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Science Fiction의 약자입니다. 즉 과학 관련의 창작물이라고 번역할 수 있고, 흔히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역어로 잘 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SF는 집필 당시에 일반적으로 미래적이라고 여겨지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창작물들을 접하는 사람들은 등장하는 문물에 경이로움을 표하거나 말도 안된다고 비난하거나 하는 여러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실재하는 현실에 기반한 창작물이라도 사회기풍이나 규범에 어긋나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아예 기반 자체가 현실의 것을 뛰어넘었다면 그 반응이 어떨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약간 생각을 달리해 보면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SF가 집필 당시의 과학상식으로 미래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반영하고 있다 보니, 창작시기가 오래되어 과학의 연구성과가 현대보다 현저히 낮은 경우에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별것 아니게 느껴지는 것들이 상당히 많을 것도 충분히 예측가능하고 또 실제로도 그런 예가 몇 가지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어떤 것이 있는지를 알아 보겠습니다.
룩셈부르크 출신의 미국인 발명가이자 작가인 휴고 건스백(Hugo Gernsback, 1884-1967)의 소설 27세기의 발명왕(원제 Ralph 124C 41+)에서는 그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놀라운 기술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 책을 읽은 지 거의 20여년도 더 넘고 벌써 30년에 근접해가고 있다 보니 기억이 좀 희미해서 기억을 더듬고 영어 원본 및 정리자료를 다시 보면서 정리하는데, 특히 인상적으로 보였던 것이 영상통화, 시속 600마일(=966km/h)로 나는 항공기, 인공광원 및 화학비료를 통해 각종 농산물을 속성으로 그리고 깨끗하게 재배하는 거대한 유리온실, 시속 300마일(=483km/h)로 달리는 대륙간 지하고속열차, 어떤 언어든지 자동으로 통역해주는 번역장치, 방사선 발생장치를 탑재하여 그 방사선으로 인마를 살상하는 휴대용 화기, 음성을 해석해서 그래픽 데이터로 변환해 주는 장치, 공중 2만피트(=6096m) 위에 떠 있는 인공휴양도시, 부패를 완전히 막는 녹색 가스, 무중력상태를 발생시켜 기존 방법으로는 구현불가능한 곡예를 선보이는 서커스, 그리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경이로운 외과수술까지 엄청난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거된 것을 보자면, 교통, 통신이나 농업관련 기술은 굳이 27세기가 아니라도 이미 지금 충분히 실현되고도 남은 것이 아주 많습니다. 이미 초음속 여객기인 영불합작의 콩코드 및 소련의 Tu-144가 있었고, 2011년에 취역한 보잉 747의 최신판인 747-8의 순항속도가 이미 917km/h인데다 철도 관련으로 보면 이미 차륜식 고속철도차량이 500km/h를 돌파한지도 오래이고 일본에서는 자기부상방식의 장거리 고속철도인 츄오신칸센(中央新幹線)이 건설중입니다. 게다가 작품에 묘사된 거대한 유리온실에서는 깨끗이 소독된 흙에 고도로 정제된 화학비료를 혼합하여 식물을 속성으로 키운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게 하기보다는 수경재배가 보다 관리가 손쉽고 저렴합니다. 게다가 당시는 시비량이 과도하면 오히려 작물의 생육을 방해한다는 것 자체가 현업종사자나 식물학자 등을 제외하면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영상통화 같은 건 이미 핸드폰이나 웹메신저 등으로 아주 쉽게 가능한 것인데다 오늘날의 통신시스템의 신뢰성으로는 눈사태 한번 났다고 이것이 혼선되어 다른 채널과 마구잡이로 섞일 정도로 취약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같은 작품에 나타난 기술 중 공중에 뜬 인공휴양도시, 부패를 완전히 막는 가스, 대륙간 철도터널, 무중력 서커스 같은 것은 현재 구현되고 있지 않습니다. 아예 기술 자체가 안되거나,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효용에 의문이 있거나, 서커스같이 시장 자체가 축소된 것도 있다 보니까요. 게다가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외과수술은 27세기가 아니라 몇 세기가 되더라도 가능할지 자체에 의문이 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등장하는 기술에 불균형이 존재하는 것 이외에도, 당시의 과학기술의 연구성과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거나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의 SF 작품 중 1940년에서 1944년에 걸쳐 시리즈로 발간된 캡틴 퓨쳐(Captain Future) 시리즈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시리즈 중 에드먼드 해밀턴(Edmond Hamilton, 1904-1977)이 집필한 것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가설과 시간여행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시리즈에는 화성과 목성 사이에 무수한 소행성들이 존재하는 것을, 과거에 어떤 행성이 있었는데 모종의 이유로 파괴된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을 적용해서 스토리를 진행시키고, 그 파괴를 막지는 못하기에 결국은 그 행성의 위성을 피난용 우주선으로 개조하여 행성주민들이 탈출하기로 결심하는데 동력의 추진체로 쓸 핵물질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태양계의 형성초기인 30억년전으로 시간여행을 하여, 핵물질을 더욱 많이 확보하게 됩니다. 보시다시피 여기에는 두 가지의 한계가 있는데, 태양계의 형성을 30억년전으로 잡은 한계, 그리고 반감기(half-life)의 개념은 이해하지만 방사성물질이 추가로 생성되지 않고 행성이 만들어진 초기부터 이미 분량이 결정되어 시간이 갈수록 계속 붕괴되어 줄어든다고 잘못 생각한 한계가 있습니다. 만일 두번째의 것이 사실이라면 이미 지구상에는 반감기가 짧은 방사성물질은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텐데 과연 그럴까요? 지하철 터널 내부만 하더라도 라돈이 생성되었다 붕괴되었다를 반복하는데.
또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창시자로 유명한 미국의 식품가공 엔지니어이자 작가인 에드워드 엘머 스미스(Edward Elmer Smith, 1890-1965)의 작품인 스카이라크(Skylark) 시리즈에는 오늘날의 과학적 상식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조차 나옵니다. 금속은 자유전자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보니 투명할 수가 없는데 작중의 외계문명이 만든 신비한 금속인 아레나크 금속이라는 것은 투명하고 그래서 각종 구조물을 만들었을 경우에는 속이 비쳐 곤란한 사정상 겉면을 도장한다는 설정이 붙어 있습니다. 두껍게 만드려면 소금이 필요한데 문제는 그 외계문명의 행성에는 소금이 지극히 부족해서 그게 안된다는 상당히 딱한 사정까지 붙어 있습니다.
이렇게 SF 속에는 놀라운 요소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적 한계로 인해 구현하는 기술에 불균형이 있거나 오늘날의 과학적 상식에 배치되는 것들도 많아서 의외로 구현되는 기술력이 낮다든지 비과학적인 요소가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러한 작품들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창작물 속에서 과학기술이 어떤 위상을 가지며 그 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상상하고 추구했는지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과학을 공부하고 다시 읽으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대체역사 SF 프로젝트인 폴리포닉 월드를 추진하는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일단 폴리포닉 월드는 현실세계에서 50-100년 정도 진보된 기술을 가진 세계를 상정하지만 이것을 50년 뒤에 읽어 보게 되면 과연 얼마나 적중할지...사실 첨단기술을 추구하면서도 의외로 보수적인 부분이 많다 보니 제가 이렇게 20세기 SF들을 평가하듯이 누군가가 폴리포닉 월드를 평가할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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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ter
2015-01-14 22:18:30
예측이 맞냐 안 맞냐와 상관없이 재미있지 않을까요? 2015년 현재를 사는 우리도 '이미 빗나간' 마야달력이나 노스트라다무스를 종종 끄집어내서 이런저런 방향으로 언급하지 않습니까. 예언은 쓸데없는 것이란 냉소부터 '시대상을 고려해 보면 이런 예언이 나올 수도 있다'라는 연구까지 등등.
아마 폴리포닉 월드도 '2010년대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였다'라는 사료가 될 수도 있겠죠.
SiteOwner
2015-01-20 00:51:43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마야달력,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등은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방면으로 연구되고 있긴 합니다.
하긴 어차피 예측이라는 것 자체가 어디까지나 현재의 시점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까 맞을 확률보다는 안 맞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주 유명한 사례로, 국제정치 이슈를 다루는 싱크탱크인 로마 클럽(Club of Rome)이 1972년 발표한 보고서인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는 엄청난 충격을 주어 현대문명이 자원부족 등의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고 우려했고 30년내 석유고갈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학자들이 참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계로 인해 빗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위기의식까지 폄하되어서는 안되겠지만요.
폴리포닉 월드를 미래에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예측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워집니다.
대왕고래
2015-01-15 20:53:44
SF는 미래에 대한 상상이 기반이 되고, 그것이 미래에는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또한 SF를 쓰는 사람도 과학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런 것에서 나오는 기묘한 미래상이 또한 SF의 재미라고 할 수도 있겠어요.
그, SF는 아닌데, 21세기의 여대생의 패션이라고 하는 것도 있었죠. 이것도 예측인데,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지고 어느 정도는 맞아떨이지지 않았어요. 어쩌면 앞으로 제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SF를 쓰게 된대도 이것처럼, 미래에는 맞지 않을지 몰라도, 현재에 보고서는 재미있게 느껴지는 걸 쓰게 될지도 모르죠. 그렇게 생각되네요.
SiteOwner
2015-01-20 01:04:32
동의합니다. 여러 창작물에서 묘사되는 기묘한 미래상, 그것이 바로 SF를 읽는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SF에서는 로봇이 인간형으로 묘사되긴 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일례로, 시판되는 로봇청소기는 청소하는 기능에 특화되어 있어서 두꺼운 원반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동차의 생산라인의 로봇은 팔의 끝에 용접기가 달려 있는 형태이기도 하고...그렇다고 해도 스타워즈나 아시모프의 로봇 관련 소설이 결코 재미없거나 한 것은 절대로 아니니까요.
21세기 여대생의 패션은 이미 포럼에도 올라왔던 거군요.
너무 앞서나간 것, 그리고 오히려 뒤처진 것도 있고...여러모로 재미있습니다.
앨매리
2015-01-19 06:11:58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옛날 사람들이 미래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나 글을 보면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고 아직도 실현되지 못한 것도 있고 해서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죠.
SiteOwner
2015-01-20 01:08:52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상당히 옛날에 읽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린다고 쓴다고 고생했습니다.
옛 사람들의 미래예측에서는 간혹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 중에는 21세기의 15년째 해인 올해 시점에서도 아직 실현되지 못한 것들이 있는데, 역시 별로 정보가 없다 보니 상상력이 보다 자유로워진 것일까요. 그러기에 그런 과감한 것들이 실현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TheRomangOrc
2015-01-21 19:57:30
학생시절 교수님께 SF장르에 대한 강의를 받을때가 생각나네요.
그 때 들었던 내용 중 인상깊은건 SF 안에서도 유행이 있다 라는 거였죠.
즉, 시대에 따라서 같은 SF장르더라도 내부적으로 묘사되는 스타일이 이러한 유행을 따른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실제 예를 보여주시기도 하셨는데 이러한 스타일이 시대별 그룹으로 유사성을 보인다는걸 확실히 알 수 있었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다루는 공상과학의 장르임에도 만들어진 시대상을 방영한다는건 참으로 흥미로운 내용이었어요.
SiteOwner
2015-01-24 23:55:53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SF 또한 시대의 유행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역시 인간의 사고방식은 그 시대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법이겠지요. 그것을 포착하는 것도 SF 작품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입니다.
TheRomangOrc님의 말씀을 접하고 보니, 폴리포닉 월드에는 어떤 시대의 유행이 반영되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만, 바로 떠오르지를 않습니다. 이것도 생각해 봐야겠군요. 일요일 늦게나 되어야 동생의 할 일이 끝나는 터라 그때까지 잘 생각하고 동생과 의견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키
2019-11-18 23:06:00
전부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거대한 장르의 일종으로 취급하고는 있지만, 소위 스페이스 오페라 라고 하는 은하계 영웅 활극 "스타워즈",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나오는 등 비교적 가까운 근미래의 생활상을 담은 "백 투 더 퓨처",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오가는 컨셉에 사이버펑크와 디스토피아를 섞은 "매트릭스 시리즈", 달에 사람이 가기도 전에 아날로그 연출만으로 거의 완벽한 우주 생활의 모습을 담아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똑같이 비교적 가까운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실의 친숙한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이 나오는 "그래비티"와 좀 더 미래의 화성 정착을 다루는 "마션", 발달한 유전공학으로 6500만년 전 멸종한 공룡을 복원시키는 "쥬라기 공원"까지.
똑같은 사이언스 픽션 장르라고는 하지만 각자 다루는 컨셉이나 시대상, 연출하고 싶은 표현에 따라 과학기술의 묘사가 극과 극을 달리죠.
그래비티는 현실과 크게 차이가 없을 정도이고, 백 투 더 퓨처의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기술도 예산과 효율성을 도외시한다면 만들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쥬라기 공원의 유전자 조작 기술도 실제로 비슷한 방법으로 멸종 생물들을 복원하려 시도하고 있는가 하면, 마션은 그보다 좀 뒤, 지구 외 천체를 개척하여 정착하는 묘사가 나오고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이미 우주 생활이 인간의 삶으로 자리잡고 있는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죠.
사실 이런 장르의 특징 중의 하나가, 스타워즈 시리즈 처럼 아예 그냥 스페이스 오페라 쪽으로 빠져버리면 웬만하면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해버리는데 마션이나 쥬라기 공원처럼 시대상이 어중간하게 가깝거나 하면 감상하는 독자가 살고있는 시간대의 과학기술로 작품의 묘사를 해석하려고 시도한다는거죠.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건 이미 우리는 옛날 사람들이 보기엔 충분히 미래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거에요.
SiteOwner
2019-11-19 21:52:06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거명해 주신 작품을 감상했을 때의 충격과 감동 등을 다시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는 옛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충분히 미래적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거명해 주신 작품 속에서 언급된 각종 사안보다 더욱 발전해 있기도 하고, 아직 미진한 부분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양상은 창작물이 만들어진 시점,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 및 주제의식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지만, 계속 정교해지고 있으며, 또한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나 파탄으로 치닫는 미래보다는 인간다움, 희망, 미래에의 사명감 등으로 가고 있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SF가 어떻게 발전할지도 기대됩니다. 그리고 그 발전할 SF가 대중의 시선을 잡을 때면 또 인류문명은 지금과 다르게 변모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