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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ironic, Tony!

Papillon, 2017-02-25 02:38:58

조회 수
228

1. 제목은 영화 "아이언맨" 1편의 빌런인 오베다이아 스테인의 대사입니다. 전체 대사를 따오자면 "How ironic, Tony! Trying to rid the world of weapons, you gave it its best one ever! And now, I’m going to kill you with it. (아이러니하지 않나, 토니? 무기를 없애려는 자네가 사상 최고의 무기를 만들었네! 그리고 이제 그 무기로 자네를 죽일걸세."입니다. 글의 내용은 최근 제가 느끼고 있는 묘한 아이러니 몇 가지에 대해서 입니다.

2. 작품에 대한 비평이나 리뷰에서 자주 나오는 비판 레퍼토리 중 하나로 "여성을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묘사한다"가 있습니다. 주로 남성향 작품에 대한 비판에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죠. 저 역시 남성향 작품 중 꽤 많은 작품이 여성을 수동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실제로 제가 대강당에 쓰려고 하고 있는 창작물 속 히로인에 대한 글의 시작점이 그런 수동적이고 몰개성한 히로인에 대한 불만이었거든요. 더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국내 판타지 소설 "흡혈왕 바하문트"의 주인공에게 공략 완료된 히로인들이 완전히 몰개성하게 변해버리는 것을 보고 반감을 품은 것이 해당 내용을 생각하게 된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일반 문화 비평가들이 내는 불만과 제가 느끼는 불만의 방향성은 전혀 다른겠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런데 제가 아이러니하다고 느끼는 것은 선입견과는 반대로 서브컬처 작품 중 남성향 작품보다 여성향 작품에서 수동적인 여성 묘사가 더 자주 보인다는 것입니다. 미소녀들을 내세우는 남성향 작품에서는 자기 분야에서 남성보다 멋진 활약을 보여주는 여성 캐릭터(Ex: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의 아이즈 발렌슈타인)나, 기존 사회의 편견에 저항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여성 캐릭터(Ex: "하이스쿨 DxD"의 시토리 소우나), 아예 세계관 내에서 영웅적 존재로 숭배받는 여성("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더 보스) 등이 자주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뭐라고 하든 무조건 좋다고 따르는 히로인은 30대 이상 아저씨 독자들을 주로 노리는 좀 고전적인, 나쁘게 말하면 양산형 무협&판타지 소설에서나 보이는 정도죠. 그런데 여성향 작품 중 꽤 인기 있는 작품 중 일부는 이런 아저씨들을 노린 양산형 판타지&무협 소설보다도 훨씬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내세웁니다. 판타지 할리퀸 로맨스 소설인 "트와일라잇"은 잘생긴 주변 남자들에 둘러싸여서 보호받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를 품고 툭하면 자학을 하는 여성 이사벨라 스완을 주역으로 내놓고, 2016년 4분기 애니메이션을 방영했던 "내가 인기 있어서 어쩌자는 거야" 나 비슷한 계통의 순정만화의 경우에도 주인공은 주도적으로 사건을 처리하기보다는 잘생긴 남자들에게 휩쓸리는 하렘 생활을 즐길 뿐. 마찬가지로 여성향인 국내 트렌디 드라마도 뛰어난 남성들에게 사랑받는 수동적인, 조금 적극적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막나가는 성격일 뿐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성향이 드문 여성 캐릭터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고요.
물론 모든 여성향 서브컬처가 수동적인 여성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고 모든 남성향 서브컬처가 능동적인 여성상을 내보내는 것은 아닙니다만…… 오히려 인기 있는 여성향 작품에서 수동적 여성을 주인공으로 자주 내세우는 것은 꽤 아이러니하더군요.

3. 또 다른 하나는 정치적 음모론에 대한 것. 정치적 음모론을 보면 자주 "상대방은 무능한데 정치적 뒷공작을 통해 이를 숨긴다"라는 주장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재미있는 것이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뒷공작을 할 수 있다면 그 단체는 절대로 무능하지 않다는 거죠. 아니 오히려 터무니 없을 정도로 유능한 존재가 됩니다. 이런 대표적인 예시가 재특회 등의 일본 혐한 집단이 있는데,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재일조선인은 일본 정재계, 언론 뿐만 아니라 세계 정재계와 언론, 심지어 자연현상마저 통제할 수 있는 초인 집단이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열등한 민족이라고 말하죠. 얼마 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는(다만 일본 우익이 말하는 주장과는 다른 계통입니다) 어르신을 봤는데 꽤 재미있었습니다. 참고로 일본 혐한 집단들이 재일조선인을 만악의 근원으로 치부하는 것과는 달리 그 분은 특정 정당이 그렇다고 주장하고 계셨지만요.

4. 소위 "꼰대"라고 불리는 어른들 중 상당수가 보이는 현상이 월급이 낮은 젊은이들이나, 직장이 없는 젊은이들을 비웃는 것입니다. 젊은 녀석이 패기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비웃는 식이죠. 그런데 정작 젊은이들을 일하게 하기 위해 일자리를 늘리자거나 젊은이들이 월급을 올려달라고 하면 바로 정색하고 화내는 것도 이런 분들입니다. 솔직히 어쩌라는건지 모르겠어요.

5. 학창 시절에도 최근에도 자주 보는 주장 중 스테레오타입이나 클리셰를 피하기 위해서 그에 해당되는 것은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획일화를 불러오고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정작 클리셰나 스테레오타입을 무조건 피하게 될 경우 오히려 더 심한 규율이 생기며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제가 얼마 전에 본 모 기사인데 여성이 성적으로 주변의 시선에 노출되는 것이 여성에 대한 억압이며 이는 자본주의 서구사회가 만들어낸 여성에 대한 족쇄라는 내용이었죠. 해당 분석이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그 해답이라고 내놓은 것이 이슬람교. 이슬람교의 여성의복(히잡, 니캅, 부르카)이 남성들의 성적인 시선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해주며 여성을 해방시킨다며 찬양하는 것을 보고 기겁했습니다.
Papillon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6 댓글

마드리갈

2017-02-26 15:03:00

현대사회의 각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기모순 상황을 보고 있으면, 인류의 지성이 정말 고대 그리스 시대보다도 발전했는지 의구심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요. 그리고 그 자기모순이 주의(主義)라고 이름붙여지는 것을 타게 되면 그 이후로는 주의(注意)하지 않으면 안될 괴물로 급성장하게 되니 마냥 방관할 수만도 없다는 것이 문제예요.


여성캐릭터의 수동적 성격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역으로 제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렇다면, 왜 어떤 여성캐릭터가 수동적으로 묘사되어서는 안되는가?"

"작품 속 캐릭터의 역할이 중요한가, 아니면 그 캐릭터의 성별이 무엇인가가 중요한가?"

새로운 형태라고 해도 성역할 고정 도그마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에 변함이 없는 이상, 여성캐릭터의 수동성에 대한 비판은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음에 어떠한 변화도 없어요. 게다가 주객전도, 논점일탈 등의 행태를 예의 도그마로 정당화하려는 작태는 웃기지도 않아요.

말씀하신 작품 중 내가 인기있어서 어쩌자는 거야는 보는 순간에는 재미있지만 보고 나서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어서 뒷맛이 씁쓸하기 짝이 없었어요. 이전에는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세리누마 카에가 게임 캐릭터의 죽음 이후 식음을 전폐한 한 나머지 살이 빠져 미소녀가 되고 나자 주변에 남자들이 몰려들어서 경쟁을 벌이고 있고 카에는 그 상황을 즐기고 있을 따름이죠. 캐릭터의 성장이라든지 이런 것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것은 애니화가 완료되고 나서 관심 컨텐츠에서 바로 탈락해 버렸어요.


정치적 음모론도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인데, 그렇게 음모를 잘 꾸미면 그 실상이 백일하에 드러나서 여론의 질타를 받고 관련자가 영어(囹圄)의 몸이 되고 할 일 자체가 벌어질 일은 없겠죠. 게다가 그러한 것들이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고 일관적인 논리구조도 없이 그냥 닥치는 상황에 의존하다 보니 결국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의 열렬한 서포터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해요. 젊은이들을 비웃는 일부 몰지각한 기성세대의 사고방식도 그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죠.


사실 클리셰 같은 것들이 헛되이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니라고 봐요.

여러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요소는 어느 정도 집약되기 마련이고, 그러한 것이 없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죠. 사실 즐기기 위한 컨텐츠가 낯선 것 투성이면 진입장벽이 감당할 수 없을 수준으로 높아져서 사람들은 합리적 무시를 하게 되죠. 그것의 결과는 컨텐츠가 시장에서 버려지는 것. 그런데 그냥 그 컨텐츠만 버려지면 그나마 낫겠는데, 클리셰를 벗어나야 한다고 기존요소의 폐기를 주장하게 되면 그건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로 커져 버리게 되어요. 그것도 일종의 반달리즘임에 틀림이 없어요.

이슬람식 복식이 여성을 보호하고 해방시킨다는 주장, 이건 뭐 헛웃음도 안 나오네요. 솔직히 욕을 해 주고 싶지만 여기는 포럼이니 운영진인 저부터가 자중해야겠어요.


그런데, 2번 문단의 "자게" 는 무엇을 지칭한 것인지요?

포럼에는 "자게" 로 약칭되는 게시판이 없어요. 확인해 주시고 수정을 부탁드려요.

Papillon

2017-02-26 16:16:23

사실 캐릭터 자체가 수동적인 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죠. 개인적으로 저는 남성인가 여성인가는 "덤"으로 취급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제가 언급한 "흡혈왕 바하무트"의 경우, 사실 수동적인 특성보다는 그로 인해 변하는 몰개성화+공기화에 분노한게 원인이었으니까요. 다만 소위 일부 비평가들이 말하는 "여성을 수동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나쁘다!"보다는 "온갖 흑마법사들이 모인 정글 최강의 흑마법사 여왕, 제국의 얼음호랑이라는 쿨뷰티 장군, 귀족가의 말괄량이 무투광 아가씨, 암흑가를 주름잡는 뱀파이어 범죄자, 주인공에게 충성하는 뱀파이어 은신 호위자라는 멋진 컨셉의 히로인들이 대량으로 있는데 "네, 바하무트 님"하면서 주인공에게 아양 떠는 것 밖에 없어?"라는 분노에 가까웠으니.

사실 "내가 인기 있어서 어쩌자는 거야"는 소재 자체는 굉장히 가능성 있는 내용인데 정작 내용은 그냥 미소년 하렘을 즐기는게 대부분이라서……. 저로서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사실 클리셰라는 것은 처음 나올 때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설정이죠.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해서 클리셰가 되는 것이고요. 작품 기획이나 상품 기획 관련을 배우면서 자주 나오는 것이 "무언가를 남에게 어필하려면 익숙하면서 동시에 신선해야 한다."이죠.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 관심을 가지지만 기존의 것과 똑같으면 그것에 남질 않는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새로운 것 역시 추가해야 한다라는 내용이죠. 어째 이런 식으로 나가기보다는 새로움과 익숙함을 별개의 극단으로 생각하고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요.

뭐, 저 이슬람식 복장 얘기 말고도 언론이나 잡지 기사 중 꽤 상당수가 기묘하다 못해 헛소리인 경우가 많더군요. 솔직히 저도 흔히 "조중동"이라고 부르는 3대 신문이 어느 정도 정치적 편향성을 띄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나머지 신문이나 잡지 중에 수준 이하인 물건들이 너무 많아서 차라리 저 셋이 낫다고 보게 되더군요.


아, 자게는 대강당입니다. 사실 해당 내용을 대강당에 써야 하나 아니면 일종의 짧은 에세이로 보고 아트홀에 써야 고민하다가 별 생각없이 다른 사이트들에서 사용하는 호칭을 사용했군요. 수정했습니다.

콘스탄티노스XI

2017-02-27 22:57:12

뭐...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남성향 작품의 히로인들은 대부분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끄는(예: 미사카 미코토, 실바나스 윈드러너) 캐릭터가 더인기니깐요. 확실히, 지적하신대로 요즘 여성향 만화 여주인공들 상당수는 남자들이 이끄는대로 끌려가는 경우가 잦긴 합니다.(그런데, 또 재밌는게 서브캐릭터들중에는 남자를 끌고 다니는캐릭터가 꽤 있더군요. 세오 유즈키라던가...) 다만, 요즘 페미니즘 평론가라는 사람들은 그런거 전부 기만이라하면서 작품내 캐릭터들의 섹스어필까지 문제삼고 있다는게 문제죠...


음...'보수는 부패한데 진보는 무능하다'라는 주장인가요, 아니면 '저 친일독재세력의 후예는 무능하기 그지 없는데 뒷공작으로 우민들을 선동하기에 버티는거다.'인가요? 뭐, 하여튼 정당이나 정치이념에 대한 호불호와 그 표시야 자유지만 요즘은 그게 극단화돼서 다른 세력을 터무니없는 이유로 비난한다는게 참 씁쓸합니다...


음...뭐, 자기 밥그릇이 걸린(걸로 보이는)문제니깐요. 외국인 노동자를 보고 제노포비아적 시선을 보이면서 한편으론 이들이 한국에 정착이나 적응을 도와주는 운동을 정부나 단체에서 하면 욕하는 젊은층이랑 비슷한거라 봅니다.


음...솔직히 말해서 히잡이나 베일등의 옷디자인에 일종의 페티쉬가 있는 사람으로써 말하자면, '그게 뭔 여성해방이랑 관계있는 옷차림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Papillon

2017-02-28 01:22:06

여성향 작품은 요즘이라고 한정 짓기는 힘든 것이 제가 학창시절에 유행하던 귀여니 소설이나 드라마들도 비슷했습니다. 그리고 언급하신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는 주인공의 주변 인물이거나(예를 들면, 언급하신 세오 유즈키처럼 활발하고 놀기 좋아하는 친구) 아니면 악역(순정만화에 주인공을 괴롭히는 학교의 여왕 컨셉 소녀나 여자 폭력배 등)이 많았죠. 원인은 간단하게 장르적 특성입니다. 왜냐하면 남성향 작품에도 성별이 역전되어 있을 뿐 비슷한 타입의 작품이 있거든요. 학원 러브 코미디 형태의 라이트노벨이나 미연시 중 상당수. 지극히 평범하고 학생인 주인공과 그와 만나게 되는 각양 각생의 미형 이성 캐릭터, 그리고 능동적인 동성 캐릭터는 주인공보다는 악역이나 주인공의 죽마고우가 차지. 그리고 이렇게 되는 경우에는 평범한 학생인 독자들이 몰입하기 쉽도록 좀 몰개성한 타입의 주인공을 만들다보니 사건의 전개를 주변에 맡겨야 되서 나오는 현상이고요. 다만 남성향 작품의 스펙트럼이 여성향 작품의 스펙트럼보다 더 다양한 편인지라 좀 더 다양한 타입의 주인공들이 나올 수 있을 뿐이라고 봅니다.


한 바퀴 돌아서 비슷해진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극단은 따로 통한다고 할까요? 비슷한 계통으로 분리주의 계통 주장이 있습니다. 보통 차별의 가해자 집단이 차별의 피해자들을 "더럽다"고 판단하며 자신들과 거리를 두려고 시작하는 것이 분리주의인데, 차별의 피해자 집단 쪽에서 "잠재적 차별의 가해자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들만의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라면서 분리에 적극 찬성하기도 하죠. 실제로 흑인 인권운동 당시 마틴 루터 킹 주니어처럼 흑인과 백인이 평등하게 어울리는 사회를 지향한 집단들도 있었지만 말콤 X를 위시로 한 과격 흑인 단체들은 철저한 흑백분리를 통해 흑인들이 백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목표로 삼았으니까요. 

SiteOwner

2017-05-06 23:15:19

예전에 학원강사를 하면서 늘상 학생들에게 하던 말이 있었지요.

"논점일탈 답안은 무조건 0점이다!!"

단적으로, 애니메이션 산업 진흥방안을 논하는 자리에서 법실증주의의 논리적 한계가 어떻고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만, 놀랍게도 예술비평 분야에서는 이러한 것이 아주 쉽게 무시당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말씀하신 것처럼 평론가의 사상적 기반에 따라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의심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어떤 여성주의적 해석이 하루바삐 폐기해야 할 유해폐기물이라고 단언할 생각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한 방법론일 따름이고, 그것이 다른 해석방법론보다 우위에 있거나 유일한 해결책인 것도 아닙니다. 즉 어떤 수식이 있을 때 해석방법의 하나로서 특정변수에 대해서 편미분을 할 수 있지만 그 편미분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게 금과옥조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독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평론가들은 그게 전부 내지는 유일한 기준이라고 말하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창작물 속의 캐릭터는 창작물 속에서 펼쳐진 세계를 전제로 하기에 그 세계 속에서의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그 창작물 밖의 제3자가 자신만의 기준으로 캐릭터를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평론인지는 솔직히 의문이고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논점일탈답안을 제출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의 주인공 레오노레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녀의 남편 플로레스탄은 주지사 피사로의 범죄사실을 폭로하려다 피사로의 미움을 사서 감옥에 갇히고 말아 버리고, 또한 그가 옥사했다는 소문을 퍼트립니다. 하지만 플로레스탄의 아내인 레오노레는 그 소문을 믿지 않고, 남편을 구해내려 여러 시도를 하는데, 피델리오라는 이름의 남성으로 변장하여, 남편이 갇혀 있는 감옥의 총책임자인 로코로부터 일자리를 얻은 뒤 그의 환심을 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18세기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레오노레도 어떤 여성주의적 해석으로는 아주 크게 비판당할 수 있습니다. 왜 자신의 여성성을 버리고 남성으로 위장하여 남편을 구해야 했는가, 여성으로서 사회운동을 벌이지 못했으니 수동적이다, 그리고 왜 남편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등등...이러한 비판이 얼마나 설득력있을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겨야 할 듯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레오노레에 대해서 비판을 한다면, 1980년대 국내 대학가에서 이른바 양성평등 어쩌고 하면서 여학생이 오빠, 언니 등의 호칭을 쓰면 안좋게 보던 풍조가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의문도 동시에 들기 마련입니다.


음모론 관련으로는, 저는 이런 방침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아는 것이 아니면 말하지 않고, 듣더라도 무시한다. 말씀하신 것처럼 음모론의 자기모순은 황당무계 그 자체니까요.


4. 5번 사항은 길어지니 별도의 코멘트로 언급하겠습니다.

SiteOwner

2017-05-06 23:52:28

코멘트를 이어갑니다.


사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의 취업지옥 문제를 비웃을 자격이 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자격이 된다고 한들, 그것이 조소할 권리를 도출시키기는 할까요? 두 질문에의 대답에 긍정이 나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물론 한국현대사의 많은 부분에 질곡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일본의 식민통치의 잔영이 가시기도 전에 6.25 전쟁으로 국토가 폐허로 변하고, 하루하루의 생존 그 자체가 전쟁이었던 시대도 분명 있었습니다. 지금이 최소한 그런 시대가 아님은 명백합니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선택지 자체가 없다는 것.

과거 고성장 시대에는 일자리가 계속 생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자리의 포화 상태는 사실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금리도 높은 편이라서 과거에는 착실히 저축하면 목돈 만들기도 쉬웠습니다. 게다가 사회의 루프홀도 많아서, 불법은 아니지만 사회통념상 별로 권장되지 않는 편법적인 축재수단도 있었는데다 정치적인 선택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상황이 달라져서, 사회는 발전하지 않고 있는 일자리도 줄어들고, 온갖 위법, 편법적 작태는 기성세대가 저질렀는데 그것을 규제하는 법령은 젊은 세대를 타겟으로 하고 있습니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한데, 21세기 지금에 허생이 변씨같은 부자를 만나서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었을까요? 1990년대 전반까지는 그게 그런대로 되었지만 지금은 어림없습니다. 이렇게 속수무책인 상황에 젊은 세대가 그대로 노출된 것에 대해 기성세대가 반성하기는망정 조롱하고 비웃는 것은 절대로 불가합니다.

그리고, 첫 직장이 변변찮으면 계속 고생한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아는 터라, 그것을 아는 젊은 세대들의 구직행태를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회의 룰은 뭔가 기득권이 있지 않으면 귓등으로도 안 들어주는 것이니 이런 고통을 아무리 이야기한들 뭐하겠습니까.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영향력이 없으니...


스테레오타입이나 클리셰를 피하기만 하는 것도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이나 클리셰 구축에 일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도그마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대립적인 타자를 획일적으로 정의하고, 그 대립되는 타자에 대응하는 자신 및 동류집단을 획일화하는 모순을 범하기도 합니다. 어떤 여성주의적 사고가 여성 개개인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여성을 특정 가치체계에 가두어 버린다든지 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런 실례이기도 합니다. 더욱 나쁜 것은, 그것이 결국 그들이 배격하고자 했던 가부장제적 사고를 옹호하는 결과가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이전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과거 대학가에서는 김일성 관련을 아는 것은 학문의 자유 등의 이유로 보장되어야 하면서도 박정희 관련을 알면 의도에 상관없이 잠재적 유신체제 옹호자로 보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적으로 여기는 공안기관의 논리를 인정한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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