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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다고 했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나서, 코하쿠는 다시 공원 쪽을 한번 돌아본다. 여전히, 코하쿠를 알아본다든가 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겠지만 말이다. 코하쿠는 주위에 자신을 알아볼 만한 사람들이 없는 걸 확인하자마자, 푸념을 늘어놓는다.
“휴... 오늘은 저녁에 공연은 없어서 다행인데...”
“다행인데?”
“무슨 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촬영을 한다고 하지 뭐야! 그래서 이제 바로 또 가봐야 한다고. 내가 몸이 지금 다섯 개나 되어도 모자라겠어. 왜 선배 가수들이 그렇게 체력을 키우려고 하는지 알겠다고.”
코하쿠는 혀를 내두르며 말한다. 정말 그 힘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아멜리는 그런 코하쿠를 다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툭툭 치며, 가라는 손짓을 한다.
“알았어. 빨리 가.”
코하쿠는 그 길로, 아멜리와 다른 후배들과 헤어지고는 아까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코하쿠가 멀리 사라지자, 아멜리는 아까부터 예담이 코하쿠를 자꾸만 흘끗흘끗 보던 걸 알아채고는, 예담을 부르며 말한다.
“예담이 너, 코하쿠 잘 아나 보네?”
“아니에요. 실제로 본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걸요?”
“에이, 처음은 아니겠지. 오며가며 지나쳤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큰데.”
“그게 그거죠! 저는 심지어 저 선배가 아이돌이라는 것도 오늘 알았다니까요?”
“뭐, 그래. 어쨌든, 이제 알았으니까 앞으로 인사 잘 하는 거다, 알겠지?”
“네, 알겠어요...”
그리고서 예담은 지금이 기회다 싶어서, 얼른 그 자리를 빠져나간다. 그러면서 중얼거린다.
“에이... 타이밍을 잘 타야 한다니까. 그건 그렇고, 저 선배, 내가 찾아봤다는 걸 알기라도 하나? 무슨 내가 시선을 피하는 걸 그렇게 신경을 써? 뭐... 좋아! 내가 말하니까 거기에 반응한 셈쳐야지...”
한편 그 시간, 누군가가 공원 한쪽에서 망원경을 통해 이 광경을 유심히 보다가, 망원경을 거둔다. 그가 있는 곳은 나무와 각종 풀, 그리고 철조망으로 꼭꼭 숨겨진 공간으로, 바깥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당연히 그와 같은 성향을 지녔거나, 그러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곳도 없다.
“코하쿠... 코하쿠를 드디어 내 손으로 직접 찍었다고! 이건 라프레사 팬들에게 있어 몇 안 되는 업적이라니까? 그것도 사복 차림을 찍었어! 완전 대박!”
그가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는 그렇게 마치 큰 보물을 얻은 것처럼 말한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주위의 사람들이 들을까, 목소리를 마치 속삭이는 것처럼 낮추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곧이어 준비해 온 무언가를 머리에 뒤집어쓴다. 금세 그의 모습은, 그 숨겨진 공간에서도 완전히 모습을 감추어 버린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 장비들 역시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그 보자기 같은 것 안에 완전히 들어가 버린다.
잠시 후, 공원 한쪽에 있는 화장실. 한쪽 칸이 누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저절로 문이 닫힌다. 조금 있다가 거기에서 누군가 나온다. 그는 다름 아닌, 아까 망원경으로 코하쿠를 본 그 사람이다. 그는 화장실을 이용한 사람처럼 행세하며 손을 씻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장실을 나선다.
“됐어... 성공이야. 이제 이걸 올리면, 다들 좋아라하겠지!”
마치 전쟁에서 큰 전리품을 얻은 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쭐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덩실덩실 춤까지 춘다.
“그런데 이거, 스트리머들한테도 제보할까? 그냥은 안 되고, 돈을 받고 파는 거야! 그러면 수입이 꽤 짭짤할 것 같은데 말이야-”
그는 마치 상상 속에서는 이미 코하쿠의 사진을 비싼 값에 팔아서 돈방석에 앉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의 발걸음은 더 빨라진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안톤은 자기 집에서 릴라송의 스트리밍을 보고 있다. 영상 속의 릴라송은 어느 오래된 주택가를 걷고 있다. 옆에는 졸졸 따라다니는 초짜 스트리머도 2명이나 데리고 다니고 있다. 이것만 봐서는 주택가 걷기가 컨텐츠로 보이겠지만, 릴라송은 그건 자기 컨텐츠가 아니라고 온몸으로 강변하는 듯, 복장은 그런 것과 하등 상관없어 보이는 드레스 차림이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스트리머들을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한 번씩 보고 지나가지만, 릴라송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여러분, 일요일 저녁도 릴라송과 함께! 시청자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오늘은 시청자님들의 투표로, 이곳 ‘네기역’ 근처 주택가에서 촬영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할 것은 조금 새롭게 시도되는 컨텐츠인데요...”
물론 릴라송이 말하는 건 완전히 새로운 컨텐츠가 아니라, 사실상 이름만 다르게 해서 그럴듯하게 포장한 컨텐츠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새롭다’고 하니 안톤은 이런 것도 좋아라한다.
“오늘은 우선, 시청자 몇 명을 섭외해서, 재미있는 ‘댄스 배틀’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물론 그냥 댄스배틀은 아니고 시청자들의 투표로 진행됩니다. 준비됐나요?”
릴라송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시청자들의 반응이 더욱 뜨거워진다. 안톤은 자기 역시도 들떴는지, 친구들과 아는 형, 동생들 몇 명을 대화방에 초대해 들어오게 한다. 물론, 그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다.
[안톤, 이런 데는 왜 초대했냐]
[안톤 형! 갑자기 왜요!]
물론 안톤에게 초대를 받은 친구들과 아는 동생들은 다들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그러든 말든, 안톤에게는 좋은 일을 한 것이므로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 보니, 안톤의 마음도 괜히 더 들뜬다.
“좋아, 그러면 릴라송이 뭘 하는지, 기대되는데?”
그런데, 릴라송의 바로 옆에 있는 참가자 한 명의 행동이 조금 이상하다. 섭외된 몇 명은 전부 릴라송의 지시에 맞춰서 팔다리를 벌린다든가 웃긴 자세를 보이며 춤을 춘다든가 하고 있는데, 유독 그 한 명은 마치 로봇이 된 것처럼, 자세도 매우 딱딱하고, 거기에다가 눈에는 초점도 없다. 그런데도 제시된 자세와 안무는 또 기가 막히게 따라 한다.
“이야, 무슨 로봇인가? 저런 거 보는 재미가 있지!”
안톤이 막 그렇게 말하는데, 안톤이 초대한 동생의 메시지가 뜬다.
[나 나갈래. 이거 이상해]
“에이, 타토는 또 왜 그래? 내가 기껏 재미있는 방송 보여준다니까!”
안톤은 그렇게 타토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릴라송의 스트리밍 영상을 계속 본다. 어느새 시청자는 점점 더 늘어난다. 물론, 댓글들의 반응은 그 로봇 같은 참가자를 조롱하는 반응이 절반 이상이다. 당연히 다른 참가자가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자, 참가자 3번 승리! 1등을 하신 3번 참가자님께는, 제가 준비한 상품권을 드리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아쉽겠지만 다음 기회에! 자, 그러면 또 한 번 출발해 볼까요?”
그렇게 말하고는 릴라송은 그 자리를 떠나, 특유의 손을 흔드는 자세를 보이고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자마자, 채팅창이 또다시 메시지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다들, 다음 방송 컨텐츠를 고대하고 있다. 물론 릴라송이 뭐라고 하든, 거기에 맞장구를 치겠지만.
그 시간, 민은 집에 들어와서 한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던 참이다. 마침 부모님은 모두 밖에 나가 있고, 반디 역시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터라, 방해받지 않고서 무엇이든 즐길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역시, 이럴 때는 뭔가 즐겨야 한다니까. 아까도 이상한 일에 휘말리고, 싸우고, 좀 저녁에는 이런 일은 안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과연, 그 바람대로 민에게는 <체인지 원>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는 내내 큰 방해는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에 화면 오른쪽 아래의 메시지창에 귀찮게 이런저런 메시지가 마치 말풍선처럼 나타나는 게 걸린다.
[릴라송의 신규 컨텐츠, 댄스 배틀 스트리밍중!]
[오늘 최고의 화제, 댄스 배틀 대회! 릴라송님과...]
[민이 너도 빨리 와서 봐야 재미있는데]
“이거 또 누구야, 안톤이지?”
민은 한참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으면서도, 이런 메시지를 누가 보내는지 금방 알아본다. 그것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민의 또래들 중에 이런 데 푹 빠져 있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면 민은 한 명밖에 모른다.
“에이... 안톤 이 녀석, 내가 당장 혼내 줘야지.”
그리고 민은 안톤을 골탕 먹일 만한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얼마 전에 이모지를 검색하다가 알게 된 방법이다. 민이 그 ‘비장의 무기’가 든 폴더를 연다. 그리고 그것을 안톤과의 대화창에 올린다. 그건 얼마 걸리지 않는다.
“좋아, 안톤. 이제 너도 한번 당해 보라고. 그동안 나를 얼마나 귀찮게 했는데, 너도 뭔가를 받기는 해야겠지?”
민은 곧이어 안톤과의 메시지창을 꺼 버린다. 곧이어 메신저도 아예 꺼 버린 다음, 애니메이션 재생창을 다시 전체화면으로 놓고 즐기기 시작한다.
“에이- 방해꾼도 이제 없네. 그러면 계속 즐겨 볼까?”
한편 그 시간, 안톤은 릴라송의 방송에 한참 몰입해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릴라송이 또 다른 프로그램을 선보인다고 잠시 쉬는 시간이다. 다음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건 정말이지 초조한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 있으면 재미있는 컨텐츠가 또 시작된다고 하니 들뜨지 않을 수가 없다.
“릴라송을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죠? 릴라송과 함께 하는 생방송, ‘특종 배틀’ 시작합니다!”
어느새 릴라송의 양옆에는 아까 그 스트리머들뿐만 아니라 다른 스트리머 2명이 더, 마치 경호원처럼 서 있다. 그리고 릴라송의 말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이 중에 누가 더 빨리 ‘오늘의 특종’을 가져올지 기대되지 않나요? 자, 그러면 제한시간은 1시간. 자, 준비됐나요? 시작합니다!”
그리고 화면 한쪽에 그래프가 하나 나타나더니, 실시간으로 응원 및 후원을 보내는 시청자들의 메시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 나도, 나도!”
안톤이 막 방석까지 가져와서 방송을 즐기려는데, 갑자기 이미지 하나가 마치 팝업처럼 뜨더니 화면을 가려 버린다. 그것도, 딱 그 시간을 정확히 계산한 것처럼.
“아니, 뭐야, 누가 이런 짓을! 안돼, 안돼...”
안톤은 당황한 나머지 잘 하지 않던 화면 정지까지 해 가며 그 이미지를 어떻게든 가려 보려고 애쓰지만, 그 이미지가 움직이는 이미지인데다가, 재생 시간이 1분으로 설정되어 있고, 보내는 사람이 끌 수 없도록 설정해 놔서 안톤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다.
“어떤 녀석이야... 누가 감히 릴라송님의 방송에...”
안톤은 이제 거의 울먹이는 소리를 낸다. 옆방에 있던 여동생이 달려온다.
“오빠, 왜 그래? 또 시작이야?”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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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SiteOwner
2025-01-29 17:31:34
여기저기에 보는 눈이 있다는 게 정말 무섭습니다. 재야의 필부나 범부 등의 수식어 정도가 적당한 저로서는 저런 상황은 여러모로 꺼려지다 보니 코하쿠의 경계심은 의심암귀(疑心暗鬼)가 아닌 게 분명하겠습니다. 그래도 좋은 이해자이자 중재자인 아멜리가 있어서 천만다행인 것일까요.
망원경으로 코하쿠를 관찰하던 그 이상한 인물이 전 회차에서 언급된 문제의 라이너B인 것 같은데, 저렇게까지 집착해서 뭘 얻는지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이해의 범위를 벗어나니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이브 스트리밍은 역시 돌발사태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릴라송의 방송에 사고가 벌어졌군요. 여러모로 난감합니다.
마드리갈
2025-01-29 23:36:21
코하쿠를 스토킹하며 도촬하는 자도 릴라송의 라이브 스트리밍을 방해하는 자도 모두 악취미이지만 누가 더 나쁜지를 질문받는다면 정말 대답하기 힘들 것 같네요. 확실한 것은 두 행위 모두 자랑스럽게 자신의 소행이라고 공공연히 선전하고 다닐만한 긍지는 못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일까요?
민이 자기 시간을 가지면 배가 아픈 사람이 있나 하는 의문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