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는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군요.
조직의 의사결정이란 대체로 특정목적의 달성 또는 우려하는 상황의 저지를 전제하고 이루어지지요. 그래서, 그 의사결정이 무엇이든간에,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일반적인데, 간혹 의사결정이 의도와는 다르게 실패를 만드는 경우가 있긴 해요. 뭐 언제나 다 성공할 수는 없으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돈을 들여서 평판을 깎지는 않아야 하는데...
최근 한 위탁급식업체의 의사결정의 과정과 결과를 보면 돈은 돈대로 들이고 평판은 평판대로 내려가는 것이 보이고 있어요.
그리고 신뢰는 잃을대로 잃었고...
일단 기사를 볼까요?
http://news.mt.co.kr/mtview.php?no=2013110416222155802&type=1&VML
사실관계부터 숙명여대 총학생회와 신세계푸드는 말이 맞지 않고 있어요. 분명 이것은 일방의 전적인 문제라고 보기에는 난점이 있는 구조적인 문제로 보이는데다 서로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고 일부러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니까 이 점에 대해서는 말할 여지가 없네요. 문제는 그 선착순 바나나 500개 사건이예요.
일단 생각을 해 봐야겠어요.
학생식당 내의 식대 인상에 직접 영향을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식대를 지불하고 학생식당을 이용하는 학생이예요. 그러니 그 인상안에 대한 보상은 누구에게 이루어져야 할까요?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그런데 선착순으로 바나나 500개를 제공한다면 이것은 인상된 식대에 대한 보상안이 되지 못해요. 왜냐구요? 그렇게 제공받는 사람이 반드시 학생식당의 이용자라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식대를 지불한 학생이 반드시 그 바나나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역시 마찬가지로 무임승차자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선착순 제공이라는 것이, 설령 위탁급식업체의 주장이 100% 맞다고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상처를 줄 수 있기에 이 결정이 좋았다고 말하기는 상당히 어려워요. 보통 음식에 뭔가 장난을 쳤다는 것은 공급받는 음식의 품질 이전에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여지를 만들 수도 있어서 식품기업으로서는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행동이니까요. 수습하기가 상당히 힘들어 보여요.
이런 경우도 있어요.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100818575903177
중국국제항공의 경우, 유효기간이 지난 기내식을 제공하는 바람에 운항중에 배탈난 승객들이 화장실을 찾았어야 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항공사의 대응은 다른 승객들이 문제 기내식을 먹지 말라고 알리지 못하게 한다든지, 기내식 포장의 날짜표기에 착오가 생겼다든지 하는 것이 이어졌지만 결국 엄청난 비난이 이어지고, 신뢰는 실추되고 말았어요.
어떤 의사결정에 대해 그 결과의 수혜자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각종 사정변경이나 후속조치가 엉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돈을 들여서 신뢰를 버리는 최악의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의사결정에서는 이 정도는 명심해야 해요.
- 고객이 제품/서비스의 사정변경을 납득할 수 있을 퀄리티를 유지할 것
- 사정변경의 수혜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것
- 감정을 건드려서 심리적인 배척을 일으키는 결정은 배제할 것
- 생색내기, 궁색한 거짓말 등은 하지 않을 것
- 업종에 따라서는 금기를 건드리지 않을 것
보통 이 정도만 명심해도 상당 문제는 예방할 수 있어요.
경영학에서 흔히 다루는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있었던 타이레놀 복용자 사망사건에서의 제약사 Johnson & Johnson의 대응사례만 제대로 봐도 이런 패착은 겪지 않을텐데 말이죠. 역시 원칙이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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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대왕고래
2013-11-07 20:57:15
애초에 저 바나나 이해가 안 되는게... 뭐라고 해야하나, 사과의 의미라기보다는 거의 도발로밖에 여겨지지 않아서...
바나나 돌리는 건 이건 뭐, "우리는 이 사안을 바나나로 배상가능할 정도라고만 본다"는 느낌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영...
그리고 중국... 이건 대응이 영 시원찮네요. 뭐라고 해야하나, 자기들 손해 안 보게 하려다가 그냥 양쪽에서 필살기 얻어맞고 쓰러진 느낌이네요. 에휴에요 그냥;;;;
말씀대로, 모든 것에는 원칙이 중요해요. 그러니까, 적어도 상식선대로 행동하면 되어요. 그런데 상식선을 넘는 행동을 하는 일이 더 많은 거 같기도 하고요... 그게 상식이라고 생각한건가...
마드리갈
2013-11-07 21:07:54
아무리 백번 양보해서 업체측의 시각에서 보자고 하더라도 결코 좋은 선택일 수 없어요. 말씀하신대로, 결과적으로는 "바나나를 선착순으로 분배하기만 하면 된다" 라고 안이하게 보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사실 이런 방법은 아침 출근시간대에 증권회사에서 프로모션을 한다고 바나나를 동봉한 안내자료를 나눠주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도 해서 급식단가인상에 대한 보상책에는 도저히 알맞지가 않은데...이러한 결정에 내부적으로는 의문이 없었던가요?
식품기업이 절대 해서 안되는 것이 식품으로 생색내기인데...저 분쟁이 장기화될 것 같아요.
하네카와츠바사
2013-11-08 12:17:10
가끔 기업의 대응이라는 게 정말 말이 안 되는 수준이어서, '대체 왜 저러지?' 싶은 게 있습니다. 뭐 개인이 인식하는 것과 기업이 인식하는 건 다르고 또 대응이라는 게 모든 상황에 대해서 항상 적절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본문에서 언급하신 저런 경우는 할 말이 없네요. 내부에서 사건에 대해 제대로 인지를 못하고 있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가 않습니다.
마드리갈
2013-11-08 13:57:10
내부의 상황인식능력이 심각하게 좋지 않은 것이 보여요. 신세계푸드든 부가적으로 언급한 중국국제항공이든, 이 정도의 눈속임을 하면 고객들이 그냥 속아넘어가 주겠지 하고 그냥 눈과 귀를 막아버린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도 해요.
또한, 기업 내에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팽배해 있을 경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도 쉬워요. 만일 사원이나 대리가 저런 아이디어를 냈을 경우에는 조직내가 조용히 있지는 못할 정도로 분란이 일어나겠죠. 그런데 저게 부장의 아이디어라면? 저것에 감히 반기를 들 사람이 없어질 것이고 그게 실행에 옮겨지면 모든 게 잘못되어 버려요.
호랑이
2013-11-08 13:32:24
바나나 선착순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에요.
급식비 인상 기념 이벤트로 보일 수 있는 부정적인 선택이라고 판단되어요.
차라리 단가 상승의 원인 고지, 더욱 질좋은 식재료 사용 및 메뉴의 다양화 등을 알리는 방향이면 모를까, 식대 인상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선착순 상품 증정이 곱게 보일거같진 않아요.
마드리갈
2013-11-08 14:04:13
그럼요. 사안에 대한 인식수준, 그리고 위기대처능력 모두 상당히 모자란다는 게 보이는 결정이었어요.
특히 학생층이 일단 보유 및 운용자산규모가 적다 보니 지출비중이 크고 계속 지출되어야 하는 식대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인데, 그걸 저런 경박한 바나나 선착순으로 헤집어 놓았으니 저건 말벌집을 쑤셔 놓은 거나 다름없어요.
게다가 이 사안이 더욱 무서운 건 총학생회의 적극적인 대응에 있어요. 이윤창출의 압박이 있는 기업과 그럴 필요가 없는 총학생회의 승부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잘못된 결정 하나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놓고 후회한들 무슨 수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