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설계기준을 140km/h로 상향한다는 언론보도가 나와서, 환영 반 우려 반으로 기사를 읽고 있습니다.
http://www.ytn.co.kr/_ln/0102_201503261353028880
사실 교통의 고속화는 교통수단이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시대이며, 이미 19세기 후반 영국의 적기조례(Locomotive Acts, 일명 Red Flag Acts)처럼 과도한 속도제한이 자동차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은 전근대적인 악법으로 두고두고 비판받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고속화에는 잊지 말아야 할 전제가 있기에 이것 또한 생각을 해야겠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를 높이려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도로를 잘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자동차를 잘 만드는 것.
일단 고속도로를 어떻게 잘 만들어야 하는지를 봐야겠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예 새로운 고속도로를 만들 때에 최소곡선반경을 크게 잡는 등의 근본적인 선형개량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존의 도로에서는 비용도 많이 드는데다, 구간의 특성에 따라서는 적용하기 힘들거나 아예 불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방법은 완전히 새로이 건설하거나 선형개량공사가 가능한 구간에 한정되어야 합니다.
곡선통과속도를 높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캔트량을 보충해 주어야 합니다. 즉 커브길에서 바깥쪽을 많이 높이는 식으로 개축하는 것인데, 이것 또한 공사가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또한, 기상현상에의 대처력을 높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배수가 용이하게 표면처리를 해 주는 것만으로도 빗길에서의 미끄러짐 등은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속화가 된 만큼 악천후에서의 속도제한은 더 크게 걸어야 합니다. 140km/h에서의 20% 감속은 112km/h인데 이것은 악천후에는 너무 높은 속도입니다, 그래서 그냥 일률적으로 20% 감속을 규정해서는 안되고, 가능한 한 감속의 절대수치를 지정하거나 감속비율을 높여야 합니다. 즉 일례로 악천후의 경우 70km/h로의 제한 또는 50% 감속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경우를 보자면, 해야 할 것이 더욱 많습니다.
현재 시판중인 자동차의 성능은 크게 향상되어 있어서 어지간한 보급형 차종도 고속도로에서의 최고속도 정도는 쉽게 낼 수 있으며, 고성능 모델의 경우에는 리터당 100마력에 육박하는 고출력 엔진을 탑재한 승용차도 나오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성능향상에 비해 안전장치의 향상은 크게 이루어지지 않거나 보급이 활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점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사고가 났을 경우에 탑승자를 지키는 기술 이외에도 사고 자체를 회피하거나 크게 줄일 수 있는 기술도 발전해야 합니다.
그 중 가장 시급한 것은 브레이크 강화, 헤드업 디스플레이, 밀리파 레이더, 주간주행등의 4가지입니다.
주행속도가 빠를수록 제동거리가 길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생각해야 할 것이 공주거리입니다. 즉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아야겠다고 생각한 시간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시간의 차만큼 달리는 것이 공주거리이고, 그 시간차가 1초라고 해도 140km/h에서는 39m 가량을 그냥 달리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판단능력이 급격히 향상될 수는 없는 만큼, 그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브레이크가 더욱 좋아져야 합니다.
고속으로 달리면 주위의 사물들이 주행속도와 동일하게 지나간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래서 시야가 아주 좁아지게 되고 따라서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위험하게 됩니다. 그러니 항공기의 헤드업 디스플레이처럼 계기판을 보기 위해 시선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장치가 있으면 상당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속으로 달리면 그만큼 안전운전을 위해서 차간거리가 길어져야 하는데, 140km/h 정도의 고속으로 달릴 경우 앞차와의 차간거리가 충분한지는 목측으로는 판단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동차에 탑재하여 차간거리를 감지하는 레이더가 개발되어 속속 보급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아직 가격 문제로 보급이 활발하지는 않지만 운전자의 업무부담을 많이 줄여주면서 주변의 사각지대에 널린 위험을 크게 감경시키는 좋은 솔루션으로 발전이 기대됩니다.
그리고 한때 수입차에만 많았지만 요즘에는 신규생산되는 국산차에도 많이 포함된 주간주행등.
자동차의 전조등에 대해서는 보통 자신이 잘 보이니까 안 켜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일쇼크를 겪은 세대의 경우 자동차 전조등 사용을 잘 하지 않으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의 전조등은 자신이 밖을 잘 보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다른 운전자나 보행자 등에 잘 보이도록 하는 데에도 목적이 있으니 전조등 사용을 꺼리는 풍조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주간주행등은 낮, 특히 흐린 날씨에도 자동차가 잘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으니까 운전중의 주변정보 파악을 쉽게 하고 그래서 안전하게 고속주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고속도로의 속도향상도 좋지만, 이것을 위해서는 보다 안전하게 잘 달릴 수 있는 전제가 기반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전제는 고속도로 자체에 대해서는 선형개량, 캔트량보정, 기상현상에의 대처력 강화 및 악천후 속도제한 강화의 4가지, 그리고 자동차에 대해서는 브레이크 강화, 헤드업 디스플레이, 밀리파 레이더, 주간주행등의 4가지 전제가 필요함도 보았습니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고속도로의 고속화가 추진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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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
대왕고래
2015-03-29 17:19:30
고속은 좋지만, 그만큼 위험하다는 전제가 더욱 깔리게 되는 거겠군요.
자동차가 생기고 나서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확실히 이득이겠죠. 하지만 그에 따라서 위험도 뒤따라왔고요. (물리법칙들을 봐도 속도랑 가속도 때문에 힘이나 파괴력이 더 강해지는 게 보이니까요.)
더욱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된 만큼, 그에 따른 조심이 필요하겠어요.
하루유키
2015-03-31 10:14:42
어디서 듣기로는 1960년대 당시 0계가 운전하던 시절만 해도 그 당시 기술력으로는 유사시에 시속 220km로 질주하는 0계 전동차를 제어해 급정차시킬 방법이 없는 나머지 어차피 신칸센은 표준궤라 협궤인 다른 노선과 섞이지 않으니 신칸센 전용 노선을 분리해 철조망등으로 열차 운행에 지장을 줄만한 요소를 몽땅 차단시켜버리는 방법으로 높은 안정성을 획득했다고 들었습니다.
SiteOwner
2015-03-30 23:38:19
그렇습니다. 당장 운동에너지의 산출공식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운동에너지의 크기는 속력의 제곱에 비례하니 속력이 1.4배로 향상되면 운동에너지는 1.96배가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볼 문제가 아닌 게 드러납니다.
고속도로가 일반도로와 달리 보행자 및 외부차량과는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진출입이 전용의 출입구를 통해서만 가능하게 설계된 것도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육상교통의 경우, 신칸센은 아예 사람이 진입하지 못하게 노반 하부에는 철조망을 세워서 완전히 격리해 두고 있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고속화와 안전대책이 같이 추진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합니다.
TheRomangOrc
2015-03-31 23:42:51
전 특히 사람들의 시민의식의 향상이 많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어요.
아무리 좋은 시설과 장비가 갖추어져도 그걸 다루고 지나는 사람이 제대로 되있지 않으면 결국 사고가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시민의식은 산업 기술이나 설비와는 달리 단기간의 집중 투자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니 더욱 골치죠.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교육과 공익활동등이 뒷받침 되야 할탠데 이 부분은 2015년인 현재에도 많이 미흡한지라 아쉬워요.
SiteOwner
2015-04-01 22:53:00
좋은 관점을 제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아직 시민의식의 성숙함이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교통안전 같은 것은 그냥 언론매체나 사설학원 등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제도교육 안으로 편입해야 할텐데,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데에 이런 것만은 보이지 않는가 봅니다.
그래도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져서 다행이고, 앞으로도 더욱 개선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습니다.
SiteOwner
2015-04-01 23:14:53
하루유키님의 코멘트에 대해서 추가할 것이 있는데 내용이 좀 많아서 별도의 댓글로 추가하겠습니다.
신칸센의 설계단계에서 이러한 대안이 있었습니다.
도카이도신칸센의 경우 기존의 도카이도본선(도쿄~고베, 713.6km)의 선로용량 포화문제가 1920년대부터 대두되기 시작했고, 특히 중일전쟁이 개전된 1937년 이후에는 그 필요성이 더욱 강하게 제기되어 별도의 협궤노선과 별도의 표준궤노선의 2개의 안이 검토된 결과 1941년에 별도의 표준궤노선안으로 확정되었지만 결국 그 시대에는 착공조차 못하고, 일본의 패전 후 다시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결국 채택된 것은 철도성 해체 후 신설된 조직인 일본국유철도 주도의 새로운 노선인데, 여기에는 협궤 복복선, 협궤 별도노선, 그리고 표준궤 별도노선의 3개안이 있었고 최종적으로 표준궤 별도노선안이 채택되어 1959년에서 1964년까지에 걸쳐 도카이도신칸센이 건설되었습니다. 즉 정확히 말해서는 설계가 이미 1950년대말에 모두 끝났고, 이미 그 단계에서 기존 철도시스템과 하드웨어를 공유하지 않는 점을 더욱 철저히 하여 직선에서의 감속 폐지, 600m 룰 철폐, 다른 교통시스템과의 물리적 간섭 배제를 통한 극한의 안전을 추구한 것입니다.
직선에서의 감속 폐지의 사정이 좀 그런데, 일본의 철도노선에는 네트워크 확장에만 급급하여 대충 끼워맞춘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 구간에서 다른 선로가 갈려 나갈 경우 일반적으로는 분기부만 감속하면 되고 직선주행하는 부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 일본의 오래된 노선에서는 양측 모두 감속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600m 룰은 제동거리 600m를 준수하기 위하여 최고속도를 제한하는 방침이었습니다. 이것 또한 입체교차화 등을 통해 해결되고 있는 중입니다.
하루유키
2015-04-15 13:08:29
코멘트가 늦었습니다;;
신칸센의 표준궤 선택과 안전성에 그런 이야기가 숨어있었군요. 상세한 설명 감사드려요.
이번에도 하나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