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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유래는 러시아의 가수 아니타 초이(Анита Цой, 1971년생)의 2015년 발표곡인 여름, 라떼, 사랑(Лето. Латте. Любовь.).
전근대의 과학자들은, 경제, 경영 분야의 용어로 치자면 하이리스크 로우리턴(high risk, low return)의 인생을 살았어요. 당장 동아시아만 하더라도, 일식과 월식의 예측을 틀린 천문학자들이 사형에 처해졌다든지 하는 일이 있었고, 당대 최고의 과학자, 기술자들의 의견발표 및 도전이 종교, 정치논리 등 외부요인으로 탄압받는 일은 갈릴레이에 대한 종교재판에서부터 근현대의 라이트 형제의 동력항공기 발명에 대한 매도,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에 대한 해롤드 제프리의 부정 등 여러 사례가 부지기수인 상태에 있어요.
그런데 과학기술의 혜택을 인류사의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입고 있는 이 시대에, 전근대적인 비과학, 아니, 나아가서 반과학적인 행태가 벌어지고 있네요. 그것도, 과학기술 연구개발 투자액으로 세계 상위권을 달리고 국내총생산 대비 투자율로는 세계 최정상인 우리나라에서.
최근의 거대논란 중의 하나인 탈원전 이슈도 문제이긴 하지만, 여기서 거론할 문제는 아예 천문학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만큼이나 개인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불이익을 직접 가하는 것이라서 심각성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어요.
해당 사건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중인 무인항공기 개발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동아사이언스 전승민 과학전문기자의 칼럼 과학자에게 돈 물어내라는 나라 참조).
요약하면 이거예요. 연구원 5명이 무인기 개발도중 사고를 일으켜, 67억원 가치의 무인기를 잃었으니까 그 5명에게 1인당 평균 13억 4천만원의 손해배상을 받아내겠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이유가 테스트붐의 회로를 거꾸로 연결한 것이다 보니 명백히 연구원의 실수라는 것이라는데...지금 우리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것이 일단 맞긴 맞는 것이죠? 그것부터 되물어야겠어요.
과학은 인류의 숱한 시행착오의 결과 이렇게까지 발전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완치불능의 피해를 입기도 하였고, 그러한 희생에서 배운 결과 문명이 이렇게 진보하여, 현대인의 문명생활은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거나 무언가를 잘못 먹고 그 독으로 죽거나 매일 밤의 안전한 잠자리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레벨로까지 성장했어요. 즉 선조들의 실패가 헛되지 않았고, 현대문명은 그 실패의 소산이라는 것이죠. 바꾸어 말하면 실패는 과학의 토양이라는 것.
이렇게 볼 때, 문제의 사건에서 반드시 면밀히 봐야 하는 실패가 있어요.
문제의 테스트붐의 회로가 거꾸로 연결된 사태는, 그 무인기를 개발중인 연구인력들이 다루어도 휴먼에러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어요. 이렇다면, 그 무인기가 취역하여 현장에서 운용되었을 경우, 개발에 참여한 연구인력이 아닌 사람들이 매일의 운용 전과정을 담당해야 하는 것인데 그 사람들 또한 어딘가에서 실수를 피할 수 없을 위험이 따른다는 추론도 불가능하지 않아요. 조금 더 간단히 하자면, 보잉에서 만든 F-15K 전투기를 운용하는 공군 조종사 및 정비사가 반드시 보잉의 F-15 개발과정 참여인원인 것이 아니라는 예로도 설명이 가능하겠네요.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연구원들에게 책임을 물으면 해결되는 건 무엇이 있을까요? 설령 그 연구원들로부터 성공적으로 67억원을 회수했다 치더라도, 그 테스트붐의 회로가 거꾸로 연결된 사실 자체는 미해결 상태로 남게 되어요. 휴먼에러에는 여러 이유가 가능한데, 외형의 혼란 등 그 자체의 문제점에서부터 연구인력 개인의 피로누적, 작업장의 당시 상황 등 외부요인까지 있는데 그것들은 그냥 방치되고 말아요. 그리고 다음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연구원이 책임을 져야겠죠. 결국 이게 폭탄돌리기가 아니면 대체 뭘까요? 그리고 실패에서 전혀 배우지 않는데 어떻게 과학기술연구가 잘 진행될까요? 그러니까 이런 징계는 과학의 토양 자체를 부정하는 비과학, 그리고 그 차원을 넘어서 과학을 선택하면 죽는다고 말하여 과학을 멀리하게 만드는 반과학이고, 이것이 배드엔딩의 전조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확연히 보이고 있어요.
그리고 이러한 행태가 지속되면, 역시 여기에서도 학습효과가 발생해요.
과학기술 연구자로의 삶은 하이리스크 로우리턴이니 앞으로 저 분야를 지망할 인재가 얼마나 모일지가 회의적인 상황이 만들어지겠죠. 능력과 열정이 있어서 그 분야에 뛰어들었는데 돌아오는 것이 배상폭탄이면, 아름다운 뿔을 이유로 목이 잘리는 사슴이나 아름다운 털가죽을 이유로 등에 창이 꽂히는 호랑이 신세나 다를 바가 없어요. 저라도 그런 선택은 안 할 것 같네요. 각종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정(正)의 학습효과 대신 비참한 상황을 면하기 위한 부(負)의 학습효과가 발생하면 이것도 그 끝은 배드엔딩 확정이겠어요.
제목의 유래가 된 노래는 세 단어가 키릴문자 Л(=로마자의 L)로 시작하고 영상에서는 하늘에서 하트폭탄이 떨어지지만...
이런 행태는 그저 비과학, 반과학, 배드엔딩이라는 ㅂ 초성으로 시작하는 세 단어로 요약될 뿐이고, 과학에 몸담은 것이 죄가 된 연구원들에게는 배상폭탄이, 과학에 뜻을 둔 사람에게는 공포라는 이름의 폭탄이 떨어지겠어요.
과학 쪽에 흥미가 많이 있었지만 과학도로서의 꿈을 접었던 게 제 인생에서 그나마 잘 한 결정인가 하는 생각에 오늘도 날이 저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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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
2017-10-09 20:06:55
아주 가끔 어쩌다 전투기를 날려먹은 조종사를 처벌해야 하지 않나 하는 사람도 간혹 나오기는 하는데, 최악의 경우에도 돈 주고 사오면 그만인 기체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생명이자 고급인력인 조종사의 가치를 저울질해보면 바로 답이 나오죠. 극단적으로는 조종사가 살아서 다시 임무에 복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전투기 값은 치루고도 남는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말씀하신대로 사람의 손을 거치는 이상 '완벽함'이라는건 결코 있을수가 없죠. 지구방위대라는 천하의 미국 공군조차도 사소한 센서 오류로 21억달러 짜리 스텔스 폭격기를 활주로에 갈아버리는 대형사고를 쳤을 정도면 뭐 말 다했다고 봐도...
실패가 죄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할텐데 아직은 갈 길이 멀고도 먼거같네요.
마드리갈
2017-10-09 20:23:05
전투기와 조종사 중 무엇이 중요한가는, 이미 2차대전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어요. 생존성이 충분했던 미국의 전투기와, 경량화, 항속거리 증대에만 치중하고 생존성이 보장되지 않았던 일본의 전투기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게다가 일본은 카미카제 특공대라는, 조종사들을 최대한 희생하는 희대의 하지하책으로 패배를 자초했어요. 전투기의 운용수량이 적어졌지만 고성능 다기능화가 더욱 현저해진 현대에는 조종사가 더욱 고급인력일 수밖에 없고, 높은 생존성에의 요구는 더 커졌으면 커졌지 작아질 수가 없는 건 필연이예요. 그리고 이런 것들을 따지기 이전에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해요.
이 사회에서 경력 있는 신입사원이라든지 온갖 역경 속에서 전혀 실패하지 않고 극복한 사람들을 찾는 것 분위기가 꽤 있는데, 연목구어(縁木求魚)라는 성어는 옛날 말이라고 그냥 내다 버린 것 같아요.
안샤르베인
2017-10-09 20:42:52
그저 할 말을 잃었습니다. 교수가 정신 나갔느냐라고 표현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조항이 저렇게 버젓이 살아있다니 아직까지 과학의 발전은 험난하기만 하군요...
마드리갈
2017-10-09 21:02:07
갑질이니 열정페이니 하는 사회적 병폐현상이, 이렇게 정부기관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는데 민간부문에서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 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누군가는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고, 그건 바로 연구원들이다 하는 것이...그렇다면 그건 참 악질적이죠. 그래서 출세하고 싶으면 엔지니어를 하지 말고 법조인이 되어서 권력을 잡거나 오퍼상이 되어서 눈먼 돈을 쓸어담으라는 말이 나도는 것인가 봐요.
Papillon
2017-10-09 20:49:24
마드리갈
2017-10-09 21:08:00
그렇죠. 전근대의 군주에 진취적인 면모가 있고, 현대의 정치인이나 기업가가 도리어 퇴영적인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사례를 보면서, 역시 생각의 깊이는 문물의 발전에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게 느껴지고 있어요.
예전에 동주열국지에서 읽은 것인데, 시대를 앞서고 백성의 존경을 받으며 나라를 부강하게 이끈 어질고 지혜로운 군주는 "신하에 지고 천하에 이기는" 그런 군주들이었어요. 반대로 시대에 뒤떨어지고 원성의 근원이 되며 나라를 쇠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마저도 망친 어리석은 군주는 "신하에 이기고 천하에 지는" 군주였죠. 방위사업청의 입장을 보니 "신하에 이기고 천하에도 이기는 군주" 가 롤모델인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한데, 세상에 그런 지도자가 있었는지는, 최소한 저는 아는 예가 없네요.
대왕고래
2017-10-14 02:19:38
석사과정을 마치고 연구소나 중소기업쪽에 전문연구요원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런 걸 보면, 대체 이 길을 가는 게 맞나 싶어요. 잘못하면 제가 망하게 생겼네요.
그렇게 다들 이공계를 피하게 되고... 발전을 저해하게 되겠죠. 저런 법을 만들 때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질 않는 거 같아요. 나라에 도움이 되기는 망정 쓸모없는 브레이크나 걸다니...
마드리갈
2017-10-16 14:46:18
공학을 전공하시는 입장이니 저런 현실이 더욱 두렵게 여겨지겠어요.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과학기술분야에 종사하는 사실 자체가 차별받아도 된다는 조건으로 해석되는 현실상황이 그저 개탄스러울 뿐이죠. 대체 저런 발상은 누가 한 것일까요. 혹시, 정책입안자들이 늘 어딘가에서 횡령할 것을 노리고 있다 보니 연구자들도 자신들과 똑같거나 더욱 심할 것이라고 넘겨짚는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고 있어요. 사실이 아니기만을 바라지만 확증도 없으니...
마드리갈
2023-06-07 21:53:06
2023년 6월 7일 업데이트
방위사업청은 미래도전기술 연구개발 업무처리 지침을 개정하여 방산연구개발이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성실히 수행했다면 지급된 사업비를 환수하지 않고 타 연구개발과제에 대한 참여제한도 설정하지 않기로 했어요. 기존에는 75%까지의 환수액 감면 및 24개월 참여제한조치가 이루어졌어요.
이번 지침개정안은 수행중인 과제에도 소급적용되어요. 그러나 과거의 종료된 사례에 대한 것은 아직 언급이 없어요. 본문에 나왔던 사건과 같은 무인항공기 개발사업 도중 파손된 무인기에 대해 연구원 5명에게 배상을 요구한 사건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전보다는 조금은 낫지만 그래도 부족한 점이 있고 성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도 관건이예요.
관련보도를 하나 소개할께요.
방산 연구개발 실패해도 성실했다면 사업비 환수 안한다, 2023년 6월 7일 연합뉴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