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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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맞이하여 시작된 폴리포닉 월드 포럼의 프로젝트인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열여섯번째는 프랑스 및 이베리아반도편으로 결정되었어요.
이번에도 이 지도의 편집에 TheRomangOrc님께서 힘써주셨어요.
이 점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원본 및 편집된 지도를 같이 소개할께요.
원본이 일본어 사용자를 상정한 일본국내의 출판물인만큼 1924년 발행 당시의 일본의 관점을 그대로 보일 수 있도록 원문표현은 가능한 한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점을 명시해 드릴께요. 해당 표현에 대해서만큼은 저의 주관이 배제되었으니 그 점을 꼭 염두에 두시길 부탁드려요.
그러면 원본을 소개할께요.
당시 표기방식은 가로쓰기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방식이예요. 게다가 현대일본어가 아닌 터라 한자 및 히라가나의 용법도 현대일본어와는 차이가 여러모로 두드러져요.
그러면, TheRomangOrc님께서 편집해 주신 한글화 지도를 소개할께요.
손글씨로 표기된 것은 자연관련 사항으로 갈색은 산지, 남색은 해양, 녹색은 국가 및 속령, 보라색은 도시, 검은색은 기타 특기사항인 반면, 고딕체로 표기된 것은 각 지역의 특이사항이니까 참조해 주시면 좋아요.
원문자에 대해서도 이런 원칙이 있어요.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는 각 지역의 상황, 그리고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는 추가설명이 필요한 각 지역에 대한 표시임에 주목해 주세요.
By Courtesy of TheRomangOrc
이번에 소개되는 지역은 서유럽 중 프랑스, 이베리아반도에 있는 주권국가인 스페인(=에스파냐) 및 포르투갈과 반도 남단의 영국의 속령인 지브롤터(Gibraltar)로 비교적 한정되어 있어요. 게다가 주권국가의 상황은 지도의 발행시점인 1924년에도 현재인 2024년에도 완전히 동일하니까 혼선이 없을 거예요. 각 특기사항도 지역도 지도의 위쪽부터 아래쪽으로 시선을 옮기시면 편리하게 보실 수 있으니까 이 방식을 권해 드릴께요.
단, 이 지도에는 피레네산맥(Les Pyrénées/프랑스어, Los Pirineos/스페인어, Els Pirineus/카탈루냐어)의 가운데에 있는 안도라(Andorra)에 대한 서술이 빠져 있으니까 그 점을 감안하셔야 해요. 당연히 1924년에도 2024년에도 안도라는 1287년 건국 이래 존속중이니까요.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 항목으로 시선을 옮겨볼께요. A부터 I까지 9개 항목이 있어요.
A. 미술
19세기 서양문화사에서는 이런 경향이 뚜렷하게 보이죠. 음악은 독일 출신 위주로, 그리고 미술은 프랑스 출신 위주로. 그리고 프랑스의 수도이자 제1도시인 파리(Paris)는 화가들이 몰려드는 미술의 도시로 성장하였고, 특히 파리 북부의 "순교자의 산" 이라는 의미의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 주변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외국 출신의 미술가들도 모여 사는 예술의 장이 되었어요. 그 지역에 정착했던 외국인 미술가들이라면 이탈리아 출신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 네덜란드 출신의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및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 스페인 출신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등이 있었어요.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이전까지는 1871년부터 프랑스 발상의 "아름다운 시대" 라는 의미의 벨에포크(Belle Époque) 미술사조가 대유행해 이 시대의 공공건축은 매우 크고 또한 정교한 아름다움이 돋보였어요.
이미지 출처
Les rues couvertes | Après avoir fait les belles heures du Paris de la Belle Epoque ont-elles un avenir ? | 04/07/2069, 2019년 8월 6일 FuturHebdo 기사, 프랑스어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고, 그 전쟁의 참화 속에서 다다이즘(Dadaism)이라는 일종의 반예술운동이 독일 및 스위스에서 일어났고 전쟁이 끝난 이후 1921년에는 프랑스의 화가 쟝 크로티(Jean Crotti, 1878-1958)의 주도로 다다이즘 미술작품이 소개되었어요. 또한 이런 사조는 일본에도 유입되어 마보(Mavo)라는 이름의 다다이스트 창작그룹이 1923년에 생겨났어요. 이 다다이즘의 영향은 지금도 꽤 커서, 일본의 츠부라야프로덕션(円谷プロダクション)의 미디어 프랜차이즈인 울트라시리즈(ウルトラシリーズ) 중 1966년작 특촬물인 울트라맨(ウルトラマン)에 처음으로 나오는 괴수캐릭터인 삼면괴인(三面怪人)이라는 별명의 다다(ダダ) 또한 이 다다이즘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6년 도쿄에서 개최된 다다이즘 100주년 행사에 이 캐릭터가 초정되기도 했어요.
이미지 출처
(삼면괴인 다다, 츠부라야프로덕션 공식사이트, 일본어)
B. 유행의 선구자
프랑스는 하이패션을 선도하는 나라로서도 세계최고의 이미지를 수성하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유행의 선구자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아요. 사실 1920년대의 모던걸(Modern Girl)이라는 여성패션의 스타일 또한 프랑스 발상의 것. 당시 조선총독부 체제하의 조선에서도 그 패션스타일이 "모단껄" 이라는 표현으로 수입되었는데, 당시에 유행했던 숏컷 헤어스타일이 주는 인상이 강렬했다 보니 예의 "모단" 의 의미인 "현대적" 보다는 한자를 붙여 毛短, 즉 모발이 짧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어요.
이미지 출처
1920s Day Dress, 2014년 1월 1일 Frocking Frocks 기사, 영어
1920년대의 복식사에는 다른 시대와 달리 유독 이질적인 요소가 있어요.
대체로 여성복에서는 가슴을 강조하는 게 일반적이죠. 여성은 제2차 성징을 통해 가슴과 골반이 커지는 등 체형 자체의 곡선미가 두드러지다 보니 어떻게든 가슴의 라인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이 시대의 유행은 정반대로 가슴이 억지로 눌린 듯 평평하게 보이는 스타일이 주류가 되어 있어요.
이미지 출처
A 1920s Fashion History Lesson: Flappers, the Bob, and More Trends That Made the Roaring Twenties Roar, 2024년 4월 1일 VOGUE 기사, 영어
사실 이때 활동하던 디자이너 중 여성패션의 역사를 견인하게 될 걸출한 인재가 있었어요. 프랑스의 패션디자이너 코코 샤넬(Coco Chanel, 1883-1971). 프랑스 각지를 전전하면서 불안정한 삶을 살다가 재봉을 배우게 되며 의류제작을 할 때 이외에는 댄서로서 공연도 했던 그녀는 부유하고 젊은 퇴역 기병장교의 정부(情婦) 생활을 하면서 상류사회의 다양한 문물을 익히고 또 그 장교의 영국인 친구와의 불륜관계를 맺으면서 후원을 받아 노르망디(Normandy)의 도시 도빌(Dauville)d에 부티크(Boutique)를 내면서부터 성공가도가 시작되었어요. 이후 1915년에는 비스케만(Bay of Biscay) 해안의 스페인 접경도시인 비아리츠(Biarritz)에서 의류회사를 설립하여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의 부유한 고객들을 상대로 영업에 대성공하여 이듬해에는 그 후원받은 금액을 모두 변제했고, 이후 제정러시아의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Дмитрий Павлович, 1891-1942)과의 교제생활을 구가하면서 1918년에는 파리에 진출하고 1921년에는 파리 중심가의 건물들을 사들이면서 사업의 확장에 성공했을뿐만 아니라 제정러시아 출신의 화학자엔 에르네스트 보(Ernest Beaux, 1881-1961) 개발한 합성향수 샤넬 넘버5(Chanel No. 5)도 발매해요. 이 지도의 발행시점인 1924년에는 프랑스의 사업가 피에르 베르메테르(Pierre Wertheimer, 1888-1965)와 제휴하여 오늘날의 패션아이템 기업인 샤넬을 설립했어요.
이 시대의 패션을 상징하는 어휘로는 "선머슴" 을 뜻하는 프랑스의 라 가르송(La Garçonne) 및 "갓 날개를 퍼덕이는 어린 새" 를 의미하는 영어의 플래퍼(Flapper)가 있어요. 20세기말부터 21세기의 시작에 걸쳐 유행했던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Sex and the City) 등의 여성향 창작물인 칙릿(Chick lit)이라는 용어에도 역시 어린 새나 병아리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참 의미심장해요.
C. 에펠탑
파리의 상징, 그리고 프랑스의 상징 하면 역시 에펠탑(Tour Eiffel).
이미지 출처
Eiffel Tower: Everything You Need to Know, 2024년 8월 8일 Architectural Digest 기사, 영어
프랑스의 토목공학자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 1832-1923)이 1887년에서 1889년에 걸쳐 건설을 추진한 300m(=984피트) 높이의 이 철탑은 프랑스 대혁명의 100주년의 해인 1889년에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의 기념물로서 만들어져 41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기록되고 그 이후로도 파리는 물론 프랑스를 상징하는 구조물로서 전세계에 알려져 있고 지금도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아요. 이후 1957년에 전파탑이 신설되면서 지금의 높이는 330m(=1,083피트).
건설 초기에는 흉물이라고 온갖 비난을 퍼붓던 파리 시민들이 완공 이후에는 태도를 달리했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이고, 완공 후인 1901년인 브라질의 발명가 알베르토 산토스-듀몽(Alberto Santos-Dumont, 1873-1932)이 자작한 비행선 제6호를 조종하여 에펠탑 주위를 비행한 일로 세계를 놀라게 했어요. 브라질이 의외로 세계 유수의 항공기 제조국가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해요.
D. 세계 5대 무선국 중 하나
원문에서는 생아시에무전(サンアッシェ無電)이라고 되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확인해 본 결과 생아시스무선국(Émetteur de Sainte-Assise)의 오기였어요. 1921년 1월 9일에 개장한 이 무선국은 등장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출력이 높은 무선국으로, 같은 해 10월 26일에는 프랑스 최초로 라디오방송을 프랑스 전국에 송출하는 무선국으로서 그 이름을 전세계에 알렸어요. 또한 당시의 기술력으로 이 무선국에서 전파를 전세계에 구석구석 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경이적이예요.
이미지 출처
Le Centre Radio-Électrique PTT de Sainte-Assise (77), La Fibre.info 웹사이트, 프랑스어
위의 흑백 이미지가 1920년 개업 당시의 생아시스 무선국의 풍경을 담은 우편엽서, 아래의 칼라사진이 2013년경에 공개된 해당장소의 전파탑이예요. 설립 당시의 구조물이 거의 그대로인 것도 선명히 보이고 있어요.
사실 이 무선국에는 기적이 3가지 있어요.
첫째 기적은 전파탑이 비상히 높다는 것. 이미 1889년에 개업한 파리의 에펠탑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단일 구조물이고, 생아시스무선국의 구조물은 250m(=820피트) 높이의 11본 및 180m(=590피트) 높이의 5본의 안테나로 구성되는, 높은 철탑이 16개나 들어선 형태였다는 것. 설치된 것 중 180m의 3본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아 2000년에 해체되었어요.
둘째 기적은 제2차 세계대전에도 전혀 부서지지 않고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모두 살아남았다는 것. 독일군은 그 무선국을 점령하여 U보트로 잘 알려진 잠수함의 운용을 위한 초장파통신(超長波通信, VHF Communication)으로 사용했다 보니 프랑스의 시설이라고 해서 부숴야 할 이유가 없었고, 전략적 가치가 중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이 공격목표로 삼지 않았다 보니 기적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어요.
셋째 기적은 이 무선국이 여전히 운용중이라는 것. 프랑스의 통신기업인 글로브캐스트(Globecast)의 자산으로 편입되어 계속 쓰일 뿐만 아니라 인공위성과의 교신은 물론 프랑스 해군의 잠수함부대와의 초장파통신에도 사용되고 있어요. 이런 초장파무선국은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그리 많지는 않아요. 용도가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교신이 불가능한 잠수함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보니 채산성이 좋지는 않으니까요.
E. 보르도
비스케만(Bay of Biscay) 남부해안에 자리잡은 보르도(Bordeaux)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산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고 있어요. 그야말로 세계 포도주의 수도라고 불려도 이의가 없을만한 이 도시는 교외의 지롱드(Gironde) 지방 각지의 포도밭 및 샤토(Château)로 불리는 대저택이 많아서 와인의 생산에도 숙성에도 수출에도 적합한 지역인 동시에 도시의 인구규모로는 파리(Paris), 리옹(Lyon), 마르세이유(Marseille), 릴(Lille) 및 툴루즈(Toulouse)에 이어 프랑스 6위를 기록함은 물론 광역권으로는 파리, 마르세이유, 리옹 및 릴에 이어 4위를 자랑하고 있어요.
이 도시의 와인산업은 2000년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데다 켈트족, 로마, 영국, 프랑스 등으로 지배세력이 바뀌어도 프랑스의 주요지역으로 명성을 구가했지만 프랑스 대혁명 당시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자들인 지롱드당(Girondist)의 일파가 대규모로 살해당하고 도시의 이름도 미국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의 이름이 붙은 코뮌-프랭클린(Commune-Franklin)으로 개명되는가 하면 프랑스의 주요 식민지였던 아이티(Haiti)가 독립하는 바람에 카리브해 지역을 대상으로 한 무역도 망해 버리고 1814년에는 영국의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영국군에 지배당해 버렸어요.
이후 보르도는 나플레옹 3세 시대에 재건되어 보다 아름다운 위용을 자랑했고 1870년의 보불전쟁 당시에는 보르도가 파리를 대신하여 프랑스의 임시수도가 되거도 했어요.
이미지 출처
Top Bordeaux Cabernet Franc, 2016년 1월 13일 Decanter 웹사이트, 영어
보르도 와인의 세계화는 1855년의 파리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 des produits de l'Agriculture, de l'Industrie et des Beaux-Arts de Paris 1855)를 계기로 본격화되었어요. 같은 해에 보르도 와인 공식분류(Classification officielle des vins de Bordeaux de 1855)라는 제도가 만들어졌고, 2,870평방km에 달하는 포도밭 및 13,000명의 포도원 경영자를 기반으로 연간 생산량 9억 6000만병을 기록하는 보르도의 명성이 이 지도의 제작시점의 69년 전에 제도화되고 있어요.
이미지 출처
Bordeaux Wine Regions, Vineyards.com 웹사이트, 영어
그러나 보르도를 와인과 미식의 도시로만 생각하면 안돼요. 사실 보르도는 다른 산업도 매우 발달해 있어요. 특히 항공 및 군수산업도 매우 발달해 있고,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장거리 비즈니시제트인 다쏘 팰콘(Dassault Falcon) 또한 이 도시에서 생산되고 있어요.
이미지 출처
Falcon : la fabrique des avions numériques, L'UISINE NOUVELLE 웹사이트, 프랑스어
F. 투우
스페인어로 코리다 데 토로스(Corrida de toros)로 불리는 투우(闘牛)는 스페인은 물론 이베리아반도의 다른 국가인 포르투갈이나 피레네산맥 너머의 프랑스 남부 지역 등에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익스트림 스포츠. 그리고 그 기원은 로마시대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다 한때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했던 사라센 세력도 16세기의 교황청도 18세기의 부르봉 왕조의 후계인 스페인 왕실도 금지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어느 시대든간에 그 규제가 제대로 지켜질 일 없이 투우가 성행했어요. 그러나 스페인에서도 투우에 대한 논란은 있고, 바르셀로나(Barcelona)를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Catalunya/카탈루냐어, Cataluña/스페인)에서는 지자체 차원에서 투우가 금지되어 있어요. 스페인의 문화를 받아들인 중남미 국가들 중에도 투우가 금지된 국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요.
프랑스의 작곡가 죠르쥬 비제(Georges Bizet, 1838-1875)가 스페인을 배경으로 쓴 오페라 카르멘(Carmen)도 이 맥락으로도 이해할 수 있어요. 투우를 즐기는 문화가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에 모두 걸쳐 있다 보니 스페인이라는 이국적인 배경과 스페인식 이름을 쓰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동시에 스페인과 프랑스에 모두 걸쳐 있는 투우문화가 언급되니까 그만큼 진입장벽도 낮은. 그러나 비제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꽤 어두운 결말로 인해 별로 흥행하지 못했고 그의 사후에야 그의 작품이 재조명된 게 참 안타깝다고 할까요.
그럼 여기에서 그 유명한 아리아를 들어볼께요. 원제는 "당신의 잔을 당신께 돌려드리리다(Votre toast, je peux vous le rendre)" 이지만, 투우사의 노래라는 약칭으로 잘 알려진. 소피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반주하는 불가리아의 성악가 니콜라이 갸우로프(Николай Гяуров, 1929-2004)의 노래로.
오늘날의 투우가 정립된 것은 세비야(Sevilla) 출신의 투우사 호아킨 로드리게스 코스틸라레스(Joaquín Rodríguez Costillares, 1743-1800)가 정립한 팀플레이 방식. 그리고 마지막에 소를 칼로 찔러서 죽이는 투우사가 마타도어(Matador)로 불려요. 정확히는 소를 죽이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마타도르 데 토로스(Matador de toros). 사실 소는 전색맹(全色盲)이라서 투우사가 흔드는 천의 색깔에 흥분하지 않아요. 단지 눈앞의 격렬한 움직임과 투우사 팀의 도발에 화가 나서 눈이 뒤집어져 돌진할 뿐. 화려한 색은 사실 관객을 위한 것이죠.
이미지 출처
Guide to bullfighting in Seville, Seville traveller 웹사이트, 영어
G. 원조 스페인독감
1918년에서 1920년에 걸쳐 전세계를 강타했던 이 인플루엔자 A바이러스의 변종인 H1N1으로 일어난 호흡기질환이 흔히 스페인독감(Spanish Flu)라고 불리긴 한데, 사실 스페인 입장에서는 꽤 억울할 수밖에 없어요. 사실 스페인독감이라는 말 자체가 저널리즘의 맹점을 제대로 노정한 왜곡이었으니까요.
그러면 이게 왜 스페인독감이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을까요? 제1차 세계대전의 후기였던 1916년 무렵부터 전장에서 보고되었던 문제의 괴질은 감염되면 급격히 고열에 시댤리고 몸에 보라색의 멍이 생기다가 죽는다는 현상이 잘 발견되어 퍼플데스(Purple Death)로 알려지게 되었고, 이런 병에 대한 보도는 참전국들이 사기저하를 우려해서 자국 언론에 보도하는 대신 당시 중립을 유지했던 스페인의 언론을 통해 이루어졌어요. 그리고 1918년 5월 21일부터 스페인 언론에 "3일 열병(Fiebre de los tres días)" 라는 표현이 등장했어요. 이 표현이 전세계에 퍼져 각국언어로 옮겨지면서, 이 병이 스페인에서 생긴 게 절대로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페인병 내지는 스페인독감이라는 이름을 달고 알려져 버렸어요. 여기에 더해, 당시의 스페인의 군주였던 알폰소 13세(Alfonso XIII, 1886-1941)가 그 시기에 병을 앓고 있었던 것까지 보도되면서 그 왜곡은 더더욱 강화되었어요. 스페인의 고위관료가 미국에서 항의발언을 했지만 수용되지도 않았어요. 게다가 프랑스는 예의 질병을 미국독감으로 불렀다가 스페인독감이라고 바꿔 불렀는가 하면 독일에서는 이것을 독일군이 많이 희생된 벨기에의 지역명을 따서 플랑드르독감이라 불렀고,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에서는 같은 질병을 브라질독감이라고 하고 브라질에서는 이걸 또 독일독감이라고 하는 등 온갖 표현이 난립했어요. 그뿐만이 아니라 폴란드에서는 반러시아 감정이 높았다 보니 그 시기의 볼셰비키 혁명에 빗대어 볼셰비키독감이라고 부르는 한편, 러시아혁명의 주도세력은 난데없이 중앙아시아의 민족의 이름을 붙여 키르기즈독감이라고 불렀고, 아프리카 각지에서는 백인독감이라고 부른 반면 남아프리카에서는 깜둥이독감(Kaffersiekte)이라고 불렀고, 일본의 지배를 받던 대만에서는 그것을 스모독감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정작 대만에서 경기를 했던 일본의 스모선수 3명은 그 병에 걸린 이후 귀국하지 못한 채 대만에서 병사했지만 그들은 고국인 일본에서는 병을 옮겼다고 경멸당하고...
이렇게 난립한 이름들을 모두 대체한 게 바로 스페인독감이라는 용어였어요.
아래에 소개된 것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발행된 신문인 피츠버그 포스트(The Pittsburg Post)의 1918년 10월 4일 기사. 스페인에서 발원한 병이 아닌데도 스페인의 왕이 걸렸고 앓는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문제의 그 병이 스페인독감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지는 식으로 왜곡이 발생해 버렸고 그 이름은 진상이 모두 밝혀진 현대에도 여전히 잔존해 있어요.
이미지 출처
King of Spain has Spanish flu, Newspapers.com 웹사이트, 영어
이 질병은 전세계에서 적어도 1700만명 정도의 희생자를 냈고 연구에 따라서는 5000만명에서 1억명 정도의 생명을 뺏았다고도 해요. 그리고 8편에서 언급된 봄베이열병(Bombay Fever)의 조상이기도 해서 인도 전역의 하천을 메울 정도로 사망자의 시신이 전국에 넘쳐나 1921년 인구를 10년 전보다 줄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어요. 또한 문제의 H1N1은 1977년에는 중국에서 발원하여 소련에서 2년간 대유행했고, 2009년에는 북미발 신종플루로 나타나서 49만명이 사망하고 나서야 끝났다 보니 결코 과거의 일인 것만은 아니었어요. 타미플루(Tamiflu)라는 상표명으로 잘 알려진 치료약인 오셀타미비르(Oseltamivir)가 본격적으로 쓰이고 나서야 이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했으니까요.
판데믹(Pandemic)으로 여겨지는 질병에 특정지역의 이름을 붙이지 않는 방침은 2015년에야 국제연합 산하기관인 세계보건기구(WHO)가 확립했고, 이 방침에 따라 2019년말에 중국의 무한(武漢, Wuhan)에서 처음으로 보고되어 2020년대의 첫 4년간을 강타한 질병은 초기에 "우한폐렴" 으로 불리다가 코로나19(COVID-19)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어요.
H. 좋은 포도주는 어떻습니까?
와인 하면 프랑스를 연상하기 쉽고 실제로 프랑스가 강국이긴 해요. 그러나 포르투갈 또한 포도주의 강국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죠. 사실 생산량으로 따지자면 이탈리아가 1위, 프랑스가 2위, 스페인이 3위, 포르투갈이 10위로, 이베리아반도의 두 국가에서 생산되는 포도주의 양은 프랑스 전체보다 더욱 많아요. 수출량으로는 상위 3개국의 순위는 변함없지만 포르투갈은 5위로 크게 뛰어오르죠.
지도 원본에 나오는 포르투갈의 한자표기 또한 포도아(葡萄芽, 일본어 발음 부도가(ぶどうが)), 즉 포도의 싹이라는 것도 혹시 그걸 감안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실 포르투갈(Portugal)이라는 나라의 이름은 "아름다운 항구" 를 의미하지만, 한자 가차는 마치 포도주의 나라인 양 다르게 붙여졌다는 게 매우 재미있어요. 그릭고, 포르투갈산 포도주는 고대에는 로마제국에, 그리고 근대부터는 영국에 수출되면서 고평가받고 있어요.
저렇게 여러 병을 들고 있는 남성은 포르투갈어로는 이스칸사웅(Escanção)이라고 불려요. 음료의 전문가를 뜻하는 소믈리에(Sommelier)와 거의 상호호환되는 의미. 실제로 포르투갈에서는 이스칸사웅이 여러 종류의 와인을 병째로 들고와서 손님에게 추천하는 경우가 많아요.
I. 트라팔가해전 1805년 10월 21일
이미 10편에서 언급된 적이 있는 트라팔가해전은 스페인 앞바다에서 스페인과 프랑스의 연합군을 영국군이 수적 열세와 총지휘관인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1758-1805) 제독의 전사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달성한 해전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요. 그리고, 스페인 영토 남단에 있는 지브롤터에 대해서 스페인이 불평하려 해도 군사력에서 완패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어요.
지도에서 묘사된 지브롤터는 큰 대포로 상징되어요. 지브롤터 요새에 설치된 해안포 및 영국 해군의 군함들의 막강한 화력이 그렇게 형상화된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영국도 지브롤터에 대규모의 함대를 주둔시켜 절대로 넘볼 수 없음을 확고히 했어요.
그 다음은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항목. 1부터 9까지 9개 항목이 있어요.
1. 브뤼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Brussels)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관통하는 하천인 세느강(Senne)의 상류에 자리잡은 도시로, 이미 6세기 때부터 정착촌이 들어서 있다가 979년에 도시로 설립되었고, 현재의 벨기에의 수도로 된 것은 1830년의 벨기에혁명이 성공하여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여 첫 왕이 대관식을 연 1831년부터였어요. 프랑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면서 한때 네덜란드의 강역에 속했고 스페인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 종교적으로도 가톨릭 위주인 이 도시는 다언어 기반의 국제도시로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모두 잘 통용됨은 물론 영어 사용자도 매우 많은 유럽의 국제도시로서 명성이 높아요. 또한 프랑스에서 정변 등의 이유로 자유주의자들이 탄압당한다면 망명의 장소로서 이 브뤼셀이 매우 잘 애용되었어요.
이미지 출처
Brussels travel guide: How to do this underrated - and dirt cheap - European capital in two days, 2017년 3월 30일 INDEPENDENT 기사, 영어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브뤼셀에서 1910년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 et Internationale de Bruxelles/프랑스어, Wereldtentoonstelling te Brussel/네덜란드어)가 개최되어 벨기에 전체인구보다 더 많은 1300만명이 관람하는 등의 대성황을 이루었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에 점령되기는 했지만 대량파괴의 참화는 기적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어요.
2. 칼레
지도 원본의 일본어표기가 카레(カレー)라서 요리와 혼동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 나오는 것은 프랑스의 도시 칼레(Calais).
이 인구 7만 이하의 항구도시에 대해서는 이미 12편에서 언급된 적이 있어요. 1909년 7월 25일 프랑스의 조종사 루이 블레리오(Louis Blériot, 1872-1936)가 자작한 단엽기(単葉機, Monoplane) 타입11(Type XI)으로 수행한 런던-칼레 구간에서 이루어진 세계최초의 항공수송의 목적지가 바로 이 프랑스의 칼레였어요.
이 칼레는 한때 영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지만 1558년에 다시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이후로는 그 뒤로 변함없이 영국 방면의 무역항이 되어 있어요.
이미지 출처
Pas-de-Calais, outdooractive 웹사이트, 영어
이미지 출처
The Burghers of Calai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웹사이트, 영어
미술교과서에도 언급되는 동상인 칼레의 시민(Les Bourgeois de Calais) 또한 바로 이 칼레를 배경으로 한 청동상이예요.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 청동상으로도 아주 유명한 프랑스의 미술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이 칼레시의 의뢰로 1884년부터 제작에 착수하여 1889년에 완성한 이 작품은 백년전쟁 당시 칼레의 시민들이 11개월간의 포위전 끝에 1347년에 영국군에 항복한 일에 대한 기념비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묘사된 항복사절은 죽을 목숨으로서 목에 올가미를 매고 성문의 열쇠를 갖고 나가야 했어요. 그 중 당시 칼레 최고의 부자인 에우스타쉬 드 생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가 항복사절로서 가장 먼저 자원했고, 다른 시민 5명도 자원하여 영국 왕 에드워드 3세(Edward III of England, 1312-1377)에게 사형당할 것을 이미 각오한 채 따라나섰어요 그러나 당시 에드워드 3세의 왕비로 프랑스 출신이고 당시 임신중이었던 필리프 드 에노(Philippe de Hainaut, 1310-1369)가 그들의 구명을 호소하여 결국 그 죽음을 각오한 6명은 사형당하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사실 칼레의 시민 동상 건립은 1845년부터 추진되었지만 착수한 미술가 중 1번째였던 다비드 당제(David d'Angers, 1788-1856)가 도중에 타계하고 2번째였던 오귀스트 클레상쥬(Auguste Clésinger, 1814-1883)가 보불전쟁에 군인으로 차출되면서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1884년의 공모전에서 로댕이 선정되어 3번째 미술가로서 이 시민상을 건립하였어요. 당대의 반응은 매우 험악했어요. 죽음을 각오하고 항복사신으로서의 길을 택한 6명의 시민이 왜 이렇게 영웅적이지 않고 고통스럽고 고뇌에 찬 모습인가 하는 비판도 있었어요. 하지만 로댕의 의도는 "바로 그렇게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그들의 고통과 고뇌야말로 영웅적인 자기희생의 의지이다" 라는 것이었어요.
3. 파리
프랑스의 수도이자 제1도시인 파리(Paris)는 세계의 배꼽이라는 수식어도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도시이자 세계의 외교, 경제, 문화, 관광, 미식 등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수도. 그리고 19세기의 마지막 해인 1900년에는 파리 지하철도 개통되었고 이 지도의 발행시점인 1924년에는 하계올림픽도 열렸어요. 그리고 1세기 뒤인 올해 2024년에도 파리 하계올림픽이 다시 열리면서 1세기의 기다림이 실현되기도 했어요.
이미지 출처
Olympic Games Paris 1924, Olympics.com 웹사이트, 영어
파리는 이미 로마제국 당시에 루테시아(Lutecia)라는 이름으로 문헌에 언급된 적도 있지만, 현재의 지명의 어원은 골족의 한 일파로 "창을 든 사람들" 이라는 의미를 지닌 파리시(Parisii)라고 해요. 그리고, 음악이 발전한 나라 하면 흔히 독일을 연상하기 쉽지만 사실 그것은 18세기부터의 일이고 그 이전의 유럽 서양음악의 발전은 프랑스가 이끌어 왔어요. 특히 르네상스 및 바로크시대의 음악을 탐구하면 프랑스 출신의 작곡가들이 대거 언급되고 그들 그 프랑스의 음악가들의 주활동무대가 파리였음도 확인되어요.
이 파리는 한때 프랑스의 수도의 지위를 잃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751년에는 계몽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출판물인 백과전서(Encyclopédie)가 편찬되어 공개되기도 했고 1783년에는 몽골피에 형제(Frères Montgolfier)가 발명한 열기구에 동생 쟈크-에티엔 몽골피에(Jacques-Étienne Montgolfier)가 타고 하늘을 나는 일도 발생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창업한 기업이 2024년 현재에도 여전히 영업중이라는 것. 단 이름은 캔슨(CANSON)이라는 이름으로 달라져 있지만요.
그리고,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 1799년의 나폴레옹의 집권, 1804년의 나폴레옹의 황제 취임, 1830년의 7월혁명, 1848년의 2월혁명, 1871년 보불전쟁에서의 파리함락 등의 현대사의 수난의 중심지로서 피폐해지기도 했지만 1889년 및 1900년의 만국박람회로 부활에 성공하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인구 270만의 대도시로서 급성장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의 체펠린(Zeppelin) 비행선 및 초장거리 곡사포의 목표물로 전락하여 큰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인 1921년부터는 놀라울 정도의 고성장을 보였어요. 특히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불멸의 예술가로 칭송받는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및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및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 무용수 조세핀 베이커(Josephine Baker) 등이 파리로 이주하여 활동거점을 잡았어요. 사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이, 19세기 때 파리시내에 축조되었던 방벽인 티에르의 벽(Enceinte de Thiers)이 헐리는 등 도시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저렴한 7층규모의 아파트들이 대거 들어서는 등 주거비용이 저렴한 점이 컸어요. 이 시대는 당분간 광란의 연대(Les années folles)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1929년의 뉴욕 증시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1931년에 유럽을 덮치기까지 지속되었어요. 지도의 발행시점인 1924년의 파리는 여전히 그 광란의 연대를 구가하는 중이었어요.
4. 리옹
프랑스의 제2도시를 거명하라 하면 리옹(Lyon)과 15편에서 거명했던 마르세이유(Marseilles) 사이에서 논쟁이 있어요. 저는 마르세이유를 인구규모, 파리의 북부문화와는 크게 다른 남부의 프로방스(Provence) 문화의 거점, 지중해 유수의 무역항 및 프랑스에 2개만 존재하는 독립경찰관구가 수도 파리 및 마르세이유가 속한 부슈뒤롱경찰관구(Préfecture de police des Bouches-du-Rhône)인 것을 이유로 삼는데, 이상하게도 중론은 리옹이더라구요. 프랑스의 고속철도 TGV가 상업운행을 처음 시작한 구간이 파리-리옹 구간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도시의 표기에 대해서는 리옹 말고도 리용도 있어요. 지도 원문의 표기인 리용(リヨン)은 현재도 일본에서 통용되는 발음.
이미지 출처
Explore Lyon with these 15 free things to do, 2022년 2월 25일 Lonely Planet 기사, 영어
아무튼, 이 리옹은 프랑스 내륙의 도시 중 2번째의 규모를 자랑하는데다 파리 다음으로 부유한 도시이고 프랑스는 물론 여러 외자계기업도 많이 입지해 있는 프랑스 내륙의 비즈니스거점으로 방문자 중 60%가 사업관련자라는 것도 매우 독특해요. 그리고 세계 각국의 경찰기관 협력을 위한 국제기구인 인터폴(Interpol) 또한 리옹에 본부가 있어요.
그리고 리옹은 의외로 영화 및 근대 칼라사진의 발상지, 발명가 오귀스트 마리 루이 니콜라 뤼미에르(Auguste Marie Louis Nicolas Lumière, 1862-1954) 및 루이 쟝 뤼미에르(Louis Jean Lumière) 형제가 시네마토그라프(Cinématographe)로 잘 알려진 영사기를 발명했어요. 이 뤼미에르 형제는 1903년에는 오토크롬 뤼미에르(Autochrome Lumière)라고 불리는 칼라사진기술도 발명하여 20세기 전반의 사회의 단면을 천연색으로 촬영한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어요. 단 동시대에 활약한 제정러시아 출신의 사진작가이자 화학자인 세르게이 프로쿠딘-고르스키(Сергей Прокудин-Горский, 1863-1944)는 별도로 자신이 발명한 칼라사진기술을 사용했어요.
5. 바르셀로나
스페인 제2의 도시이자 스페인에서 가장 이질적인 카탈루냐주(Cataluña/스페인어, Catalunya/카탈루냐어)의 주도인 바르셀로나(Barcelona).
이 도시는 스페인 제2의 도시라는 위상 이외에도 가장 이질적인 도시로 수도 마드리드와의 적대의식이 매우 큰 것으로도 악명높고 그 경향은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해서 2010년대에 독립운동이 일어나기도 했고 일부 독립론자들이 국외도주하거나 구금되기도 했고, 국가통합 차원에서 스페인 중앙정부가 구금된 인원들을 특별사면하기도 하는 일이 있다든지, 스페인의 최상위 프로축구리그인 라리가(La Liga)의 두 팀인 바르셀로나 구단과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의 라이벌의식이 특히 강해서 그 팀들의 경기를 특히 엘클라시코(El Clásico)라고 부를 정도로 매우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어요. 이 지도의 제작시점에도 이미 엘클라시코는 성황중이었고, 1902년 5월 13일의 초대 대회에서는 바르셀로나가 레알 마드리드를 3-1로 이겼어요.
이미지 출처
Qué ver en Barcelona: 36 planes esenciales para conocer la ciudad, Barceló Experiences 웹사이트, 스페인어
이 도시를 거론하면 역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1852-1926).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라는 약칭으로 잘 불리는 성가족속죄교회(Basílica i 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는 이미 1882년에 기공된 이래 이 지도의 제작시점인 1924년에는 42년간 진행중이었어요. 2년 뒤에 가우디가 노면전차에 치여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은 그때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겠지만...
6. 발렌시아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 이어 스페인 제3도시인 발렌시아(Valencia/스페인어, València/발렌시아어)에는 카탈루냐어 체계의 지방어인 발렌시아어도 통용되고 있어요. 이것까지는 제 지식이 없어서 더 이상 언급할 수는 없지만, 개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만은 확실해요. 특히 후술하는 마드리드가 소비도시의 성격이 매우 강했던 반면 발렌시아는 산업도시로서의 위상이 매우 강했고, 전통의 산업이었던 양잠업 및 오렌지농업은 퇴조했지만 그 공백을 급격한 산업화가 빠르게 메웠을 뿐만 아니라 산업거점으로서의 발렌시아의 위상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이미지 출처
Cruise to Valencia, Spain, Royal Caribbean 웹사이트, 영어
오렌지를 좋아하니까 이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덧붙여야겠어요.
일반적인 주황색 과육을 지닌 오렌지에는 크게 발렌시아 및 네이블(Navel)이 있어요. 껍질이 얇고 과육이 풍부한 이 발렌시아 오렌지는 엉뚱하게도 스페인 원산이 아니라 실은 미국 출신의 멕시코의 육정학자인 윌리엄 울프스킬(William Wolfskill, 1798-1866)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탄생시킨 신품종. 개발 당시 스페인의 발렌시아가 오렌지 수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에 편승하기 위한 상표명이었어요. 게다가 네이블 오렌지의 변종인 카라카라 네이블(Cara cara navel)이 최초로 발견된 곳은 스페인이 아닌 베네수엘라의 발렌시아. 공교롭게도 그 발렌시아 또한 베네수엘라의 제3도시의 위상을 지니고 있어요. 단 그 발렌시아의 지명의 유래는 칸타브리안 산맥(Cordillera Cantábrica))의 남쪽에 있는 스페인 북서부의 발렌시아 데 돈 후안(Valencia de Don Juan)이라서 완전히 다르지만요.
7. 마드리드
스페인의 수도이자 중부에 입지한 제1도시인 마드리드(Madrid). 지명의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이베리아반도의 상당부분이 사라센(Saracen)의 세력하에 있었을 당시인 9세기에 세워지기 시작했던 역사가 있었어요. 1083년부터는 알폰소 6세(Alfonso VI, 1040-1109)의 활약으로 유럽인들이 장악하고, 통일된 스페인 왕국의 수도로 정착한 것은 펠리페 6세(Felipe II, 1527-1598)의 치세 때인 1547년. 이렇게 1492년부터 출범한 통일 스페인 왕국은 건국 55년만에 천도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어요. 참고로 펠리페 6세는 네덜란드의 17개 지방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이게 시간이 흘러 19세기 전반의 벨기에의 독립의 단초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지 출처
Landscape of Light: World Heritage in the centre of Madrid, España 웹사이트, 영어
스페인의 수도 및 제1도시라는 위상에 걸맞게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각 분야의 주축이기도 해요. 하지만 20세기 이전에는 소비가 생산보다 많았고 산업발달이 지지부진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이것이 이 도시의 성격이 퇴영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1890년대에 전기가 보급되는가 하면 1919년에는 지하철이 개통되었고, 마드리드 중심가인 그란비아(Gran Vía) 또한 이 시기에 탄생하여 스페인의 현대적인 도시재건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어요.
또한 마드리드는 출판문화의 성지로 여겨질 정도로 대학, 신문사 및 출판사가 많이 포진한 도시로도 명성이 아주 높아요. 그런데 이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지켰던 스페인에는 독이 되기도 했어요. 각국들이 중립국인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성업중인 온갖 미디어를 이용하여 여론전을 폈고, 전쟁중 각지에 퍼진 호흡기질환이 스페인 발상의 것이 아닌데도 스페인독감으로 불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8. 리스본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Lisbon)은 포르투갈 제1의 도시라는 타이틀 이외에도 세계최초로 내진설계가 적용되어 재건된 도시라는 타이틀이 있어요. 게다가, 리즈보아(Lisboa)라는 포르투갈어 표기가 이상할 정도로 언급되지 않는 점 또한 매우 이례적이예요.
대륙유럽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도시인 이 리스본은 그리스의 아테네 다음으로 오래된 유럽의 수도로, 페니키아인, 로마인 그리고 무어인의 지배를 거쳐 1147년에 포르투갈인이 지배한 이후 1255년부터 코임브라(Coimbra)를 대신하여 포르투갈의 수도로 지정되었어요. 그리고, 대서양을 마주보고 있다는 점이 대항해시대의 개척자로서의 포르투갈의 입지를 다져놓은 제일선의 유럽도시이기도 했어요.
이미지 출처
Lisbon Baixa District Guide: Grand Plazas, Lift & Funiculars, 2024년 9월 15일 DIYCRUISEPORTS 기사, 영어
리스본은 한때 유럽 최대의 도시 중의 하나로 번성했지만 1755년의 대지진으로 철저히 파괴되기도 했다가 재건된 역사도 있고, 19세기에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점령당하여 당시의 왕인 마리아 1세(Maria I, 1734-1816)가 브라질로 피난하여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그 피난지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도 있었는데다 20세기 들어서는 1908년에 카를로스 1세(Carlos I, 1863-1908) 암살사건까지 일어나고 2년 뒤인 1910년에는 제1공화국이 설립되면서 마누엘 2세(Manuel II, 1889-1932)가 폐위되어 영국으로 망명 후 다시 고국의 땅을 밟지 못하기도 하는 등 포르투갈 격변의 중심지이기도 했어요.
9. 지브롤터
남유럽과 북아프리카 사이의 지브롤터해협(Strait of Gibraltar)은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중요한 수로인데 그 앞의 북부지역인 지브롤터는 의외로 영국이 지배하고 있어요. 이렇게 된 것은 1701년에서 1714년에 걸쳐 스페인 내부를 13년간이나 뒤집어 놓은 스페인 왕위계승전쟁(Guerra de sucesión española)이 그 원인. 영국과 네덜란드의 연합군이 이 요충지를 공략한 이후 1713년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에서 열린 평화조약(Peace of Utrecht)에서 지브롤터가 영국령으로 넘어가면서 오늘날에도 이어져 오고 있어요. 그 이후 1967년에는 스페인으로의 귀속여부를 묻는 투표에서는 영국 잔류에의 찬성이 99.64%를 기록하기도 했어요.
이미지 출처
Gibraltar Map, 1704 Luxury Real Estate 웹사이트, 영어
이 지역은 영국의 영토가 타국과 연결된 몇 안되는 사례인 동시에 영국령인데도 자동차가 우측통행을 하는 지역이기도 해요. 워낙 협소하다 보니 지브롤터와 스페인을 연결하는 도로가 지브롤터 국제공항(Gibraltar International Airport)의 활주로 한가운데로 나 있을 정도니까 본토와 같은 자동차 좌측통행의 원칙을 관철하는 대신 스페인과 동일하게 차량이 우측통행하고 있어요. 참고로 공항은 지도의 발행시점의 12년 뒤에야 영국 해군의 비상활주로로 개업했을 뿐이었어요.
이렇게 프랑스 및 이베리아반도편을 마쳤어요.
다음에는 대서양을 건너 카리브해로 향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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