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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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맞이하여 시작된 폴리포닉 월드 포럼의 프로젝트인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의 아홉번째는 한 세기 전의 아라비아 중심의 중동편으로 결정되었어요.
이번에도 이 지도의 편집에 TheRomangOrc님께서 힘써주셨어요.
이 점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원본 및 편집된 지도를 같이 소개할께요.
원본이 일본어 사용자를 상정한 일본국내의 출판물인만큼 1924년 발행 당시의 일본의 관점을 그대로 보일 수 있도록 원문표현은 가능한 한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점을 명시해 드릴께요. 해당 표현에 대해서만큼은 저의 주관이 배제되었으니 그 점을 꼭 염두에 두시길 부탁드려요.
그러면 원본을 소개할께요.
당시 표기방식은 가로쓰기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방식이예요. 게다가 현대일본어가 아닌 터라 한자 및 히라가나의 용법도 현대일본어와는 차이가 여러모로 두드러져요.
그러면, TheRomangOrc님께서 편집해 주신 한글화 지도를 소개할께요.
손글씨로 표기된 것은 자연관련 사항으로 갈색은 육상지형, 남색은 해양 및 도서지형, 녹색은 각 도서 및 속령, 청록색은 천연자원, 보라색은 도시인 반면, 고딕체로 표기된 것은 각 지역의 특이사항이니까 참조해 주시면 좋아요.
원문자에 대해서도 이런 원칙이 있어요.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는 각 지역의 상황, 그리고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는 추가설명이 필요한 각 지역에 대한 표시임에 주목해 주세요.
By Courtesy of TheRomangOrc
이번 글의 제목이 "아라비아 중심의 중동" 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다소 길고 복잡한 사정이 있어요.
여기에 대해서는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해 볼께요.
사실 아라비아와 중동은 같은 개념이 아니예요. 즉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별개의 개념인데다 정립된 시기도 맥락도 완전히 다르죠.
아라비아(Arabia)란 서아시아에 있는 바다로 뻗은 긴 땅이라는 의미(Cambridge Dictionary 참조, 영어).
이 지도 가운데의 아라비아반도(Arabia Peninsula)가 서쪽의 아프리카대륙과 북쪽의 유라시아대륙과 이어져 있으면서도 서쪽은 홍해이고 동쪽은 호르무즈해협 및 오만 만으로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볼 때 두 대륙 사이에 끼여 있는데다 흔히 말하는 반도와는 좀 형태가 다르더라도 반도라는 점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게다가 반도 한가운데가 거대한 아라비아사막(Arabian Desert)인 사정상 생태계도 매우 독특해요. 한낮은 섭씨 50도(=화씨 122도)를 넘는 극한의 더위를 기록하면서 밤중에는 영하(=화씨 32도 미만)로도 떨어지는 등 일교차도 혹심한데다 강수량은 연중 100mm(=3.93인치) 미만인 곳이 대부분이라서 물 자체가 매우 부족하기도 하다 보니 생명체에는 대체로 가혹하지만 살고 있는 생명은 매우 강인한 것으로 정평있어요. 탁월한 지구력과 아름다운 자태로 유명하여 세계적인 명마로 꼽히는 아라비아 말(Arabian Horse)도, 사막을 생활권역으로 하는 유목민(遊牧民)들의 생계수단인 동시에 사막을 건너며 상업활동에 종사하는 카라반(Caravan)의 교통수단인 단봉낙타(Dromedary/영어, Camelus dromedarius/라틴어)도, 1924년 당시에는 아라비아사막 각지에 서식했던 아라비아타조(Arabian Ostrich/영어, Struthio camelus syriacus/라틴어)도 거칠고 혹독한 아라비아반도에 사는 대형동물이예요. 단 아라비아 말과 단봉낙타의 경우는 이미 저 시대에도 야생은 없고 모두 가축뿐인 상태인데다 아라비아타조는 1966년에 마지막 개체의 사망이 확인되면서 완전히 멸종해 버렸지만요.
재미있는 것은 낙타와 타조의 한자표기. 낙타의 한자는 駱駝인데다 타조의 한자는 駝鳥. 즉 타조는 낙타같은 새라는 의미.
그리고, 중국 명대인 1405년에서 1433년 사이에 이루어진 해상 실크로드 개척인 정화(鄭和, 1371-1434)의 대원정 때 지금의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 일대에서 발견한 긴 목의 포유류를 기린(麒麟)이라고 명명한 것 또한 상상의 동물의 이름을 실제의 동물에 붙인 것으로, 새로운 종류의 동물을 보고 기존의 것에서 이름을 딴 발상이 여기서도 드러나는 게 보여요.
이 아라비아에 관련된 것이 바로 아랍(Arab)이고, 그 지역의 셈족(Semitic people)에 속하는 한 분파를 이루는 민족이 아랍인(Arabic People)인 것이죠. 그래서 페르시아인도 투르크인도 민족적으로 아라비아반도에 기반하지 않으니까 아랍인이 아닌 것이 당연해요. 당연히 이슬람교(Islam)의 신자인 무슬림(Muslim) 국가들을 총칭하는 개념인 무슬림 월드(Muslim World) 또한 아랍과 완전히 일치하는 개념은 아닌 것이죠. 동남아시아에도 동유럽에도 무슬림 월드에 속하는 국가는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번에는 중동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것은 북미 및 서유럽 위주의 시각을 일본에서 번역하여 정착시킨 것으로, 과거 율령국가 시대에 일본의 지역구분을 수도에서의 거리를 기준으로 가장 기까운 지역을 킨고쿠(近国), 가장 먼 지역을 엔고쿠(遠国), 중간쯤에 있는 지역을 츄고쿠(中国)로 부르던 관행을 서양의 대아시아관에 대입하여 근동(近東, Near East). 중동(中東, Middle East) 및 극동(極東, Far East)의 3개 층위로 번역한 것이죠(일본의 기묘한 은행사정 참조). 그런데 근동이라는 흔히 오스만 투르크로도 잘 알려진 오토만 제국(Ottoman Empire, 1299-1922)을 지칭하기 위해 고안된 말로 주로 지중해 동부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통용되다가 20세기 후반에는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중동과 합쳐져 중근동(中近東)으로 불리기도 하면서 퇴조해 갔고, 오늘날에는 아예 쓰이지 않게 되었어요.
중동이라는 어휘는 이미 19세기 후반에 등장했지만 개념이 일정하지 않아서 한때는 인도와 아라비아 사이의 지역인 페르시아(Persia)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했지만, 1957년에 미국에서 발표된 아이젠하워 독트린(Eisenhower Doctrine)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사용된 이래 개념이 잡혀서 냉전기에는 아라비아반도 일대는 물론 아프리카 북동부와 이란 및 파키스탄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정의되었고 소련 해체 이후로는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의 각국까지로도 그 범위가 확장되어 대중동(大中東, Greater Middle East)이라는 개념도 창안되어 쓰이고 있어요.
이 시기는 오토만 제국이 해체된 직후라서 국경의 획정 같은 것이 제대로 이루어진 시기가 아닌데다 중동의 맹주이자 이슬람교의 수호자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을 8년 앞둔 때라서 꽤나 혼란스럽다는 것을 염두에 두실 필요가 있어요. 이 배경까지 이야기하면 너무 길어지니까, 이하에 소개되는 각 항목을 토대로 그 시대의 상황을 조금씩 이해해 가기로 해요.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 항목으로 시선을 옮겨볼께요. A부터 M까지 13개 항목이 있어요.
A, 하기아 소피아 사원
비잔틴제국 당시인 537년에 건립되어 정교회성당으로 시작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대성당은 1453년에 오토만제국이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키고 나서는 이슬람사원인 모스크(Mosque)로 개조되었어요. 외부에는 모스크 특유의 첨탑인 미나레트(Minaret)가 세워지고 내부 또한 그리스정교의 양식에 이슬람 양식이 혼재된 기묘한 상태로 이어지고 있어요.
이미지 출처
Battle over whether Turkey's Hagia Sophia should be a mosque or museum goes to court, 2020년 7월 4일 NBC NEWS 기사, 영어
이미지 출처
Inside Hagia Sophia: Exploring the Imperial Gate, Sultans' Lodge, & More, HAGIA SOPHIA 웹사이트, 영어
B. 아름다운 페르시아 융단이 생산된다.
어디까지나 사견이지만,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기준은 민족이 아니라 생활양식에 있다고 보고 있어요. 특히 실내에 있을 경우 주로 바닥에 앉는가 의자에 앉는가에 따라서 아시아와 유럽의 차이가 극명하거든요. 전자의 경우가 아시아, 후자의 경우가 유럽.
융단(絨毯) 또는 양탄자는 그런 서아시아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매일의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바닥마감재로서 중요시되어 왔어요. 그러니 양탄자를 타고 날아다니는 이야기도 중동 판타지의 근간을 이루어 왔을 거예요. 여기저기서 기르는 양에서 채취한 털로 자은 실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기하학무늬로 짠 모직융단은 일교차가 큰 거친 중동에서의 생활에 빼놓을 수 없어요.
이미지 출처
(실크로드 융단박물관 나다-히가시나다, Feel Photo 웹사이트, 일본어)
C. 세계 문명의 발상지
현재의 이라크(Iraq) 국토를 종관하여 바스라(Basra) 해안으로 흐르는 두 강인 티그리스(Tigris) 및 유프라테스(Euphrates)는 강 사이의 땅이라는 의미의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의 수원(水源)으로서 중요하게 여겨졌고, 그 두 강이 좁아지는 중류지역에는 현재의 이라크의 수도이자 전통있는 교역도시인 바그다드(Baghdad)가 세워졌어요. 특히 증발량이 많아 사막이 형성되기 쉬운 북위 30도대에서 두 강은 정말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고, 그 덕분에 막대한 농업생산력이 창출될 수 있었어요. 세계 문명의 발상지로서의 메소포타미아의 중요성은 그래서 두말할 필요도 없어요.
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가장 큰 성과는 시간 및 각도에서의 60진법.
D. 이름난 칼의 생산지
원문에서는 명도(名刀)로 나와 있어서 부득이하게 이렇게 풀어썼음을 알려드려요.
사실 칼은 크게 2종류가 있어요. 굽고 한쪽에 날을 가져 베기에 특화된 도(刀)와 곧고 양쪽에 날을 가져 찌르기와 베기에 모두 대응가능한 검(剣). 그 중 페르시아를 위시한 중동에서 많이 쓰였던 반달 모양의 칼인 시미터(Scimitar)는 확인된 문헌상으로는 현재의 이란 북부의 이란고원은 물론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및 우즈베키스탄 등지에도 걸쳐있는 지역인 호라산(Khorasan) 지역을 중심으로 9세기 때부터 생산되어 명성을 떨쳤다고 알려져 있어요. 또한 말을 탄 기병이 빠르게 휘두르는 데에 매우 적합하여 중동인들이 전투민족으로 불릴만한 명성이 바로 이 이름난 페르시아산 시미터에서 기원한다는 것도 추론가능해요.
이미지 출처
Refocused museum, 2022년 12월 2일 Alabama Living Magazine 기사, 영어
E. 그리스도 십자가에 매달리다.
예루살렘(Jerusalem)은 유태교, 기독교 및 이슬람교 공통의 성지이자 이스라엘의 수도이고,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가 십자가에 매달려 사형당한 곳이기도 해요. 그 시대의 예루살렘은 로마제국의 강역에 있었던 유다이아(Judaea)의 일부였고 당시 총독이 바로 본디오 빌라도라는 표기로 잘 알려진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 그의 이름은 지금도 사도신경(Symbolum Apostolicum)에 남아 있어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crucifixus etiam pro nobis sub Pontio Pilato)" 라는 표현으로.
F. 터키가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하다.
이 지도에서 가장 이상하게 여겨진 부분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이 학살되었는데 정작 위치가 아르메니아(Armenia)가 입지한 코카서스 산맥 인근이 아니라 레반트(Levant) 지역으로 되어 있었다 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더 깊이 찾아보니 그 연유를 알았어요. 이 아르메니아 대학살(Armenian Genocide)은 오토만 제국 당시 기독교 다수인 아르메니아인들을 지금의 시리아(Syria)의 강역에 해당되는 사막으로 강제이동시킨 후 대다수를 죽이고 성인여성과 아동은 강제로 이슬람교로 개종시킨 이후 오토만 제국의 국민가정에 강제로 편입시키는 체계적인 인종청소(人種清掃, Ethnic Cleansing)이었어요. 이렇게 살해당한 인원은 60만명에서 150만명으로 추산되고 강제개종된 인원들도 20만명은 넘는 것으로 드러나 있어요.
이미지 출처
The Armenian Genocide (1915-16): Overview, HOLOCAUST ENCYCLOPEDIA 웹사이트, 영어
이 대학살에 대해서 터키 및 파키스탄은 부정하고 아르메니아는 계속 터키를 적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Azerbaijan)의 전쟁으로 소련 말기인 1988년부터 이어져 왔던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Nagorno-Karabach Wars)에서 아르메니아가 터키제 드론인 바이락타르를 이용한데다 아르메니아는 동맹국 러시아로부터 무시당해 결국 패전하고 영토 상당부분을 아제르바이잔에 할양해야 했어요. 그 원한은 1세기 뒤인 지금도 여전해요.
G. 카라반
대상(隊商)이라는 한자어로도 번역되어 쓰이는 카라반(Caravan)은 사막에서 발군의 내구성을 발휘하는 동물인 낙타의 힘을 이용하여 이동하는 상인들을 의미해요. 낙타는 장기간의 굶주림을 견딜 수 있어서 다른 가축보다 월등히 유리할 뿐만 아니라 발이 큰 편이어서 모래가 많은 사막지형에서 발빠짐이 적은 장점도 있어요. 이렇게 낙타를 타고 유라시아대륙, 아라비아반도 및 북아프리카를 오가는 카라반 덕분에 무역이 성행할 수 있었어요.
단, 카라반에 사용하는 낙타의 경우 유라시아대륙에서는 등에 혹이 2개 있는 쌍봉낙타(Bactrian Camel)가 주류인 반면 중동에서는 혹이 1개 있는 단봉낙타가 주류인 점이 달라요.
이미지 출처
Camel Caravan, Morocco, WORLD HISTORY ENCYCLOPEDIA 웹사이트, 영어
카라반이라는 용어는 자동차나 항공기의 이름에도 잘 쓰이고 있어요.
이를테면 미국의 미니밴인 닷지 카라반(Dodge Caravan)이나 일본의 원박스카인 닛산 카라반(Nissan Caravan)이라든지, 소화물배송에 잘 쓰이는 미국의 경비행기인 세스나(Cessna) 208 카라반 같은 것들.
H. 세계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분지
원문에는 사발처럼 움푹 패인 땅이라는 표현인 쿠보치(窪地)가 등장하는데다 그 원문 왼쪽에는 사발이 그러져 있어요. 실제로 저 지역, 정확히는 현재의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에 있는 극한의 염도로 유명한 염수호인 사해(死海, Dead Sea)의 연안이 해발고도 -430.5m(=-1,412.4피트)로 가장 고도가 낮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죽어가는 사해(死海)를 살릴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협력 참조).
I. 프랑스인 레셉스가 이곳을 열다
이 서술은 1869년 11월 17일에 완공되어 154년 넘게 운영중인 수에즈 운하(Suez Canal)에 대한 것.
길이 193.3km(=120.1마일)의 이 운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항로를 절반 정도로 줄인 혁명 그 자체인데다 19세기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해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이미 기원전부터 지중해와 홍해를 이으려는 운하의 건설은 시도되었다가 번번이 실패한 것이다 보니 수에즈 운하의 개통은 그 자체로 기념비적이예요.
이미지 출처
A crisis of two canals, 2024년 2월 16일 Shipping Australia 기사, 영어
이름의 유래는 남단의 도시인 수에즈로, 역시 유럽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북단의 도시인 포트 사이드(Port Said)보다는 남단의 도시를 이름으로 택하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으로 보여요. 사실 프랑스 파리(Paris) 시내의 7개의 터미널 철도역 중 4개가 행선지의 지명인 아우스테를리츠(Austerlitz), 리용(Lyon), 몽파르나스(Montparnass) 및 생나자르(Saint-Lazare)로 명명된 관행이 있고 이 사업을 주도한 페르디낭 드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 1805-1894)가 프랑스의 외교관 및 엔지니어인 것을 감안하면 그게 자연스러운 발상일 거예요.
저 지도에서 묘사된 것처럼 수에즈 운하가 넓지 않고 다른 자연하천과 거의 같다는 것에는 주의해야겠죠.
페르디낭 드 레셉스는 수에즈 운하의 성공 이후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 설립기념식에 프랑스의 사절단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등 계속 성공가도를 걷는 듯했지만 이미 1882년에 시작한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미주의 파나마 운하(Panama Canal)의 프로젝트에서 벌어진 각종 재해문제 및 자금난으로 운하회사가 파산하면서 갑자기 몰락했어요. 그리고 그는 그 파나마 운하 스캔들을 둘러싼 법정공방에서는 1893년에 최종승소하긴 했지만 실추된 명예는 되돌릴 길 없이 결국 마음의 병을 얻어서 그 다음해인 1894년에 프랑스 중부지방의 한 정신병원에서 89년의 생애를 마쳤어요.
J. 마호메트 태어나다/마호메트 죽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Mahomet, 570-632)는 요즘은 아랍어 표기에 따른 무함마드(Muhammad)로도 잘 표기되고 있어요. 그는 570년에 메카(Mecca)에서 태어나 632년에 메디나(Medina)에서 죽기까지의 62년간의 생애 동안 메카의 다신론자들에게 박해당하기도 하였고 615년에는 그의 소수의 추종자들을 아비시니아로 도피시키는가 하면 622년에는 근거지인 메카에서 북서부의 다른 도시인 메디나로 피신하기도 하면서 이슬람교의 교리를 만들고 설파하는 데에 주력했어요. 이슬람력의 기원이 서기 622년인 것도 바로 그 메디나로의 피신인 히즈라(Hijrah, 헤지라(Herija) 표기도 병존)을 기념해서예요.
이후 네지드(Nejd)의 술탄(Sultan)으로 헤자즈(Hejaz)의 왕을 거친 지도자로 흔히 이븐 사우드로 잘 약칭되는 압둘아지즈 빈 압둘 라만 알 사우드(Abdulaziz bin Abdul Rahman Al Saud, 1875-1953)가 아라비아반도의 중앙부분을 통일하여 1932년에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가 건국되어요. 글자 그대로 사우드(Saud) 왕가의 아랍국가라는 의미. 그리고 사우드 왕가는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를 겸하고 있는 동시에 그 초대 국왕의 이름은 그 두 성지에 가까운 도시인 제다(Jeddah) 소재의 국제공항이자 무슬림이라면 평생 최소 한 번 이상은 해야 하는 성지순례를 위한 관문인 킹 압둘아지즈 국제공항(King Abdulaziz International Airport)으로 기념되고 있어요.
K. 미인 클레오파트라가 출현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다.
지중해 동남부해안을 거점으로 하는 그리스계 왕국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Ptolemaic Kingdom, 305BC-30BC)의 마지막 군주였던 클레오파트라(Cleipatra, 30BC 사망)는 21년간의 치세를 누렸지만 로마의 전방위적인 공격에 패해면서 자신이 잡히면 로마의 정복전쟁의 전리품으로 이용될 것이라는 것을 알자 음독으로 삶을 끝낸 비운의 미인 여왕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그녀의 죽음 이후 그리스계 왕국은 두번다시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로마의 지중해 제패시대가 열렸어요.
그 클레오파트라는 종교적 관용에서는 뛰어난 면모를 보여 각각 이집트의 신과 그리스의 신을 위한 종교시설의 건립은 물론 이집트 내의 유태인들을 위한 예배당인 시나고그(Synagogue)의 건립도 추진했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위기관리능력에서는 역부족이었고 다발하는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이상은 높고 현실은 그다지 녹록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어요.
미인으로 알려진 소녀 여왕이 겪은 비극적인 말로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붕괴되고 그 강역이 로마제국에 편입된 뒤에도 여러 예술작품에 인용되는 것은 물론 그 영향이 현대에서도 지속되고 있어요. 특히 서양문명에서 잘 묘사되는 이집트환상에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클레오파트라. 그래서 클레오파트라의 혈통을 무시한 채 단지 그녀가 이집트를 근간으로 하는 왕조의 군주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흑인으로 판단한 전제하에 만들어진 최근의 영상물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등 2천년 넘게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어요.
L. 최근 투탄카멘왕의 분묘가 발굴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투탄카멘(Tutankhamun, 1341 BC-1323 BC)은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소년왕이지만 그의 유산은 확실히 많이 남아 있어요. 그의 존재는 사후 3,245년이 지난 1922년 11월에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 1874-1939)가 이끄는 발굴팀이 룩소르(Luxor) 일대에 조성된 왕족 및 귀족의 묘지인 왕가의 계곡에서 그의 분묘가 발굴되면서 세계 고고학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어요. 오컬트 분야에서 잘 회자되는 투탄카멘의 저주는 한참 뒤의 일이겠지만요.
이미지 출처
King Tutankhamun was a 'battle-hardened warrior' and NOT a sickly boy-king as previously thought, experts claim, 2023년 6월 9일 Mail Online 기사, 영어
M. 야수가 돌아다닌다.
아프리카 하면 연상되는 맹수는 역시 사자. 물론 다른 맹수들도 많지만, 이미 유럽에서는 사자가 멸종되었고 대부분의 사자가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이외에는 인도에 소수가 서식하는 그 정도에 지나지 않다 보니 역시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맹수는 사자라고 할 수 있겠죠. 또한 지도가 발행된 저 시대에는 사하라사막 이북의 북아프리카 등지에도 광범위하게 살던 아종으로 아틀라스사자 및 이집트사자 등으로도 불리던 바르바리사자(Barbary Lion)도 있었어요. 이 바르바리사자는 1960년대에는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지만 1996년에 개체가 존재함이 발견된 이후 사육되는 개체가 전세계에 수십마리 있어요.
이미지 출처
Rare captive Male Barbary Lion, Adobe Stock 웹사이트, 일본어
그 다음은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항목. 1부터 9까지 9개 항목이 있어요.
1. 간디아 섬
이 섬은 오늘날의 그리스의 크레타(Crete/영어, Κρήτη/그리스어) 섬을 가리키는 말로, 간디아라는 이름은 9세기경 이 섬을 지배했던 이슬람세력이 세운 도시인 라브드-알-한다크(Rabd-al-handaq)가 이후 그리스어 명칭인 한다크(Χάνδαξ)로 불린 것이 다시 라틴어인 칸디아(Candia)로 불리게 된 데에서 유래해요. 이 지역은 다시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아 기리트(Girit)로 불리다가 그리스가 1821년에 독립을 선언한 후 벌인 독립전쟁 끝에 다음해인 1822년에 독립을 쟁취하면서 300년 가까이 지속된 오토만 제국의 통치도 끝났어요.
2. 아르딘
터키 서부의 무역항 아르딘(Aydin)은 아이딘, 귀젤히사르(Güzelhisar) 등의 다양한 표기가 통용되고 있어요. 일단 아르딘이라는 발음은 저 지도의 표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고 현재는 아이딘이라는 표기가 대세적으로 통해요. 토지가 비옥하여 특히 무화과의 재배가 성행했던 이 에게해안의 도시는 유서깊은 역사유적이 많을 뿐만 아니라 터키 철도교통의 여명기가 시작된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3. 알렉산드리아
그리스 문명의 영향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이집트의 지명 하면 역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를 빼놓을 수 없어요. 글자 그대로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356BC-323BC)의 도시라는 뜻, 사실 이집트(Egypt)라는 지명도 그리스어 발음에서 유래하고, 오늘날의 이집트는 이집트 아랍어 발음으로는 미스르(Misr)로 읽혀요.
알렉산드리아에는 한때 세계최대의 도서관이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그 도서관은 이집트가 이슬람화된 이후에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았고 소장 고문서도 모두 없어졌어요.
4. 하르툼
수단(Sudan)의 수도 하르툼(Khartoum)은 1821년에 백나일강(White Nile)과 청나일강(Blue Nile)의 합류지점에 세워지면서 1882년에 영국이 이집트를 장악함에 따라 영국령 이집트수단의 중심이 되었음은 물론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956년 이후에도 계속 수단의 제1도시로 군림하고 있어요.
5. 파쇼다
알렉산드리아를 기점으로 남하하는 이집트국유철도(Egyptian National Railway) 산하의 종관철도는 1924년 당시에는 파쇼다(Fashoda)까지 뻗어 있었어요. 이 파쇼다는 영국의 종단정책과 프랑스의 횡단정책으로 대표되는 아프리카 경략이 일촉즉발의 사태로까지 번질 수 있었던 1898년의 파쇼다사건(Fashoda Incident)의 무대로도 매우 잘 알려져 있어요. 1,500명 가량의 영국군 및 이집트군이 132명의 프랑스군과 마주쳐 1898년 7월 10일부터 그 해 11월 3일까지 대치했다가 그 상황은 다행히도 단 1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은 채 프랑스군이 물러나면서 종료되긴 했지만 열강들의 싸움이 언제든지 크게 번질 수도 있었다는 데에서 매우 중요하게 기록되고 있어요.
6. 아비시니아
현재의 에티오피아(Ethiopia) 및 에리트레아(Eritrea)에 해당되는 아비시니아(Abyssinia) 제국은 1270년에 건국된 이래 1974년에 일어난 공산주의자들의 국가전복 이전까지 존속했던 아프리카의 제국으로 1924년 당시에는 아프리카대륙에 단 2개국만 있는 독립국의 하나였어요. 다른 독립국은 서안(西岸)에 있는 라이베리아(Liberia).
7. 소말릴란드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로 묘사되는 아덴만 대안의 해안지형은 소말리인(Somali People)의 땅이라는 의미의 소말릴란드(Somaliland)라는 지명으로 불렸어요. 그러나 현재에는 소말릴란드는 현재의 소말리아(Somalia) 북부의 미승인국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 지역의 간단한 역사는 대략 이렇게 정리가능해요. 과거 영국이 지배했던 영국령 소말릴란드(British Somaliland)가 1960년에 독립했지만 직후 과거의 이탈리아의 지배하에 있었던 소말릴란드 신탁통치령(Trust Territory of Somaliland)와 통합되어 오늘날의 소말리아가 되었지만 1991년에 다시 분열되어 북부와 남부는 사실상 다른 국가가 되어 있어요. 게다가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었던 소말릴란드 서부지역은 현재의 지부티(Djibouti)라는 독립국가가 되었어요.
8. 아덴
예멘(Yemen)은 특이하게 수도 사나(Sanaa)보다는 다른 도시들이 잘 알려져 있어요. 주요 무역항인 아덴(Aden) 및 모카(Mocha)가. 아덴은 정국불안이 지속중인 현재의 예멘의 임시수도이기도 한데다 모카는 커피의 한 종류인 모카커피의 유래가 된 무역항이기도 하죠. 오늘날의 예멘은 이제 과거의 무역거점으로서의 지위도 잃었지만...
이 아덴이 국내 미디어에 대거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1년의 아덴만 여명 작전.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화물선 삼호주얼리호의 승무원 21명은 1월 15일에 전원 구조되고 화물선도 무사히 귀환할 수 있게 되었어요.
9.. 라리스탄라리
라리스탄라리는 현재의 이란의 걸프지역 항구도시인 반다르 압바스(Bandar Abbas)로 추정되지만 지도에서의 일본어 표기의 유래는 현재 확인할 수 없어요.
일단 반다르 압바스라면 그 지역은 이슬람 이전의 페르시아 제국시대의 다리우스 대제의 시대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통치를 겪은 이후 18세기말부터 오만(Oman) 및 동아프리카의 잰지바르(Zanzibar)를 통치하던 술탄령으로 편입된 이후 페르시아만 및 오만만을 잇는 항구도시로 번창했다 1902년에 대지진으로 멸망한 역사가 있어요.
이렇게 아라비아 중심의 중동편을 완성했어요.
다음편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6월 23-30일 기간 동안 2편이 등록될 예정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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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Lester
2024-06-21 01:25:06
일단 같이 들으면 좋은 음악일 듯한,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1"의 OST Medieval Melody입니다.
아라비아 반도가 그렇게 척박한 환경이라니, 문득 구약성경의 출애굽기에서 애굽을 벗어났지만 광야를 떠도느라 고생했던 모세 일행의 일화가 실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타조 이야기를 들으니 일전의 비주얼 박물관 중 '새' 편에서 봤던,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괴물 새 에피오르니스(코끼리새)도 생각나고요. 마르코 폴로는 이 새를 마다가스카르를 설명할 때 언급했다지만 해당 지역은 사실 오늘날의 모가디슈 부근이라고 하니 이번 글에서 말하는 아라비아에 얼추 포함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은 관심지점Point Of Interest들에 대한 감상입니다.
A. 사실 교과서에서 하기아 소피아(혹은 아야 소피아)의 명칭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로 연령대 유추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국내에서는 호칭이 제각각이었네요. 중학교~고등학교 때는 '성 소피아 성당'으로 알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하기아 소피아 성당'으로 바뀌었고, 이마저도 최근의 2020년 판결에 따라 성당에서 모스크로 바뀌었으니까요.
명칭이야 아무래도 좋지만 이슬람의 득세를 위해 문화유산을 독점(?)하는 게 정말 옳은 길인가 생각도 드네요. 게임 중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중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에서 구현된 건물 중 하나였던지라(게임에서 구현된 내부 탐사 영상) 언젠가는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종교적 색채가 강해졌다니까 살짝 거부감이 드는지라...
B. 확실히 좌식坐食문화는 아시아의 독점요소라고는 못하겠지만 특징인 건 확실해 보입니다. 일단 실내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느냐 아니냐의 차이도 크다고 하고. 마법 융단 이야기는 천일야화에 등장한다는데 천일야화를 전부 안 읽어봐서 모르겠네요. 그나마 아는 게 디즈니의 "알라딘", 더 오래 된 건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 2: 그림자와 불꽃" 정도라...
그 밖에 페르시아 융단이 유럽인들에게 인기였던 건 본래 용도(즉 깔고 앉는)보다는 아마 저마다 무늬가 다르다는 점 때문에 특이하거나 고상하다 싶은 걸 골라 태피스트리처럼 걸어놓으려고 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C.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 혹은 막말로 '이런저런 민족이 교차로처럼 다녀가서 문화가 모인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60진법의 발상지였군요. 사실 10진법의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시계도 10진법을 썼을 것 같은데 신기합니다. 옛날 학습만화에서 하루에 10진법을 사용하려니 미묘하게 어긋나는 부분이 많아 실패했다 정도로 설명하던데, 90년대 학습만화라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D. 흔히 아랍 관련 전투 묘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 칼이로군요. 관련 글을 읽을 때 병사들이 저런 칼과 원형 방패만 들었을 뿐 딱히 갑옷으로 중무장한 것 같진 않은데, 유럽인이 무서워했다는 식으로 나올 뿐 전후맥락은 빠진 경우가 많아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E. 예루살렘은 앞서 언급했던 게임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초대작 어쌔신 크리드에서도 나옵니다. 초대작이라 기술이 부족해서인지 스토리상 큰 역할은 없지만 바위의 돔이나 알 아크사 모스크 및 성묘교회가 등장합니다(관련 영상).
F. 강제개종도 모자라 인종청소라... 위에서 하기아 소피아를 모스크로 전환한 것도 그렇고, 종교의 탈을 쓴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개신교나 가톨릭은 과거 '자칭' 성전이나 근본주의 세력의 땅밟기 같은 것만 제외하면 자중하는 편인데, 저기는 날이 갈수록 더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슬람 교리 특성상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무력을 동원하는 것일지도...
G. 카라반도 아라비아 지역의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죠. 대체로 중세 분위기를 유지한 판타지물에서는 그 시절 그 명칭과 의미 그대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번역할 때 문맥에 따라 여행대隊로 할지 상단으로 할지 헷갈리지만요). 그런데 낙타는 제가 알기로 양쪽 발을 동시에 내딛다보니 좌우로 크게 흔들린다던데, 상품 운반에 방해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북극 개썰매처럼 썰매로 짐을 나르지 않은 것도 특이하고... 물론 이것저것 다 해보고 최종적으로 도달한 결론이 그냥 낙타 등에 싣고 이동하는 거겠지만, 그래도 궁금합니다.
I. 잘은 모르겠지만 위에서 말한 '중동'이란 표현도 그렇고, 유럽인들 입장에서는 가까워서 언제든지 수복할 수 있는 포트 사이드보다는 아시아로의 진출을 위해 유럽인들 입장에서 '출구'인 수에즈가 훨씬 중요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그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 설립기념식에 참석하기도 했다가 역시 또 다른 유명한 운하인 파나마 운하 건으로 파산했다니... 사람 앞길은 아무도 모르는군요. 그 정도의 운하 전문가라면 연전연승했을 것 같은데 무엇을 놓쳤길래...
J. 위에서 이슬람이 왜 그렇게 호전적인지 모르겠다고 적었는데, 사우드 왕가가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를 겸하면서 국왕을 맡는다는 설명, 즉 정교일치 때문에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일반적인 정치라면 법을 따르되 시대 혹은 상식에 맞지 않는 법은 수정하거나 폐기하기 마련인데, 불신자나 배교자에게 죽음을 내리는 종교가 기반이면 그 누가 반대 의견을 내겠는가 말이죠. 마호메트가 그런 인물이라 이슬람교 교리도 그렇게 형성됐는지 아니면 후세인들이 유리하게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다 뿐이지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습니다.
K. 최근에 애굽민수(한국이집트학연구소 곽민수 소장의 채널)를 보고 있는데 클레오파트라가 익히 알려진 대로 그냥 미녀가 아니라, 카이사르와 연애해서 낳은 아들 카이사리온과 함께 공동으로 이집트를 다스렸던 파라오라고 나오더군요. 그래서 클레오파트라 사후 이집트는 로마 제국의 속주 같은 형태가 되거나, 로마 황제를 그대로 파라오로 모셨다던가...
그나저나 클레오파트라가 종교적으로 관대했던 건 첫 번째 연인 카이사르와 두 번째 연인 안토니우스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둘 다 당대 최강인 로마 제국의 실력자였으니 소위 '잘 보이고 떡고물 얻어먹기'가 아니었을까 싶은 거죠. 인터넷을 좀 뒤져보니 악티움 해전에서 패전의 기미가 보이자 그대로 도주해서 아군의 사기를 깎아먹은 것을 보면 사령관보다는 정치가 혹은 문화사업가(?)에 더 가까웠던 모양입니다.
흑인 클레오파트라는 정말 대대적인 충격이었죠. 흑인 우월주의Black Supremacy가 아니고서야 납득이 안 되는 독단이었으니까요. 실제로 흑인이 스포츠 이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등 흑인의 가치는 이미 존중받고 있건만 BLM이나 PC라는 핑계로 폭동을 일으키는 것만 봐도... 고증 면에선 차라리 일본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알라바스타 왕국과 네펠타리 가문(모티브는 람세스 2세의 왕비 네페르타리)이 더 낫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I. 이것도 애굽민수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투탄카멘의 무덤이 온전했던 이유는 과장이 다소 섞였겠지만 '인지도가 없어서 + 다른 데 판다고 치워둔 흙으로 무덤이 더더욱 가려져서'라고 하더군요. 다른 무덤은 진작에, 심하면 무덤을 짓자마자 도굴됐으니까요. 하지만 그 덕분에 그 호화로운 부장품이 온전히 보전됐다가 발굴됐다니 천만다행이자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투탄카멘의 저주는 80년대까지만 해도 괴담집에 진지하게 오르내렸지만 지금은 뭐 단순한 우연, 더 나아가면 언론사의 공작이라는 말도 있죠. 그러니까 사망 자체는 사실이지만 신문을 팔아먹기 위해 실제보다 많은 사람이 짧은 기간에 떼죽음을 당했다고 과장했을 거라는 추측입니다. 소문에 대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 속담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M. 아프리카의 맹수는 역시 사자죠. 사자 하면 생각나는 건 역시 디즈니가 만든 불후의 명작 '라이온 킹'이고요. 내용이나 그 밖의 이야기(햄릿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사실상 오리지널 각본이 됐다는 이야기, 밀림의 왕자 레오를 표절했다고 소문났지만 누명으로 판명된 이야기 등)는 너무 유명하고 자료도 많으니까 생략할게요. 비록 라이온 킹은 영상미를 위해 몇몇 중요한 부분, 대표적으로 먹잇감(...)들이 사자에게 굽신댄다든가 하는 점들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긴 했지만 '생태계의 보전을 위해 힘쓴다'는 부분은 백수百獸의 왕이기에 가능하고 또 그 힘을 남용해선 안 된다는 점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관련 감상은 나눠서 쓸게요.
마드리갈
2024-06-23 13:05:34
이번에도 자세한 코멘트에 깊이 감사드려요!!
소개해 주신 음악, 정말 잘 어울리네요. 사실 음악에 동서양이 따로 없고, 굳이 분화된 시점을 찾으라면 르네상스 이후가 되다 보니 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의 음악이야말로 이렇게 동서양에 걸친 이 중동지역을 느끼기에 딱 좋은 듯해요.
아직 강학상으로 정립된 용어는 아니지만, 저는 그런 아라비아반도의 험악한 기후를 회랑효과(回廊効果)의 일종으로 보고 있어요. 즉 중위도에 위치한 남북으로 긴 반도는 편서풍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고 육지가 해양보다 비열이 낮으니까 여름은 미친듯이 뜨겁고 겨울은 혹독하게 추운 게 설명가능하다는 것이 골자인 거져. 한반도가 유독 극한의 기후를 보이는 것도 같은 원리로 설명가능해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화전쟁은 종교전쟁으로 귀결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게다가 이슬람교에 유독 무른 게, 오일달러 패권국들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있는데다 정치적 올바름을 이유로 한 자기검열 풍조도 강해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충분히 들거든요. 그러니 무슬림 월드에서 횡행하는 각종 범죄에 대해서도 침묵하는 경향이 감지되죠. 하기아 소피아의 경우라든지 아르메니아 학살에 대한 대응 같은 것도 확실히 그런 것이 드러난다고 할까요.
게다가 그런 자기검열 풍조를 확산시키는 것이 테러리즘. 악마의 시의 저자 살만 루시디가 살해협박에 시달리는 한편 무함마드를 묘사한 이미지가 미디어에 사용되었다고 테러를 실행하는 무슬림도 있다 보니 아예 이제는 이슬람교 관련은 언급하지 않는 글로벌 터부가 되어가고 있는 것도 원인이죠. 게다가 말씀하신 것처럼 정교일치 사회인 것도 있고, 더욱 근본적으로 가면 아브라함 계열 종교의 배타성에 원인이 있어요. 사실 기독교 또한 이교도에 대한 적개심과 차별을 드러내는데 기원이 같은 이슬람교도 결코 다르지 않아요.
한 자리의 소수(素数)에는 2, 3, 5, 7이 있는데 10진법의 경우는 2와 5만 나누어 떨어지고 60진법은 2와 5는 물론 3으로도 나누어 떨어지죠. 그렇다 보니 연속량의 분할에는 확실히 유리해요. 이 60진법이 바로 메소포타미아에서 꽃핀 수메르 문명의 발명품이고 일상생활 속의 연속량 측정대상인 시간과 각도에는 역시 편리하게 사용가능해요. 역시 문명의 발상지라는 타이틀이 그냥 있는 게 아니예요.
그러면, 코멘트를 분할할께요.
마드리갈
2024-06-23 13:35:36
여기서 잠깐 과학 강의를 할께요.
왜 사막에서는 북극에서같이 썰매가 불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상변화(相変化, Phase Transformatiom)라는 화학지식과 마찰력이 질량과는 무관하고 표면의 상태에 좌우된다는 물리학지식이 필요해요. 즉 물질이 고체, 액체, 및 기체 중의 어느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것. 북극의 경우는 얼음이나 눈이 눌리면서 압력으로 인해 액체인 물로 바뀌니까 마찰력이 작아져서 개 정도의 비교적 근력이 약한 소형의 동물 여러 마리로 썰매를 끌 수가 있지만 사막에서는 썰매, 탑승자 및 화물의 질량에 의한 압력 정도로는 모래알이 액체가 되지 않고 도리어 마찰력을 증가시켜 버리거든요. 그래서 사막에서는 썰매가 전혀 메리트가 없어요. 사실 모래알이 액체가 되려면 모래가 용융되는 고온이 되거나 질량이 압도적으로 크면 되긴 한데 고온이 되면 이미 용암 위를 달리는 것과 다름이 없고 질량이 폭증하면 동물의 힘으로 끄는 건 불가능해지니 어느 쪽이라도 선택할 수 없어요.
그리고, 낙타의 걷는 방식이 다른 동물에 비해 횡진동이 커서 불리하다고는 하더라도, 낙타의 지구력은 다른 동물과는 차원이 다르거든요. 소나 양처럼 방목지를 찾아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처럼 대량의 곡물사료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니까 이런 점에서 이미 결판이 나 있고, 그 특유의 걸음걸이가 모래 위에서 덜 빠지거든요. 그래서 낙타가 압도적으로 유리해요.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가 질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어요.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의 고저차가 거의 없어서 공사 자체는 대공사였지만 그나마 근대의 기술력과 자본력으로 꾸준히 밀어붙이면 그럭저럭 가능해요. 하지만 파나마 운하는 건설예정지역의 지형이 매우 험한데다 태평양과 대서양의 고저차가 75m(=246피트) 가량 되다 보니 그렇게 파서는 완성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 고저차를 해결해야 할 게 선결과제이고 그래서 수로식 운하로는 방법이 없어요. 실제 완공된 파나마 운하는 갑문식, 즉 구간마다 갑문을 설치해서 물의 양을 가감하면서 배가 산을 넘어가게끔 만든 스타일이었어요. 게다가 파나마는 이집트보다도 풍토병 문제가 더욱 심각했고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 등의 각종 질병 문제로 종사인원이 죽거나 병드는 일도 급증했어요. 이렇다 보니 지형상으로도 운하 자체를 건설하기 매우 힘든데다 성과는 없는데 비용부터 많이 나가니 실패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후 그 프로젝트를 미국에서 인수한 이후로는 공기식 해머와 같은 현대적인 굴착장비의 개발이라든지 고인 물 자체를 편집증적으로 차단하는 모기 방지대책 등이 있었기에 그 프로젝트가 완성될 수 있었어요.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현역이었던 시대에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던 게 문제였다면 문제랄까요.
클레오파트라는 여러모로 세계를 놀라게 하죠. 말씀하신대로 그런 혈통상의 이유가 매우 클 거예요. 그렇다 보니 흑인 클레오파트라는 이미 그런 검증된 역사에 대한 부정은 물론이고 아프리카니까 인종이 흑인일 것이라는 무식한 추측밖에 되지 않아요.
투탄카멘의 묘소가 있는 왕가의 계곡 자체도 그 존재가 재조명된 게 18세기 후반이고 본격적인 발굴은 1922년에야 이루어졌죠. 게다가 지금도 계속 발굴작업이 진행중인 터라 아직 전모가 완벽하게 파악된 것도 아니고, 예나 지금이나 도굴범이 횡행하기는 했지만 "정말 이런 데에 있겠어?" 라는 심리가 크게 작용해서 어떤 곳에서는 눈길이 미치지 않은 것이었을 수도 있을 거예요. 무덤의 설계자들은 그런 것까지 시야에 넣었을 수도 있어요. 보다 잘 드러나는 피라밋의 경우 도굴이 횡행했는데 아라비아의 어떤 토호가 그것을 도굴해서 막대한 부장품을 얻기는 했지만 피라밋 내부에 있었던 "도굴에 들인 비용과 네가 얻어갈 것의 가치는 같을 것이다" 라는 문구를 보고 정산했더니 정말 그 말대로였다는 전설도 있었다고 하니 그것까지 시야에 넣은 게 타당할 거예요.
Lester
2024-06-21 02:03:17
1. 간디아 섬은 이름만 들으면 인도의 성인 마하트마 간디와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크레타 섬이었군요. 크레타 섬 하면 고대 그리스 시절만 생각나는데 생각보다 파란만장한 역사가 있었고요.
3. 제가 알기로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지역마다 세운 도시라 실제로는 여러 개지만, 그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게 오늘날의 알렉산드리아라고 하더군요. 말씀하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남아 있었다면 알렉산더 대왕의 전성기를 가늠할 수 있었겠지만 파괴돼서 아쉽네요. 역시 이슬람...이라 하고는 싶지만 여러 이유가 있을 듯하니 속단해서는 안 되겠죠.
4. 몇몇 옛날 책에서 '카르툼'이라 표시했길래 같은 지역인가 했는데 역시 같은 지역이었군요. Kh 발음을 제대로 못 살리는 데가 적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나일강이 백나일강과 청나일강으로 나뉘는지는 이제서야 알았네요. 정말 세상에는 모르는 것 투성이인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C.M.B. 박물관 사건목록에서 수단 내전이 나오길래 작품이 앞서서 연재됐고 2020년 완결이니까 창작 혹은 실제 사건의 과장인 줄 알았는데 그 뒤인 2023년부터 수단 내전이 격화되고 있다는 걸 알고 벙쪘네요.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UN군의 참전을 독려하기 위해 상임이사국을 설득하려고 백금을 비장의 카드로 사용하는데, 이것도 사실에 기초한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5. 파쇼다 사건은 당시 강대국들의 이전투구를 확인하기 위해 꼭 등장하는 사건이라 저도 이름까지는 들어봤는데, 단 1명의 사상자도 없이 종료됐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하긴 사회나 역사 과목은 동서양 할 것 없이 '일단 외워라'가 중심이었기에 뭣도 모르고 이름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런 자잘한 뒷배경까지 알았다면 좀 더 공부하는 재미가 있었을 텐데, 공교육이라 그럴 여유가 없는 건지 아니면 주안점조차 두지 않는 것인지...
6. 아비시니아는 영어단어 Abyss 때문에 음침해 보이지만 아비시니아 고양이를 보면 또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기묘한 지역이죠. 그 밖에 독립국으로 언급하신 라이베리아는 영어단어 Liberty가 생각나긴 하지만 미디어에서는 대체로 전혀 딴판인 독재국가로 묘사돼서 그런지 뜻밖이고요.
8. 아덴만 여명 작전은 너무 유명하니까 넘어가고... 카페에서 모임을 가질 때 종종 마시는 카페모카의 유래가 예멘의 모카였군요. 그랬던 모카나 예멘 자체가 무역거점으로서의 지위를 잃었다니... 역시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인가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것보다는 아라비아 반도라는 지역 특성상 이제는 뭘 하기엔 사우디나 다른 나라에게 눈치가 보이게 생겨서인 것 같지만요. 특산품 같은 게 있으면 뜯기는 게 고작이려나...
9. 검색해보니 비슷한 이름으로 라리스탄 혹은 로레스탄주가 나오는데, 지도에 그려진 것보다 훨씬 북쪽 내륙이라 당황스럽네요. 지도에 그려진 융단 든 아저씨의 뒤통수 정도에 해당합니다. 아무튼 잰지바르 혹은 잔지바르는 포럼에서 담배 이야기를 할 때 잠깐 들었던 것 같은데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네요.
이번에도 잘 읽었습니다.
마드리갈
2024-06-23 14:15:10
동유럽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오토만 제국을 필두로 한 무슬림 월드의 사정을 알아야 하죠. 그래서 매우 복잡하고 그에 따른 원한도 매우 깊은 편이예요. 그리스와 터키의 대립,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의향에 대한 유럽 각국의 배척,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의 발칸반도의 인종청소, 아르메니아 학살에 대한 서방권과 터키의 인식차이 등이 쉽게 극복되지 못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있어서예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는 정말 아쉬운 일이죠. 요즘에는 이집트의 그 알렉산드리아에 현대적인 도서관이 개관해 있어서 역사를 정신적으로 계승하고는 있긴 하지만 그 때의 소실된 문헌은 되살릴 길이 없으니까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어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몰락에 대해서는 현재 알려진 가장 확실한 정설이 642년 알렉산드리아 함락이죠. 당시 우마르(Umar, 644년 사망) 칼리프 통치하의 아라비아 세력은 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대해서 "소장된 책들이 쿠란과 같은 내용을 담는다면 굳이 필요하지 않고 다른 내용을 담는다면 파괴해야 한다" 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전해져 있어요. 그 이전에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몰락 후 로마의 속주로 편입된 이후에도 몇번 수난을 당했다 보니 약체화되어 있었지만, 그 우마르의 반지성주의적인 경향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박살내 버린 결정타였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어요.
하르툼 이외에도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Харків) 또한 예의 표기방식 해석 문제로 잘못 알려진 경우가 꽤 있어요. 소련시대에 하리코프(Харькoв)라는 러시아어 지명으로 잘 알려진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이자 동부 최대의 공업도시인 그 곳은 과거 문헌에는 "카르코프" 로 표기된 경우도 있었어요. 저 러시아어 표기를 로마자화하면 Kharkov가 되니까요.
사실 수단이 워낙 먼 곳이고 우리나라와의 접점도 많지 않으니 간과하기 쉽지만, 수단의 정국불안은 이미 1세기 전의 저 지도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어요. 사실 오늘날의 이집트, 수단 및 남수단의 영역 전체는 1805년부터 1914년까지 존속했던 무함마드 알리 왕조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집트와 수단은 인종적으로 큰 차이가 있어서 화합이 쉽지 않았고 수단 내부도 남부와 북부의 주민들의 정체성이 크게 다른 등 문제가 산적해 있었고 이후 2011년에는 남수단이 분리독립했지만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있는데다 언급해 주신 것처럼 2023년에는 내전 상황으로 극도의 혼란이 가중되어 있어요. 그 백금 관련은 적어도 저는 들어본 적도 없을 뿐더러 국제 상품시장의 가격변동을 주시해 왔지만 백금 가격이 그 상황을 기화로 유의미하게 변동된 것도 없으니 그 이야기는 창작물의 내부사정으로 봐야겠지만요.
파쇼다 사건은 희생없이 끝나서 잘 마무리된 것이었지만 위험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대사건이었죠. 교과서의 편찬방법에 따라 학습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잘 전달하고 흥미를 유발시킬 방법은 있는데, 우리나라의 교육컨텐츠 공급방식이 철저히 공급자 편의주의에 치우쳐져 있는 게 원인이면 원인이랄까요?
역시 지명이 주는 어감이 참 묘하죠. 이후 1935-1937년에 일어난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의 경우 발단이 된 사건이 1935년에 왈왈이라는 에티오피아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이탈리아군과 에티오피아군의 험악한 대치상태로 이것을 왈왈사태(Walwal Incident)로 부르는데 하필이면 지명이 지명이라서 개들이 왈왈 짖어서 대소동이라도 난 것 같이 오해되기 딱 좋아요.
게다가 라이베리아는 이름은 자유의 나라이지만 흑인이 아니면 라이베리아의 시민권을 취득할 수 없는 지독한 인종차별 국가이기도 해서 대체 뭐가 자유의 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한심한 모습도 많이 보여주고 있어요.
모카가 세계 유수의 무역항으로서의 지위를 잃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으로 20세기 후반의 만성적인 역내외 정국불안이 가장 큰 원인이었어요. 모카에서는 커피가 생산되지 않지만 바다 건너 에티오피아 등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커피의 주요 유통거점으로 전세계에 명성을 떨쳤지만 예멘이 영국의 지배하에서 벗어난 이후 분열되어 모카가 있는 남예멘이 친소 공산국가로 전락한데다 에티오피아 또한 공산화로 엉망이 되었고 선박의 항해능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면서 모카에 기항해야 할 이유가 안그래도 격감한 마당에 공산국가라는 문제점까지 더해지니 그냥 몰락해 버린 것이었어요. 오늘날의 모카의 인구는 이제 2만명도 되지 않아요.
저 시대의 문헌의 정확도는 오늘날의 것만큼 기대할 수 없는데다 오늘날의 것도 편찬자에 따라서 문제가 다발하다 보니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게 그나마 다행일까요?
이제 코멘트에 대해 모두 답해 드렸어요.
다시 한번 코멘트에 감사드리고, 이따 오늘중에 다음 시리즈를 올릴 거예요. 그때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