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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독함과 불공정의 안쪽

마드리갈, 2014-12-18 23:08:48

조회 수
279

각종 언론보도를 보면, 사회전반에 악독함과 불공정의 사례가 나날이 늘고 있어요.

이것이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초에 유행했던 "사회가 투명해져서 이전의 폐해가 더욱 잘 보인 것일 따름" 이라는 논리로 설명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이 사회는 그냥 투명한 게 아니라 광섬유만큼의 투명도가 확보되어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왜 세상이 혼탁한 것인지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말이죠.


흔히 이런 악독함과 불공정이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바로 고용시장.

특히, "젊을 때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 라는 말로 이러한 상황이 많이 미화되기도 하는데, 글쎄요? 물론 어느 정도의 외부자극은 도전으로 작용하여, 그것에 직면한 사람이 강해지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어요. 현재의 상황은 그런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결과를 정해놓고 패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랄까요.


이미 2013년에도 사회문제의 하나로서 시사 키워드가 된 "갑의 횡포" 중에 올해에는 이런 것이 적발되기도 했어요.

하나는 제품을 영업사원에게 억지로 떠넘겨 놓는 이른바 가상판매를 해 놓고 물품대금 및 그에 대한 이자를 내라고 기업이 소송한 사례. 이것은 법원이 철퇴를 내렸어요.

또 다른 하나는 84일간 매일 근로계약서를 쓰게 하도록 하고 이후에 재계약을 하지 않는 형식으로 파견일용직 직원을 내친 호텔의 사례. 처음에는 지방노동위원회가 호텔의 손을 들어줬지만 중앙노동위원회가 이 사안을 부당해고로 판단하여 해당 직원의 복직 및 미지급임금의 지급을 명령했어요. 하지만 호텔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아요.


이 두 사례를 보니 악독함과 불공정의 끝이 대체 어딘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기 그지없어요. 게다가 이제는 부끄러움도 없는지 대놓고 저런 행위를 강요하고 있으니 이게 기업인지 조직폭력배인지도 모르겠고 게다가 앞으로는 또 어떤 창의력을 발휘하여 더욱 지독하게 진화할지 겁이 난다는 생각까지 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한번 발상을 바꾸어 볼까요?

이러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수익을 창출할 수 없을 정도로 기업의 역량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그래서 기업가정신에 기반한 혁신보다는 보다 손쉽고 가시적인 수단인 쥐어짜기나 배신 등의 각종 술수로 연명하기로 작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기업의 황혼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렇게 본다면 지금 이러한 행위로 이득을 보겠다는 기업들은 정말 바로 앞이 어두운 게 아닌가 싶어요.


사람은 주어진 게임의 법칙에 따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예요.

즉, 결과가 명백히 예견되고 있고 그 결과가 자신에 불리할 것이 보인다면 선택은 이 둘 중의 하나가 되어요. 참여하지 않거나, 룰을 바꾸거나. 보통 이렇게 되면 주최측은 "너 아니라도 올 사람은 많다" 라고 자신만만히 받아치겠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요? 질소과자 논란으로 압축되는 과대포장으로 점철된 부정불량식품으로 인해 수입과자 시장이 급속히 발전한다든지 그리고 이전부터 국내 유통업체들의 폭리 문제에의 반작용으로 해외의 통판에서 직접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


언제 그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악독함과 불공정을 내세운 기업들이 무너지게 된다면 여론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기도 해요. 기업들이 소비자들이 애국심도 정도 없는 악독하고 불공정한 자들이라고 욕하게 될지, 아니, 그러기 전에 그렇게 말할 기회나 얻을 수 있을지.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10 댓글

안샤르베인

2014-12-18 23:12:41

소위 말하는 갑질이라는 표현을 어디서나 들을 수 있을 정도니 정말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이제 슬슬 취업시장에 뛰어들어야 할 때인데, 저런 자들 틈바구니에서 정말 사용인을 생각해주는 기업을 만날 수 있으련지...

마드리갈

2014-12-18 23:32:39

제가 보기에는, 그 횡포가 이미 위험수위를 한참 넘었어요. 뭔가 대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러면서 동시에 대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하는 우려가 겹치고 있어요.

온갖 인적성검사, 심층면접, 인턴 어쩌고 하면서 굉장히 꼼꼼하게 인재를 선발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해요. 그렇게 가려 뽑았는데 신입사원의 사직 및 이직이 횡행한다면, 결과론적으로 인재선발이 잘못된 것이나 다름없는 거니까요.

TheRomangOrc

2014-12-18 23:14:49

제 사촌형의 경우엔 백화점에서 의류매장 매니저일을 하시고 계시는데 비슷한 일을 당하신 적이 있어요.


해당 층의 플로어 매니져가 각 의류매장 점장들을 모아서 조회를 하더니 앞에 수박을 놓고서 개인 당 두 대 씩 가져가라 했데요.  문제는 이게 그냥 나누어주는게 아니라 각 점장들이 각자 자비를 지출해서 백화점 내에 판매 후 남은 악성 재고들을 사가라는 거였어요. 거기다가 팔고 남은거라서 그런지 사촌형이 집에 가져와서 같이 먹었는데 당도도 무척 떨어지고 맛이 없더군요. 수박값도 차마 말을 못하는걸 보니 꽤 비쌌나봐요. 


정말 폭력적이기 그지 없는 파렴치한 짓이라고 생각해요.

마드리갈

2014-12-18 23:36:12

머리를 나쁜 쪽에 잘 쓴 대표적인 사례네요.

그런 형편없는 상품을 구매한 것은 백화점인데, 그것에 대한 책임은 백화점이 지는 게 아니고 각 의류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신 져야 하는 이러한 불합리는 흉기를 들지 않았을 뿐 대놓고 강도짓이네요.


지금 이런 짓이 금융상품 쪽에도 횡행하고 있어요. 제가 간접투자상품을 불신하는 주요 이유예요.

대왕고래

2014-12-18 23:16:20

당연하게 그렇게 되리라는 걸, 확실히 글로서 보여주셨어요.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있는 장소에 걸려져있었으면...하고 바라게 되네요.

위에서 더 커다란 힘이 유리창을 오염시키지 않는 한은 저것들이 모두 사람들의 눈에 보여질 것이고, 사람들의 생각은 한쪽으로 기울게 되겠죠. 잘못된 것은 안 좋은 것이다라는 당연한 생각을 말이죠.-사실 유리창을 오염시키면 더 심해질 뿐이고, 그냥 한바탕 불바다가 될 뿐이고요.

고쳐지거나, 아니면 갈아엎어지고 새로운 작물을 심기 좋은 땅이 되거나. 둘 중 하나라고밖에 생각이 되질 않아요.

마드리갈

2014-12-18 23:44:41

좋은 글로 봐 주셨군요!! 영광이예요!!

유리창 비유가 상당히 재미있어요. 여기에 조금 더하자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어요. 사람이 정해진 룰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 더러운 유리창 안쪽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아예 돌을 던져 깨버릴 수도 있고...

요즘 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자정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아요. 그래서 한바탕 크게 홍역을 치뤄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맞지 않기를 바라는데 과연 그렇게 될지...

하루유키

2014-12-19 09:18:25

본문과는 좀 별개의 내용인것같아 껄끄럽긴 합니다만, 흔히들 관용구(?) 정도로 쓰이는 "아파야 청춘이다" 라는 말 있잖아요? 개인적으로도 못마땅한 말이지만 어디 드라마였나 프로그램같은데서 가장 재밌는 반박이 나왔더군요.


"아프면 환자다!!"

마드리갈

2014-12-19 09:47:53

동떨어진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상당히 맞닿아 있으니까 껄끄럽게 생각하지 않으셨음 해요.

아프면 청춘이 아니라 환자 맞아요. 이 당연한 것을 부정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아프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신호이기도 한데, 이것을 무시하면 그냥 바로 죽어 버릴 수가 있어요. 젊은층이니까 그에 대한 횡포가 정당화될 수 있고, 그게 현실이라는 것은 위로하는 척 하면서 뒤로는 비수를 들이대는 파렴치함 그 자체예요. 이렇게 사실을 호도하는 글을 써서 달성하려는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 불순하리라는 건 금방 짐작되어요.

조커

2014-12-19 14:35:25

흔히 말하는 열정페이니 뭐니 그런것도 이제는 도를 넘어서 말 그대로 횡포 수준에 심지어는 "너 재능 네가 벌어준 돈 다 내거다요"식으로 막나가는 업체가 느는것도 이런 기류에 속하는 일이려나 싶기도 합니다. 이것도 진짜 어찌보면 갑의 횡포입니다 그것도 아주 고약하고 치사하고 역겹고 더러운.....


그 열정페이덕에 능력있는 사원들 다 털려나가고 결국엔 저 혼자 그 해야할일 붙잡고 끙끙대도 회사는 나는몰라라 식으로 귀를 닫았던 디자이너 시절이 떠올라서 진짜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은 충동이 들때도 있습니다.


아니 원래 노동력에 대해서 정당한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맞거늘 열정페이는 대체 뭐랍니까. 저도 사회인 초입시절에 겪은 일이긴 하지만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 진짜 조커가 되지 않은게 용할 지경이었죠.

마드리갈

2014-12-20 23:00:55

결국 열정페이니 뭐니 하는 그런 횡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꼴밖에 되지 않아요.

그리고 그런 횡포를 저지르는 기업은 계속 그 거위가 되어 줄 사람들을 찾지만, 사회 구성원 내에는 어느 정도의 학습효과가 공유되게 되어요. 즉, 그렇게 짜여진 프레임에 갇혀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기피하게 되어요. 이미 10여년 전부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이공계 기피 및 의학, 법학, 경영계열로의 쏠림이 왜 그렇겠어요? R&D 인력을 소모품 취급하고 직업선택의 자유조차 박탈해 버렸으니 그렇게 학습효과가 발생하는 거예요.


합리의 힘은, 불합리를 조장하는 행위자들을 무서울 정도로 짓밟아 놓는 것으로 응징해요.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경영주 일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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