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직 9급 시험을 보고 왔는데 한국사는 작두라도 탄 건지 85점이 나왔습니다(가답안 기준).
하지만 저보다 잘 본 사람이 수두룩할 것이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냥 경험으로 치부해 두고 계속 책이나 들여다 봐야겠죠.
헌데 한국사 책을 보다가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중농학파와 중상학파는 이름에서 보듯이 '농업과 상업 중 어느 것을 우선시할 것인가'를 따지는 학파인데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돈 많은 농민들이 대규모 농사를 통해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그 결과 부가 점점 특정 집단으로 몰리기 시작하면서, 영-정조 시대가 지나 세도정치를 불러오게 됩니다.
상황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중농학파와 중상학파 이야기를 좀 더 해보죠.
이 두 학파는 위처럼 '가진 자들이 점점 자본을 독식해 나가는 상황에서, 농업과 상업 중 무엇으로 이 폐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각자 하나를 골라 주장을 펴나갑니다.
중농학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유형원이나 이익, 정약용이 있는데, 이들은 논밭을 정해진 만큼 부여받거나 공동으로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중상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홍대용, 박지원&박제가 등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화폐 경제로 귀결되는 만큼, 소비를 늘리거나 수레 등의 새로운 장비를 활용하여 상업을 발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농업 사회에서는 둘 다 맞는 얘기인지라 어느 한 쪽만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죠.
그래서 한 번 의견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당시의 조선에 살고 계셨다면, 중농학파와 중상학파 중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저의 경우 중농학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중상학파처럼 화폐 경제를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뭐든 돈으로 해결한다'는 황금만능주의로 빠지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래서 성호 이익이 주장한 바와 같이 생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땅을 갖게 하고 나머지는 재량에 맡기자는 주의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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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16-04-10 08:14:10
시험을 치셨군요.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지금은 휴식중이시겠죠? 시험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가 잘 해소되길 기원해요.
그런데 일단 질문을 하나 드려야겠네요.
세도정치는 권력층간의 투쟁양상이 극단화되어 척신세력이 다른 세력을 배제하고 권력을 독점하는 것 아니었나요? 게다가 그 시기에는 신분제의 바탕 자체가 급격히 흔들려서 양반계층의 경제독점이 깨지긴 했지만, 새로이 부를 거머쥔 계층이 조정에 진출한 것도 아니었고, 그 계층과 세도정치의 주도세력이 같은 것도 아닐텐데요. 이게 의문이었어요.
중농주의와 중상주의 중 어느 것을 택할지에 대해서는 내용이 길어지니 분할하겠어요.
Lester
2016-04-10 22:45:03
결과를 바라고 친 시험이 아니니까 그냥 내려놓을 생각입니다.
조정에 진출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명첩이나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된 사람도 있고, 또 그렇게 재산을 축적한 사람이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정치 세력에 붙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세세히 파고들면 당연히 틀린 소리입니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 그렇게 묶어서 서술했습니다.
마드리갈
2016-04-10 08:42:07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께요.
저는 중상주의로 가는 게 필연이라고 보고 있어요.
물론 중농주의가 틀렸다고 말하는 건 아니고, 중농주의에도 합리적인 근거가 상당히 많다고 보고 있어요. 게다가 농업의 진흥은 어느 입장을 지지하든간에 당연히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상주의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있어요. 토지는 한정되어 있는 자원.
만일 신분제가 안정되게 유지되고 인구변동의 패턴이 다산다사 또는 소산소사의 패턴을 보이면서 정체하는 경향이라면 중농주의의 목표는 장기간에 걸쳐 충분히 달성할 수 있어요. 어차피 농지의 면적 자체가 일정하거나 개간에 의해서 소폭 늘어나고 인구의 증가도 거의 그 정도에 그칠테니 평균적으로 보면 1인당 토지점유는 장기간 비슷하게 유지될테니까요.
문제는 이 두 전제가 만족되지 않는다는 점. 아시다시피 신분제는 뿌리부터 흔들려가서 앞날을 보장하기 힘든 상태이고, 인구는 부침을 거듭해가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대체로 늘어나는 패턴이었어요. 조선시대 인구의 장기변동을 보면 이 경향이 보여요. 게다가 농지의 확장도 이미 17세기가 끝나기 전에 한계에 다다른 상태. 이 경우 중농주의적인 선택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신분제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농지의 소유방식을 공유, 균점 등으로 하는 방법밖에 없지만 오래 가기는 이미 어림도 없어요. 당장 인구가 50% 증가하면 1인당 농지면적은 기존의 2/3으로 줄어드는데, 이로 인한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은 유교적 질서에 의한 자원배분의 불합리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도록 신분제에 예속시키는 것밖에 없어요. 농업생산을 늘리면 되지 않겠느냐 할 수도 있지만, 토지의 생산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서 언젠가는 생산량에 포화가 올 수밖에 없어요. 즉 해피엔딩은 없는 시나리오가 된다는 거예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파이의 크기를 늘리는 것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것은 농업 말고도, 제조업과 상업이 발전하는 양상으로 구체화되어요. 레스터님께서 걱정하시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 정부는 공정한 심판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의 성패가 흥망을 좌우하는 것이죠.
일단 이렇게 간단히 중농주의의 한계, 그리고 중상주의로의 이행의 필연성을 적어 봤어요.
Lester
2016-04-10 22:49:26
사실 '토지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만 봐도 중농보다는 중상으로 갈 수밖에 없긴 하죠. 그런데 저는 둘 중 어느 쪽이 옳다고 결론을 내리자는 게 아니라 '그 당시 시대에만 한정했을 경우'를 물어본 겁니다. 제목에 설문조사라고 붙여놓은 것도 그렇고,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그 시대에 산다면 농부가 되겠는가, 상인이 되겠는가'를 물어본 셈입니다. 재미삼아 올린 글인데 심각하게 끝나버려서 기분이 묘하네요;;;
그와 별개로, 과장해서 말하자면 중상학파의 학자들은 자본주의를 예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시멜로군
2016-04-11 07:18:19
근대화에는 개인적으로 상업이 더 적절하다 생각되니 중상학파요!
SiteOwner
2016-04-17 22:47:00
아주 미시적으로 본다면, 역시 상인의 길을 택하겠습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땅이 필요하니까 거기서 기동성이 제한됩니다. 이것은 기존의 신분제에서 주어진 유리한 조건이 없는 이상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의미로 이어집니다. 게다가 작물이 수확가능할 때까지 수입이 없어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것조차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기 딱 좋습니다.
결국, 답은 상업으로 가는 것이겠네요. 중농주의 환경이라고 황금만능주의가 없을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그렇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