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지지고 볶았던 범죄도시에 관한 설정입니다. 소설은 계속 쓴다고는 하는데 아예 시도조차 안 하네요.
대강 어떤 설정, 아니 세계관인가 하면 이렇습니다.
'일반인부터 기업가, 심지어 경검찰이나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몰래 폭력을 사용하는 세상'입니다.
참고로 폭력이라고 해서 꼭 물리력만을 의미하지는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법적인 수단을 지칭합니다.
(소위 '심부름센터'나 '흥신소'가 하는 일을 떠올리시면 되겠습니다)
각 경우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A. 일반인 = 개인의 목적(선이든 악이든)을 위해 폭력을 고용한다. 혹은 그 폭력을 자처한다.
B. 기업가 = 당연히(?) 회사의 목적이나 경쟁을 위해 폭력을 고용한다. 담합이나 파업 진압 등에 쓰인다.
C. 경검찰 = 공권력이 닿지 않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즉 이독제독(독으로 독을 제압함) 격으로 폭력을 고용한다.
혹은 경검찰 조직 중 개인이 사적인 목적을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
D. 정치인 = 정치 생명을 위해 폭력을 고용한다.
여기서 가장 핵심인 부분은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는 걸 모두가 아는 상황'입니다.
즉 개인부터 공권력에 이르기까지 각자 폭력과 다양하게 얽혀 있으므로 서로가 비공식적인 폭력을 쓴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비공식적인 폭력이기 때문에 '걸리지만 않으면' 그걸 입증하지도 못합니다.
물론 A에서 D로 갈수록 커지는 권력을 이용해 상대방이 덮었던 걸 직접, 혹은 또 폭력을 동원해 파헤칠 수도 있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 상대방은 또 폭력을 동원해 그걸 방해하고, 다시 동원해서 방해하고…무한반복이죠.
한편으로는, 이렇게 폭력이 사회 곳곳에 미치고 있다면 하나의 '실체'를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요?
범죄와 관련된 작품들을 많이 읽어보니, 비단 폭력만이 활용되는 게 아니더군요.
결국 '먹고 살자고 하는 짓들'이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을 유통시키는 네트워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지하세계'에도 지상세계처럼 회사(프론트기업, 위장업체)나 은행을 둬서 경제를 돌린다고 합니다.
영화적 허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서양이든 동양이든 으슥한 동네나 건물에 폭력이 자리를 잡은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실제로 존재했던 슬럼가나 폐건물 등 낙후된 지역에 자리잡는 경우가 많죠. 구룡성채나 프루이트 아이고처럼.
제 세계관에서는 이런 지하세계가 눈에 띄게, 혹은 눈에 띄지 않게 존재한다고 설정되어 있습니다.
주로 슬럼가, 겉은 멀쩡하지만 버려지거나 주인이 없는 아파트 및 주차장, 하수구, 폐쇄된 지하철역 등입니다.
(한 예로, 폐쇄된 지하철역에 존재하는 지하세계는 게임 '용과 같이 시리즈'에서 등장합니다)
또한 일반인도 이 곳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고 설정되어 있습니다.
무턱대고 출입을 제한할 경우, '뭔가 숨기는 게 있다'라고 광고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폭력과 범죄가 숨어 있지만, 누가 한낱 노숙자이고 범죄자인지 구분할 수 없으니까요.
이 역시 일반인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에,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은 입구 근방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덧붙여 미국으로의 합법 및 불법 이민자가 급증했으나 이들을 수용할 방법이나 시설이 없으므로, '비합법적이고 비인간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서로의 편의(?)를 위해 묵인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그 근거는 2010년대 이후 세계의 경제를 들 수 있는데,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세계경제가 호황과 불황 중 어느 쪽이어야 미국으로의 이민자가 늘어날까요? 둘 다 가능할까요?
어쨌든 이런 불법이민자들은 비공식 폭력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일단은' 존재가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것과는 별개로 '지상세계'도 생각해 봤습니다. 사실상 현실과 다를 바 없지만, 딱 하나가 다릅니다.
바로 '지하세계의 자금을 지상으로 올릴 수 있다'입니다. 돈세탁이 될 수도 있고, 긍정적인 활동이 될 수도 있죠.
몇몇 오픈월드 게임에서는 소지금을 도시의 가게에 투자하여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그 원리와 마찬가지로 지하세계도 그 자금을 지상세계에 투자하여 돈세탁 겸 수익을 낸다는 설정인데요.
이걸 의적마냥 빼돌려서 좋은 곳에 사용한다든가 하는 것도 생각중입니다. 로빈 후드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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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도시(혹은 세상)에 잡아먹히는 인간' 비슷한 주제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접하게 되더군요.
비단 허구의 내용을 다룬 작품만이 아니라 신문기사나 세상 소식을 봐도 그런 얘기가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읽어보자 '그런 부조리함이 정말 형태를 갖추고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길게 적어 봤습니다.
여러분은 위의 세계관과 설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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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
마드리갈
2016-02-06 03:05:21
말씀하신 상황은 충분히 현실세계에서도 존재해 오고 있으니 창작물에 등장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예의 상황은 멕시코, 브라질, 파키스탄 이외에도, 러시아 등의 동유럽 국가들에 그런 게 만연해 있어요. 특히 소련 붕괴후 러시아의 각지에서 세력을 불려온 레드 마피아 및 올리가르히의 전횡은 예의 상황에 정확히 부합해요. 사회전반이 불투명하고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차 있는데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공공연한 비밀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력이 지배하고 있는, 그래서 겉보기는 멀쩡하지만 속은 곪아있는 그런 사회 그 자체예요.
운영진으로서 말씀을 하나 드릴께요.
홍콩에 과거 존재했던 슬럼가인 까울룽씽자이는 한국식 발음인 구룡성채(九龍城塞)를 우선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현지 표현을 괄호 안에 표기하는 것이 더욱 좋아요. 근거는 이용규칙 게시판 제9조의 추가사항.
Lester
2016-02-07 01:15:40
생각해보니 소련 붕괴 직후의 러시아만큼 적절한 모델이 없네요. 소련이 붕괴하고 레드 마피아가 그 빈 자리를 채운 것처럼, 제 세계관도 비슷한 논리를 적용해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은 수정했습니다.
SiteOwner
2016-02-09 22:16:16
제시해 주신 조건을 읽어보니 현실세계의 몇 가지 사례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전간기의 미국 사회는 겉으로는 금주법이 시행되어 상당히 건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만 그 실상은 마피아가 이민1세대들이 조직한 폭력단 차원을 넘어 사회각계에 침투하여 각종 이권사업에 개입하고, 그 실체를 알려고 하거나 맞설 시도를 하면 어디선가 승용차를 타고 온 괴한들이 기관단총을 난사하는 식으로 보복하는 암흑사회였습니다. 게다가 그 시기에는 동시에 인종주의 극단주의자들의 집단인 KKK가 가장 큰 세력을 구가했고, 합법적으로 도시를 지배하여 세를 불려 가기도 했습니다.
말씀하신 그 가상세계보다는 온건하지만 참조가 가능한 사례를 본다면 역시 미국의 루이지애나, 캐나다의 퀘벡, 영국의 북아일랜드 같은 곳이 해당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SiteOwner
2016-02-14 11:50:03
맞습니다. 인종차별이라는 것이 일방적인 것도 있지만 쌍방향인 것도 있다 보니, 다수인종 중의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은 제도와 의식의 개선으로 해결될 여지가 많지만 비등한 인구규모나 소수인종의 다수인종에 대한 차별은 해결이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루이지애나의 경우나, 과거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같은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피해자 방문에서의 차별도, 일단은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Lester
2016-02-14 00:38:21
요는 곧 인종차별과 빈부격차가 심각하다는 뜻이군요.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입은 피해와 그 복구 과정에서 이래저래 잡음(부시 대통령이 피해자들을 차별하며 방문했다는 내용이었던가요?)이 많았던 것도 한몫했다고 보면 될까요?
SiteOwner
2016-02-12 18:34:45
루이지애나에서 KKK 출신이 주 정부 상원의원에 당선된 전력도 있습니다만, 그것 이외에도 다른 이유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루이지애나는 미국의 50개 주에서 유일하게 법체계가 대륙법계여서 다른 주에서 죄를 지은 자가 잠입하기에 유리합니다. 게다가 지역의 인적구성도 다른 주와는 달리 프랑스계 백인이 다수이고, 흑인 비율이 30%를 넘어서 미국 전체 평균의 2.5배 전후가 되다 보니 흑인이 결코 소수인종인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작은 사회의 폐해 및 인종집단간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좋은 곳입니다. 산업구조에서도 소규모산업 위주라서 외부위험에의 대처능력이 약하고, 그나마 있는 대규모산업도 석유, 가스처럼 노동력을 많이 요하지 않고 부의 재분배율이 낮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러시아의 레드마피아나 올리가르히 등과 상당히 유사한 세력이 자리잡을 위험도 높습니다.
Lester
2016-02-10 03:45:38
마침 제 첫 가상도시도 뉴올리언스 옆에 있다는 설정인데, 루이지애나가 그렇게 심각한가요? KKK 때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