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쓴 글인 꿈 속에서 봤던 한국언론의 미래상에서 레스터님이 작성하신 두번째 코멘트에 대해 이렇게 별도의 글을 작성하게 되었어요. 레스터님의 코멘트 내용은 전혀 가감없이 여기에서도 원문 그대로 인용해 볼께요. 이탤릭 표기 및 텍스트의 색만 바꿔둘께요.
"개인에게 무엇을 묻기보다는 시스템적으로 해결한다"는 현대화 및 고도화된 사회이기에 더더욱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서양이야 예로부터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였고 동양 또한 (북한과 중국 같은 막장 국가들을 제외하면) 공동체주의에서 서서히 벗어나 서양처럼 변하고 있는데, 이런 단합력 부족이 결국 시스템에 여러가지 폐해를 끼치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당장 생각나는 것으로는 포퓰리즘에 대한 기대(ex. 재난지원금), 낭비가 심한 체제에 대한 불신(ex. 요즘 대한민국 국군, 대다수의 예산낭비) 등이 있겠네요.
폴리포닉의 흐름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말씀하신 것이 가능하려면 결국 독재자, 하다못해 철인이 등장해야 할 것 같네요. 즉 폴리포닉의 경우는 처음부터 제도가 완벽하게 자리잡혀서 현재 시점까지 이어진 것이니 폐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현실에서는 이미 벌어진 과거와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으니 굉장히 힘들겠죠. 등장하는 순간 엄청난 반발과 혁명이 벌어질 테니까요. 그것도 혁명세력이 다시 독재를 하든 안 하든 말이죠.
제 생각으로는 아마 '저런 일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누구든지 독재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고 판단하기에 혁명 혹은 그에 준하는 소요 사태나 집회-시위마저도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막말로 '네가 독재했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냐'라는 거죠. 그래서 독재자들이 정권을 잡으면 대대적인 숙청을 벌이는 것 같네요. 안 그러면 군인 황제 시대 꼴이 날 테니.
아니면 말씀하신 시스템적인 해결은 '시스템에 기여하는 자만을 위해서 작동한다'는 원리 하에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꽤나 극단적이지만 앞서 언급한 사이버펑크가 그런 식이거든요. 즉 생산 및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중산층까지만 시민 취급하고 준 중산층 이하는 포기하는... 물론 폴리포닉에서 소개된 것처럼 기술개발이나 합리적인 체계를 활용하면 엄청난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겠지만, 하필 그것을 추진해야 할 사람들이 CEO마냥 임기 동안의 성과에 목을 매야 하는 입장이라는 게 폴리포닉과 현실의 가장 큰 괴리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고, 폴리포닉은 그에 대한 안배도 이미 마련되어 있으리라 믿습니다. 주제넘은 생각을 적었을 뿐이니 괘념치 않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쟁점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게 되겠죠.
1. 시스템적 해결은 현대화 및 고도화된 사회이기에 더욱 힘들고, 공동체주의의 해체가 시스템 형해화로 이어진다.
2. 폴리포닉 월드의 시스템적 해결은 독재자나 철인(哲人)의 등장을 전제로 하고, 폴리포닉 월드의 제도는 처음부터 완벽한 것이 현시점까지 이어졌다.
3. 시스템적인 해결은 시스템에 기여하는 자만을 위해 작동하는 원리하에 가능할 수 있다.
첫째 쟁점에 대해서는 독일의 사상가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가 정의한 3가지 유형의 정통성 있는 지배(Legitimate authority)를 인용해 볼께요. 시스템에 의한 합법적지배(Rational-legal authority), 과거로부터 내려온 것들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전통적지배(Traditional authority) 및 지도자의 개인적 매력에 의존하는 카리스마적지배(Charismatic authority). 이 중 근현대사회의 주류는 합법적지배가 되었고, 비록 전통적지배나 카리스마적지배가 소멸하지는 않았지만 군주정 또한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로 변모하여 합법적지배의 형태에 근접하고 있어요. 이미 막스 베버가 생존중이었던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도 그런 현상이 팽배했고 전근대적인 절대군주제(絶対君主制)를 채택한 국가들은 그 사례도 소수인데다 예의 국가들이 그 체제 덕분에 이득을 보는 게 없어요. 고소득 절대군주제 국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오만, 브루나이 등의 무슬림 월드에 속하는 산유국들 정도이고 그 이외의 명시적인 또는 사실상의 절대군주제 국가는 최빈국 레벨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어요.
또한, 현대화 및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시스템적 해결이 더욱 용이해져 있고 또한 많이 진전되었어요. 당장 철도나 택배 같은 교통혁명이라든지 전신전화를 필두로 한 통신혁명같은 기술적인 영역이 강한 분야는 물론, 인종차별, 연령차별, 성차별 같은 것도 결국 시스템적으로 극복되고 있어요. 일례로 싱가포르에서는 이력서에 사진첨부와 연령기재를 금지하고 있어서 서류상 차별 자체가 불가능해져 있어요. 즉 최소한의 문호개방은 이렇게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이죠.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그럼, 공동체주의가 유지되었던 과거는 어땠던가요? 주어진 질서를 잘 지키던가요? 동양에서의 역성혁명(易姓革命) 및 서양에서의 종교개혁이나 시민혁명 등의 반례는 여기에 다 옮겨 적을 수 없을만큼 많이 있어요.
즉 이미 여기까지 논한 이상 첫째 쟁점은 논파되었어요.
둘째 쟁점에 대해서는 전제가 폴리포닉 월드의 형성과정과 배치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폴리포닉 월드 프로젝트는 대체역사의 성격으로 출발했고, 현재에는 폴리포닉 월드의 지구가 현실세계의 것과 다른 평행세계의 지구임을 전제하고 있어 평행세계의 성격도 아울러 지니고 있어요. 즉 이전보다는 대체역사의 성격이 약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대체역사의 성격 자체는 단 한번도 없어진 바가 없어요. 그리고 그 분기점은 원안이든 지금이든 1812년의 미영전쟁과 그 전쟁의 전후처리인 벨기에 겐트조약(Treaty of Ghent)이고, 따라서 처음부터 완벽하게 제도가 자리잡힌 것은 없어요. 즉 폴리포닉 월드는 미영전쟁 당시의 사회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한 것도 아니고 그때의 것이 완벽하지도 않은데다 계속 변화하고 있어요. 그 변화가 현실세계보다 더 빠르고 고도화되었는데다 현실세계에서 잘못될 뻔한 것들이 몇번 궤도수정된 게 다르지만요.
사이트내에 소개된 폴리포닉 월드의 각 요소는 특정시점의 것도 있고 역사를 관통하는 것도 있어요. 자세한 것은 공작창의 Polyphonic World 카테고리(바로가기)에 게재되어 있고 현재 공개가능한 것은 2021년 작성분까지예요. 폴리포닉 월드에 대해서 모르면 어떻나요. 이렇게 자료도 공개되어 있고 저나 오빠에 질문하시면 확실하게 답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실 것이 전혀 없어요.
그리고, 인간의 행동은 누군가가 이끈다고 되는 게 아니예요. 결국 자신이 판단해서 실행해야 하는 것이죠. 요즘의 저출생문제가 해결하기 힘든 것도 결국 "내가 출산하지 않겠다는데 당신이 왜?" 라고 반문하면 여기에 대해서 "당신이 틀렸다" 라고 말할 수 없는 데에서 비롯되어요. 좋아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가 창안한 문화적 헤게모니(Hegemony)라는 개념이 여기에 매우 좋은 답을 제시해 주고 있어요.
간단히 말해서 그런 것이죠. 사람은 자신이 소속한 공동체에 따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가 꽤 많아요.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한다든지 페미니즘에 동의하지 않거나 오히려 극렬히 반대하는 여성이 있다든지 스트리트 갱스터 문화를 싫어해서 착실하게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한 후 전문직에 종사하는 흑인 엘리트가 있다든지 하는 등의. 이런 모순은 설명불가능한 것이었지만 그람시가 창안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골자인 "지배계층이 만든 문화에 구성원들이 동의해서 스스로 따르게 되었다" 로 간단히 설명가능해졌어요. 즉 독재자나 철인의 존재는 딱히 관계없어요. 결국 행동은 개인 레벨이고, 그 개인이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시스템. 폴리포닉 월드에서의 시스템은 바로 개인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형성하여 유도하는 것이죠. 이것을 반드시 독재자나 철인이 수행하는 게 아니예요. 당장 오늘날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스마트폰이 누군가의 강압에 의해 보급된 건 아니잖아요? 이미 여기까지만 봐도 결론은 자연스럽게 났어요.
셋째 쟁점에 대해서는 경제학에서의 외부효과(Externality) 및 무임승차자(Free Rider)를 간과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외부효과는 글자 그대로 행위의 밖에 있는 제3자가 영향을 받는 것을 말해요. 즉 받는 영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으로 직접 비용을 지출하거나 하는 건 없어요. 그리고 국방, 치안 등의 각종 서비스는 누군가의 이용을 강제로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무임승차자의 존재는 필연적이죠. 그러니 상정하신 그런 기여자만을 위해 작동하는 시스템은 발상은 가능하더라도 발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다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해요. 게다가 어떠한 막강한 행위자라고 하더라도 필요한 모든 사항을 그렇게 시스템에 기여하는 사람만이 수혜자가 되는 모델에 적응할 수 없어요.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나는 모 유명인이 될 수 없지만 그 유명인도 내가 될 수는 없다" 라는 문장으로 요약가능하죠. 문제의 그 유명인이 포럼의 설립과 운영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았지만 그 유명인이 포럼을 완전히 모르는 상태로 존재한다고 상정하더라도 포럼에 접속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는 단언못하잖아요? 그런 거예요.
여러 상황은 사회구성원들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비록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어요. 20세기 후반에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출주도성장으로 세계적인 경제강국이 되었고, 남미 국가들은 같은 시기에 수입대체전략으로 기존의 경제강국 지위를 잃고 만성적인 불황에 시달리고 있어요. 폴리포닉 월드는 당시의 동아시아 국가들에, 현실세계는 남미 국가들에 비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자면...
폴리포닉 월드에 대해서는 "폴리포닉 월드" 로 지칭해주시길 부탁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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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ter
2024-06-17 23:16:40
여러모로 제 생각이 짧았다는 것만 들통났네요. 제가 마드리갈님의 반박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는데,
1. 오히려 현대 사회이기에, 체제의 변동이 드물거나 힘들었던 과거에 비하면 훨씬 보완과 변화가 용이하다.
2. 시스템을 따라서 이득을 보는 (더 나아가 그 시스템을 유리하게 바꾸는) 것도 자유, 그 시스템과 스스로 괴리되어 손해를 보는 것도 자유다.
3. 어떠한 시스템으로 인한 혜택의 적용 범위 혹은 그 시스템 관리자의 권한의 범위를 완벽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 걸까요?
한편으론 2번과 3번에 대해 '결국 개인의 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 최근에 여기저기서 들은 뉴스들을 보면 2번처럼 '잘못된 선택을 해서 손해를 본다'는 인식보다는 공유지의 비극처럼 그냥 다같이 피해를 보는 상황으로 흘러가는 것 같네요. 아마 그래서 이전 글에서의 코멘트도 '이런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시스템으로 해결이 될까...' 이런 마음에서 비관적으로 적었던 것 같네요.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그래서 과거가 좋았냐'라고 생각해보면 더더욱 아니지만... 크게 보면 이 또한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진통 내지 과도기라 보고 싶지만, 제가 무슨 신도 아니고, 정말로 그러한 건지 막막하네요.
마드리갈
2024-06-18 00:20:28
셋 다 맞게 보셨어요.
현대사회니까 그만큼 유연하고, 결국 사회현상은 여러 개인들의 행동의 합과 그것들의 소산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시스템에 따라서는 특정인의 배제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성질의 것도 있어요. 그 취지로 말씀드렸어요.
사실 말씀하신 공유지의 비극이 아주 극단적으로 표출된 게 "영끌", 즉 영혼까지 끌어모을 기세로 대출이든 뭐든 동원해서 어떻게든 자금을 모아서 집을 사는 그런 행태죠. 인간이 주어진 룰을 꼭 따르는 것도 아니면서, 어떤 경우에는 그 룰만을 절대적인 금과옥조로 알게 되는. 특히 경쟁심리가 가득한 한국사회에서 그런 현상이 지독하게 나타나는데 이것도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선택을 해서 손해를 보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이것을 극복하는가 극복하지 못하는가에 따라 사회의 명함은 달라질 거예요. 그리고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도 개인의 선택이 따르지 못하면 작동하지 않고, 개인이 현명하고 합리적이라도 시스템이 불비하거나 방해요인이 된다면 그 결말은 이미 파멸엔딩으로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어렵죠. 최악은 면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