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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는 보이스피싱 등으로 대표되는 전화금융사기에 안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심지어 법률전문가도 보이스피싱에 당하기 쉽다는 것이 나타나고 있어요.
이하의 두 기사를 보기로 할께요.
경찰·변호사도 "보이스피싱 당해"…20대 이하 피해자도 급증, 2023년 12월 21일 머니투데이 기사
[청사초롱] 보이스피싱 당한 변호사, 2024년 4월 24일 국민일보 기사
특히, 법률전문가인 법조인조차도 실제로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거나 말려들 수 있는 문제가 있어요.
이렇게 전문직 종사자가 당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여기에 대해 2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어요.
첫째. 일단 우리나라는 관존민비(官尊民卑) 사회이다.
둘째. 전문직 종사자가 자존심을 손상당하면 크게 무너진다.
어느 나라든지 대체로 공공영역의 힘이 강하기 마련인데, 우리나라는 특히 그 경향이 매우 농후하죠. 공무원이 된다든지 하는 것 자체가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진다든지, 글로벌 대기업의 경영자보다도 관료나 국회의원이나 법조인이 더욱 높게 대우받는다든지, 각종 사기 중 관청 소속이나 권력자의 측근 등을 사칭하는 것이 횡행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러하죠.
그리고 이런 경향 이외에도 주목할만한 것이 바로 자존심 문제.
변호사의 자격을 지닌다는 것은 매우 어렵죠. 과거의 사법시험 체제도 어렵지만 오늘날의 로스쿨은 더욱 문호가 좁아져 있어요. 그러니 변호사 자격을 지니고 있는 법조인이란 매우 희소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자부심도 높을 수밖에 없어요. 그게 오히려 독이 되는 것.
변호사의 자격을 지니면 분명 법률전문가인 것은 사실이예요. 하지만 법률전문가인 것이 어떤 법률도 잘 안다는 것도 아닌데다 그 분야 밖에서는 따로 전공하지 않은 이상 다른 일반인과 동일한 문외한일 수밖에 없어요. 이 자존심이 훼손당한다면 그때는 이성을 잃고 범죄자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되어요. 게다가 고소득자인만큼 피해액도 더 커질 수밖에 없어요. 다른 직종의 전문직 종사자라도 충분히 이렇게 될 위험이 있어요. 또한 당하고 나면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학력자인데 그렇게 사기에 당했다는 자괴감에 피해를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해요.
결국 이런 것이죠.
관청 사칭에 주의해야 하는 것은 물론, 어떤 직종에 종사하더라도 직종분야 이외에는 얼마든지 문외한일 수 있고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부심을 조정할 필요도 있어요. 의기소침해하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부심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생각해서도 안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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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Lester
2024-05-21 22:31:46
두고두고 좋아하는 명작 "검은 사기"에서도 비슷한 설명이 나옵니다.
1-1. 작중 무대인 일본 또한 우리나라처럼 관존민비 사회라서, 공직 신분을 사칭하거나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는 일이라고 엄포를 놓으면 귀가 얇거나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쉽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특히 "정부가 보장한다"는 말은 거의 치트키에 가까워서, 작중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사기 중 정부의 이름을 달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업에 참여하면 정부가 지원금을 준다느니, 정부가 발행한 채권 혹은 증권으로 보답한다느니 등등...
1-2. 특히 2부로 가면 지적되는 것이 관청도 관청이지만 바로 금융전문기관인 '은행'입니다. 은행도 결국엔 이익집단이라 "전문가인 은행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길래 예금도 집도 뺏겼다"는 경우가 수없이 나와요. 약관을 악용하는 것이라 법정싸움으로 가면 사기라고 보기는 힘들겠지만 작중에서는 "형법상의 죄는 아닐지언정 결과적으로 다수의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는 이유로 '사기'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지적하신 관청과는 다를지언정 금융전문'기관'이니 그 책임도 있다고 봅니다.
2-1. 전문직에 거의 일생을 쏟아부어서 다른 일에 문외한인 피해자도 있지만, 작중에서는 고급 사교클럽의 멤버라서 사기에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자존심과 선민의식에 취해서 유혹에 쉽게 넘어가 사기를 당한다는 거죠. 전문직의 경우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도 있지만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여기까지 온 줄 알아', '나는 이 분야를 잘 아니까 내 말이 틀림없어'처럼 언뜻 낯간지럽지만 솔직히 만족스러운 건 부정할 수 없는 칭찬이 그 좋은 머리를 마비시키는 게 아닌가 싶네요.
2-2. 심지어 이렇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수법은 굳이 엘리트나 전문가가 아니어도 일반인에게 먹힐 수 있다는데, 작가의 설명으로는 바로 인간의 '컴플렉스'를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명인이나 이상적인 모습 등을 동원해 잠깐이라도 혹하거나 동경하게 만드는 노골적인 광고부터 시작해서 입이 귀에 걸리게 만들어 뭐라도 사주고 싶어지게 만드는 세일즈 토크까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니까요.
보이스피싱에 대해서는 명탐정 코난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 대해서 소재로 등장하고 그 대처법도 소개되는데, 대체로 공통되는 사항은 바로 "서두르지 말 것"입니다. 실제로 은행 창구 직원이 보이스피싱인지 우려해서 물어봐도 피해자가 그런 거 아니라면서 그냥 해달라고 박박 우기면, 은행 측에선 실적이나 클레임에 의한 인사고과 문제 때문에 결국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보이스피싱범이 '급하다, 오늘 안으로 해야 한다'면서 피해자들을 몰아세워 올바른 판단을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누가 됐든 아는 사람에게 상담을 청할 것"도 중요합니다. 누군가에게 제대로 설명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평정심을 되찾고, 거기에 상담자의 의견까지 더해서 재고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에 유튜브에서 본 사례 중에 웃긴 게 있는데, 바로 피해자의 딸은 초등학교 3학년인데도 '내가 딸인데 보증을 서 줘서 잘못됐다'는 황당한 구실로 사기를 치려고 들자 피해자가 오히려 농락했더군요. (관련 유튜브 영상) 물론 이 경우 바로 확인이 가능했고 또 사기꾼들도 한 명만 걸리라는 식으로 무작위로 걸어대니까 빗나간 거지만, 우연찮게 맞아떨어졌다면 크게 당황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더욱 신중해야 하는 거죠. 최근에 얘기를 자주 할 정도로 가족끼리 친할수록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요.
마드리갈
2024-05-22 16:18:57
역시 검은 사기는 명작이 아닐 수 없네요.
일본 또한 관존민비 경향이 농후한 사회니 공공기관 사칭이 아주 손쉬운 사기수법이 되기 쉽죠. 게다가 은행 또한 아시아 후발국가들의 금융정책은 정부주도인 경우가 많아서 형식상 사기업이라도 실질적인 위상은 기관이나 마찬가지예요. 특히 우리나라의 농협이나 수협은 별도의 특별법에 근거하여 설립되고 임직원의 지위도 사실상 공무원에 준하다 보니까요. 어쩌면 이런 체제가 공공기관과 사기업의 단점만 모아놓은 형태로 사기에 유리할 여지는 없는 건지 비판해 봐야 할 필요도 있을 거예요.
말씀하신 것처럼 자존심 손상의 객체는 대상을 가리지 않아요. 2016년에 쓴 글인 어떤 피부관리실에 횡행하는 모욕 마케팅에서 비판한 자존심 건드리기 또한 그런 방식이죠.
그럼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