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영화, 만화, 소설, 게임 등을 보면 작가가 만든 고유명사 외에도 실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고유명사(주로 브랜드명)가 많이 나옵니다. 간단하게는 "페라리랑 람보르기니는 말이야~" 하는 언급에서, 자세하게는 "WA2000의 제원은 어떻고 성능은 어떻고" 하는 상세한 설명까지. 문제는 이러한 작품들이 저 브랜드명을 내보내는 기준을 도저히 모르겠다는 겁니다.
GTA는 아무래도 시각적인 게 많이 나오는 게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범죄물이라서 그런지 도시 이름부터 브랜드명까지 죄다 패러디로 가득 차 있고, 그런가 하면 고르고13 같은 만화나 몇몇 범죄 소설에서는 대놓고 차량이나 총기 브랜드가 나옵니다. 영화랑 게임은 앞서 말한대로 시각적인 요소가 주가 되어서인지 브랜드 관련 비용(로열티였던가요?)을 내지만, 만화나 소설은 그렇게까지 하진 않는 모양이더군요. 특히 생존만화 같은 데에서는 없는 총을 만들어서 묘사하자니 더더욱 이상해질테고. 그런가 하면 개그만화에서는 맥도날드 같은 건 '도널드 맥'처럼 미묘하게 바꾸기도 합니다. 개그물이라도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러는 걸까요?
그러다 보니 총기야 달리 대체재가 없으니 이름을 그대로 쓴다고 해도, 차량 브랜드명에 대해서는 (소설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타는 사람 숫자와 상황을 고려해서 "세단을 탔다"라고 해도 딱히 문제는 없지만, 볼보나 BMW의 차이가 극명하듯이 브랜드명이 주는 상상력(이라기보단 선입견...)은 무시할 수가 없거든요. 그렇다고 GTA처럼 '이 이름은 이 차량의 패러디입니다' 하는 목록을 만드는 것은 바보짓이고.
정확히 기준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소설같은 활자 매체라서 어느 정도 불문율로 넘어가주는 걸까요?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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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18-01-03 16:35:55
당장 국가별로 보더라도, 미국처럼 PPL(Product Placement, 간접광고)이 활성화된 국가가 있는가 하면, 일본처럼 업무제휴관계가 확실한 경우에는 실재하는 브랜드를 그대로 노출하고 그 이외의 경우에는 가공의 상호를 제시하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한국처럼 한동안 간접광고 자체를 금기시하다가 드라마 등의 일부 프로그램에 한해서 이루어지는 동시에, 일반소비자가 구입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산업용 기자재나 군사장비 등의 제조원조차 복자처리를 하는 등 이런 것에 극단적으로 비우호적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캐나다처럼 캐나다 기업이 캐나다 국내시장에서 판매하는 물품에 대한 언급을 전면금지하고 그 이외에는 문제삼지 않는 경우도 있는 등 국가별로 천차만별이니까요.
또한 창작물의 성격에 따라서도 브랜드의 등장은 판이하게 달라져요.
GTA같이 범죄가 창작물 속 캐릭터들의 기본적인 생활양식인 경우, 사실 자동차의 브랜드 및 실제 사양 같은 것은 어떻게 되어도 좋은 것이죠. 현실세계의 자동차 보안수준을 그 게임에 대입하면 아예 처음부터 진행이 안 되거나 난이도 조정에 실패하게 될테니까요. 고르고13같이 현실세계의 정치상황과 상당히 밀접한 작품이라면 실제의 자동차 및 총기류가 나오는 것이 현실성의 부각에 더욱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아예 처음부터 특정 브랜드를 중상할 목적으로 언급한다면 그건 바로 법적인 문제로 일어나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일일이 개입해봤자 비용 대 효과가 너무 낮으니, 경제학 용어인 "합리적 무시" 가 작용하는 것이겠죠. 즉 창작물이니까 그냥 넘어가는 정도.
일본산 창작물의 예를 좀 인용해 볼께요.
첫번째는, 완전한 가상 브랜드를 내세우는 경우.
두번째는, 실제 브랜드를 변형하는 경우.
세번째는, 실제 브랜드를 그대로 등장시키는 경우. 이 경우는 업무제휴, 제작지원 등의 관계인 경우가 많아요.
미국산 창작물의 경우는 워낙 예가 많으니 이건 생략해 두겠어요.
SiteOwner
2018-01-04 20:33:16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실재하는 문물은 리얼리티 극대화에 유리하고, 가상의 문물은 현실의 제약에서 자유로운데다 작품의 주제의식, 분위기, 세계관 등을 나타내기에 적합하기에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가 있습니다.
19세기의 영국 도시빈민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올리버 트위스트나 동시대의 프랑스 광산촌을 배경으로 한 제르미날이라면 당연히 이 시대와 환경에 맞는 복식이 나와야겠지요. 이미 18세기풍의 화려한 귀족 복식은 계층 자체가 맞지 않는데다 20세기나 21세기의 복식은 그 시대에 없었던 것이어서 그 작품에는 등장시키고 싶어도 등장할 수 없습니다. 만일 정 등장시켜야겠다면 그것들은 이미 올리버 트위스트나 제르미날이 아니고 그 작품에 영향을 받은 2차창작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관련으로 유명한 게임 폴아웃 시리즈에서는 상당히 뒤틀린 것들이 나오는데, 이를테면 누카콜라가 있는데. 이것은 실재하는 브랜드인 코카콜라를 비튼 것이면서, 동시에, 핵전쟁의 여파로 고준위 방사능물질이 세계 도처에 널려 있는 상황을 긴 설명 없이 한 단어로 압축하여 보여주는 훌륭한 장치입니다.
이런 것처럼 창작물의 성격에 따라서 실재하는 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일관된 기준도 없다 보니 특정인, 특정문물을 중상하기 위한 것이 아닌 이상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20세기 후반의 일본에서는 여러 종류의 소송이 횡행했는데, 키치가이(미치광이), 카타와(병신), 아이노코(혼혈), 부라쿠민(피차별 부락 출신자) 등의 어휘가, 특정인들에 대한 비하용어로 쓰이고 있다고 관련자들의 단체들이 소송을 통해 승소하여 방송금지용어로 정착한 사례도 있었고,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정치단체가 비판여론을 입막음하기 위해 명예훼손소송을 남발하는 것이 급증했습니다.
실제의 자동차 브랜드 및 모델이 등장하는 창작물은 시게노 슈이치의 이니셜D 시리즈를, 실제의 인명이 등장하는 창작물로서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폭로, 쿠리야마 케이스케의 이자카야 후지, 아사노 마스미의 그것이 성우 등을 참조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