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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처라는 단어에 대한 의문

Papillon, 2016-10-01 01:44:01

조회 수
214

국내 인터넷을 보면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장르 소설 등 매니아 계층이 누리는 문화”라는 의미로 서브컬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포럼에서도 주로 그런 의미로 해당 단어를 쓰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좀 의문입니다. 본래 서브컬처라는 단어는 이런 의미의 단어가 아니거든요.

자, 한 가지 퀴즈입니다. 

다음 중 한국 사회를 기준으로 서브컬처인 것은 전부 몇 개일까요?

1. 무슬림 유학생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메카를 향해 절을 한다.
2.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을 사용한다.
3.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프로게이머 홍진호를 “콩”이라고 부르면서 2와 연관을 짓는다.
4. 군대에서는 병장을 뱀이라고 부른다. 
5. 일부 웹사이트의 이용자들은 고소로 다수에게 합의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치킨 광맥을 발견했다”라고 표현한다.
6. 아이돌 마스터 시리즈의 팬들 중 일부는 72라는 숫자가 나올 때마다 “큿!”이라고 반응한다.

정답은 다섯 개. 2번을 제외한 모든 것이 한국 사회 기준으로 서브컬처입니다. 이는 본래 서브컬처라는 용어의 의미가 “주류 문화 내부의 작은 집단에서 향유되는 문화(말 그대로 sub~+culture)”를 의미하는 것이거든요. 

1번은 대한민국에서 무슬림은 주류 문화가 아니기에 서브컬처입니다. 2번은 한국에서는 밥을 숟가락으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서브컬처가 아닙니다. 3번은 프로게이머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만이 즐기는 유머이기에 서브컬처입니다. 4번은 한국 사회 내부의 군대라는 집단의 문화이니 서브컬처입니다. 5번은 일부 웹사이트 이용자들만이 아는 내용이기에 서브컬처입니다. 6번은 아이돌 마스터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만 이해하는 내용이니 서브컬처입니다.

물론 인터넷에서 서브컬처라고 부르는 문화도 서브컬처입니다. 한국의 주류 문화가 아닌 특정 집단이 즐기는 문화니까요. 그런데 어째서인지 서브컬처 내에서도 굉장히 협소한 일부에 불과한 그것을 “서브컬처”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조금 신기할 따름입니다. 언어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니 이 역시 그런 현상의 결과겠지만 어째서 이런 의미로 변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Papillon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6 댓글

셰뜨랑피올랑

2016-10-01 17:15:13

덜 대중적인 것을 강조하고 싶은데 마니아나 오타쿠나 그 정의에 반발하는 사람이 많죠. 예를 들면 '오타쿠 컬처'라고 하면 이에 반발할 사람이 한 둘이 아니고 실제로도 그러니까요. 인터넷을 통한 교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현실과 괴리가 있는 다양한 문화 역시 급증하며, TV공중파 (기존의 대중성을 높이던 매체) 를 통해서 파악하기엔 조금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널리 퍼진 여러 문화를 가리키기 쉬워서 그런듯 해요. 

개인적으로 '서브컬처'를 아니메 등 마니아 계층만을 지칭하듯 사용하는 용법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Papillon

2016-10-01 22:31:51

흠, 제 생각에는 영미권(적어도 제가 지내던 곳)에서처럼 그냥 Anime Fan, Video Gamer 등과 같이 그냥 자신이 즐기는 장르나 매체만으로 부르면 될 것 같기는 한데…… 어째 하나로 다 묶이니까 뭔가 용어가 이상해진 느낌입니다.

콘스탄티누스XI

2016-10-01 20:50:57

뭐 사실상 '오타쿠'나 그 변형어인 '오덕'이 비하적 의미로 쓰이고, '매니아'는 앞에 두단어에 밀려 일상에선 별로 안쓰이니깐요(...) 물론 정확히하자면 '오타쿠 문화'나 '매니아 문화'가 맞겠죠...

Papillon

2016-10-01 22:28:37

확실히 오타쿠나 오덕이라는 용어는 비칭으로 쓰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정작 한국에서 "오타쿠"라는 용어는 원산지인 일본보다 덜 비하적이고 더 넓은 대상으로 쓰인다는 차이점이 있지만요. 어찌보면 같은 일본산 단어인 중2병과 비슷하면서 반대의 과정(이쪽은 범위가 더 좁아지고 좀 더 비하적인 성향이 강해졌죠)을 거쳤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마드리갈

2016-10-02 20:01:27

어떤 어휘가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위상이 변하거나 의미에 가감이 있거나 하는 경우는 흔히 있는 것이고, 말씀하신 "서브컬쳐" 또한 예외가 아니겠죠. 게다가 특정 어휘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무비판적인 경우도 있어요. 즉 언어를 쓰는 사람은 한국인인데 관점은 한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의 것인. 예의 "서브컬쳐" 라는 개념도, 일본에서 애니, 게임 등의 문화컨텐츠 부류를 지칭하는 용어가 무비판적으로 도입되어서 원래의 어휘보다 의미가 축소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일단 현재상황에서 해당 어휘가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만일 애니나 게임 등의 문화컨텐츠가 주류문화가 된 상황에서 그것들을 서브컬쳐라고 부르게 되면 명백한 오용이 될 거예요. 이 경우는 아예 어휘의 원래 의미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타성적으로 어휘를 사용하다가 상황변화에 맞지 않게 된 것이니까요.

SiteOwner

2016-10-18 23:26:39

말씀하신 것처럼 서브컬처라는 어휘의 용법이 상당히 좁혀지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최소한 확장되거나 아예 오용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보고 있기도 합니다. 후자의 경우가 되면 아예 대대적으로 사회차원의 운동이라도 벌이지 않는 한은 잘못 정착해 버리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어휘가 정착할 때 어휘간의 위계가 무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컴퓨터 부품 중 RAM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RAM은 원래 Random Access Memory의 약자로, 저장된 정보의 순서에 관계없이 접근가능한 기억장치를 말하고 이것의 하위분류에 RWM과 ROM이 있습니다. RWM은 읽기와 쓰기가 모두 가능한 Read-Write Memory, ROM은 미리 입력된 정보만 읽을 수 있는 Read-Only Memory를 의미하지만 실제로 RWM은 사장되고 RAM이 그 자리를 차지하여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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