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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에 대해서

Lester, 2016-05-03 21:31:16

조회 수
134

흔히들 발상의 전환이라고들 하죠. 공무원 시험을 위해서 다섯 과목 중 가장 빡빡하고 알아야 하는 게 많은 행정학과 씨름하느라 많이 힘드네요. 그러다 보니 이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이걸 이렇게도 이해하고 외울 수 있겠구나"라고 자문자답하고 감탄하면서 공부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발상의 전환을 통해 행정학을 공부하다 보니, 우리나라의 사례라고 하면서 이것저것이 많이 등장하더군요. 의외로 바람직한 사례도 있고, 반대로 부정적 내지 특이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뭐 우리나라가 유독 그런 것만은 아닐 테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을 활용해 외부 위키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부정적인 얘기가 좀 많았는데, 그런 부분들을 읽다 보니 '그것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설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광복 이후 여러가지 사건들을 단숨(생각해 보세요. 1945년부터 지금까지 불과 70년입니다. 한 세기도 안 지났어요)에 겪다 보니, 무엇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시기도 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식으로 국가와 사회가 이루어지면서 그 고름들이 이제야 터져 나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역사와 무관한, 즉 '오로지 현재에 시작되어 현재부터 해당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나왔습니다.


즉 이런 의문이 든 겁니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은 시대의 흐름에 의한 과정이었다고 치자.

그럼 지금은 우리의 의지로 '빨리빨리' 행동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 타의에 의해 '빨리빨리' 행동하라고 강요당하는 것일까?"


불과 몇 십분 전에 생긴 의문이라 지금 당장은 답을 내지 못한 상황인데, 그래도 어찌 된 일인지 알고는 싶습니다. 그냥 단순히 과거에 무리하게 빨리 구성된 사회의 어쩔 수 없는 문제일까요. 아니면 기회가 있음에도 '의식을 하지 못해서, 아니면 의식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일까요?

Lester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2 댓글

SiteOwner

2016-05-04 13:28:16

생활습관이라는 것은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서, 그리고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한국인의 빨리빨리 성향은 대한민국 건국 그 이전부터 이미 오래전에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그 근거를 우리나라의 뚜렷한 4계절, 잦은 외침 및 권력층에 의한 수탈 등에서 찾고 있습니다.

열대지방처럼 물산이 풍부하고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건기/우기 정도로만 구분되는 곳에서는 기동성이 중시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다가는 몸이 과열되어 죽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4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만 하더라도 물산이 풍부하지도 않고, 계절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습니다. 그러니 미리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여 움직여야 하고, 급변하는 상황에 신속히 대처해야 합니다. 그리고 냉대지방으로 가면 이런 것들은 더욱 엄격히 요구됩니다. 북미나 서유럽 쪽에서 시간관념이 철저한 것도 이것으로 설명가능합니다.

외침과 수탈이 잦았던 우리나라에서는 느린 대응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후다닥 먹고 자리를 뜰 수 있게 식생활도 그렇게 변모했습니다. 그것들의 대표적인 것이 국과 비빔밥.


그리고 사회모순이 이제서야 터져나온다는 담론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는 있습니다.

어차피 모순 없는 사회는 없는 법이고, 발생하는 모순이 반드시 그 사회의 발전의 그늘에서 태동한 것인지, 아니면 그 변혁 이전부터의 소산인지를 명확히 나눌 수도 없기에 예의 담론에는 논리적 흠결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마지막에 제기하신 의문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자면, 빨리빨리를 강요당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을 자신이 하니까 자의라고 잘못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마드리갈

2016-05-06 21:05:42

이런 문제에는 뭐라고 결론을 내리기가 참 어렵기에 여러모로 생각을 해 보고 있었어요.

아직도 생각이 부족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씀하신 사안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나눠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하나는 그 빨리빨리 성향이 한국만의 것인가, 그리고 한국과 비슷한 환경의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에서는 어떻게 성향이 나타나는가의 문제.


첫번째의 경우에 대해서는 그런 성향이 한국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한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두번째의 경우에 대해서는 이런 모순이 보였어요. 위에서 오빠가 이야기했듯이 온대, 냉대기후대에 위치한 국가들의 생활양식은 고도의 시간관념을 전제로 하고, 한국의 경우 외침과 수탈이 잦아서 빨리빨리 문화가 식생활같은 기초적인 부분에까지 침투해 있어요. 그런데 이런 것과 또 다르게, 시간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많은 국내상황을 자조하는 말로 코리안 타임이라는 것도 있으니 뭔가 모순적이거든요.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동시에 코리안 타임이 문제인 이런 모순의 원인은 어쩌면 사회전반의 인내심 부족이 아닌가 싶어요.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결과만 얻으면 되는 거니 빨리빨리를 외치고, 그것이 될 수 있다면 지켜야 할 약속, 상식, 도덕 같은 것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태도로 이 모순이 설명이 가능하거든요.


그럼 이 인내심 부족은 대체 무엇에서부터 생겼는지 하는 의문도 생기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확실히 뭔가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인재를 키우기보다는 영웅이나 천재의 탄생을 바라기만 하는 오랜 관행이 문제였고, 이것이 한국사의 여러 단면 속에서 장기적으로 나온다는 점을 볼 때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갑작스럽게 생긴 게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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