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의 유래는 일본의 만화 및 그 원작에 기반한 애니메이션인 사쿠라 트릭(桜Trick. 공식사이트/일본어).
벌써 10년 전이었습니다. 흔히 백합(百合)으로 잘 표현되는 여성간의 동성애를 오프닝 영상에서부터 아주 잘 보여주는 애니인 사쿠라 트릭이 방영된지도. 그리고 그 애니는 요즘도 생각납니다. 특히 주인공인 여고생 타카야마 하루카(高山春香)의 경우, 아버지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남자에게 딸을 내 줄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그러면 여자면 되는 거구나" 라고 반응하는 것도 재미있어서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년 뒤인 2024년.
항간의 대화제인 하이브 엔터테인먼트의 내홍에 대해서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욕설을 섞어 써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 자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만 보도된 기사 중 흥미로운 게 하나 있어서 소개해 보겠습니다.
이 기사입니다.
민희진 욕설 회견 日서도 화제…‘X바르 X키’ 실검 오르기도 (2024년 4월 28일 조선일보)
제목과 본문에서는 필사적으로 복자처리해 두었지만 문제의 욕설의 일본어 카타카나 표기는 전혀 검열되지 않은 채 "시발새끼(シバルセッキ)" 라고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한국어의 문자인 한글은 검열되지만 일본어의 문자인 카타카나는 대상외니까 전혀 검열되지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타카야마 하루카의 아버지의 일갈에 대한 하루카의 반응과 다를 것이 전혀 없습니다.
예전에 썼던 글 2편이 본의아니게 미래를 예지해 버렸습니다.
"링링허우" 에 "존버", 이런 말을 쓰고도 언론인가에서 비판했듯이 욕설을 검열하려 해도 아무 소용없었던 것이 드러난데다 웹검색결과의 지역설정에 대해 4월 11일에 쓰는 비판에서 지적한 논리구조가 이번의 사태에서는 지역 대신 문자언어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어와 한글은 고귀하니까 검열되어야 하고 잘 쓰이지 않아야 합니다.
일본어 및 일본어 문자세트는 그렇지 않습니다. 생활의 지혜군요. 아주 잘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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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Lester
2024-05-21 22:33:58
그 와중에 영어는 또 아마 검열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준이 참 엿가락처럼 늘어나네요. 이런 사소한 부분들이 모이고 모여서 언론의 전반적인 신뢰도와 입지를 깎아먹는 건데, 데스크가 저래서야... 아니, 데스크도 일개 직장인이라 더 윗선의 지시를 따르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쯤되면 자신들 또한 욕을 먹는다는 걸 알면서도 막무가내로 진행하는 듯합니다.
SiteOwner
2024-05-23 00:00:18
그렇습니다. 그 검열이라는 게 그렇게 금과옥조로 여겨지는 듯하더라도 조금만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예외투성이입니다. 지적하신대로 영어는 검열되고 말이지요. 그런데 사실 이게 언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군복무 때 미군들이 한 뼈아픈 지적이 있습니다. 한국군은 규율을 잘 지키는 것 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관이 보는 앞에서일 뿐이고, 상관이 보든 안보든 상관없이 지켜야 할 원칙에 대해서는 안 지키는 경우가 더 많은 게 보인다고.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즉 검열이 일상화된 사회의 병폐가 이미 20여년 전부터 여전했고 지금도 개선이 없습니다. 이미 포기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결과적으로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