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해적과 관련된 여러 매체에서 이것을 자주, 아니 어쩌면 항상 보셨을 지도 모르겠군요. 검은 바탕에 해골과 십자로 교차된 뼈 두 개의 깃발.
그런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해적기라고 생각하지만 정확히 이것을 가리키는 명칭이 있단 것은 잘 모를 지도 모릅니다.
졸리 로저(Jolly Roger). 그렇습니다. 이것, 그리고 이것과 같거나 비슷한 양식의 깃발들의 통칭이기도 하지요.
대개 이런 해적을 소재로 삼은 매체는 대항해시대 말기나 그 이후의 17세기 초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도 이 깃발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깃발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선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이 깃발은 당시 해적들의 상징이었단 것이지요. 물론 단순 해적이 사용하긴 했지만 사략선이 이런 깃발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사략선의 기본적인 성격도 그렇고 사략선이 쇠퇴한 후 그 중 해적으로 돌아선 이들도 있으니 결과적으론 해적이랑 별로 다른 건 없었지만 말이죠.
많은 해적 매체에서는 이 깃발을 항시 달고 다니는 것으로 나옵니다만(아예 검게 물들인 돛에 이 무늬를 새기고 등장하는 경우도 많지요.) 실제로는 평소에는 자국의 깃발 등을 상선기(Merchant Flag)를 달고 다니다 전투시에만 다는, 전쟁기(War Flag)의 역할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일반 상선 등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 상대 선박 등지에 접근하거나 은밀하게 활동하는 데 더 유리했을 테니까요. 아마 항시 달고 다니는 해적기의 이미지는 좀 더 강렬한 해적의 이미지를 위해 후대에 창작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재미있는 건 이런 것에도 다양한 도안이 있고 그 도안마다 각각 상징하는 의미가 담겨있었단 사실이 있다는 것.
해골이야 고대부터(그리고 지금까지) 죽음의 상징으로 통하고 있고 이를 새겨넣음으로서 상대방을 위협하는 용도로 사용하는데 여기에 추가로 칼을 도안에 추가함으로서 맹렬한 싸움의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고 붉은색으로 피나 심장의 도안을 새겨넣기도 하고 상대방이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남았단 의미로 모래시계를 집어넣기도 하고 꼭 해골을 집어넣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도안을 이용하는 등 졸리 로저는 많은 형태의 바리에이션이 존재하였었습니다.
그리고 17세기가 끝나고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도안은 많은 사람들의 인상에 남아 군이나 각종 매체에서 이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제일 유명한 건 나치 독일의 토텐코프지만……실제로는 더 많은 곳에서 이 도안이 사용되었었다 합니다.
영국 잠수함 HMS Utmost의 졸리 로저.
이것은 2차대전 당시 미군의 제 90 폭격전대(90th Bombardment Group)의 부대마크. 사족으로 이 부대는 해체되었다 재편성되길 반복하다 현재는 제 90 작전전대(90th Operations Group)로 개편되어 부대마크도 달라져 저 마크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일 유명한 미 해군의 제103전투비행대(VFA-103).
졸리 로저스란 별칭은 처음부터 103 전투비행대의 상징이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원래 이 부대가 VF-103으로 창설되었을 당시의 이름은 "슬러거스(Sluggers)"였고 부대마크도 지금이랑 전혀 달랐었거든요.
최초의 졸리 로저스는 2차대전 말기에 창설된 VF-17(후에 VF-5B, VF-61로 개편.)이었는데 훗날 해체되면서 재창설된 VF-84(최초 창설은 1944년이었고 별칭은 "울프 갱(Wolf Gang)". 1년만인 1945년에 해체된 부대였습니다.)에 이 이름을 넘겨주었는데 그 후에 또 VF-84가 해체되면서 최종적으로 현재의 VFA-103의 전신인 VF-103에 넘겨져 현재의 상징으로 남았지요.
특정 부대 마크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다른 부대로 옮겨지며 해당 부대의 상징으로 역사를 이어오는 모습을 보면 역시 해적은 로망인 것이려나요?
이외에도 미 해병대 정찰대들의 마크에는 꼭 졸리 로저가 들어가지요.
그 외에는 사용례가 너무나도 많으니 더 많은 부대를 보시고 싶으시다면 이쪽(http://en.wikipedia.org/wiki/Skull_and_crossbones_(military))을.
나치 독일이 토텐코프를 널리 사용했던 영향인지 유럽 쪽에선 졸리 로저가 자취를 감췄습니다만 어째 미군은 여전히, 그것도 정말 많은 곳에서 졸리 로저를 사용하고 있죠. 대단하면 대단하달까요……뭐, 미국은 해적의 날이란 것도 있고 그 이전에 17세기의 해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받는 소재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한국에도 이 졸리 로저를 사용하는 부대가 하나 있었네요.
바로 이곳. 대한민국 육군 제3보병사단. 통칭 "백골부대". 이름에서부터 이미 나타나 있지요.
이 부대의 해골은 6.25 당시 백골이 될 때까지 싸워서 북한에게 빼앗긴 서북땅을 되찾겠다는 의미로 서북청년들이 철모에 해골을 새기던 것이 기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호전적인 부대지요.
그래서 최초 창설 당시까지만 해도 부대 마크에 이런 식으로 졸리 로저가 들어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순간 빠져서 별 세개만 들어가 있는 마크가 된 적도 있었지요.(육군본부와 많이 비슷해 보여 헷갈리는 사람도 많았다고;;;) 민간인들에게 혐오감을 주어 부대 이미지에 좋지 않았다나 뭐라나…….
그러나 이는 백골부대란 이름에 별로 어울리지 않기도 했고 그 이전부터 비공식적으로 사단마크에 해골을 집어넣기도 했고 연대 비표나 수색대 흉장, 그리고 부대 조형물 등 어차피 곳곳에 백골이 널려있는데 굳이 사단마크라고 백골을 못넣을 이유도 없거니와 현대에 와선 해골이 주는 기존의 공포스런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어서 결국 작년 12월에 현재의 부대마크로 바뀌었다고 하지요.(그래도 자료사진 등을 보면 한동안은 별 세개만 그려진 마크가 꽤 랫동안 사용되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최근 입대하는 신병들의 마크에는 확실히 백골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럼 마무리는 현재 시점에서 제일 유명한 해적 소재 영화인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포스터로.
이상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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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드리갈
2013-12-14 18:48:14
졸리 로저를 보면, 해적 말고도 유독물 표지가 생각나요.
이를테면 메틸알코올 용기 겉면에 있는 저 표시와 유독물, 가연성이라고 쓰인 거라든지...
토텐코프는 죠죠의 기묘한 모험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대로 나왔어요. "나치스" 라는 표현은 모두 "독일" 로 바뀌어서, 죠셉이나 슈트로하임의 명대사에도 나치스 대신 독일이 사용되고 있어요. 단 슈트로하임이 쓴 정모에는 토텐코프가 그대로 묘사되어 있어요. 그것 자체가 나치미화인 것도 아니고, 독일형법 86a조에서도 과학이나 예술 등에서의 표현을 제외한 사용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니까 가능한 것으로 보여요.
SiteOwner
2013-12-19 19:39:58
토텐코프의 경우 교차해 놓은 2개의 긴 뼈가 해골에 비해서는 상당히 작고 뒤에 위치해 있어서, 뼈의 끝부분들이 마치 해골의 귀같은 모양을 띠고 있습니다. 졸리 로저의 경우는 확실히 그 긴 뼈가 해골과 떨어져 있거나, 해골의 뒤에 위치하더라도 토텐코프처럼 귀같이 보이지는 않는 명백히 다른 모습이니까 나치에 엮이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부분에 존속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해골 그림을 봐서 좋은 기분은 들지 않지요.
운전중에 저 표지와 "유독물" 이라는 글자가 같이 쓰인 가스나 화공약품의 적재차량을 보면 아무래도 가까이 가고 싶지가 않아집니다. 그 차가 가속해서 멀리 떠나거나, 아니면 신속히 그 차에서 멀어지는 식으로 피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