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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다 모르는 사람들이야?”
“아니야, 그런 건 아닌데...”
그렇게 말하며, 진언이 보여준 그 사진들을 민이 다시 보니, 한 명은 발렌틴인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민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에이, 그러면 다 모르는 거네 뭐. 발렌틴 이 녀석은 지금 유치장 들어가 있으니까 말이야.”
사진을 보니, 다들 평범해 보이는 인상이다. 각각 남자 2명과 여자 2명인데, 그중 여자 한 명은 어디 식당 같은 데서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맞이할 직원처럼 생겼고, 또 한 명은 그냥 어디 가나 보이는 가정주부의 인상, 남자 한 명은 인상 좋아 보이는 옆집 할아버지 인상, 또 한 명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순박해 보이는 인상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다 경찰에서 주시하는 대상이라고?”
“어, 그리고 발렌틴 아르툐모프라는 그 녀석을 보면 경찰의 그 예상은 헛나가지 않았지.”
민은 어떻게 경찰에서 이 사람들을 파악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제 있었던 발렌틴의 그 일을 생각하니 괜히 하는 말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혹시 사진 찍어도 돼?”
“아니, 안돼! 어떤 경로로든 저장하는 건 안돼. 다 수사에 쓰이는 자료니까!”
“그러면 왜 나한테 보여 주는 건데?”
“너는 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알고 있으라면서 사진을 줬다 다시 뺏는 건 뭔지 모르겠지만...”
민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진을 다시 진언에게 돌려준다. 진언은 시계를 보더니 다시 신발을 신고서 현관을 나설 준비를 한다.
“아, 시간 나면 우리집에 와. 아기 보고 싶다고 했잖아.”
“알았어.”
그러고서 진언은 대문을 나선다. ‘휴’ 하고서 민은 안도한다. ‘할아버지’ 소리를 안 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다시 자기 방으로 가서 게임이나 하기로 한다. 그러면 시간도 잘 갈 것이다. 익명의 제보니 이상한 사람들이니 하는 건, 나중의 일이다.
예담의 집 화장실. 예담은 화장실 안에 숨어 있는 누군지 모를 침입자를 향해 말한다.
“어, 거기 누구냐?”
“우그그그...”
그 부글거리며 말하는 소리가 점점 뚜렷하게 들리자, 예담은 기다렸다는 듯 그 변기 너머의 목소리에게 대고 말한다.
“야, 나와라.”
하지만 그 변기 너머의 누군가는 나올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속에서 버티려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별로 오래가지는 못한다. 곧, 예담이 화장실의 물 전체를 끓여 버리기 위해 손을 세면대의 물에 집어넣고, 이윽고 부글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곧 다시 누군가가 우글거리며 버티려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 처절한 버팀도 얼마 가지 못한다.
“굳이 안 나오고 싶다면 거기서 평생 살게 해 줄 수는 있는데...”
예담의 그 말을 듣자 예성이 화들짝 놀란 소리를 한다.
“야, 농담이라도 말을 그렇게 하면 어떡하냐!”
“에이, 농담 아니라니까. 다, 조건이 있는데...”
예담은 이미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이다. 그 ‘무언가’란 다름아닌 그 문제의 침입자의 호흡용 관이다. 어디서 그걸 꽂아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손을 대 보니까 온기가 나온다. 그걸 변기 정화조 방향으로 냅다 꽂는다.
“우극... 우그극...”
변기와 세면대 너머에서 누군가의 애처로운 소리가 점점 커져 온다.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도 안에 들어있는 것 같은데, 이제 나와라. 평생 변기 물이나 먹기 전에.”
잠시 후, 한 사람이 예담과 예상의 앞에 꿇어앉아 있다. 파란색의 외피에 크리스탈 같은 게 겉에 씌워진 것 같은 꽤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수트를 입었는데, 누가 봐도 이 가정집의 분위기에는 절대 어울려 보이지 않고, 또 아까의 당당한 기세와는 달리 상당히 위축된 것 또한 눈에 띈다.
예담이 그 남자와 눈을 마주치자, 대뜸 입을 연다.
“야, 진리성회.”
“이... 이름을 불러! 내 이름은 진리성회가 아니라고!”
예담의 앞에 꿇어앉은 그 사람이 울상을 지으며 말한다. 얼굴이 물에 흠뻑 젖어 있어, 누가 보면 우는 건지 아니면 떼를 쓰는 건지 구분도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름을 모르는데 어떻게 부르냐?”
예담이 그렇게 말하자 예성이 예담의 어깨를 짚더니 옆으로 가게 한다.
“아니, 형, 내가 하려고 하는데...”
“야, 예담아, 사회인의 방식으로 내가 말해 볼게.”
“사회인의 방식이라니?”
예담이 되묻자, 예성은 그 ‘사회인의 방식’이라고 말한 대로, 아까의 그 격앙된 표정을 마치 수납고 같은 곳에 넣어 두는 것처럼 바꿔 버리더니, 이윽고 매우 살가운 표정으로 얼굴을 바꾼다.
“선생님? 조금 진정하시고요, 이거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
예성은 마치 자신이 경찰 수사관이 된 것처럼 말한다.
“아니, 형은 화도 안 나? 형을 죽이려고 했던 인간이잖아?”
예담이 믿기 힘들다는 듯 그렇게 말하자, 예성은 귓속말로 말한다.
“그러니까 좀 보기나 하라고. 어떻게 술술 불게 하는지 보여줄 테니.”
곧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그 사람에게 질문을 시작하려다가, 다시 예담을 보고 말한다.
“이 녀석 못 도망가게 잘 잡고 있어.”
“아, 뭐, 당연하지.”
그렇게 말하며 예담이 그 남자를 돌아본다. 예담이 손을 대려는 시늉만 해도, 그 남자는 두 손을 내저으며 ‘제발 하지 말아 달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예성이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자, 선생님,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우선...”
예성이 말을 시작하자, 그 남자는 금세 표정을 풀기 시작한다.
“어...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한편, 신시아는 마치 잠을 자다가 누군가가 강하게 흔들어서 억지로 깨어난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주위를 보니 공원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삼삼오오 모여서 놀거나 아니면 운동을 하거나 하는, 구청 앞 공원이다. 아까 신시아는 여기를 지나지 않았다. 집과는 조금 반대 방향으로 온 것 같다. 물론 위험에서 벗어난 건 다행이기는 하지만.
신시아의 눈에 보이는 건 웬 가방을 메고 비니를 쓰고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다.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누군지는 바로 생각해내지 못한다. 신시아는 그 남자를 보고서 묻는다.
“너 누구냐?”
“어... 무슨 상황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해서 어리둥절한 것 같은데, 위험했다고. 그리고 너 학교에서 봤어. 나는 널 조금 아는데?”
그 남자가 조금은 엉뚱한 답을 하자, 신시아는 더 큰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아니, 그러니까, 너 누구냐고!”
그렇게 말하고 보니, 신시아도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를 몇 번 본 적 있는 건 떠오른다. 그것도 학교에서 교양수업을 들을 때 말이다. 그런데 그는 신시아의 이름을 아는 모양이다.
“의예과 1학년, 신시아 벤베니스테, 맞지? 이름을 어렴풋이 봤는데 이렇게 단번에 떠오를 줄은 몰랐는데.”
“그러니까... 너 누구냐니까!”
“안심해. 진리성회도 아니고, 무슨 악의 조직도 아니니까.”
그 남자는 마치 신시아의 질문에 답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 무슨 사기단이냐?”
“아, 아니라니까, 왜 그래? 아, 알겠어. 너, 리암하고 같이 다녔지?”
“리암? 네가 리암을 어떻게 아는데?”
“아니, 나도 리암하고 같은 교양과목을 들어서 안다니까.”
“뭐야, 정말? 그런데 나는 왜 그쪽 얼굴을 본 적이 없지?”
“당연하지. 학과부터가 다른데, 어떻게 마주칠 일이 있냐! 거기다가 의대는 완전히 끝에 있잖아, 맞지?”
“맞긴 한데...”
그 남자는 신시아의 그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후 리암과 그가 함께 찍은 사진을 몇 장 보여준다.
“아니, 이건 뭔데?”
“리암하고는 너 이상으로 잘 아는 사이야! 그러니까 리암의 성격을 잘 알지. 사실 나도 리암이 부럽기는 했는데, 뭐라고 해야 되나... 겁이 나더라고! 저러다가 무슨 일 날까 두렵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너는 누군데? 그리고 무슨 과고?”
“이름은 나데르, 그냥 리암의 친구라고만 알아 둬!”
자신을 ‘나데르’라고 소개한 그 남자는 말을 피하며 자기 갈 길을 가려 한다. 신시아가 급히 그를 불러세운다.
“아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내가 알아 둬야지...”
“그거 리암한테 말하면 알 거야! 또 보자고!”
“응? 또... 봐?”
신시아는 다시 나데르에게 더 물어보려고 하지만, 그는 발걸음을 재촉해 멀리 떠나 버린다. 신시아는 얼른 집으로 가기로 한다. 그러면서도 나데르의 이름을 되뇐다.
“에이, 나데르, 나데르라... 리암하고 그런 관계였나.”
한편 이곳은 메이링의 법률사무소. VP재단의 키릴로가 아침에 자신이 가지고 오겠다고 한 무언가를 들고 메이링을 다시 찾은 참이다. 키릴로는 주변에 엿듣는 사람이나 도청장치 같은 게 없는지 확인하고 나서, 무언가를 펼쳐서 메이링의 앞에 보여준다. 정교하게 그려진 도표인데, 기재된 내용은 매우 상세한 편이다. 입교일, 직위, 맡은 업무, 거기에 진리성회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신도 등록번호까지 적혀 있다. 아마도 내부에 게시하거나 할 목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어, 이게 진리성회 세라토 교구 조직도로군요? 이거, 너무 상세한데요. 내부인이 적은 게 아니면 이렇게 자세할 수 있나? 그나저나, 어떻게 가져온 건지도 궁금하고요.”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교단 내에 있는 조력자가 입수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기적으로 출입하는 종교용품 관리 담당자인데, 진리성회에서 세운 회사 직원입니다. 저희가 알기로는 부모형제 중에 진리성회에 미쳐 폐인이 된 사람이 있어 원한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조직도를 보니 지역장, 강사, 전도자, 후보전도자의 직책별로 이름과 생년월일, ‘홀리네임’, 사진까지 망라되어 있는데, 그중 메이링의 이목을 끈 사람이 하나 있다.
“어, 이 사람!”
메이링의 시선이 멈춘 건 강사 중 한 명의 얼굴이다.
“확실해. 이 턱의 모양, 입술! 그 영상 그대로야!”
홀리네임 ‘메로비우스’, 본명 ‘마우리시우 모레누’, 세라토 본부교당 보좌강사라고 적힌 그 사람의 얼굴이다.
“됐어. 수수께끼가 하나 풀렸어! 수수께끼치고는 너무 빨리 풀리기는 했지만.”
그 외 강사들의 이름도 확인해 본다.
“카와라다 쿠리오, 세라토 동부회당 강사,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사리회당 강사. 그리고...”
메이링이 밑의 조직도를 보니, 청소년부 및 어린이부라고 표시된 곳에 익숙한 얼굴이 좀 보인다.
“이거... 내가 오가면서 많이 봤던 얼굴들이네. 이 중에 후보전도자도 몇 명 있고... 거기에 초등학생까지 후보전도자야? 이야, 여기 제대로 미친 녀석들이네. 정말 수틀리면 이런 애들한테 자살테러라도 시키려는 건가?”
그러다가, 메이링의 눈이 한 사람의 얼굴에 간다.
“잠깐, 이 사람...”
메이링이 주목한 사람은 ‘김인우’라는 이름의 강사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1 댓글
마드리갈
2024-12-21 21:41:30
악의 평범성이라는 게 여기에서도 증명되네요.
예담은 문제의 침입자를 저렇게 기발하게 특정하여 잡아낼 수 있었고, 예성은 사회인답게 사회인의 방식으로 예의 침입자를 뱀의 뇌 상태에서 해제해서 말문을 열도록 하고, 역시 형제가 공동으로 잘 대처하네요. 좋아요.
신시아가 위험에 빠지지는 않았네요. 천만다행이예요. 직후에 만난 그 나데르라는 남학생은 리암의 친구를 자처하는데, 정말 믿어도 되는 는 것일지...풀네임을 말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
메이링의 법률사무소에 엄청난 정보가 모였네요. 왜 김인우라는 자에게 메이링의 시선이 멎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