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에 썼던 글의 속편을 쓸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악독함과 불공정은 역시 더욱 지독한 방향으로 진화해 버렸어요. 그리고 그 안쪽은 더욱 심각하게 곪아 있다는 것도 증명되었어요.
두산그룹의 기업광고 중에서 "사람이 미래다" 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영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것은,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발표한 구조조정 방침이 발표된 후에 설득력을 잃은, 공허하고 기만적인 구호로 돌변해 버렸어요. 이렇게 된 두 사건은 이렇게 요약가능해요.
하나는 신입사원도 명예퇴직대상에 올린 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생산직 정사원을 해고한 뒤에 계약직으로 재고용한 건.
이 두 사건의 문제와 겹쳐서, 그룹회장의 자녀가 전무이사로 취임한 건과 야구선수들에게 고액연봉이 약속된 건이 엮여서 대대적인 비난을 얻고 있어요. 물론 기업광고가 "사람이 노예다" 등의 패러디로 냉소당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어요. 결국 그룹회장이 신입사원은 구조조정에서 제외하겠다고 했는데, 이러한 조치가 불타는 석유저장고에 물 한 바가지를 뿌리는 것보다 못할 것임도 빤히 보이고 있어요. 이미 악독함과 불공정에 끝이 없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상, 다음에 또 어떻게 진화할지 예측조차 안 될 것이 보이니까요.
그리고 이전의 글에서 악독함과 불공정을 구사하는 기업은 자체 역량의 한계를 노정했다고 예측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그대로 증명되어 버렸어요. 문제의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우 누적 영업이익의 급감, 부채 급증, 주가 폭락에 이어 국내사업장의 경우는 이미 2015년 1-3분기 누적 영업 및 당기실적이 수백억대의 손실로 집계되어 버렸어요.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난 마각이 그냥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게 바로 보이고 있어요. 이러한 예측은 빗나가기를 바랬는데, 정작 이렇게 성립된 것을 보니 뭐라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나중에는 이런 행태가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구직자의 취업을 기업의 시각에서 재편성하면 노동력의 구매라고 할 수 있어요. 즉 기업은 임금이라는 가격을 지불하고 구직자의 노동력을 구매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기업이 지불한 가격은 플러스의 가격인데, 이것이 제로 또는 마이너스의 가격이 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어요. 즉 무급 또는 오히려 구직자가 돈을 내고 취업하는 식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Lazear 및 Shaw의 공저인 Personnel Economics(인사경제학)에서는 인턴쉽이라는 것을 구직자와 기업의 비용분담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구직자가 인턴쉽에 종사하는 동안 급여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 중에는 다른 구직활동 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봉쇄되고, 그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기회비용으로 작용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기업은 단기간에 걸쳐 수행하는 스크리닝에서 미처 걸러지지 못한 부적격 구직자를 인턴쉽을 통해 보다 확실히 배제함으로서 낭비될 비용을 미연에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인데...그래서 요즘에 인턴쉽을 도입한 기업도 많이 있어요.
이러한 인턴쉽에서 기업이 최소한으로 부담할 비용조차 지불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방법은 여러가지 있어요. 무급인턴이나, 아예 돈을 내고 인턴쉽에 참여하도록 강제하는 방법도 있어요. 아니면 조금 더 지능적으로, 기간중에 사용하는 비품의 가격을 청구한다든지, 인턴사원의 신분 자체를 외주업체 소속으로 한다든지...
인턴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제로 또는 마이너스의 가격으로 고용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고안이 가능할 거예요. 이를테면 일부 사립학교나 노동조합에서 횡행하는 채용장사같은 것.
나중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요.
"회사를 위해 자기 재산도 기여해 본 적 없는 자가 급여나 축내고 있다!!"
이러한 예측이 빗나가서 실생활 속에서 절대로 실현되지 않기를 빌어요.
그런데 기대조차 가능할까요? 신입사원에 명퇴를 들이미는 이러한 행태가 나온 이상 제로 또는 마이너스의 가격 지불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도 어디에 없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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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고래
2015-12-18 23:45:10
어떤 의미에선 디스토피아겠네요. 제로 가격/마이너스 가격으로 노동을 사는, 대체 어느 세계에서 이루어지나 싶은...
소설에서나 나올 거 같은데, 어째서인지, 몇년 내로 정말 그런 작정을 하는 사람들도 나타날 거 같기도 하네요.
아니, 비슷한 사건이 하나 있긴 했죠. 우리 사무실 빌려줄테니 당신이 돈을 내고 우리 일을 좀 해 달라!는, 결론적으로 "당신이 돈 내고 우리 일 하세요"하는 공고였어요. 사람들에게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작당이냐"는 말을 듣고 철회했던가 그랬고, 지금까지는 아마 저거 한 건 뿐이었지만... 더 없으리라는 법도 있을까요? 좀 더 꼬아서 어떻게든 월급 이상으로 뜯어내는 수법도 있을테고...
대왕고래
2015-12-19 00:15:08
저게 그냥 꺼져버릴 불씨가 될지, 아니면 아예 산불을 내버릴 한 징조일지는 아직 모르지요...
조그만 불씨가 화재의 원인이 되듯이 저런 일 하나가 더 생기고 생겨서 나중에 정말 돈 주고 취직하는 일이 벌어질까 하는 것도 걱정되어요. 설마설마하지만...
마드리갈
2015-12-19 00:10:37
채용장사는 암암리에 이루어지다가 간혹 적발되고 그랬는데, 예의 저 광고는 아예 대놓고 마이너스의 가격으로 고용하겠다는 거네요. 정말 할 말이 없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예측이 틀리기를 바랬는데 이미 소용없이 되어 버렸군요...당당한 것 하나는 인정해줘야 할까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만 고용하겠다고 광고를 낸 모 전자제품 유통업체의 경우는 아예 상대도 안 될 정도네요.
정말 무섭기 짝이 없어요. 이런 사회악이 정착하지 않아야 할텐데...
마시멜로군
2015-12-19 11:16:05
신입사원까지 명예퇴직대상에 올린다니요... 그건 예상도 못했네요. 그리고 정규직 해고후에 계약직으로 재채용하면서 사람이 미래라뇨? 허.
마드리갈
2015-12-19 21:16:14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없는 주제에 탐욕이 크니까요. 그러니까 인적자원을 비용으로 생각해서 내쫓으면 해결가능하다고 단편적으로 생각하고 그걸 실행해 버린 것이었어요. 그 결과는 보신 것처럼 신입사원 명퇴강요에 정규직 해고 후 계약직으로의 재채용같은 악독함과 불공정이예요.
그리고 그룹회장이 신입사원에게는 명예퇴직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지만 이미 미디어에 보도된 기업 내의 분위기는 패닉 상태에 빠진 듯하고, 남은 사람들도 이직을 심각히 고려중이라나요. 역시 이 상황이 해피엔딩일 수가 없어요.
카멜
2015-12-21 01:21:19
내참 2~30대 사람들까지 명퇴당한다는건 첨들어봤습니다.
사람알기를 레고 부품정도로 아는거죠.
마드리갈
2015-12-21 19:26:12
정말 어이없죠?
그런데 이건 오페라로 치면 아직 1막은 시작도 하지 않은 거예요. 즉 방금 서곡 연주가 끝나기만 한 상태.
앞으로는 처음부터 채용해서는 안될 사람이 사전에 정해질 수도 있어요. 기업의 관계자가 아니거나 하면 아예 원서를 낼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 이미 돈 내고 일하라는 황당한 구인광고까지 나온 상황인데 뭐가 나오더라도 이제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살면서 갈수록 냉소적으로 되어 가네요. 이런 것들을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