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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roup

柔夜, 2024-12-26 05:55:42

조회 수
32

▪︎ 2024년 8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 오랜만의 포럼 방문인지라 유튜브 영상 삽입 방법을 잊었습니다. HTML 편집기를 통한 코드 삽입 또한 오랜만이고, 현재 PC를 사용할 수 없어 부득이하게 곡명과 아티스트명만을 표기합니다.

Beach house - Myth




이십대가 끝나기 직전의 여름이었다. 나는 편의점 벤치에 앉아 재떨이를 옆에 두고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내다보이는 풍경은 오묘했다. 그다지 높지는 않은, 어느 곳에나 하나씩은 존재하는 동네 뒷산처럼 생긴 산이 서넛 이어져 있었다. 송전탑이 산 초입에 늘어서 있었다. 군데군데 공장 건물이 보였다. 온전히 자연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온전히 도시라고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벤치에 걸터 앉아 조용히 담배를 태우며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었다. 아무 생각도 피어오르지 않았다. 그저 기분만이 존재했다. 무엇인가가 깨끗하게 씻어버린 것처럼 이성은 기능하지 않았다. 그저 감정과 기분만이 피어오르고 휘몰이치다 잠잠해지고, 여하튼 불규칙적이었다.

나는 어디에서부턴가 조금 잘못되어선, 조금씩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감내해야만 하는 삶에 놓여있었다. 두 시간 남짓 작업을 하고 나와서는 정수기 앞에 서서 물을 마시려고 할 때 여분의 물컵이 없다던가. 내 젠더와 맞지 않는 탈의실을 써야 한다던가. 이미 처리한 일에 대해 어디선가 나타나서 지시하고 했던 말을 또 하는 아주머니와 일한다던가. 공휴일에도 출근을 해야 한다던가.

삶이란 응당 그런 것이겠지만서도 나는 유독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싫어했다. 철이 들지 않았던지, 고집이 세던지 둘 중 하나일 테다. 싫어하고 또 싫어했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 치워버리거나 해결할 수 없는, 혹은 매우 귀찮아지는 일이었기에 나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마음에 드는 걸 어디선가 찾아와 저울 위에 올려두면 된다. 그러면 균형이 맞게 된다. 반대편에 올려두는 것은 항상 변함 없는 것이어야만 한다.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 맛있는 음식이나 기호식품. 그런 것들이다.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걸 올려두는 건 정말이지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어떤 날에는 싫은 것들을 향해 저울이 기울 수도 있는 일이고, 그렇게 되면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득 내가 지금 저울에 올려둔 걸 확인해보자, 그건 너무도 변화무쌍한 것이었다. 앞서 말한 것들처럼 실체가 분명한 게 아니라, 지극히 추상적인 것들이었다. 살펴보자.

연심. 내 삶의 주체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타인에게 맡기는 것. 나 자신을 흔들리기 쉽게 만들며 약하게 만드는 것. 희망. 꺾이고 부러졌다가 다시 곧게 서고 붙기를 반복하는 것. 사소한 계기로도 밑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치다가도 어느 순간 솟구쳐오르며 오로라를 피워내는 것.


나는 어째서 이런 것들이 저울에 올라가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성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매캐한 담배 연기와 멜로디 사이로 기지개를 켜며 근무 환경이 참 좋노라고 내게 비꼰다.

애초부터 그렇게밖에 기능하지 못하는 인간인 것이다. 저울에 커다란 것을 올려두어 싫은 것들보다 좋은 것들이 더 많이 생각나게끔 하는 것 말고는 모르는 것이다. 반반을 맞추어 어디로도 가지 않게 만드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나라는 사람에게는. 항상 그래왔지만 중간이 없으니까.

너무도 많은 과거로부터 학습해온 탓일지도 모른다. 그것들을 저울에 올려둘 때 좋았던 걸 생각하며 이번에도 올려둬보자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성은 내게 말한다. 담배를 그만 피우던지, 퇴근을 하시던지. 아니면 전 일 못해요. 그래, 알았다. 이 정도만 생각해두자. 나는 저울을 바라본다. 올라가있는 것들을 살펴본다. 담배 연기가 하늘을 향해 피어오른다. 언젠가는 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사랑처럼 끊지 못했다.

여하튼, 나는 오늘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다. 싫어하는 것만 잔뜩 있는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신경질을 내고 싶어지고 짜증을 부리고 싶어진다. 저울에 올라간 좋은 것들을 조금 부풀릴 필요가 있었다. 나는 기억을 헤집어본다. 지금 그것들이 작디 작다면 어디서든 무언가를 끌어와서 살을 붙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좋든 싫든 항상 내게 꼬리표처럼 붙어있는 과거라는 사진첩을 펼친다.

너는 내게 언젠가 좋은 글을 쓸 거라고 말했다. 영글고 영글다보면 네 글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무르익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너는 그런 삶을 살아갈 테고, 너는 그렇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할 거라고 했다. 그렇게 너는 네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고 내게 온전히 맡겼다.

너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이 아는 기준에서 사회성은 정말 없다시피 한 사람이며, 감정의 격류에서 항상 허우적대지만, 그럼에도 결국 내 사람됨이 좋다고 했다. 그건 한결 같았다고. 몇 년을 알고 지낸 끝의 이별에 너는 내게 그렇게 말하며 안녕을 고했다.

너는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런 관계 또한 없었을 거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너무 미워하지 말고, 네게 향하는 좋은 것들을 부정하지 말 것이며, 또한 자신감을 좀 가지라고 했다. 너는 네 약혼자와 결혼하기로 결심한 날 내게 그렇게 말했다. 청첩장은 당연하게도 오지 않았다.

너는 내게 결국 찬란하게 빛날 거라고 했다. 터널이 길 수록 밝음도 커지는 법이라며, 터널이 끝날 때까지 곁에 있을 수는 없지만 어디에 있든 응원할 거라고 했다. 나는 그게 빈말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너는 이미 터널 입구에서 차를 돌린 뒤였다. 깜빡이를 켜고 핸들을 돌릴 때 나는 네 표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또 다른 너는 내 안에서, 이미 차에서 내려 내 옆을 걷고 있다. 지금도.

시작은 좋지만 끝은 씁쓸한 과거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국 내게는 이 또한 어떤 원동력으로 기능한다. 모든 게 텅 비어버려 전부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건 마치 세상이 굴러가는 것과 같다. 아침 해가 뜨면 수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러 집을 나선다. 횡단보도를 걷고, 건물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오른다. 그 행위 자체에 왜냐는 물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렇게 기능하는 것이다.

그렇게 놓아버리고 싶을 때면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어느샌가 내 어깨에서 하나 둘 떨어진 과거와 책임과 짊어져야 할 것들을 다시 돌아가서 주워모아 둘러멘다. 그들이 내게 남긴 좋았던 순간과 그 말들을 곱씹는다. 나는 나아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그 말들을 통해 믿으며 앞을 본다. 내게 주어진 역할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그렇게 재회할 때면, 경우에 따라선 십 년도 넘는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마치 방금 일어난 일처럼 생생해서 다시금 걸을 힘을 주는 것이다. 비록 바라는 것들은 모두 이루어지지 않거나 내가 바랐다는 사실만으로 파멸했을지라도. 종종 머릿속을 스치는 좋지 못한 예감은 모두 내가 은연 중에 그렇게 행동했거나 아니면 정말 그저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서 실제로 일어나 나를 울렸음에도.


나는 담배를 태우길 그만 두고서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나는 계속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한다. 살아갈 것이다. 비록 짐 지워진 삶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걸 전부 뒤적거려 작디 작은 의미 하나라도 찾아내 끌어안고 걸어갈 것이다. 네 무덤 앞에 내가 쓴 책을 놓아주는 날을 상상하며. 시간이 지나 우리가 서로 나이를 먹었을 때, 어디선가 우연히 마주쳐 그저 인사만을 나눌 때 나 자신이 초라해보이지 않기 위해서. 잘 지냈느냐며, 잘 살고 있느냐며, 그대가 다행이라고 웃고 기분 좋은 안녕을 말하기 위해서. 아직도 내 손을 붙잡고 놓지 않는 너를 떠나보내며 터널의 끝자락에서 빛을 쬐기 위해서.

그리고 수 없는 나날을 거치며 그 모든 걸 상상해온 나를 위해서. 정말로 이루어졌을 때 나 자신이 얼마나 행복해할지, 드디어 놓아버릴 수 있음을 깨닫고 감정이 북받쳐오를지 알고 있으니까. 결국엔 놓아버릴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기쁨 탓인지 슬픔 탓인지 알 수 없을 울음을 터트릴 날을 위해서.


그건 정말이지 행복한 일일 것이다. 아마도. 아마도.




20240815

1712-1738

柔夜

柔夜

Smoothie night

3 댓글

마드리갈

2024-12-26 20:23:09

우선, 해당 악곡을 찾아서 운영진 권한으로 임베드해 두었어요.

임베드 방법은 포럼의 메뉴바의 가장 왼쪽인 Front Page에 마우스 포인터를 옮겼을 때 나오는 메뉴의 5번째인 정보공시(사이트 바로가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사항 4번에 나온 Valid XHTML embed code for YouTube videos(사이트 바로가기)를 이용하시면 되어요. 단 본문에 삽입할 경우 반드시 에디터 상단에 있는 HTML 편집기 화면을 켜서 넣으셔야 해요.


그럼, 소설에 대한 감상은 별도의 코멘트로 작성할께요.

柔夜

2024-12-27 07:32:33

감사합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마드리갈

2024-12-27 22:16:18

그러면 이번에는 감상.


개인이 지닌 속성 중 일부는 선천적이죠. 즉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는 상태로 부여되었다가 어느 시점에서 자아가 형성되고 나면 비로소 그 속성들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이미 그 시점에서 다른 것을 선택하거나 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그래서 화나거나 슬프거나 지치거나 할 때도 있고 그래요. 그런데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과감히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바로 그렇게 하겠다고 선택하지도 못할 것 같고, 그게 참 어려워요. 그건 역시 좋으나 싫으나 자신의 속성의 일부로 이미 체화된 지 오래되어서 느끼는, 누구도 그리고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여러모로 억눌린 게 많았던 최근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같은 하늘 아래에 이렇게 고민할 수 있는 분이 포럼의 회원이신 유야님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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