깊이 숨겨진 비밀의 방 같은 좌석에 앉아 있는 메이드 복장을 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갈색 머리의 여자가, 맞은편에 앉은 리본이 많이 붙은 양쪽으로 머리를 묶은 다른 여자를 보고서,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그건 여기 있는 소다를 먼저 붓고, 그 다음에 크림을 섞는 거라고요!”
“자, 내가 좀 제대로 알려 줄까?”
그러건 말건, 그 양쪽으로 머리를 묶은 여자는 마치 자신이 이쪽을 아주 잘 아는 선생이라도 된 것처럼 말한다.
“이건 내 경험에서 나온 거야. 그렇게 하면 완전히 다른 음료가 되어 버리지.”
“저, 미아 선배님, 제가 듣기에는 그게 더 말이 안 되는데...”
“언주 네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몰라서 그런다니까? 자, 봐봐!”
언주에게 미아는 옆에 놓인 크림과 초록색 소다를 보여준다. 언주는 미아의 그 손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고서 유심히 지켜본다. 곧이어 미아가 옆에 있는 스푼을 가지고서 크림을 음료잔의 아래에 펴 바르고는, 초록색 소다를 조금씩 정성스럽게 붓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조금 시간이 지나자, 거품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걸 스푼으로 몇 번 누르고 소다를 또다시 붓고 나니, 특유의 연두색의 향을 피운 듯한 음료가 하나 만들어진다. 겉으로 볼 때는 언주가 만들려던 음료와 많이 달라 보인다. 맛도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 봤지? 이게 내 비법 음료라고. 한번 마셔 볼래?”
“에...”
언주는 미아의 자신감이 넘치는 그 말에도, 무언가 언짢았던 건지, 아니면 정말 자신이 더 잘 만들 자신이라도 있다는 건지, 뜸만 들인다. 그걸 보고 미아는 약이라도 오른 듯 말한다.
“네가 만들려는 레시피에 자신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어... 그러니까...”
그렇게 미아가 말해도 언주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계속 뜸만 들이고, 대답은 피한다. 미아의 눈빛이 조금씩 흔들거리더니, 곧이어 마치 다른 사람의 인격이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목소리가 좀 굵어지고, 눈동자 역시 어딘가에서 갈아 끼운 것처럼 바뀐다.
“에, 선배님... 그건...”
언주는 알 것 같다. 지금 미아가 보이는 이 눈빛, 틀림없다. ‘그 모습’을 꺼내는 건 쉽게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미아가 ‘홈카페 동아리’의 매니저를 하는 걸 생각해 본다면 이상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언주야, 내 말 잘 들을래? 내가 찾아낸 이 완벽한 레시피를 망쳐 버린다면 그건 용납하지 못할 일이야. 쓸데없는 짓은 그만두고, 자, 한번 마셔 봐!”
“그러니까요... 그건 우선...”
언주는 점점 살벌해져 가는 이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은지, 바깥쪽 좌석을 한번 돌아본다. 사람들은 다들 커피를 마신다든가 자기들끼리 대화한다든가 하는 데 신경을 쏟고 있어서 이쪽에는 별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 이 상황을 그대로 놔둘 수도 없다. 분명히 미아는 이대로 놔둔다면 언주가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그리고 다른 후배들도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일 게 분명하다. 선배들조차도 그 모습을 보기 꺼리는 게 사실이다. 그 180도 다른 모습을, 지금 보게 생겼다.
‘어떡하지, 지금 이 상황을...’
언주의 그 불안감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어느새 미아의 눈빛은 그 완전히 다른, 마치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무언가같이 바뀌어 버렸다. 그 느낌을 표현하자면, 불과 30초 전만 해도 귀족 아가씨와 대화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로 바꿔치기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지금 당장! 네가 만들려는 그 조잡한 음료에서 손 떼. 그렇지 않으면, 그 음료를 내가 하나하나 분해해서...”
언주는 미아의 그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미아는 능히 그러고도 남을 선배다. 이전에도 이렇게 음료수를 만들 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음료를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재료 단위로 돌려 놔서 자신이 원하는 조합이 나올 때까지 다시 만들곤 했다. 홈카페 활동에는 누구보다 진심인 건 알지만, 그래도 이런 모습까지 보일 줄은 몰랐다.
‘점점 안 좋아지는데...’
언주의 생각 그대로다. 언주의 예상이 맞다면 이제 미아는 노발대발하며 앞에 언주가 만든 음료를 당장이라도 자기 비법의 음료수로 바꿔 놓을 것이다. 하지만 언주에게는 그걸 막을 초능력은 없다. 그저 이 상황을 해결해 줄 만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리고 그 ‘구원자’는 머지 않아 등장한다.
“오, 아는 얼굴들이 저기 보이는데?”
또 다른 미아 또래로 보이는 여자 2명이 카페 안으로 들어오다가, 미아와 언주가 앉아 있는 좌석을 본 모양이다. 곧장 언주가 돌아본다. 둘 다 아는 얼굴이다. 미아와 같은 학년의 선배들인데, 한 명은 빨간 베레모를 썼고, 또 한 명은 분홍색 머리에 후드티를 입었다. 언주가 말 없이 그 둘을 돌아보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듯 둘은 바로 이쪽으로 온다.
“뭐야, 너희들은.”
미아가 그렇게 묻자, 그 중에 빨간 베레모를 쓴 여자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뭐 재미있는 거 하는 거 같길래 와 봤지.”
“어? 현애잖아. 뒤에는 니라차고. 나 열 받겠는데 너까지 이러기야?”
현애와 니라차를 본 미아는 여전히 그 굵은 목소리로 현애에게 묻는다. 하지만 현애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손에 든 텀블러를 보여준다.
“뭐야, 나를 놀리려고 그러는 거냐?”
“오, 릴랙스, 릴랙스! 진정하라니까. 맛있는 음료를 더 맛있게 해 주려고 가져왔단 말이야.”
미아는 여전히 확 변해 버린 그 얼굴빛을 벗어나지 못했고, 언주 역시 현애가 뭘 하려는지 불안했는지 시선을 거기서 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현애는 개의치 않고 텀블러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지금 나 놀리냐? 내가 지금 한번 맞춰 볼게. 그거, 네가 방금 초능력으로 만든 얼음이지?”
“오- 아니야. 이건 그냥 내가 음료에 타 마시려던 얼음이고, 내가 이제 뭘 할 거냐면...”
현애는 그렇게 말하더니, 미아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그 얼음을 모두 쏟아붓는다.
“야! 내 비법 음료가 엉망이 된다고!”
미아는 이제 현애에게 막 달려들 참이지만, 이내 어떤 큰 힘에 눌리기라도 한 건지, 일어나지는 못하고 가만 그 자리에 앉아서 지켜보기만 한다. 얼굴은 울상이 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디 두고 보자’는 표정을 짓고 있다. 언주는 궁금한 듯 거기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고, 니라차는 재미있는지 웃고 있다.
“자, 이제 마셔 볼까?”
“이게 뭐야!”
자기 ‘비법 음료’에 둥둥 뜬 각얼음을 보자, 미아는 뜨악한 반응을 보이지만, 자기 옆에 불어오는 찬 기운을 깨달았던 건지, 한번 입을 대서 마셔 본다.
“내 레시피에는 얼음 넣는 건 없었는데...”
그러면서도 맛은 괜찮게 생각했던 건지, 고개를 몇 번 끄덕인다. 그리고 어느새, 조금 전 보였던 미아가 맞나 하는 표정을 보여주며 말한다.
“음, 의외로 괜찮은데.”
목소리까지, 아까 전의 상냥한 목소리로 돌아갔다. 그걸 보며 언주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웃기만 한다. 뭔가 큰 일로 번질 것만 같았던 일은 이렇게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좋아...”
미아가 어느새 그 음료수를 1/4 정도 마신 걸 보고 있던 니라차가 말한다.
“여기에 맞는 디저트 어때? 홈카페 동아리의 매니저가 원하는 걸로 가져다 주지!”
“그래... 좋아!”
어느새 분위기는 다시 그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하게 되돌아갔다. 물론 폭풍이 한 번 지나갈 뻔한 평온함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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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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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3 16:25:25
쿠로마루 미아가 주인공인 단편이군요.
표변(豹変)하는 미아의 모습은 역시 무섭습니다. 그런데 언주같이 저러는 사람이 꼭 있다 보니 미아의 심정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울려라 유포니엄(響けユーフォニアム)의 히사이시 카나데(久石奏)가 꼭 언주같이 상대방을 긁어서 꼭 험악한 상황을 만들고 마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인 터라 같이 생각나 버렸습니다.
그래도 미아가 그냥 꽉 막힌 것만은 아니라서 끝은 원만했지만...
시어하트어택
2024-03-24 23:48:19
이중인격스러운 면모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써 본 단편인데, 잘 읽어내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확실히, 정말 꽉 막힌 성격이었다면 벌써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겠죠.
마드리갈
2024-03-25 00:12:15
감정이 달라졌을 경우에 차이가 천양지차로 드러나는 쿠로마루 미아는 무섭긴 하지만 이해는 되어요. 사실 저도 저런 면모가 있는데다, 언주가 굳이 미아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할 합리적인 이유가 드러나지도 않으니까요. 어떻게 그럭저럭 좋게 끝나기는 했지만...
그리고 화학실험에서 중요한 것 중에 산(酸, Acid)을 희석할 때의 절차가 있어요. 반드시 물에 산을 넣어야 하죠. 이걸 뒤집어서 산에 물을 넣으면 진짜 큰일나거든요. 폭발같은 불상사가 일어나거든요.
저에게는 좀 비슷한 사례가 좀 있어요. 대학 신입생 때 일인데,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의 사람들의 행태에 상당히 화가 났어요. 전주, 간주 및 후주 부분을 그냥 잘라버리는. 제가 그걸 당해서 굉장히 기분이 나빴고, 그 이후로는 노래방 자체를 전혀 안 가게 되었어요.
시어하트어택
2024-03-30 23:52:55
사실 재미 위주로 쓴 단편이라 저렇게 된 거지 좀 진지한 작품이었다면 금방 싸움 양상으로 흘러갔을 겁니다. 미아같은 성격은 배틀물에 쓰기는 딱 괜찮은 성격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