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슨 일을 하건, 항상 홀가분하면서도 섭섭한 게 퇴사인 것 같습니다.
단지 홀가분과 섭섭의 비중이 그 동안의 회사생활에 따라 달라질 뿐...
최종적으로 업무를 마무리하고, 인수인계를 마치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어제 오후 6시에 깔끔하게 퇴근했습니다.
그리고 퇴근해서 집에 오자마자 라인(사내 메신저가 라인입니다) 친구들을 전부 정리하고 유튜브 채널도 구독취소 했습니다(병원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가끔 영상 좋아요 해 달라고 요청도 들어옵니다). 라인 이름에 국문으로 병기했던 것도 지웠습니다. 원래 카카오톡이나 라인 이름은 영문명만 적어두는데, 그걸로 한소리 들어서 병기해뒀거든요.
전에 같이 일했던 분이 그만둘 때, 다 같이 모여서 배달음식 이것저것 시켜먹으면서 송별회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갈때도 그럴 줄 알았는데, 국물도 없었습니다. 그만두기 석달쯤 전부터 다른 팀 사무실 한쪽 구석에 있었는데, 거기서 다 같이 아이스크림 먹은 게 다였습니다. 다른 구성원들과 달리 저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생일에도 생일 축하한다는 얘기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이게 복지때문에라도 최소한 한 명은 제 생일이 언제인지 알고 있을거고, 라인에서도 생일자면 다르게 표시해주는데 말이죠. 그렇다고 제가 제 생일이라고 떠벌리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쩌겠습니까. 그날 저녁에 퇴근하면서 혼자 케이크 사서 초 불었죠.
서운하긴 한데, 이 엔딩이 제가 바라는 바였습니다. 서로 가식 없이 일만 하다가 인사 주고받고 작별하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저에게 있어서 직장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사무적으로 대했거든요. 회식도 올해는 일 있다고 빠졌고...
대체 어떻게 열달이나 버틴건지 스스로 신기할 정도로 직장생활이 재미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서로가 서로를 따돌리는 상황이었던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그쪽에서 저에게 했던 행동들, 전부 후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만두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만두기로 결심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일단 꼰대 상사가 불러서 (저를 뽑은 자기에 대한) 뒷말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책상 위 피규어를 치우라고 했던게 제일 컸습니다. 피규어는 제 자리 뒤로 와서 보지 않는 이상 보이지도 않고(피카츄 장패드도 피카츄는 얼핏 보면 안보입니다), 책상이 좁아서 최대 네 개가 고작이었고, 전부 포켓몬 피규어였습니다. 포켓몬 외에 다른 피규어는 모으고 있지 않기도 하고요.
다른 이유는 제안이 왔던 업무가 저랑 맞지 않았고, 출퇴근 시간도 달랐던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출퇴근시간이 10-6이지만(대신 점심시간이 30분입니다) 원래 출퇴근시간이 이거랑 다릅니다. 적어도 9시 반이나 9시쯤 출근해서 퇴근은 6시 반에 하는데(회식 갈 때 6시 반에 출발합니다), 일찍 일어나는거야 알람을 당기면 된다지만 저는 포켓몬고때문에 여섯시 퇴근과 주말은 반드시 사수해야 합니다. 일부 구성원들은 주말이나 명절(혹은 공휴일)에도 출근하더군요. 거기다가 저에게 제안이 들어왔던 업무는 총무 일이었는데, 여기는 병원 특성상 전화를 할 일이 매우 잦은데다가 에이전시와 만날 일도 매우 잦아서 저와는 맞지 않습니다.
그나마 실업급여는 받을 조건이 된다는 걸 위안삼아서, 일단은 좀 쉬렵니다. 허리도 어깨도 너무 아파서 마지막날은 출근하는 게 고역이었습니다. 구직하면서 뭘 할지는 생각 안 해봤는데, 자격증이라도 하나 딸 수 있으면 좋겠네요.
엄마가 고지고 아빠가 성원숭인데 동생이 블레이범인 라이츄. 이집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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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4-06-16 18:22:06
그러셨군요. 그간 고생 많이 하셨어요.
거기까지의 사람들이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여기시는 것도 방법 중의 하나일 거예요. 대학생 때의 일이었는데, 신입생 때 저에 대해서 헛소리를 하던 사람들을 나중에 다시 만나서 따져 물으니 피하거나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거나 심지어 저의 존재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더라구요. 적어도 제 귀중한 시간과 역량을 그런 사람들에게 낭비할 필요는 없었더라구요.
재충전의 시간, 정말 중요하죠. 작년말에 갑자기 아파서 수술을 받은 직후 한달 넘게 입원했고 올해도 계속 요양중이긴 하지만 이 시기가 헛되이 흘러갔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동안 잊었거나 소홀해 하고 있었던 것들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되었어요. 소중한 시간을 맞이하실 거라고 믿어요.
국내산라이츄
2024-06-16 21:29:55
양심이 있다면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기때문에 더 이상 연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회사 다니는 동안은 주말이 가는게 제일 고역이었는데, 퇴사하고 나니까 더 이상 회사를 안 가도 돼서 정말 평온해졌습니다.
SiteOwner
2024-06-17 20:31:52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휴식하시면서 권토중래를 노리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어차피 그런 것이지요. 기대할 일이 없으니 실망할 일도 없는.
그리고, 거기서 끝날 게 정해진 인연이니 정리하면 됩니다.
다음 근황 글에서는 좋은 일이 가득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무운장구를 기원합니다.
국내산라이츄
2024-06-18 02:11:44
언젠가 저도 정착할만한 직장을 찾아야 할텐데,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그거랑 별개로 다니면서는 일요일 저녁이 제일 싫었는데(사유: 월요일 출근), 요즘은 그냥 평온합니다.
다녔던 분이 그만두는 날 간단한 간식같은 것을 돌린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거 나도 나가기 전에 돌릴까... 하다가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는데, 아마 실행으로 옮겼다면 돈은 돈대로 쓰고 서운함만 얻어가는 꼴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좋게 있다가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거지로 어찌어찌 버티다가 나가는 꼴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