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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와 여류

마드리갈, 2017-08-03 23:17:30

조회 수
338

불과 30여년 전의 문헌이나 기사 등을 읽어보더라도 여류라는 표현은 심심찮게 볼 수 있어요.
여류(女流). 요즘은 거의 사어가 되다시피 한 것이었지만, 예술작품의 창작자나 특정분야의 전문가가 여성인 경우에는 이런 말이 붙는 경우가 많았어요.

사실 여류 운운하는 것이 조금만 생각해도 모순이 몇 가지는 바로 나올 법한데, 창작자의 성별이 여성인 것이 그 창작물의 성격을 결정하는 변수가 되지는 못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죠. 허난설헌, 아가사 크리스티, 프랑소와즈 사강, 미우라 아야코, 헤르타 뮐러 등의 문학가들이 모두 여성이지만 그들의 작품에 어떤 공통성이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예요. 이렇게 말할 것도 사실 필요없는 게, 남성 문학가들이 쓴 작품이 남성이라는 성별을 이유로 동질적일 수도 없는 것에서 이미 여류 운운하는 것이 합리적일 담론일 수가 없는 게 증명되니까요.

그런데, 근년 들어서 이런 사조가 보이는 것 같네요.
여성이 이렇게 묘사되어서는 안된다, 여성이 등장하지 않으면 여성소외이다, 여성이 등장하면 어떻게 등장했느냐가 창작물의 주제의식이나 표현방법론보다 더 중시되다 못해 논점일탈성 논쟁이 벌어져 그것을 둘러싸고 진흙탕 싸움이 확대재생산되는 등, 뭔가를 말하기조차 두려운 광풍이 일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과거의 여성 창작자 개인의 개성은 도외시한 채 여류라는 카테고리로 여성 창작자들을 무성의하게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보다 더 못한 풍조가 형성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과거의 여류(女流)라는 말은 거의 사장되었지만, 이제는 새로이 여류(女類)라는 새로운 인종구분이 창조되어 여성이라면 모두 동질적으로 여겨져야 하고 인간으로서의 개성, 취향, 관점 등이 부정되어야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이상한 발언이 속출하고 있어요. 이건 내용만 달라졌지 여성은 어떠해야 한다 등등의 그런 성역할 고정이 아니면 대체 무엇일까요. 꼭 이렇게 편가르기를 하고 싸워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대학 때가 생각나네요.
옷을 좀 신경써서 입으면 대학에 공부하러 왔나 몸팔러 왔나 등의 폭언을 일삼던 자칭 페미니스트.
성명을 풀네임으로 표기하는 것을 가부장제에 동의하는 반동분자 운운하던 자칭 페미니스트.
그런 자들의 패악질이 그냥 대학가 내의 치기어린 헛소리 차원을 벗어나서, 새로이 성역할 고정을 조장하는 사회사조로 부상해서 사회전반을 좌지우지하려 드는 것이 불쾌하기 짝없게 느껴지고 있어요.

여성이고 남성이고 이전에 인간임을 인식하는 게 그리도 힘들고 어렵고 싫은 것일까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8 댓글

안샤르베인

2017-08-03 23:33:57

저런 걸 볼 때마다 옛날의 유행어가 생각납니다.

"아이고. 의미없다."

정말 쓸데없는 짓에 소모전을 벌이고 있단 생각밖에 안 들어요.

마드리갈

2017-08-03 23:51:33

정말 그 유행어 그대로네요. 무의미 그 자체...

그런데 정말 경계해야 하는 것이, 이런 소모적인 논쟁이 무의미 정도가 아니라 반의미(反意味)로 갈 수 있다는 거예요. 즉, 이런 공격이 난무하게 되면 여기저기서 검열이 난무하고, 당대의 공격적인 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창작활동이나 의견표명 등을 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등 자유와 개성이 억압되고 말아요.


이미 어떤 창작자들은 이런 시도를 하고 있어요.

일부러 그러한 이념적 담론에 의한 공격을 막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 이념적 담론이 요구하는대로 창작물을 만들고, 고증이 틀렸느니 재미가 없느니 하는 지적이 들어오면 "그거, 당신들이 요구한 건데?" 라고 냉소하는 식으로도 대응하고 있어요.


정말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뭔지 모르겠어요.

미국의 USA 투데이 신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덩케르크에서 여성도 없고 유색인종 주연배우가 없다고 비판을 했나 봐요. 그에 대해 데일리콜러는 상당히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어요.

Papillon

2017-08-04 00:13:40

페미니즘만이 아닌 PC(정치적 올바름) 운동과 연관된 사상 전반이 그와 유사한 방향성을 보이고 있죠. 개인적으로 한숨이 나올 뿐입니다.

마드리갈

2017-08-04 00:40:55

정치적 올바름은 수년 전만 하더라도 상당히 공감할 부분이 많았는데, 이제는 뭔가 괴물로 자라난 듯해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선으로 흐르는 경향, 다른 가치기준에 대한 차별 및 폭력행사 정당화 등의 온갖 역기능을 표출하는 것도 모자라서 그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를 갖지 않는 게 보이고 있어요.


세상을 나쁘게 보기 시작면 한없이 나쁘게 보게 된다는 옛 말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듯하네요. 그래서 씁쓸해지고 있어요.

카멜

2017-08-04 01:00:59

가히 '혐오의 인터넷'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요즘 세태이죠.?

누가 누구를 더 헐뜯는가의 방법, 누가 잘못했나, 누가 죽일놈인가...?

애초에 결론을 내려놓고 논리를 전개하는데 그 논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잖아요?

마드리갈

2017-08-04 08:28:09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증오의 시간은 그나마 일정시간대로 지정되어 있고 그때 집단광기를 쏟아내는 것인데, 현실의 인터넷은 그 증오의 시간이 따로 없이 상시화된 것 같아요. 대체 이렇게까지 증오에 가득찬 그런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보람있는 것인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근간의 이런 혐오실태는 논리라고 부르는 것조차 민망할 수준이죠. 그냥 폭력...

여기 포럼에서는 이런 행태는 없어야겠죠.

OBiN

2017-08-07 09:31:47

인터넷을 보면 간혹, 일견 옳아 보이지만 속을 뜯어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보입니다.

최근에는 페미니즘을 표방하겠답시고 그 의의를 왜곡해서, '여자만 챙기겠다'며 성소수자 등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죠.

전 이걸 보자마자 바로 ISIL이 떠올랐습니다. 근본주의를 주장하며 타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공통점이 보이네요.

마드리갈

2017-08-07 09:50:56

말씀하신 그런 현상은, 주장 자체로도 끔찍하지만 그 주장에 대한 비판이나 첨언 등을 봉쇄하는 점에서도 위험하기 짝이 없어요. 특히 성소수자 핍박에 대해서 이런 것도 있어서 기겁했어요. 이를테면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로 약칭되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람들을 증오하는 사조가 해당되어요. 작년부터 미국에서 표면화된, 성염색체에 따라서 화장실을 사용할 것을 강요하고 트랜스여성의 여자화장실 이용을 금지하려는 문제 또한 이 경향을 답습하고 있어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ISIL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극단주의자들이 생활권 내에 없다고 단언할 수 없는 것에서 공포가 느껴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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