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소설 관련 커뮤니티에서 흔히 보이는 표현들이 몇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표현을 하나 고르라면 “필력”이 있겠죠. 필력은 흔히 글 혹은 작가의 실력을 평가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평가자가 보기에 모범적인 글을 쓴 작가는 필력이 좋다고 표현하고 역으로 평가자가 보기에 부족한 작가들은 필력이 떨어진다고 표현하죠. 미묘하게 다르지만 비슷하게 쓰이는 표현으로는 문학성, 예술성 등이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굉장히 흔히 쓰이지만 전 그게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전 이런 표현들을 쓸 때는 굉장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표현을 쓰는 사람 본인이 작품비평(좀 더 넓게 나가자면 미학이나 예술철학)이나 창작에 관심이 없다면 해당 개념을 어찌 사용하든 문제는 없어요. 하지만 본인이 창작이나 비평에 관심이 있고 창작 공부의 일환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중이라면 해당 표현은 가능한 지양해야합니다. 이는 이런 표현들이 비평가를 함정에 빠트리기 쉽기 때문이에요.
“필력이 뛰어나다”라는 표현은 작가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작가의 실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만약에 여기서 “필력이 좋은 작가는 뛰어난 작가다” 같은 대답을 한다면 순환 논법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보기에 잘 쓴 글 같았다.”라는 주관적인 결론을 내어버린다면? 그러면 “이 작가는 필력이 뛰어나다”라는 발언은 자신의 취향에 대한 언급에 불과하게 됩니다. 일종의 말장난인 셈이죠. 이것이 개인적인 발언에서 언급된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이건 그저 자신의 발언을 더 멋들어지게 만드는 수사거든요. 하지만 본인이 해당 분야를 공부하는 중이라면 스스로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개념을 가지고 작품을 평가해놓고 “나는 이 작품이 왜 좋은지 이해했어!”라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천재가 아닌 이상 이런 사람은 절대로 성장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어떤 요리사 지망생이(혹은 요리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유명 셰프의 요리를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인의 손맛이 느껴지는 음식이라고 평가했어요. 이걸 그저 타인에게 요리 추천하는 멘트로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걸 본인의 요리 공부의 밑거름으로 삼는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겠죠. 본인 스스로도 “손맛이 좋다”라는 게 뭔지 모르니까요. 이걸 처음에 깨닫는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이를 깨닫지 못하고 반복하면 결국 그 상태를 유지할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해당 셰프의 음식을 좋아할 뿐인 “만년 요리사 지망생”이 되는 거죠.
필력을 예시로 들었지만 사실 이는 다른 표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학성이 뛰어나다”라는 표현을 이해하려면 결국 “문학성이 무엇인가?”를 논해야 하죠. 그리고 문학성은 문학+성(性)이므로 문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답을 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앞에 언급한 것 같은 함정에 빠지게 되거든요. 이 함정에 빠지는 것을 달가워할 창작자는 얼마 없을 겁니다. 그런데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함정에 빠져서 허덕이죠. 그렇다면 대체 이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할까요? 그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나름대로 “문학성”, “필력” 같은 표현들에 대해 확고한 정의를 내리는 거죠. 본인이 직접 정의를 내리지 못하겠다면 관련 서적들을 찾아보면 이와 관련된 논의를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가능하자면 해당 분야의 권위자에게 그 부분을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실제로 이런 두루뭉술한 표현을 즐겨 쓰면서도 해당 분야의 권위자이신 분들은 자기 나름의 정의를 내리신 경우가 많습니다. 그 분들에게 물어보면 해당 단어의 정의를 내려 주실 거예요. 물론 공감 여부는 이와 별개겠지만요.
첫째 방법이 너무 어렵다면 다른 방법은 그런 표현을 쓰지 않는 겁니다. “문학성”, “필력”과 같은 표현을 피하는 대신에 “이 작가는 어떤 포현을 즐겨 쓰는가?”,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는가?”처럼 평가자 스스로 이해할 수 있고 틀렸다면 쉽게 알아챌 수 있는 내용을 평가하는 거죠. 이런 평가들은 투박하지만 본인이 해당 분야를 공부하는데 훨씬 큰 도움이 되곤 해요.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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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Lester
2015-10-10 15:11:25
음, 요점은 '필력'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보다 "나는 이 부분을 높게 평가했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짚는 게 중요하단 말씀인가요?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는데, 헤밍웨이의 소설 같은 경우엔 문학성이 있음에도 마초스럽다느니 뭐니 하고 까이는 걸 보면 '무언가 대단한데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즉 문학성이나 필력(아니면 통틀어서 예술성)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기준으로 삼기는 뭐한 것 같아요. 예술에서는 도덕은 존재하지만 옳고 그름은 없는 것 같으니까요.
아니면, 그냥 '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 읽고 이해는 된다'는 말을 필력으로 대충 표현하는 것일지도...
Papillon
2015-10-10 19:54:47
평가자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가 여부만 따지면 그렇습니다. 두루뭉술한 표현을 이용한 평가는 멋있어 보일 수는 있으나 결국 자신이(좀더 넓게 보자면 자신과 유사한 취향의 사람들이) 작품의 어떤 면에서 매력을 느끼는 지 깨닫지 못하게 하거든요. 그것은 창작자로서도 비평가로서도 큰 손실입니다.
사실 형이상학 쪽으로 넘어갈 경우 저는 필력이나 문학성 같은 용어들을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보지만 이 글은 형이상학이나 언어철학 토론을 위해 쓴 글은 아니라 이를 생략하였싑니다.
SiteOwner
2015-10-12 23:48:07
로마법에서 말하는 conditio sine qua non이라는 게 있습니다. 대체로 불능의 조건, 원인 없는 결과 없음 등으로 번역되는데, 개별 사례를 보면 설탕에 독이 있다고 믿어서 그것으로 사람을 죽이려 든다거나 하는 황당무계한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접하면, 세상에 참 바보가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게 결코 남말할 만한 게 못되는 것이, 실제로 제대로 정의된 개념 없이 특정 용어를 남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력, 문학성 등의 용어에 대한 정의 없이 그것들을 말하는 것은 역시 불능의 조건을 전제로 한 공허한 담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에서 보통 어떠한 용어가 등장하면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만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용어는 머리속에 들어 있는데 정작 그 의미를 물어보면 단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거나, 의미와 지시대상을 혼동하기 일쑤입니다. 역시 이런 맹점들을 파악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게 절실히 느껴집니다.마드리갈
2015-10-13 23:45:25
자신이 모르는 말은 함부로 쓰지 않아야 하고, 쓰고 싶은 말이 있으면 최소한 사전을 찾아보던지 하는 등의 노력을 가하는 등의 공부를 해야죠. 그렇지 않은채 쓰는 말은, 어떤 코믹스, 라이트노벨 및 애니에서 잘 보이는 중2병 증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그런 것들을 경계해야 하고, 또한 그렇게 전락하지 않도록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필요하구요.
혹자는 이렇게 반문하기도 하죠. 자신이 구사하는 언어 속에 등장하는 단어의 뜻을 모두 파악하고 쓰냐고.
그에 대한 저의 대답은 "그렇다" 이고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아는 것, 그리고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게 별로 많지 않고, 반면에 알아야 할 외부의 것은 많으니까요. 그러니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부터 알아야 하는가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파악하고, 알아야 할 것은 배워야 해요. 이 이외에 또 무슨 답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