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에 앞선 주의사항
이 글은 2016년 하반기를 강타중인 국정농단사태를 비롯한 여러 사례에 대한 비평 및 재조명의 관점에서 작성되어 있습니다.
이 글의 용도는 어디까지나 포럼에서 시사관련 주제를 다루기 위한 것에 한정될 뿐이며, 따라서 학술지 등에 게재될 것을 전제로 한 것도 아니고 언론매체에 인용될 목적으로 작성된 것도 아니기에 인용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참조한 정보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을 바탕으로 했음을 사전에 밝힙니다.
이 게시물은 이용규칙 게시판 제19조 및 추가사항에서 규정된 사항을 따라서 작성되었습니다.
제목의 유래는 영국의 소설가 존 윈덤(John Wyndham, 1903-1969)이 쓴 과학소설 트리피드의 날(The Day of the Triffids).
안녕하십니까, 사이트오너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난 10월 20일 이래 거의 한달 만이고, 도중에 포럼의 기능정지사태도 3번이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께 면목이 없으며, 또한 그럼에도 다시 포럼을 찾아 주시는 여러분들에게 진정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운영진의 대표로서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요즘 세상이 흉흉합니다.
그렇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과학소설 트리피드의 날에서 묘사된 것과 같이,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를 전대미문의 괴물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잡아먹는 것같은 느낌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괴물이 차라리 그런 징그러운 외계생명체라면 차라리 나을 것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저뿐인가 싶기도 할 정도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도시전설로만 치부되었던 온갖 것들이 사실로 판명되었고 그 실체가 이렇게 생각한 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라는 게 드러난 이상 더 중언부언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올해 하반기의 전국 및 세계를 뒤흔들어 놓고 있는 국정농단 사태가 이번에 마각을 드러냈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도 꽤 의문입니다.
일단 예의 국정농단 사태에서 어떤 것들이 실체화되었는지를 조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비선실세 혹은 그림자 정부의 존재 → 입증
- 관료를 적대하기 → 입증
- 일부 사립학교의 불공정한 학사관리 → 입증
- 눈먼 돈을 노리는 세력과 특정인에 돈을 몰아주는 사업의 공생 → 입증
- 비협조에 대한 보복 → 입증
- 준법 위에 탈법 → 입증
대략 이 정도가 되겠네요.
흔히 떠도는 이러한 소문들이 한갓 허무맹랑한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 6가지의 도시전설이 가진 함의는 어떨까요?
하나하나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비선실세 혹은 그림자 정부의 존재.
국정운영에 필요한 조직과 활동양상이 100% 백일하에 공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누누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길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방첩기관, 경호조직 및 특수전조직 등의 것은 임무의 특성상 비밀리에 활동할 것이 전제되어 있고, 또한 결정되기 이전의 사항은 공고되기 이전에 보안을 요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도 어디까지나 명시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국가조직과 법령에 의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가정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국가조직을 구성하고 존립과 활동은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게 됩니다. 여기에서 법치국가, 민주국가의 원리가 도출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런데 국정농단 사태를 보니까 어떻습니까? 좀 심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뉴스보도를 보고 "대한민국은 여기까지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째, 관료를 적대하기.
국정운영은 전문적인 영역으로서 능력이 두루 검증된, 그리고 형평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관료집단이 담당합니다. 또한 이러한 관료집단은 법령에 구속되어 있다 보니 행동근거가 없으면 행동하지 못하며, 또한 그 법령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보수성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관료집단은 비선실세나 그림자 정부같은 것들이 쉽게 장악할 수 없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여기서 전가의 보도 하나가 탄생하기 마련입니다. 관료집단을 악인들로 몰아붙이면 되는 것이지요. 관료가 만악의 근원이니 그들은 관피아이고, 그 관료가 되고자 노력하는 자들은 관피아 후보생, 이런 식으로 마음껏 때려도 된다는 공인 샌드백을 달아놓고 퇴직관료의 재취업을 막고 고시생들을 괴롭히려고 합니다.
셋째, 일부 사립학교의 불공정한 학사관리.
이런 말이 있지요. 사립학교의 교원이 되려면 몇천만원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든지, 사립학교에서는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학교측과의 연줄이 없으면 차별받는다는 등등의 것들. 물론 모든 사립학교들이 그렇게 부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분명 모범적인 교육기관인 곳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그런 소문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것을 보니 헛소문으로 치부하기에는 근거가 의외로 탄탄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설령 그렇더라도 그건 고등학교까지의 이야기이고, 대학의 경우는 수능시험 듣기시험 시간에 항공기의 이착륙마저 통제하는가 하면 대학별본고사나 기여입학제 등을 철저히 막는 정부의 방침도 있다 보니 대학만큼은 비교적 공정하게 운영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대학도 별 수 없었으니까요. 비선실세가 관료집단도 무력화시키는데 그 관료집단의 지휘를 받는 개별 대학 정도야 얼마든지 떡 주무르듯 하는 것을 보니, 그나마 공정하다고 믿었던 대학의 학사관리조차도 기대를 저버립니다. 특히, 사립대학이 사각지대라는 것은 제대로 증명되었네요.
넷째, 눈먼 돈을 노리는 세력과 특정인에 돈을 몰아주는 사업의 공생.
눈먼 돈은 먹기 나름이라는 말도 항간에 떠돌고, 뭔가 석연치않은 사업이 시작되면 어떤 업자에게 돈을 몰아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사실로 드러났고, 현재 뉴스보도에서 나오는 것만 해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잘 증명되어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앞으로는 뭔가 참신하고 파격적인 사업이 발족한다면 이것을 순수한 시각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다섯째, 비협조에 대한 보복.
흔히 갑질이라는 어휘로 대변되는 비협조에 대한 보복이 참으로 노골적으로 벌어졌으니,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나 싶습니다.
불투명한 사업에 대해 금전을 거출하게 기업들을 압박하고, 상납하지 않으면 그 기업을 부패기업으로 몰아가는 여론전에 온갖 세무조사 등으로 괴롭히기, 이상하게 돌아가는 사안에 의문을 표시한 관료를 악인으로 찍어 공직에서 내치기, 파행적 학사관리에 의문을 표한 교수가사실상 해외로 내쫓긴 사건 등을 보면, 최소한 전제왕정조차도 이런 짓을 자행하지는 않을텐데 하는 생각마저 들기 마련입니다. 그것도 한갓 사인도 아닌 공인이. 관피아 관피아 하던 말에 대해 "관료가 관피아면 대통령은 관피아 두목이야!!" 라는 비판이 있던데, 그렇네요. 하는 짓이 딱 마피아 보스의 것.
여섯째, 준법 위에 탈법.
일련의 사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구제가 안된다네요. 법에 없어서.
그러면 국정농단 과정에서 벌어진 온갖 사태는 언제 법을 준수해서 한 일이라는 것일까요. 준법을 찾아야 할 때는 탈법을 하고, 그 탈법을 바로잡는 데에는 준법을 내세우면서 그것을 거부합니다. 최소한 동화 속 청개구리는 비오는 날에 어머니의 무덤이 떠내려갈까봐 슬피 울기라도 했는데, 이런 걸까요. 이번에 일벌백계 하니까 연대책임을 지라는 것으로도 보이는데 제 심사가 뒤틀린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작년에는 가짜 백수오 사태로 책임지지 않는 자들의 전횡과 신뢰수준 하락이 표면화되었고, 올해 상반기에는 극구 부정하고 싶었던 여교사 관련의 무서운 도시전설이 실체화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제 올해 하반기 최대의 이슈인 국정농단 사태는 앞의 두 사건에서 벌어진 폐단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니 할 말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슬픈 사실 하나.
특정 인물, 계파 위주로 흘러가는 국내의 정치풍토라든지, 정치권력의 정점을 잡으면 모든 것이 해결가능한 구조 및 기대심리가 팽배한 현재의 국내상황에서는, 이 국정농단사태가 등장인물만 바뀐 스핀오프 드라마를 생산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렇게 이 땅에 트리피드가 자라서 언제 누구를 덮칠지도 모르는데 과연 막을 수는 있을까요. 한 표현이 생각났지만 포럼에서 말하기는 뭣한 것이라서 생략하니 이것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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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댓글
콘스탄티노스XI
2016-11-18 21:19:49
글 잘봤습니다. 깔끔하고 좋은 글이네요. 굳이 해당 글에 첨언할게 있다면, '특정인물을 간첩으로 몰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것'이 추가될 수 있겠네요. 전 민주화이후로, 적어도 '간첩몰이'는 없어질줄 알았더니만, 오히려 탈북자 한명을 간첩으로 강제로 모는 모습을 보고 기대를 거의 접었었죠. 이번 사태로 그 기대를 완전히 접었고요.
SiteOwner
2016-11-19 15:19:38
깔끔하고 좋은 글...그렇게 봐 주시니 더없이 영광입니다.
사실 글에 미사여구는 그리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라서, 논지를 잘 드러내고 뒷받침할 수 있는 요소만 동원하여 최소한으로 글을 쓰는 것이 제 스타일입니다. 예전에 쓴, 읽힐만한 글을 쓰는 몇 가지 간단한 팁 제하의 글에서 글쓰기 요령을 정리해 두었으니 참고해 주셔도 좋습니다.
간첩몰이라는 것은 양날의 칼인데, 정치적 반대파를 죽일 명분을 갖출 효과좋은 무기이면서, 잘못 쓸 때에는 자신의 목을 베기 좋은 위험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그런 술수에 대해 순기능은 실질보다 크게, 역기능은 실질보다 작게 평가하니까 남용의 위험 또한 큰 편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유혹이 크니 정통성이 약하거나 권위주의적인 정권은 물론, 민주적으로 집권하고 운영되는 정권이라도 경계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남용되기 크기 마련입니다. 시스템 대신 특정인이 지배하는 경우 견제하기가 극단적으로 어려워지거나 아예 불가능해지니 폭주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봐야겠지요.
HNRY
2016-11-18 21:35:19
오너님이 어떻게 생각하실 지는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으론 이것이야말로 현대 한국이 부딪친 또 다른 거대한 시련이자 성장통으로 보입니다. 말씀하신 도시전설들이 사실로 드러난 것들에 대해 저는 오히려 이것을 한국이 또 한 걸음 성장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도시전설은 영원히 도시전설로 뭍혔었겠지요. 오히려 이것만큼 더 비극적인 건 없었을 것입니다.
현재의 상태가 그야말로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직후의 상황으로 보입니다. 신화에서 판도라가 호기심을 못이겨 상자를 열자마자 세상은 혼란스러워졌고 이를 빌미로 신들은 인간 세상을 쓸어버렸지요. 하지만 상자에는 단 하나의 희망이 남아있었고 이 희망으로 세상은 재창조되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었어도 저는 여전히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상자 속 한 줄기의 희망이 존재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이 희망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믿을 사람은 믿으라 전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SiteOwner
2016-11-19 15:50:55
좋은 논점에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국정농단사태의 추악함이 결코 영원한 비밀로 묻히지 않고 백일하에 드러났다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더욱 나을 것이고,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는 점이 여러모로 있습니다.
작년에 쓴 글 중 현실로 다가온 몇몇 시사현안에의 우려 제하의 것이 있습니다. 저 글에서 예상한 것들이 현실화되고 있다 보니 희망마저 옅어져 가고 있고, 각자도생만이 길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깊어집니다.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을 타개하려고 하기 보다는 이것을 또 다른 정쟁거리로 삼고 있는 것이 노골화하고, 급변하는 해외정세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놓은 상태인데다 정작 감시되고 견제되어야 할 대상은 사실상 빠져나간 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격화되는 형국만이 끓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역시 마음이 더 약해지지 않도록 다잡아야겠지요.
말씀하신대로 희망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고, 분명 그 희망이 꽃필 날도 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이 우리가 살아있을 동안에 오지 않을 수도 있기에, 한동안 있을 혼란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관건입니다. 우리의 삶은 갑작스럽게 방해받거나 중단당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월남전 당시 8년간의 포로생활을 했던 미 해군의 장교 제임스 스톡데일(James Stockdale,1923-2005)이 강조하였듯, 지켜야 할 믿음과 현실에의 직시를 혼동해서는 안되며, 이 글을 통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도 이것에 닿아 있습니다.
Dualeast
2016-11-19 07:36:00
제가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건 창작물에는 검열이 있지만 현실에는 검열이 없으니 현실은 창작물을 초월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착잡하네요.
SiteOwner
2016-11-19 15:56:03
현실에는 검열이 없으니 현실은 창작물을 초월할 수밖에 없다...그거야말로 명문이군요.
웃으면서도 씁쓸할 수밖에 없는 걸작 블랙코미디를 접했습니다. 그게 인생일지도 모르겠군요.
일단 이 국정농단 사태라는 희극은 끝났으니 이제는 박수를 칠 일이 남은 것일까요. 아우구스투스의 유언인 이야기는 모두 끝났으니 박수를 치라(Acta est fabula, plaudite)가 생각납니다만, 또 어디선가 새로운 스핀오프 드라마가 만들어질 것 같으니 아직 박수는 보류하렵니다.
마키
2016-11-19 10:49:19
저는 나라의 수장이 사실 제3자의 꼭두각시였고 모든 것들이 그 흑막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싸구려 펄프픽션에서도 안 나올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진짜 제 눈앞에서 떡하니 벌어지고 있는걸 보고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제로의 사역마의 명대사(?)를 인용하자면 "다시는 현실을 얕보지마라!" 같은 느낌이랄지...
흔히 이런 사건에 대해 역사의 한페이지 라고 비유하는데, 이번 국정농단(소위말하는 최모씨 게이트)과 광화문을 필두로한 대규모 촛불집회를 보고있자니 정말로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에 영원히 남을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SiteOwner
2016-11-19 16:05:37
정말 삼류소설도 이렇게는 안 만들어지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그 동안의 괴이한 일이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된다는 것을 발견해서 만시지탄이 있더라도 흑막의 실체가 밝혀져서 불행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하루이틀에 해결될 것도 아니고 인물과 계파가 중심이 되는 정계구조 및 정치과잉의 사회구조가 있는 한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기에 어쩌면 앞으로의 과제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잘 살아남아 권토중래를 꾀하는가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복잡하기 마련입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그렇겠군요.
후대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는 그때가 되어 봐야 알겠지만, 이것만큼은 말할 수 있겠군요. 쉽사리 잊혀지지는 않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