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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30분, 세라토 우주공항 제2터미널역.
열차를 기다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열차가 도착하자마자, 열차에 탄다. 안내판에는 ‘급행’으로 표시되어 있다.
마리우스 회수조 3명 역시, 공항을 빠져나와 막 급행열차를 탄 참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여행을 나온 단체 관광객으로 보이기에, 크게 의심을 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이름은 각각 ‘에발트’, ‘요하네스’, ‘도로테아’. 각각 붉은 점퍼를 입은 40대 정도의 남자, 푸른 작업복 비슷한 유니폼을 입은 20대 정도의 남자, 그리고 노란 상의에 청바지를 입은 30대 정도의 여자다. 그중에 에발트라는 이름의 남자는 귀에 수신기를 끼고서 어딘가로부터 올 예정인 지령을 기다리고 있다. 에발트와 함께 지령을 기다리던 요하네스가 말을 꺼낸다.
“에발트, 지령은 왔나?”
“이제 올 시간인데... 아직 지령이 없군.”
“기다려 보자고. 지령을 받아야지 움직이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도로테아라는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무언가 알 수 없는 두통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수시로 고개를 흔들며 어딘가를 자꾸만 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던 중 에발트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방금 본국에서 지령을 받은 참이다.
“돌아가지 말고 바로 정부청사로 가라... 정부청사...”
“지령이 왔지?”
“그래. 이대로만 가면 된다.”
정부청사로 가는 길은 지도에 다 나와 있기 때문에, 금방이다. 마침 지금 탄 열차는 정부청사가 있는 ‘중앙대로’역까지 바로 갈 것이다. 에발트는 좌석에 등을 기댄다.
하지만, 그 순간, 다른 목소리가 그를 사로잡는다. 수신기에서 오는 목소리가 아니다.
[네가 할 일은 그게 아니지 않느냐. 어서, 네가 해야 할 진정한 일을 찾아라.]
“누구야... 어떤 녀석이야!”
에발트는 누구인지 모를 그 목소리에 저항해 보려고 하지만, 그건 크게 의미가 없는 행동이다. 그 다른 목소리의 장악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곧, 그뿐만 아니라 다른 2명 역시 원래 그들을 보낸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에 장악당하고 만다.
그리고 잠시 후.
“어... 뭐였지...”
마치 디스크를 갈아끼운 컴퓨터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야. 모처럼 좋은 곳에 왔으니, 우리 뭔가 나들이 같은 거라도 해 보자고. 세계적인 대도시잖아.”
“그래. 이왕이면 밥이라도 먹고...”
그렇게 그들은 여느 여행자들과 다름없는 대화를 이어가지만, 그들을 사로잡은 그 의문의 목소리는 그들을 원래 목표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이끌기 시작한다. 원래 그들에게 주어졌던 목표는, 어느새 새로운 그 의문의 목소리에 잠식되어 사라지고 만다.
그 시간, 진리성회 세라토 중앙회당의 지역장실.
“성공했습니다, 지역장님.”
지역장은 누군가에게서 전화를 받고 있다.
“어떤 걸 성공했다고?”
“그 다곤 공화국이라는 곳에서 보낸 자들을 또 저희의 통제 아래 두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리우스에 이어 두 번째 성공입니다.”
“수고했네, 코발리우스 강사. 그 자들을 잘 관리해야 하네. 무슨 말인지 아나?”
“그렇습니다. 낙원 구현으로부터 이제 며칠도 남지 않았잖습니까?”
전화 너머의 코발리우스는 지역장의 말에 만족한 듯 말한다.
“이제 임무는 완성 단계입니다. 파라드는 앞으로도 맡은 바 임무를 잘 수행할 것입니다!”
“잘 했네. 하지만 그들은 제1수단이 아니니, 그것을 명심해야 해.”
“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총회장님의 지시야.”
“네...?”
코발리우스는 자신이 들은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묻는다.
“총회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입니까?”
“그렇네. 믿지 못하겠다면 총회장님의 지시사항을 보여줄 수도 있네.”
“알겠습니다... 그 자들은 우선 일종의 예비대로 돌리겠습니다. 그런데, 총회장님께는 무슨 묘책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이들은 순진하면서도 잔혹해... 사가라 회당도 어린아이들이 꽤나 열정적이지 않나?”
지역장의 단도직입적인 그 말에 코발리우스는 동의한다.
“그렇고말고요. 지역장님의 따님도 꽤 많은 일을 해 주시지 않습니까?”
“그 아이는 힘닿는 데에서 기대 이상으로 힘써 주고 있지. 후보전도자인데 그 이상의 일을 하고 있으면 정말 인재라고 할 수 있지!”
“맞습니다. 총회장님께서도 인정하셨다면, 말 다 했지요!”
코발리우스는 지역장의 말에 격하게 동의한다.
“알겠네. 그렇다면 정해진 위치에서 책무를 행하며, 총회장님의 말씀을 기다리게.”
“알겠습니다.”
“에이... 승점 날아갔잖아!”
민은 컴퓨터 화면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 결과와 승점 하락을 보며 한숨을 짓는다.
“누나가 왜 하필 이런 때에 와서... 그래도 금방 복구하면 되는 건가.”
그런데 다음 게임을 하려고 하는데, 매칭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 아까 그 메시지나 한번 볼까...”
게임은 잠시 있다가 하기로 하고, 아까 ‘%^boost147%&.’라는 게이머에게서 받은 그 메시지를 좀 보기로 한다.
“무슨 초능력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나한테까지 다 메시지를 하고 그러는 거지...”
메시지를 보니, 민이 아직 열지 않은 메시지가 조금 더 있다. 어차피 게임을 다시 하려면 대기 시간이 조금 있다 보니, 그 사이 그 메시지의 안 읽은 나머지를 더 보기로 한다. 메시지에는 분홍색으로 바뀐 게임 화면, 비슷하게 바뀐 전광판, 전자시계 등의 사진이 있고, 또 다른 메시지도 있다.
[내일 혹시, 시간이 되면 벤투라 센터로 올 수 있어?]
[혹시 의심이 되거나 한다면 안 와도 좋아]
“잠깐, 벤투라 센터라면...”
민은 그곳이 어딘지 잘 안다. 자주 가는 RZ 게임센터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게임 때문에 갈 일이 있는 곳이다. 아주 멀지는 않아서 지하철 몇 정거장이면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고수를 만나려면 그런 곳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들어서 알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안 그래도 거기 내일 가 보려고 했는데, 한번 가 볼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메시지를 넘기는 사이, 다음 게임 매칭은 이미 끝나 있다.
“아니, 매칭이 왜 이렇게 빨리 되냐? 어쨌든, 시작해야지!”
그리고 시간은 지나, 저녁 시간, 예담의 집. 예담은 저녁을 마치고 한참 자기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참이다. 이것저것 많은 일을 겪기는 했어도, 이렇게 방안에 틀어박혀서 취미활동에 몰두하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간다. 마침 부모님은 저녁 뒤에 또 밖에 나갔다 왔고, 예성 역시 따로 예담을 신경 쓰지 않다 보니, 별로 방해받을 일도 없이 시간은 잘 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예담이 시간을 보니, 오후 10시 30분이다. 아까 아침에 봤던 그 <이슈의 눈>이 방영할 시간이다.
“오, 이제 방송 시작하나? 지금 한다고 했는데.”
예담은 두말하지 않고, 바로 자기 방을 나와서 거실로 간다. 마침 예담의 부모님 역시 시사 프로그램을 꽤 즐겨 봐서인지 다들 거실에 나와 있다. 특히 아버지는 한 회사의 부사장이나 되는 위치이다 보니, 더욱 이런 데 민감하기도 하다.
그런데, 광고가 잘 나오던 TV가 갑자기 푸른 화면을 보인다. 예담이 게임을 할 때 자주 보던 그 화면이다. 컴퓨터가 고장이 나거나 하면 자주 이런 화면을 송출했는데, 방송 쪽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이 정상적으로 방송이 송출되는 상황이 아닌 건 확실해 보인다.
“어, 예담아, 너 이런 거 잘 안 보지 않았니? 웬일이야?”
예담의 아버지가 자기 방 문앞에 서성이던 예담을 보더니 말한다.
“아, 그러니까... 그냥 궁금해서...”
“궁금하면 여기 소파에라도 앉고.”
“아... 네.”
예담은 아버지의 말에 어색하게 대답하면서도 소파에 앉는다. 예담이 거기 나오는 방송의 내용을 보고 안절부절못한 듯 숨을 거칠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자, 아버지는 그런 예담이 걱정스러웠는지, 예담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한다.
“무슨 저런 걸 보고 다 불안해하니? 하긴, 요새 애들은 참 알 수가 없다니까. 혹시, 너도 저 사이비 종교를 믿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니에요!”
예담이 강하게 부인하며 말하자, 아버지는 껄껄 웃는다.
“하, 하하! 그래, 시사에 관심이 있는 건 좋은 건데... ”
“네, 그렇죠...”
“네 형도 같이 봤으면 좋겠는데, 일이 많아서 피곤한 걸 어쩌겠니.”
아버지는 아까 낮에 예담과 예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그저 ‘화면 조정’ 등의 이유로 예정 시간보다 방영이 늦어지는 프로그램을 보며, 조금은 초조해할 뿐, 그것 외에 다른 건 없었다. 오히려 더욱 긴장한 건 예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예담 역시도 예상과는 달리 별 탈 없이 그 프로그램을 다 보고, 제 시간에 잠자리로 들어가 잠을 잔다. 이상하게도, 그날 잠자리는 다른 날보다도 더욱 잠이 잘 왔다.
그 시간, 마리우스 회수조의 요하네스는 세라토의 한 번화가를 걷고 있다. 분명히, 이곳은 처음에 본국에서 받은 지령의 목적지는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요하네스는 자신의 ‘목표’를 찾아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지령은 왜 이쪽으로 나를 부르는 것인가... 이곳은 분명히 처음 지령의 목적지는 아니건만, 어째서!”
그렇게 중얼거려도, 그 의문의 목소리는 완전히 마리우스 회수조 3명을 사로잡았다. 그들이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의문의 목소리가 원하는 대로, 그들은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를 불러세운다.
“어, 오셨군요.”
“누구냐, 너... 혹시 네 녀석이 나한테 이런 장난을 친 거냐?”
그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정신을 완전히 지배당하거나 한 건 아닌지, 자신을 부른 그 의문의 상대방을 노려보며 말한다.
“말해라, 말하지 않으면...”
“오, 그렇게 거칠게 나오실 줄은 몰랐는데요.”
요하네스의 앞에 서 있는 건 정장을 입은 남자. 바로 옆에는 가판대가 놓여 있다. 그는 마치 요하네스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저를 말씀하신다면, 우선 메로비우스로 부르시지요.”
“......”
요하네스는 메로비우스에게 무언가 한 대 치고 싶은 기분이지만, 그럴 수 없다. 본능적으로, 요하네스는 메로비우스가 자신을 조종하는 주체에 속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머리가 가리키는 대로 가시면 됩니다. 자, 갈 길을 가시지요.”
요하네스는 메로비우스의 그 말에, 메로비우스를 노려보면서도 메로비우스로부터 멀어져 가기 시작한다. 메로비우스가 속삭이듯 요하네스에게 말한다.
“보아하니 마리우스보다 더 요긴하게 쓰이겠군요. 세 분 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1 댓글
마드리갈
2024-12-27 21:10:38
다곤 공화국에서는 공작원을 파견하는 보람이 없어졌네요. 에발트도 요하네스도 도로테아도 결국 진리성회에 저 꼴이 나 버렸으니...코발리우스 강사의 능력이 정말 엄청나네요. 게다가 공작원이 저렇게 도착 첫날부터 털려 버리다니, 다곤 공화국의 정보기관의 카운터인텔리전스 역량도 낮다는 게 이렇게 증명되네요.
민은 이상한 메시지를 받고 벤투라 센터로 가는 건가요...아직 행동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물론 저런 메시지를 받은 이후 실제로 만나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게 있긴 하죠. 약캐 토모자키군의 토모자키 후미야가 어택패밀리 게임을 하던 도중에 대전상대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이후 그와 만났는데 의외로 같은 고교의 완벽초인인 여학생 히나미 아오이였고 만난 자리에서 아주 혹독하게 비판당한 이후 그 아오이의 도움으로 이미지 개선에 착착 나서긴 하죠.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과연 그런 후미야같은 변화를 민이 맞이할 수 있을지...
예담의 집은 큰 고비를 넘겼지만 그 평온함이 폭풍전야같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