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학생들에게 국어 단어 묻자...돌아온 처참한 대답
[MBC] "문해력 떨어진다는데‥" 디지털 교과서 괜찮을까?
[SBS] 사생대회가 죽기살기 대회?…중고생들 국어실력 어쩌나
[YTN] 영어 실력은 느는데...'국포자'는 역대 최대
요즘 유튜브의 뉴스영상에서 종종 언급되기 시작한 게 근래의 청소년 세대(소위 MZ 세대)의 문해력 논란입니다. 사흘과 나흘을 헷갈린다든가 하는 일상언어의 혼란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시험문제 풀이를 위한 국어적 교육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다양하다고 합니다. 제가 이미 일전에 무식은 죄가 아니다? 라는 제목으로 중학생들이 단어의 뜻을 몰라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죠. 문제는 그게 2021년 6월의 일인데, 3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됐다니 참... 할 말이 없습니다.
일단 뉴스에 나오는 예시를 취합해 보겠습니다.
(1) 사례를 하다 - "예시를 드는 것"
(2) 조짐이 보인다 - "욕 아닌가요?"
(3) 금일까지 제출 - "금요일까지 내라고?"
(4) 사생대회 - "죽기 살기 대회?"
대체로 단어의 뜻을 하나만, 그것도 꽤나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2)의 경우 인기 유튜버 채널에서 망했다는 의미로 속어인 '조지다(혹은 과거형인 조졌다)'를 자주 사용하던데 이러한 '오해'와 크게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죠. 다른 예시도 마찬가지로 비슷합니다. (4)는 아마 사생결단에서 사생만 떼어다가 이해한 듯한데, 애초에 그런 대회가 있기나 할까요? (1)은 어째서 사레가 들리다라고는 오해하지 않았을까요? (3)은 그저 오타라고 생각한 걸까요? 그저 '알고 싶지 않으니까 알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얼핏 편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손해인 사고방식이 엿보입니다.
그래서인지 4번의 YTN 뉴스처럼 "여전히" 국어 교육을 못 한다는 상황입니다. 뉴스 중간에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의 말이 나오는데 "'살랑살랑' 바람이 분다고 했을 때, 도대체 '살랑살랑'이 어떤 이미지인지 감이 안 온다는 친구들도 있고, '억세게' 비가 온다고 했을 때 비가 어떻게 '억세게' 올 수 있는지 이런 것에 대한 의미 이해가…."라고 하죠. 게다가 2번의 MBC 뉴스처럼 디지털 교과서의 사용이 도움이 될지 고민하는 현장의 또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 당장 제가 링크한 3년 전의 글에서 보다시피 점점 국어능력이 부족해지는 것이 눈에 선한데, 환경을 바꾼다고 없던 국어능력이 생길 것 같진 않아 보입니다. '공부방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거야'랑 뭐가 다를까요.
그렇다면 전문가(?)의 의견은 어떨까요? 포럼에서 몇 번 언급됐던 일본의 교육만화 "드래곤 사쿠라(정발명 꼴찌 동경대 가다)"의 원작 만화에서는 작중에서 초빙된 국어 전문 선생 아쿠타야마 류자부로(짐작하셨겠지만 이름과 생김새 모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패러디입니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국어야말로 모든 교과의 기초. 국어에 충실하지 않고서는 모든 교과의 성적이 올라갈 수 없습니다. 수학, 과학, 사회…. 시험 문제는 모두 일본어로 되어 있죠. 영어조차도 일본어로 해석해 생각합니다. 이럴 때 독해력이 부족하면,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올바른 해답에 다다갈 수 없게 됩니다."
실제로 작중에서는 팀 러쉴로우(Tim Rushlow)의 "She Missed Him"의 가사를 활용해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면 해석을 전혀 딴판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일상생활에서 여러가지를 보고 "왜?"라는 질문을 통해 '제대로 읽기'를 실천하는 법을 알려주거나, 귀국자녀용 논술시험을 살짝 바꿔서 '객관적으로 논하는 방법' 등을 가르칩니다. 게다가 이건 그냥 작가 미타 노리후사가 아무렇게나 지어낸 얘기가 아닙니다. 저도 이제 알았는데, 짜투리 코너에서 소개된 데구치 히로시(出口汪 / 단행본 발매 당시 동진위성학원 강사 겸 대학입시학원 SPS 주재 겸 총괄교장, 現 주식회사 스이오사 대표)가 강조한 내용을 작품에 녹여낸 것이더군요. (혹시나 해서 일단 영어로 이름을 검색해보니 동명이인과 얼굴이 뜨는데 머리숱은 부족해졌으나(...) 웃는 인상이 단행본에 수록된 얼굴과 똑같아 쉽게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만화를 독파한 제가 단언하건대 대체로 일본어에서 한국어로만 바꿔도 성립하는 이야기가 꽤나 많습니다. 애초에 성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어란 결국 문법체계와 그 안에 녹아든 문화가 다를 뿐이지, '사람들 간에 소통하기 위한 도구'임은 변함이 없거든요. 시험문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출제자와 소통하기 위한 것이고, 작중에서도 출제위원들의 '오류의 여지는 최대한 남기지 않는다'는 고충(?)을 거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약간 의외(?)의 결론이 나옵니다. 결국 국어를 못한다는 것은 사람들 간에 소통할 능력이 떨어지거나, 심하면 소통할 생각조차 없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렇게까지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코로나 사태 때문에 원격수업으로 사회성을 비롯해 여러가지를 배우지 못한 코로나 세대란 말이 있고 그 세대 이후로도 국어능력이 떨어진다는 보고가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무지하다고 웃어넘길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야 이미 성인이니 해당사항은 없습니다만 고민되는 게 딱 하나 있습니다. 언어는 결국 사회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수많은 유행어와 속어와 밈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이유죠. 문제는 이러한 세태가 역시 언어의 일부인 번역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분명 오타나 비문 없이 표준어로 올바르게 번역했는데 알아듣지를 못하겠다고 트집을 잡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물론 위에서 거론했던 뉴스들이 조회수를 위해 과장하는 경향이 있고 또 정상인(?)들이 많을테니 당장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3년 전에도 그랬는데, 앞으로 3년 뒤에 얼마나 국어능력이 향상됐을지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면... 썩 좋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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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SiteOwner
2024-06-30 12:02:33
소개해 주신 영상 4건을 다 봤습니다.
사실 이 문제를 지적하려면 밑도 끝도 없겠습니다만, 단기해법은 둘 나올 것 같습니다. 하나는 라인 사태에서 보여줬던 국내에서의 라인에 대한 관심급증에서 보듯이 일본과 엮으면 없던 애국심을 만드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섹스어필입니다. 즉 남성에게는 근육질이 되고 발기력이 좋아진다고, 여성에게는 가슴이 커지고 다리가 길어진다고. 그러면 이야기는 확실히 달라집니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에는 흐지부지되기 좋고, 후자의 경우는 한국사회가 신체와 성에 대해서는 실제로는 아주 밝히면서 표면적으로는 엄숙하고 고결한 척 온갖 위선적인 면모를 보이는 이중성이 팽배해 있으니 시도조차 못하겠지만요.
장기적으로 보면 이 문제는 어디서부터 봐야할지 솔직히 답이 안 나옵니다.
원인은 여럿 있는데, 언어에 관심없는 사회기조, 입시에 안 나오면 무시하는 교육환경, 한자배척 등 사회에 팽배한 반지성주의, 속어를 무분별하게 유입시키는 형태로 제작된 미디어의 범람, 생각하기 싫어하는 행태의 일반화 등의 것이 대표적으로 그런데다 경중조차 제대로 가리기 힘들어져 있습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주 끔찍하게 손해를 보고 정신을 차리는 식의 극약처방밖에 안 남았습니다만, 못 견딜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 라는 이 속된 표현조차 통용되지 않을 게 보입니다. "손발이 고생할 바에는 그냥 죽자" 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수년 전부터 나돌던 "세줄요약" 도 나중에는 "한줄요약" 이나 "한단어요약", 나아가서는 "한글자요약" 으로 갈 것 같습니다. 예전에 썼던 글인 그럼, "아아" 는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서 상정했던 수용곤란한 문제가 발등 위에 떨어지는 불이 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Lester
2024-06-30 20:55:46
말씀하신 극약처방도 결국 해답이 되지 못할 거라 봅니다. 지금도 인터넷 어딘가에서 사용되는 "이민가면 그만이야"나 "자살하면 그만이야" 같은 유행어가 현재 상황을 잘 나타내 주니까요. 약간 현실에 대한 포기 혹은 자기파괴적 저항 같은 거죠.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하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그저 세금과 노후대책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스스로 존재를 지워서 복수하는 것' 정도라고 해야 하려나요. 얘기가 살짝 샜지만 언어능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만들지 않았으니 언어능력이 늘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래도 희망같지 않은 희망이 있는 것 같긴 합니다. 바로 전문가적 지식이나 소양이 필요한 직업군은 누군가가 하기는 해야 하니, 그 쪽으로 진로를 정한 사람이라면 상대적으로 (시험장에 오지도 않는 허수 응시자를 포함해서) 경쟁자가 줄어들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이런 식으로 전문가나 소비자 혹은 공무원과 민원인처럼 양쪽 모두 언어능력이 부족해지면 결국 감정에 의존하면서 파탄이 나겠지만요.
요즘 저도 문해력이 떨어진 것 같아서 제 주장조차 제대로 정리를 못하겠는데, 아무튼 생각이 깊은 사람일수록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마드리갈
2024-06-30 20:51:18
써 주신 글을 읽고 생각을 해 보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예의 문제는 경로의존성(経路依存性, Path Dependence)과 확증편향(確証偏向, Confirmation)의 소산이라는 생각이.
즉 오늘날의 미디어가 많다고 하지만 젊은 세대가 받아들이는 미디어는 대체로 매우 한정적이고 그래서 그곳에서 취급된 말이 아니면 아예 인식의 범위밖에 있어서 전혀 모르는 게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흔히 잘 쓰이는 어휘를 잘못 이해하는 것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진 데에서 그렇게 결론낼 수 있어요.
모든 것의 기초를 소홀히 해서 제대로 되는 건 없는데, 그런 자체도 인식이 없으니 이렇게 부실화되면 결론은 뻔해요. 사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각종 한류컨텐츠들도 실질적인 창작자들은 기성세대 쪽이 많은데 그 사람들이 현업을 떠나서 세대교체가 된다면 과연 계속 주목받을 수 있을지. 실체있는 사물인 건축물도 날림으로 짓고 저절로 부서지게 조장하는 국민성으로 실체있는 사물이 아닌 언어와 문화를 소중히 할 리가 없어요.
지금 단계에서는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들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어요. 그들이 정말 곤란한 상황하에 놓이게 될때까지는.
Lester
2024-06-30 21:03:46
아동들에게 가능하다면 유튜브를 보여주지 말라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더군요. 분명 육아에는 편하겠지만 유튜브는 일방적인 전달매체이기 때문에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소통'이 없고, 이는 본문에서 말한 "드래곤 사쿠라"에서도 분명히 지적하는 사실입니다. 특히 부모로서 자식에게 '몰라도 돼'처럼 대화를 끊어버리는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더군요. 도리어 일상생활에서 여러가지를 기반으로 소통해서 생각의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뉴스 중에 네이버 웹툰이 나스닥에 상장(KBS)했다는 소식이 있던데, 중복상장인지 분할상장인지 하는 어려운 얘기는 제치더라도 요즘 웹툰은 숫자는 엄청나게 많은데 정말로 두고두고 읽을 만한 작품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세대에 뒤처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재미는 있어도 깊이는 없다'고 말할 수는 있어요. 분명 성공작은 나오겠지만 중요한 것은 전체 시장에서 명작이 차지하는 비중이지, 작품 하나가 얼마 벌었는지는 딱히 상관 없는 것 같습니다.
다소 메마른 소리지만 소 귀에 경을 읽어봐야 소용이 없으니, 그냥 소처럼 살게 놔두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옛날 어른들 말 중에 '소나 말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가 있는데 정말로 그게 되풀이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죠. 우직한 뚝심으로 성공해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