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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과 예담과 메이링, 그 바로 앞까지 마리우스가 다가온 바로 그때.
“응? 뭘?”
하지만 메이링은 역시 태연한 모습을 보인다. 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지으며 예담에게 되묻기까지 한다. 그걸 보고 예담이 당황스러웠던 모양인지, 잠시 말을 잊고 있는데, 민 역시도 메이링처럼 무덤덤한 반응이다.
“왜 그래? 좀 가라앉히라니까?”
“야! 가라앉을 것 같냐!”
예담이 그러든 말든, 민과 메이링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아니, 그러니까...”
그래도 예담의 당황한 표정을 눈치챘는지, 메이링은 예담을 돌아보더니 말한다.
“당연한 거지. 내 주위에 있으면 그 누구든 초능력은 못 써.”
“아니, 그게 가능해요?”
그러고 보니까, 예담에게 생겨난 것 같았던 그 초감각적 예지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너 몰랐구나. 내가 미리 이야기라도 해 줄 걸 그랬나...”
곧바로 민과 예담, 메이링을 향해 마리우스가 달려오는 게 보인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자신이 초능력을 사용할 수 없음을 깨달았는지, 바로 앞에서 멈춰서서는 등을 돌리고 그냥 돌아간다.
“뭐야...”
“너 큰일 날 뻔했다고. 내가 때마침 와서 무사했던 거지.”
“정말요?”
“저기 보라니까.”
예담이 돌아보자마자, 마리우스가 터덜터덜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게 보인다. 그리고 예담이 다시 민과 메이링 쪽을 돌아보는데, 민은 ‘무슨 그런 것으로 무서워하냐’고 묻는 듯, 여전히 마리우스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은 태연한 태도를 보인다. 아니, 정말로 마리우스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야... 자꾸 그러기냐? 나는 두 번이나 죽다 살아났는데! 아까부터 왜 그래!”
“그러니까, 왜 그렇게 심각하게 반응하냐니까.”
“너 같으면 안 그럴 것 같냐?”
예담이 순간 감정이 북받치기라도 했는지 목소리가 올라간다. 그걸 보던 메이링이 예담을 제지하며 말한다.
“그만, 그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그 문제의 초능력자가 이런 상황을 보면 얼마나 좋아하겠어? 일단 지금은 내가 여기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
예담은 여전히 불안해하는 듯하지만, 메이링이 그렇게 말하니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불안감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옆에서 걷는 민을 보더니, 예담은 문득 말한다.
“혹시 네가 근처에 있어서 그 사람이 나를 쫓아온 건가?”
“무슨 말이야! 그랬으면 나를 쫓아왔겠지!”
민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는 건 마치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친구들과 이따가 만나서 뭘 하고 놀지에 대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다.
“야, 너는 무슨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 같다?”
예담이 민의 그 태평스러운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볼멘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민은 ‘그러든 말든’이라는 반응이다.
그런데 그때, 막 누군가가 옆을 지나가는 게 보인다. 딱 봐도 매우 후줄근하게 차려입은 20대 정도 여자다. 무언가 촬영을 하는 것 같은데, 딱 봐도 지금의 상황과는 도무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민도 예담도 그렇게 생각한다. 대뜸 민과 예담 쪽을 돌아보고는 말한다.
“너희들 혹시 좀 키 크고 청바지 입은 남자 못 봤어?”
그 말에 민과 예담은 모두 고개를 내젓는다. 그 여자가 찾는 건 마리우스겠지만, 마리우스 말고도 그렇게 입은 사람은 널렸다.
“에이, 특종인데!”
이곳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관심 밖인 듯, 그 여자는 민과 예담을 뒤로 하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그 여자가 지나가자마자, 예담은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말한다.
“아니, 너는 불안하지도 않냐?”
“그러니까 말인데...”
민은 예담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고 예담과 마주 선다.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러자 예담은 하려던 말도 떠오르지 않는 건지, ‘휴’ 하고 한숨을 내쉬다가, 마치 로딩이 끝난 오래된 컴퓨터라도 되는 것처럼 자기 머리를 두드리며 말한다.
“네가 부럽다. 너같이 강한 능력을 가지면 그렇게 여유가 생기는 건가 봐.”
“알았으면 빨리 들어가. 이러다가 또 걸리겠다.”
그리고 그 시간.
“하아... 내가 여기서 뭘 하려고 했지...”
마리우스는 조금 전의 기억은 없어지기라도 한 건지, 머리를 긁고 흔들며 혼란스러워한다. 분명히 지하철역을 나올 때만 해도 그는 그에게 있어 완전히 새로운 이 도시에서 무엇을 하고 살지 고민을 해 보려던 찰나였다. 아니 정확히 그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는 그런 고민을 했던 게 떠오른다. 그리고 이 순간까지는 기억이 지워져 버린 것 같다. 아무튼, 그는 여기 왜 자신이 있고, 또 뭘 하려고 했는지를 더듬어 보려고 하지만, 기억이 파편화되어 버린 탓에 원체 쉽지가 않다. 그저께 밤, 어젯밤, 또 오늘 아침의 기억은 아예 없고, 그것 말고도 기억 여기저기가 마치 가위로 잘라 버린 듯 끊어져 버린 탓이다.
“다시, 다시. 이런 주택가가 아니라, 어디든 일자리 같은 거라도 찾아봐야 하는데...”
하지만 그런 마리우스의 바람도 얼마 안 가 모래 흩어지듯 사라져 버린다. 오래되지 않아, 예의 그 어둠 속에서 올라온 듯한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온다.
[마리우스, 뭐 하느냐. 어서 가라. 네가 가겠다고 생각한 길로 가라]
“뭐야, 누구야... 누구냐고!”
마리우스는 그렇게 외치지만, 곧바로 또다시 어둠이 그의 머릿속을 집어삼키고 만다. 그리고 잠시 후, 또다시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어딘가를 응시하고서 말한다.
“좋다... 목표, 다시 고정!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겠다!”
한편 리암은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 마리우스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 도대체 어떻게 볼트 선배를 그렇게 만들었나, 알고 싶었다고!”
“정말? 그러다가 네 목숨을 저 녀석한테 갖다 바치면 어쩌려고 그랬어?”
그렇게 리암에게 말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까 예담과 만났던 서언. 리암과는 잘 아는 사이인데, 대학에서 같은 교양 수업을 듣다가 서로 친해진 사이다. 리암이 ‘초능력 방범대’ 동아리 활동을 한다는 것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저 마리우스라는 녀석이 강한 능력자인지, 너도 모르는 거 아니잖아! 그 선배가 당했다고. 알겠어?”
마리우스라는 이름을 또다시 듣자, 리암의 눈이 순간 흔들린다.
그 문제의 초능력자, 마리우스는 1주 전쯤 처음 VP재단에 활동이 포착되었는데, 지금까지 VP재단에 보고된 적이 없는 능력자였다. 첫 번째 사건은 그가 처음 포착된 시점이었는데, 세라토 교외의 한 소도시에 살던, VP재단의 관리 대상인 초능력자가 죽은 채로 발견된 것이었다. 마치 그의 생명력을 다 빨려 버린 것처럼, 껍데기만 남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 사망한 초능력자, ‘핑켈만’은 비록 행실이 좋지 못해 사건·사고 뉴스에 계속 나오기는 했을지언정, 중력을 비틀 수 있는 능력 자체는 강하다고 평가되었고, VP재단에서 측정한 결과도 그랬다. 조사한 결과로는 유의미한 저항도 못 해 보고 죽었을 거라고 했다. 그래도 성과가 있었으니, 바로 마리우스에게 어떤 능력이 있고 또 어떻게 쓰는지 대략적인 파악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사흘 전, 또 문제의 초능력자에 의한 희생자가 나왔다. 두 번째 희생자가 된 초능력자 역시 누구도 그 강함을 의심하지 않을 정도의 강한 능력자였다. 원소의 성질을 바꿔 버린다는 건 누가 생각해도 강한 능력이니 말이다. 거기에다가 첫 번째 희생자처럼 물의를 일으킨다든가 반대로 방송 같은 걸 꾸준히 한다든가 해서 많이 알려진 사람도 아니었고,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가끔씩만 내보이며 조용히 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문제의 초능력자는 그 희생자가 살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는 곧장 그를 찾아가서 첫 번째 희생자와 마찬가지로 껍데기만 남긴 채 죽여 버린 것이다. 그가 바로 볼트라는 별명으로 불린, 리암과 ‘방범대’ 활동도 같이 했던 초능력자였다.
조금은 눈이 흔들리기는 했어도, 잠시 후 리암이 내놓은 대답은 단호하다.
“그러니까 더 저 녀석을 쫓고 싶은 거라고!”
리암이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마리우스를 쫓으러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지만, 서언은 다시 막아선다. 리암의 그 단호한 대답을 보고 더 그러는 것이다.
“아니, 왜 막으려고 하는 건데?”
“너도 볼트 선배처럼 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라고. 그러니까 제발 좀!”
그렇게 말하며 리암은 서언을 밀치고 다시 마리우스를 쫓기 시작한다.
“야, 리암! 거기 안 서냐! 네 안전을 생각해야... 에휴!”
한편 그 시간, 서언과 리암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예담의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로 가는 산책로. 예담은 거칠게 숨을 쉬며 혼잣말로 말한다.
“후... 오늘 왜 이러냐.”
예담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매우 빨라져 있다. 마리우스가 또 나타날까 봐 도저히 마음을 놓지 못하겠다. 어제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던 동네의 길인데, 한번 걷는 걸음이 수백 걸음처럼 느껴진다.
“초능력자가 좀 많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무슨 ‘슈퍼 빌런’같은 녀석들까지 나타나서 이러는 거냐...”
그리고서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문득 무언가 걸렸는지 뒤를 한번 돌아본다. 마리우스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게 아니라, 잠시 시선에서 벗어났다는 거지만.
“이제 집에 들어가면 좀 나아지려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불안하다. 누군가가 뒤에 서 있는 것 같다...
돌아본다.
“어, 뭐야?”
예담의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뭐야...”
마리우스가, 그의 등 뒤에 서 있다. 그것도 마치 자신에게서 도망가는 먹잇감을 찾은 맹수가 된 것처럼. 어찌나 놀랐던 건지, 예담은 소리를 지를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눈을 뜨고, 어떻게 여기서 벗어날지 고민할 뿐.
“어... 어...”
그러다가, 어떻게 그 생각이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담은 주위에 사람들이 몇 명 있는 걸 보고는 재빨리 한쪽의 갈림길을 가리키며 소리를 지른다.
“도둑이야!”
예담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린다. 마리우스 역시도 순간적으로 그쪽으로 시선이 쏠린다. 그리고 예담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이 가리킨 반대편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시선에서 예담이 사라지고, 이윽고 도주하는 모습을 확인한 마리우스는 무엇인지 모를 미소를 짓는다.
“훗, 제법이구나. 하지만 시간을 좀 벌었을 뿐.”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리우스는 다시 예담을 뒤쫓기 시작한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서 아까의 학교 근처 주택가까지 다시 왔다. 힘이 점점 빠지기 시작한다.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헉... 헉...”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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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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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17:56:39
역시 초능력을 무력화하는 메이링의 존재가 정말 소중합니다. 뭐랄까, 군사분야로 치면 방첩분야나 전자전 플랫폼같이 든든하군요. 마리우스가 일단 추격을 멈춘 것만 해도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이상한 사람들이 출몰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으니 불안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라서 그게 아쉽습니다.
그나저나 참 집요하군요. 마리우스는 예담을 쫒고, 리암은 그 마리우스를 쫓고, 이미 볼트는 마리우스에게 피살당한 상태이고, 끔찍합니다.
시어하트어택
2024-08-04 23:27:18
저런 이능력 무효화 계열 능력이 참 유용하긴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다른 능력이 없는 이상 일반인이나 마찬가지라는 건 단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건 마리우스도 예외는 아니기는 합니다만...
마리우스의 에피소드는 이제 후반부입니다. 마리우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계속 지켜봐야겠죠.
마드리갈
2024-08-05 19:59:36
메이링의 초능력 무력화는 이럴 때에 정말 소중하네요. 물론 마리우스가 물리력으로 예담을 어떻게 해 볼 수는 있겠지만 보는 눈이 많은데다 그의 목적이 겨우 1명만 습격하는 건 아닐 거니까 여기서 일단은 물러나네요. 하지만 메이링과 헤어지고 나니 다시 추격하는 걸 보니 역시 집요하기는 집요하네요. 징그러울 정도로.
그나저나 지나가던 여성 스트리머는 대체 누구일까요. 얼마나 후줄근할지는 이미지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왜 저렇게 사나 싶나 하는 인상이 들지도 모르겠네요.
시어하트어택
2024-08-11 20:34:56
마드리갈님의 말대로, 마리우스가 만약 예담을 흡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무언가 있으니까 저렇게 쫓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