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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동아리방을... 옮겨?”
리암과 타마라의 입에서 동시에 나온 그 말에, 신시아는 눈치를 보는 듯 좌우를 돌아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마치, 신시아에게 확신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강압으로 그렇게 대답한 듯한 모양새다. 그걸 보자 리암은 다시 말한다.
“야, 신시아, 그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거, 총학 승인도 있어야 하고, 거기에 또...”
리암이 거기까지 말하려다가, 신시아를 다시 한번 훑어보더니 말한다. 며칠 전에 신시아와 의대 뒤편 공원에서 있었던 일이 막 떠오른 참이다.
“맞아! 네 능력이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뭐가 가능하다고? 그런 거라면 차라리 내가 해도 될 것 같은데...”
타마라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문득 신시아를 리암처럼 훑어보더니 말한다.
“어... 혹시 될 것 같기도 한데. 신시아, 혹시 리암이 말하는 거, 네가 잘 해 볼 수 있냐?”
“둘 다 왜 그래? 나는 동아리방을 통째로 떠다 어디로 옮기는 재주는 없는데.”
신시아는 난감했는지, 두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그러다가, 리암과 타마라가 한숨을 쉬는 걸 보게 된다.
“아니, 그렇게 다들 나를 왜 그렇게 봐! 나는 그런 거 없다니까!”
“꼭 그렇게 해 달라는 건 아니야! 그저, 우리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
타마라의 그 말에 신시아는 자신도 맥이 빠졌는지, 그냥 밥이나 마저 먹기로 한다.
한편, 미린중학교 운동장에 차려진 트랙 뒤쪽의 산책길. 갑자기 트랙 일부가 사라진 걸 확인하자, RC브라더스의 부원들이 자못 심각하게 회의를 하는 중이다. 되도록 이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 모양이다. 임시방편으로 산책로에 가림막 같은 걸 쳐 놓은 것도 보이고, 부원들끼리는 말도 조곤조곤 하고 있다.
“트랙이 사라졌는데 이거 어떡하죠?”
“또 어떤 녀석이 수작을 부린 거야. 그냥 말도 없이 사라진 거야?”
“네, 선배님. 그냥... 저희는 아무 낌새도 느끼지 않고 다만 경기 준비만 했을 뿐인데...”
해진의 후배들은 나름대로 찾아보기는 했는지, CCTV까지 돌려본 결과를 보여준다. 곧, 해진이 그 영상에서 무언가 이상한 걸 찾아낸 모양이다.
“에이, 누가 또 장난을 쳐 놨잖아.”
“아니, 누가 장난을 친 걸 선배님이 어떻게 또 알고요?”
해진은 후배 부원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왜 얼마 전에 방송부에서 앰프가 갑자기 사라져서 그것 때문에 잠깐 말썽이었던 적 있잖아. 그 녀석이 이제 트랙에다 그 짓을 한 거라고!”
“그러니까, 선배님이 그 녀석을 보기나 했어요?”
“야, 미하엘, 사비하, 잘 봐. 나도 다른 동아리에서 공유받은 게 있지. 패턴이 정확히 똑같다니까?”
해진이 막 후배들에게 무언가 보여주려 하는 참에, 누군가 그 산책길을 지나는 것 같다. 해진은 곧바로 그 사람을 낚아채듯 해서 이쪽으로 오게 한다. 누군가 보니, 예담이다. 해진은 곧바로 자기가 천군만마를 얻기라도 한 듯, 예담에게 말한다.
“야, 예담아, 잘 왔어! 역시 너밖에 없다니까.”
“야! 김해진! 무슨 내가 만능 해결사인 줄 알아!”
“그러니까, 너도 지나가면서 봤지? 여기 트랙이 갑자기 사라졌거든? 너 누군지 알지?”
“어, 그러니까, 아는데...”
당연히, 예담은 그저 이 근처를 지나가다가 해진에게 우연히 걸려든 것이니, 이 상황에 대해 잘 알기는커녕, 그냥 트랙 중 일부가 사라진 것만 봤을 뿐이다.
“좋아, 그러면 그 녀석, 좀 잡아 줄 수 있어? 너라면 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부탁한다고! 기껏 내가 이렇게 판을 잘 벌여 놨는데, 그걸 망친 녀석은 내가 용서할 수가 없어!”
“아니, 그러니까 해진아, 나는 단지 여기를 지나갔을 뿐이고, 그런 건...”
예담은 그렇게 말하며 그 자리를 서둘러 벗어나려 하지만, 해진은 울상이 되어 있다. 다만 그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크게 소리를 내지 못할 뿐이다.
“그러지 말고, 예담아, 너 잘 알잖아!”
“나도 그냥 그런 녀석이 있다는 것밖에 모른다니까. 그리고 너는 지금 네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냐? 지금 밖에 너희들 기다리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기는 하지만...”
예담은 거기서 더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붙잡지 말라는 듯, 거기를 떠나 발걸음을 옮긴다. 해진은 잠시 말이 없다가, 예담의 그 말에 무언가 힌트를 얻었는지, 무릎을 치며 자리를 나선다.
“아... 그래. 그래도 우리는 RC카를 해야겠지...”
한편 그 광경을 몰래 지켜보던 민준은, 동급생들 사이에 끼어서 웃음을 참고서 ‘일’이 되어가는 광경을 지켜본다. 트랙 중 일부는 자기 능력으로 투명화가 된 상태다. 민준에게는 지금의 혼란상도 재미있지만, 앞으로 RC브라더스 부원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가 궁금하다. 동아리 매니저 해진이 울상이 된 것까지도 봤다. 지금까지는, 민준이 계획한 대로 되고 있다. 민준으로서는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그런데...
“어?”
붕붕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매우 태연하게, 해진을 비롯한 RC브라더스 부원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RC카 경주를 속행한다. 거기에 민준의 눈을 더 믿지 못하게 만드는 건, RC카들이 민준이 만들어 놓은 그 ‘함정’은 무시하고서, 쌩쌩 달리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실제로 트랙이 없는 건 아니고 단지 민준의 능력으로 그 트랙을 보이지 않게 만든 것뿐이기 때문에, 실제로 RC카가 달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안돼... 저러면 안된다고! 왜 그냥 태연히 달리고 있는 건데!”
그 말이 입에서 나오려고 하지만, 민준은 급히 입을 틀어막는다. 하필 근처에 있는 건 민과 유를 비롯한 5학년 동급생들이다. 특히 민에게 걸려 버리면 ‘끔찍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에, 민준은 더 몸을 사린다.
“어, 어어...”
입을 막은 보람도 없이, 민준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말이 새어나온다.
“뭐야, 여기 우리 말고도 또 누구 있나?”
하필이면, 민이 그것을 들어 버렸다. 민이 여기에 누가 더 있다거나 하는 걸 아는 건 아니지만, 이 목소리는 여기 있는 친구들과는 다른 목소리라는 걸 알기에, 일종의 본능적인 직감이다.
“아니, 민아, 너 혹시 귀가 잘못된 거 아니냐? 여기 누가 또 있다고 그래?”
“어? 아... 아냐. 내가 그냥 잘못 들었나 봐.”
하지만 당연히도, 민준의 입장에서는 지금 민의 반응도 놀랍기 그지없다. 곧바로 민준은 그곳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한다. 최대한, RC카 트랙이 있는 미린중학교 운동장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달리니, 한적한 산책길이다. 물론 민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고, 그 산책길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는 길이다.
“뭐야, 무슨 이상한 바람이 부는 것 같은데?”
“아냐, 바람 안 불어.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민준도 알 것 같은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제 곧 다시 잔디밭이다. 그런데, 무언가 축축한 것이 민준의 다리를 붙잡는 것 같다.
“아니, 뭐야?”
민준이 발 아래를 내려다보니, 괴물의 손 같은 것이 민준의 발을 잡고 있다. 하지만, 민준이 더 놀랄 만한 건 따로 있다. 민준의 눈앞에 있던 잔디밭은 어디로 가 버리고, 민준은 자신의 발이 공중에서 헛발질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걸 깨닫고 1초도 되지 않아, 민준의 몸은 발 아래에 있는 연못으로 입수해 버린다.
풍덩-
“어, 뭐야! 뭐가 연못에 빠진 것 같은데?”
연못 근처에 있던 중학생들이 난데없이 뭔가 빠지는 소리가 들리자, 연못으로 모여든다. 물론이라고까지는 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연못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연못 위에는 무언가 떨어질 만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이 일어나니, 연못 주위에 모인 중학생들로서도 놀라워할 수밖에 없다.
“그러게. 지금 보니까 연못 가운데에...”
“에이, 물고기가 춤이라도 추었나?”
연못 주위에 모여든 중학생들이 저마다 추측을 내놀는 가운데, 민준은 연못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 이목이 다들 집중되어 있는데, 움직이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물자국이 남고, 그러면 웃음거리가 될 것은 시간문제다. 거기에 소리도 낼 수 없다. 다행히 연못은 얕다. 입을 틀어막은 채로, 그 중학생들이 자리를 뜨기까지, 민준은 숨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민준은 자신이 겪은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혼란스러워한다.
“뭐지...? 뭔가 내 발목을 잡았는데... 분명히 만화 같은 데서 본 괴물 같은 거였는데...? 뭐였던 거지?”
“그래도 조금 이상했던 것치고는 잘 끝났잖아.”
어느새 RC카 경주도 다 끝나고, 어느덧 1시가 다 되어, 다들 교실로 돌아가는 길이다. 특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간 거라 불평과 불만을 은근히 쏟아내던 민 역시, 나름 만족했는지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다.
“너 아까는 보기 싫은 거 얼굴에 쓰여 있더니, 지금은 뭐냐?”
“아, 왜 그런 거 있잖아! 처음 먹을 때는 뱉고 싶은데...”
“아, 그래? 너, 다음에는 RZ타워에서 열리는 RC카 페스티벌 좀 보내 줘야곘네?”
옆에서 걷던 유가 그렇게 말하자, 민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아, 아니야! 이건 그냥 예를 든 거니까, 오해는 말아 줘! 나는 그냥 단지...”
“하하하, 그러면 진짜 대회다운 대회에 좀 데려가 줘야겠는데?”
그런데, 그렇게 말하다가, 마시모가 뭔가를 본 모양이다. 누군가의 발자국인데, 물에 젖어 있고, 거기에 맨발로 걸어다닌 것인지, 발의 모양이 훤히 보인다.
“이거 누가 이런 거냐? 설마, 누가 물에 빠졌다가 나온 건가?”
“글쎄... 보니까, 이거 완전히 우리 또래잖아?”
“우리 또래 누구를 말하는 거지...”
민준은 5학년 A반 교실 앞에 다시 나타난다. 물론 옷은 어떻게 한 건지 대충 말렸지만, 머리는 원래의 잘 손질된 머리가 아닌, 마치 ‘미역과 일체화된 것 같은’ 모양이다. 누가 봐도, 그건 일반적인 헤어스타일이라고 볼 수 없음은 분명하다.
“어? 민준아, 너 머리 왜 그러냐?”
“아, 아니야, 제이미! 그냥 이거, 기분전환을 좀 해 보려고 했지!”
“어... 얼마 전에 니키타도 너하고 비슷한 머리 했던데, 그거 혹시 유행이냐?”
‘제이미’라고 불린 민준의 친구가 그렇게 말하자, 민준은 순간적으로 무언가 가슴을 후벼파기라도 했는지, 큰 소리를 지르려 하다가, 얼굴만 붉어진 채로 어색하게 말한다.
“야... 그거 유행이라고 하기에는... 모르면서 그렇게 말하지 마!”
민준이 먼저 자기 교실로 들어간다. 제이미는 ‘민준이 왜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민준을 돌아보며, 교실로 들어간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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