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econd Cursed Life5-1.png (1.19MB)
에이미: "지금 바로 위자를 하고 싶어요. "
코무라: "위자를? "
모치다: "진심이야, 아마테라스양?! "
에이미: "지금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요. "
코무라: "하지만 이제 안전해진 거 아냐? 굳이 그런 위험을 다시 감수할 필요는 없잖아. "
에이미: "지금은 그렇죠. 하지만 곧 악령이 다시 복수하러 돌아올지도 몰라요. "
코무라: "... "
에이미: "잘 들어주세요, 두 분.
우리가 오늘 방과 후까지 무사할 수 있던 건 물론 두 분이 어제의 제 부탁을 잘 들어주신 덕분이에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사실 그 악령이 방심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
녀석은 자신의 절대적 우위를 과신했기에 이곳에 함정을 만드는 것 외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어요.
그것만으로 우리를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놀다 죽이기엔 충분하다 여겼고, 우리가 저항하지 못하리라 여긴 거죠.
하지만, 제가 카즈오씨를 봉인하는 예측 외의 사태가 벌어지자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해 바로 도망친 거예요. "
모치다: "으음... "
에이미: "지금 악령을 놓쳐버린다면 녀석은 이제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예요.
수업시간에 두 분을 노릴 수도 있고 어쩌면 집에 있을 때를 노릴지도 몰라요.
저로선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계속 두 분과 붙어 다니며 보호할 수도 없고요. "
코무라: "그건 그렇지... "
에이미: "그러니까 지금뿐인 거에요.
거기다 녀석이 그렇게 서둘러 도망친 건 자신의 불리함을 스스로 드러낸 거나 마찬가지예요.
다시 붙잡을 수만 있으면 반드시 제가 처리할 수 있어요. "
코무라: "그렇다는 건... 위자를 하면 녀석을 붙잡을 수 있다는 거야? "
에이미: "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
모치다: "그렇지만 어떻게? "
에이미: "애초에 그 악령은 위자로 인해 이곳에 불려와서 여러분을 해치기 시작한 거였죠?
그러니까 이번엔 같은 원리에 더해 더욱 강한 염과 에너지를 담아 그 악령을 강제로 불러낼 거에요.
원래 이런 게임은 사용자가 붙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부름을 청하고 그 중 이를 들은 영이 부름에 응하면서 이루어져요.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 악령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기에 부르는 대상을 특정할 수 있는거죠.
거기에 더해 제가 같이 그 영을 불러들임으로써 강제력까지 행사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
코무라: "후우우... 제길 알았어. 될지는 모르지만 한 번 해보자. "
모치다: "괘, 괜찮을까...? 그렇지만 아마테라스양도 확실하지는 않다며? "
코무라: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거기다 아마테라스양이 이렇게까지 자기 위험을 감수해가며 우릴 돕는데 우리가 주저하면 어떡해? "
모치다: "...하긴, 그건 맞는 말이야...
어쩔 수 없지. 하자, 아마테라스양. "
에이미: "네, 고마워요 두 분. "
코무라: "고마운 건 우리지. "
코무라씨와 모치다씨가 위자를 플레이하기 위한 준비를 할 동안 나는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송신했다.
컴퓨터 동아리실의 모든 조명과 전원이 꺼졌으며 방 곳곳엔 촛불이 켜져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준비가 모두 끝나고 우리는 방 한가운데 테이블에 둘러앉아 보드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에이미: "그럼 여러분은 그때 했던 위자를 그대로 재현해주세요.
저는 구체적인 순서나 방식은 모르니 여러분이 하는 걸 지켜보다 적당한 시점에서 개입할게요.
코무라: "...알겠어. "
모치다: "그럼, 시작하자. "
코무라씨와 모치다씨는 공중을 향해 무언가의 주문 같은 말을 낭송하기 시작했다.
"오, 영혼이여, 들어주세요.
오, 영혼이여, 대답해주세요.
오, 영혼이여, 이리로 와 주세요.
산자인 제가 죽은자인 당신을 부릅니다. "
내가 아는 위자보드에선 시작 시에 별다른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분위기를 잡은 플레이어들이 "지금 누구 있나요?" 나 "누가 와있나요?" 라고 묻고 이후, 영혼의 답변을 표시한데 사용하는 플랜체트가 Yes를 가리키는 게 시작이다.
하지만 지금 코무라씨와 모치다씨는 내가 처음 보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이 게임은 내가 아는 위자보드와 조금 달랐다.
"영혼이여, 우리가 당신을 이 세계로 부릅니다.
지금 여기로 와 주세요.
지금 여기로 와 주세요.
서둘러 여기로 와 주세요."
낭송이 끝나자 플랜체트가 중앙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무라: "허? "
모치다: "무, 무슨 일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플랜체트가 그 자리에서 강하게 요동치며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코무라: "맙소사! 스스로 움직이고 있어! "
에이미: "빨리 모두 손을 떼요! "
우리가 모두 손을 떼었음에도 플랜체트는 계속 진동하고 있었다.
그러다 별안간 공중에 튕기듯 떠오르더니 마치 공기를 뚫고 나가며 나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재빨리 몸을 날려 간신히 피해냈고 플랜체트는 그대로 날아가 벽에 쿵 하고 부딪친 뒤,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플랜체트의 조각들은 여전히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주시하며 또다시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을 대비했지만 그런 나를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방 안의 모든 촛불이 갑자기 꺼졌다.
방 안의 모든 것이 어두웠다.
우리 셋은 어둠 속에서 기묘한 공간감을 느끼고 있었다.
에이미: "의식은 이제 됐어요. 성공한 것 같아요. "
모치다: "무서워... "
갑자기, 어디선가 큰 소리가 났다.
코무라: "뭐야?! "
에이미: "쉿! 동요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 보세요! "
나는 주변의 소리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어둠 속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분명 전에 몇 번이고 들었던 소리였다.
다시금 방 안에 한기가 퍼지고 어둠이 일그러지는듯한 기분이 들더니 그 안에서 어떤 인물이 나타났다.
에이미: "너는... "
그것은 이 모든 것을 시작한 악령이었다.
그러는 동안 무언가를 잡아 끄는듯한 소음이 점점 더 커졌다.
모치다: "도, 도망쳐! "
문에 가장 가까이 있던 모치다씨가 비명을 질렀다.
모치다씨는 공포감에 억눌려 패닉에 빠졌는지 필사적으로 문손잡이를 잡고 허겁지겁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모치다: "아, 안 열려! 열리지 않는다고! "
코무라: "진정해, 모치다! "
모치다 : "여, 열어줘! 누군가! 으아아아악! "
모치다씨는 필사적으로 문을 열려고 노력하며 문을 두드리고 소리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치다: "누가 이 문 좀 열어줘! "
코무라: "잠깐만, 모치다! "
하지만 코무라씨가 뭔가 해보기도 전에 모치다씨는 그대로 돌아서더니 별안간 어둠 속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리고 어느사이엔가 악령의 모습은 사라져있었다.
코무라: "모치다, 안 돼! 돌아와! "
모치다씨는 별안간 책상으로 달려가 모니터며 키보드며 할 것 없이 책상 위의 물건들을 마구 손으로 쳐내며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들쑤시더니 이내 서랍 안에 있던 드라이버를 찾아 손에 쥐었다.
컴퓨터 동아리 회원들이 pc를 조립할 때 쓰던 공구였을 것이다.
그리고 모치다 씨는 다시금 코무라씨와 나를 향해 몸을 돌렸고 그의 얼굴은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기괴한 미소로 일그러져있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바였다.
나는 모치다씨가 패닉에 빠져 문을 두드릴 때부터 모든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악령은 요시키군에게 손자국을 찍었을 때도, 위자보드로 나를 유인해 칼로 찔렀을 때도 카즈오씨를 이용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분명 다른 누군가를 이용해 우릴 공격하리라 판단했다.
그 때문에 난 굳이 코무라씨와 모치다 씨를 끌어들여 같이 위자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생각대로 놈은 내가 끌어들인 모치다씨를 노리고 그에게 씌여 우릴 공격하려 들었다.
그리고 승부는 놈의 비열함을 간파한 나의 승리였다.
모치다씨가 우릴 향해 몸을 돌린 그 순간 나는 재빨리 뛰어들어 모치다 씨의 몸을 붙잡고 껴안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부터 놈이 모치다 씨의 몸을 빼앗고 흉기를 손에 쥔 순간 생겨날 방심을 노리고 있었다.
그 누구건간에 승리를 확신한 순간이 가장 빈틈이 많은 순간인 법이다.
그것은 완벽한 기습 공격이었다.
내 몸이 가로막고 있어서 놈은 내 뒤에 있는 코무라 씨에게 무기를 휘두를 수도 없었다.
모치다: "뭐, 뭐야?!"
의식이 갑자기 돌아온 모치다 씨가 놀라고 당황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 방심하지 않고 모치다 씨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빙의 대상자를 흉내내거나 대상자의 의식을 돌아오게 만들어 빙의가 풀린 척하는 악령들의 속임수는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놈은 그 수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자 다시금 모치다 씨의 몸을 장악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나와의 접촉을 허락한 순간 이미 승부는 결판난 거나 다름없었다.
악령의 의식이 빠르게 내 안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지만, 그 감각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했다.
압도적인 증오와 고통이 나를 삼켰고, 내 온몸은 동시에 짓밟히고 타는 것 같았다.
이것이 키시누마 카즈오를 죽이고 조종한 악령의 힘이었다.
내가 만약 평범한 소녀였다면 강렬한 고통에 순식간에 기절해버리거나 의지를 잃고 잠식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고통을 참아내고 악령을 끝까지 흡수하는 데 집중했다.
제아무리 강한 악령이라 해도 악마에 비하면 가소로울 것이다.
온몸의 신경이 불에 타는 듯하고 뼈가 울리는 격통이 느껴졌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으며 참아냈다.
나의 심장은 내 스스로도 알아챌 수밖에 없을 만큼 크고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으며 팔다리가 경련하듯 후들거렸지만 나는 발끝을 세우고 서서 어떻게든 힘을 주며 필사적으로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악령의 의식은 차츰 형태를 잃고 약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모든 시도 끝에 더 이상 버틸 에너지가 바닥나버렸을 것이다.
그것을 보고 나는 더욱 집중하여 모치다 씨에게 남아있던 악령의 기운을 전부 흡수했다.
악령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나는 모치다 씨를 놓아주고 그대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더이상 악령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악령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모치다씨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지만,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에이미: "모치다씨...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이겼어요. "
모치다: "어... 그, 그래? "
코무라: "하하...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원... "
코무라씨는 상황이 전혀 이해되진 않지만 그래도 어쨌건 끝났다는 데에 마음을 놓고 안도하는 듯했다.
나는 그들의 안전을 확인한 뒤, 눈을 감고 내 안의 악령에 집중했다.
그들이 날뛸 조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존재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쳐있는 상태에선 한동안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매우 지쳐있었다.
나는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그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어차피 다리가 풀려 다시 일어날 수도 없었다.
모치다: "저기... 정말로 고마워 아마테라스양. "
코무라: "그래, 맞아. 네가 아니었다면 우린 다 죽었을 거야. "
에이미: "... "
코무라: "어... 아마테라스양? "
안타깝게도 난 그들의 인사를 들을 수 없었다.
거의 눕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눈을 뜬 건 약 2시간 뒤였다.
그들은 그때까지도 쭉 내 곁에서 내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주었다.
어제부터 쭉 느꼈지만 그들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나 자신의 능력이나 정체를 비밀로 해도 캐묻지 않고 내 말을 묵묵히 따르며 끝까지 의리를 지켜주었다. 오랜만에 지켜줄 가치가 있는 사람들을 구해냈단 사실에 몸 안 가득 충만함이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에이미: "배고프네요... "
코무라: "앗, 아마테라스 양! 일어났어? "
모치다: "배고프지? 자 이거 먹어. "
에이미: "네? "
사실 난 배고프다고 말하면서 그걸 구실로 그들을 식당에 데려가 함께 뒤풀이 겸 식사를 할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내가 자는 사이에 한 명은 나를 지키고 있고 다른 한 명은 편의점에 가 간단한 식사 거리를 사 왔었다고 했다. 심지어 내가 깨어날 때까지 그 음식들을 전혀 먹지 않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내가 하려던 대로 식당에 간 건 아니었지만 난 그들과 함께 몸과 마음을 모두 채워주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에이미: "저기...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어제오늘 있었던 일은 절대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제 이름이나 신원도 모두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 "
코무라: "으응,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할게. "
모치다: "네 덕분에 살았는데 그 정도쯤이야 쉬운 일이지. "
에이미: "고마워요, 여러분... 자, 그럼 이제 돌아가죠. "
나와 코무라, 모치다 씨는 교문 앞에서 헤어졌다.
코무라씨와 모치다 씨는 병원에 가 요시키군에게 병문안하러 가겠다고 했다.
물론,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고 이제 일이 모두 무사히 해결되었으니 안전하단 것만 말하겠다고 했다.
어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단 나와의 약속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형인 키시누마 카즈오에 대한 사실을 요시키군이 알면 큰 상심을 할 것이기에 그를 배려해준 것이기도 했다.
둘과 헤어진 나는 학교에서 호텔을 향해 홀로 걸어갔다.
저녁시간이라 하굣길엔 인적이 없었지만 나의 뒤를 살금살금 따라오는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내가 아니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능숙한 솜씨로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나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걸음 속도를 유지하며 계속 앞을 보고 있는 채로 말했다.
에이미: "학교에서부터 계속 따라오고 있었던거야? "
???: "그야 네가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있었으니까. "
에이미: "미안하지만 일은 무사히 다 끝났어. "
나의 뒤를 따라오던 그 남자는 어느 사이엔가 나의 옆에 바짝 다가와 어느새 나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사이토. 나와 같은 초상기관 소속의 에이전트인 남자다.
사이토: "그런 것 같네. 그래도 뭐 괜찮잖아? 일이 다 끝났다면 이대로 홀가분하게 데이트하러 가는 것도. "
에이미: "꿈 깨.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는 건 사절이니까. "
사이토: "너무하네, 이쪽은 하던 일도 그만두고 바로 달려왔는데. "
에이미: "그건 고맙게 생각해. 사이토씨가 와 준 덕분에 나도 걱정 없이 전력으로 처리할 수 있었거든. "
사이토: "어땠어? "
에이미: "솔직히 말해서 사이토씨가 마침 근처에 있어서 다행이야. 조금 무리했거든. "
사이토: "핫, 네가 조금이라고 말한 것 치고 정말로 사소했던 적은 한 번도 없던 것 같은데? "
에이미: "그건 그럴지도... 지금도 당장 손을 써줬으면 하거든. "
코무라씨와 모치다 씨가 컴퓨터 동아리실에서 한창 위자의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내가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 호출한 게 바로 사이토씨였다. 내가 사이토씨에게 와달라고 부탁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내가 만약 그 악령에게 당했을 경우 사이토씨에게 뒷일을 맡기기 위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그가 제령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우린 호텔 지하에 있는 현재 비어있는 공실에 들어갔다.
물론 기관에 의해 임대되어있는 장소이며 기관 관계자 외엔 출입이 통제된 구역이다.
사이토: "자, 그럼 내가 처리해줬으면 하는 건 어떤 녀석이지? "
에이미: "처리까진 필요 없어. 그저 성불만 제대로 시켜주면 돼. "
나는 가슴에 손을 모은 뒤 심호흡과 함께 내 안에 잠들어있던 키시누마 카즈오씨의 영혼을 빼냈다.
사이토: "성불? 지금 그 영혼 말야? "
에이미: "응... 이번 악령에게 희생당했던 민간인이야. 내가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이미 사망했었어. "
사이토: "흐음, 그렇단 말이지... 알겠어. "
사이토씨는 내가 건넨 키시누마 카즈오씨의 영혼을 받아든 뒤, 정중하게 의식을 치렀다.
그리고 키시누마 카즈오씨의 영혼은 그대로 빛의 입자와 같은 형태로 흩어져 이내 사라졌다.
부디 이번에야말로 안식을 누리길...
사이토: "아직 하나 더 있는 것 같은데? 그것도 성불하는 거야? "
에이미: "아니, 이건 악령이야. 꽤 강했었어. "
사이토: "호오, 그렇다면 제령? "
에이미: "아니 방금 성불해준 것만으로 충분해. 고마워. "
사이토: "그럼, 그건? "
에이미: "이 악령은 포획대상이야.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포획대상 예정이겠지.
내가 정상적으로 임무를 완수해 조사보고를 올렸다면 그 뒤 포획조치가 시도되었을 테니까. "
사이토: "핫, 너 또 사고 쳤구나? "
에이미: "...어쩔 수 없었어. "
사이토: "그런데 그거, 복귀할 때까지 계속 그렇게 품고 있으려고? 그러다 탈 나면 너 골로 간다? "
에이미: "안 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 "
사이토: "흐응... 그건 알지만 너무 과신하진 않는게 좋을거야.
그럼, 내가 할 일은 끝난 것 같은데 이제 남은 시간은 같ㅇ..."
에이미: "배웅은 해줄게. 잘 가. 그리고 고마웠어.
언젠가 답례할게."
사이토: "나로선 지금 바로 해주면 좋겠는데. "
에이미: "그럼 지금 바로 자판기로 갈까? "
사이토: "내 몸값 너무 싸구려지 않아? "
에이미: "자, 실없는 농담은 그만하고 돌아가자.
오늘치 보고서까지 쓰려면 시간이 없어. "
사이토: "쳇, 모처럼 단둘이 있나 싶더라니... 알았어. "
나는 호텔 앞에서 사이토씨를 배웅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 위에는 어제 드라이를 맡긴 교복이 배달되어있었다.
깨끗하게 클리닝 된 교복을 보면서 나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이 교복, 다신 입을 일 없겠지...
타카야마양... 모치다씨, 코무라씨...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해 미안해요... '
고작 이틀뿐이었지만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학창 생활도 즐겁겠지...
난 상념에 젖는 것은 그만두고 이틀 차이자 마지막 보고서를 작성했다.
일시: 20XX. X. XX
작성자: 에이미
인식번호: A-13586
코드명: 손자국(Handprint)
인간의 형태를 지닌 남성 모습의 악령.
XX고등학교의 학생들이 호기심에 실행한 위자 게임을 통해 출현.
게임에 참여했던 학생들에게 주언을 남겼으며 그중 한 명에겐 직접적인 공격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함.
대상을 살해하기에 앞서 몸에 보라색 손바닥 형태의 자국을 찍어 마킹하는 습성이 있으며 손자국이 찍힌 대상은 강한 격통과 함께 실신. 이후 의식을 잃은 상대에게 빙의해 초자연적 현상을 일으킨 후 대상을 살해함.
또한, 악령에 의해 살해당한 희생자는 또 다른 악령이 되어 자신을 죽인 악령에게 종속된 체 같은 행위를 저지르게 된다.
(이는 해당 악령 역시 다른 악령에게 살해당한 희생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 )
사람을 해치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상대를 희롱하고 공포심을 자극한 뒤에 살해하는 것을 선호하며,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존재(종속시킨 영혼이나 빙의한 육체)가 있다면 악령 스스로가 나서기보단 그러한 존재를 이용해 남을 해치는 습성을 보인다.
전반적으로 지능이 높고 교활하여 타겟이 된 대상을 가지고 놀거나, 공포심을 주입한 뒤 관찰하길 좋아하며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도주하는 등 상황을 파악하여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듯 강한 악의와 높은 지능으로 인해 악령으로서의 위험성은 대단히 높으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 자체는 좁은 것으로 판단. 대상을 주살하기 위해선 직접 접촉하거나 지근거리에 있어야 하며, 힘을 행사하는 것 역시 실내의 방 안 정도로 한정되는 등 영향 범위가 좁다.
하지만 정신적 영향의 강도는 상당히 강하여 복수의 대상에게 지각없는 환상을 보게 만들거나, 단일 대상에게 시간과 공간개념을 왜곡시키는 심도깊은 환각, 최면을 건다.
따라서 일반인이 타겟이 된다면 유의미한 저항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속수무책으로 주살 당하여 또 다른 악령이 만들어질 것이다.
관찰자 에이미 요원은 이러한 상황을 인지한 뒤, 악령의 수가 늘어 대응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을 저지하고자 현장판단으로 상황에 개입.
대상 악령을 제압하고 포획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상.
──────────────────────── My Second Cursed Life 5 끝 ──────────────────────
엄청난 고속전개 덕분에 벌써 첫 번째 에피소드가 끝이 났네요.
하지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니고 다음 편엔 My Second Cursed Life의 후일담인 에필로그가 이어집니다.
주인공 에이미의 뒷사정 일부가 에필로그를 통해 밝혀질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사실 저는 본편 중에 쓸 생각이었지만 Ai의 숨 가쁜 전개에 그럴 틈이 없었네요.
그리고 꽤나 강하다는 언급이 나온 것 치곤 악령이 매우 빠르게 제압당했습니다만 전부 의도된 연출입니다.
보스인 악령과 긴박하고 처절한 전투를 묘사하는 것도 좋았겠지만 전 주인공 에이미가 이미 에이전트로서 한 사람 몫을 충분히 해내는 프로란 걸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그 때문에 에이미가 숙련된 경험과 정확한 판단력, 신속한 조치로 악령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걸 묘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거기에 만약을 대비한 후속 조치까지 빈틈없이 짜두어 에이미가 단순 무모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보여드리고 싶었죠.
참고로 막판에 깜짝 출연한 신 캐릭터 사이토는 기관에서 파견된 게 아니라 에이미의 개인적인 요청을 받고 달려 나온 동료입니다.
이전에 에이미가 언급한 대로 기관에 지원 요청을 하면 거절당할 게 뻔했기에 개인적으로 연락해 도움을 청한 거죠.
기관과 에이미에 대한 묘사는 이후 에필로그 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어질 겁니다.
그럼 이상, 다음번엔 My Second Cursed Life 에필로그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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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드리갈
2024-12-09 00:38:18
확실하지 않은데다 자신이 위험에 빠질 게 아주 유력해 보이는데도 저 상황에서 에이미는 저렇게 대응하는군요. 그리고 그 신념의 힘이 모두를 구했어요. 정말 대단해요. 그리고 삽화의 모습은 진정한 애도의 모습이자 극한의 절제미. 이 아름답고 슬픈 상황의 삽화를 보니 눈물이 멈추지 않네요.
에이미는 정말 영웅이예요.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SiteOwner
2024-12-10 23:11:17
굉장한 그리고 과감한 에이미의 영웅적인 결단이 코무라와 모치다를 구했군요.
그리고, 키시누마 카즈오의 성불을 위해 저렇게 서 있는 에이미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엄숙합니다. 교복을 입은 미소녀의 모습에서 엄숙함을 느낀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것만큼은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힘든 상황하에서도 저렇게 보고서를 차분히 작성할 수 있는 게 정말 대단합니다. 최연소 에이전트가 된 이유가 잘 보입니다.
이번에도 속도감 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